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63)
“잘렸네요?”
“자르지. 나 같아도 자르겠네.”
변론이 끝나기 무섭게 무태식은 잘렸다.
확실하게 이기는 재판이고 심지어 살인인 것까지 증명한 사람을 자르는 그들의 행동은, 모든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뻔한 거야. 그들 입장에서는 살인이 드러나는 걸 바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자르다니, 바보인가 보군요.”
“예상 못 한 상황이 되니 당황해서 움직인 거죠.”
노형진은 그걸 재판정에서 까발리면 분명히 그들이 어떤 방법이든 쓸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무태식 변호사님을 자르고 소를 취하하는 것. 그 방법밖에 없죠.”
재판이 길어질수록 무태식이 살인에 대한 증거를 더 물고 늘어질 텐데, 그랬다가는 자신들의 범죄가 외부에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님 말대로 잘렸는데, 이제 어쩌죠?”
노형진은 씩 웃었다.
“소는 취하되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해직되었지요. 그러면 무태식 변호사님은 비밀 유지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지요.”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밀 유지 의무는 그런 게 아니잖아? 말 그대로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모든 것을 누설하지 말라는 거 아니야?”
“그렇지.”
재판을 하게 된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들.
그걸 변호사가 나불거리면 여러모로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걸 말하지 말라는 것.
그게 비밀 유지 의무다.
“그건 변호사가 잘리거나 소가 취하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손채림은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잘렸으니까, 또는 소송이 끝났으니까 모든 걸 까발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까.
“알아. 그래서 내가 무 변호사님한테 범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 거야.”
“응?”
“의심일 뿐이지.”
살인에 대한 정황상의 증거는 넘쳐 난다.
그 정황상의 증거를 가지고 재판하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밀 유지 의무에 묶여 있기는 하지.”
“그런데?”
“문제는 이거야. 이걸 바깥에 내놓는 것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 아닐 것이냐.”
비밀 유지 의무라고 하지만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까지 말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질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에게는, 아니 무태식 변호사님에게는 살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 그러면 그걸 외부에 터트리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는 거 아닐까, 정상적인 경우라면?”
“어?”
손채림은 입을 쩍 벌렸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가지 오류가 생긴다.
“하지만 그러면 굳이 저쪽에서 우리를 자르게 할 이유가 없잖아?”
그냥 이쪽에서 경찰이나 어디에 넣었으면 되는 거다.
물론 경찰에서 덮어 버릴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으면 우리는 그들과 이 문제를 상담해야 하지.”
“어? 아! 그러네!”
일단 의뢰인이니까, 고발하기 전에 의뢰인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의뢰인이 아니지.”
즉, 이제는 무태식 변호사가 독단으로 고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자신은 의뢰인의 사건 해결을 위해 조사 중에 알게 된 정보를 경찰에 제공한 것뿐이라는 말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고.”
‘살인범이 누구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살인 사건인데 자살로 은폐되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뿐이다.
거기에다가 애초에 무태식 변호사가 의뢰받은 것은 보험사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내는 소송.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서 돈을 받아 내는 것 역시 방법 중 하나거든.”
“허.”
절묘하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구조.
“그들이 자르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글쎄요. 정말 자르지 않았을까요?”
가까이에 진실에 근접한 사람이 있다.
거기에다 그는 법원에서 그걸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걸 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살인범입니다.’ 하고 자인하는 꼴이지 않습니까? 결국 남은 카드는 하나뿐이지요.”
무태식을 자르고 소를 취하하는 것.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러면 그냥 손을 놔 버리니까.
“아마 지금쯤 돈 욕심에 보험료를 받아 내려고 한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겠지요.”
노형진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그들의 행동이 두 눈에 뻔하게 보였다.
“다음 작전을 시작하지요.”
“다음 작전?”
“네. 일단 감찰부와 접촉하는 겁니다.”
“감찰부?”
“네. 아까도 말했지만, 살인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지요. 또한 비위 경찰관들의 정보와 그들이 받은 뇌물의 액수까지 알고 있다고요.”
“응? 살인이 아니고?”
“말했다시피 그들은 사건이 들어가면 무마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아무리 자신이 증거를 가지고 있고 그걸 경찰에 준다고 해도, 경찰이 수사하면서 증거를 조작해 버리면 의미가 없다.
“그럴 때는 차라리 돌려서 까는 거지.”
“돌려서 깐다?”
“그래, 그들이 감시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거야.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켠 노형진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들이 움직이게 하는 거지.”
* * *
“뭐?”
감찰부.
경찰의 비리를 까발리는 곳.
하지만 대부분의 경찰서가 그렇듯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감찰이 들어오면 서로 끼리끼리 감추고 은닉하니까.
애초에 감찰부 직원을 따로 뽑는 것도 아니고 순환 보직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될 수밖에 없다.
“무태식이라는 놈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래. 관련 증거가 있는데 우리한테 넘기고 싶다는 거야.”
“이런 미친…….”
한데 모인 관련자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 사건이다.
그걸 은닉한 사실이 드러나면 경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커트하기는 했지만, 이게 위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알지, 씨발.”
감찰은 그 사건에 대해서만 하는 게 아니다.
하나가 의심되면 그 사람에 대해 전부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 좋은 꼴 보기 힘들다.
“난 절대로 감옥에 안 가! 아니, 못 가!”
“너만 그래? 우리도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이 감옥에 간다?
그러면 좋은 꼴은 절대 못 본다.
매일같이 린치를 당하고 매일같이 괴롭힘당할 게 뻔하다.
차라리 정치 사범이나 고위급 검사나 판사라면 독방을 주면서 보호라도 해 주겠지만, 일반 경찰에게까지 독방을 주면서 보호하려고 하는 교도소는 없다.
“그래서 그거 받아서 어쩌기로 했어? 주기는 했어?”
“아직 정리가 덜 끝났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다음번에 주기로 했어.”
“그러면 그거 받아서 은폐하면…….”
“그거 검찰에 같이 넣는대, 감사원까지.”
“이런 씨발.”
다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검찰까지는 어떻게 실드 칠 수 있겠지만, 감사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뭘 노리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이번 사건을 은폐한 우리를 노리는 것 같아.”
“어째서?”
“살인범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더라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는 거군.”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여기저기 자료를 넣겠다고 할 리가 없다.
“니미 씨발, 멍청한 집구석. 그 돈이 욕심이 나서 일을 이렇게 키워?”
경찰들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보험사로부터 돈을 받으려고 소송했다는 건 들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이 굴러갈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망할, 어쩌지?”
다들 바들바들 떨었다.
일이 커지면 자신들은 끝장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왜 우리한테 말한 거야?”
“응?”
“그렇잖아. 감사원에 바로 찔러 넣으면 그만 아니야?”
“경고겠지.”
“경고?”
“그래. 지금이라도 자수하라는 경고.”
“자수하면? 이게 그런다고 무마될 일이야?”
그럴 만한 사건이 아니다.
그럴 만한 사건이면 애초에 하지도 않았고.
“망할…… 서장님 때문에 이게 무슨…….”
“쉿! 조용히 해!”
서장이 시킨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라고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 되었건 자신들도 그 뽀찌를 나눠 먹은 것은 사실이니까.
“죽여 버릴까?”
그 순간 누군가 하는 말. 그리고 흐르는 침묵.
“야…… 설마…….”
“아니, 잠깐…… 기다려 보자. 죽여 버리는 거, 진짜 생각 좀 해 보자.”
“야!”
“으으으…….”
경찰들은 머리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