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15)
“대룡에 권한을 준다고?”
노형진은 손채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지금쯤 엠버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을 거야.”
“어째서? 미다스라는 이름으로 하면 더 좋지 않아?”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안 돼. 일단 난 돈을 놓고 돈을 먹는 투자자이기 때문에 현금 자체를 쥐는 이런 일은 잘못하면 의심받기 쉬워.”
“음…… 그거야 다른 사업자를 내면 되잖아?”
“그리고 내가 대룡에 권한을 준 건 다른 목적도 있어.”
“다른 목적?”
“대룡이 대동과 싸우려면 뭐가 필요할까?”
“아…… 그러네.”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룡은 대동과 전쟁 중이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철저하게 불리한 것은 다름 아닌 대룡이다.
“체급도 달리는데 주변에 아군도 없지. 그러면 대룡이 밀릴 거야. 그걸 상쇄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겠어?”
“세계기업들과의 인맥. 맞지?”
“빙고. 정답.”
노형진은 씩 웃으면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튀겼다.
“이번 일은 대룡이 진행할 거야. 어찌 되었건, 초대 회장은 유민택 회장님이 하게 될 거라는 거지.”
“그리고 대룡은 해외의 기업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래. 왜 다른 기업들이 말이 많은 걸 알면서도 수많은 국가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데?”
가령 지난번에 문제가 된 동계협회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는 그들이 썩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 갔다.
“인맥이라는 것이 절대 무시할 게 못 되거든. 해외라고 해서 그게 영향력이 없을 것 같아? 전혀. 한국보다 좀 덜할 뿐이지, 결코 없지는 않아.”
가령 한국은 동향이라면 일단 뽑아 주는 정도고, 해외에서는 동일한 능력치라면 아는 사람을 뽑아 주는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대룡이 인맥을 충분히 다지면 아무리 대동이라고 해도 섣불리 못 건드리지. 거기에다가 좋은 이미지를 가지는 데에는 자선사업만 한 것도 없잖아.”
“맞아.”
한국에서야 좋은 기업 이미지를 가진 대룡이지만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번 자선사업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좋은 이미지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초대한 사람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야.”
즉,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기업을 우선시해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인 만큼, 그런 면에서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다스라는 존재는?”
어깨를 으쓱하는 노형진.
“그런 사람들에게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한들 의미가 없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정도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면 아예 자기네 자산운영 팀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한들 마이스터에 자산을 맡길 일은 없다.
“도리어 마이스터가 그들에게 투자하는 상황이니까.”
어차피 가지게 될 패라면, 그걸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써야 하지 않겠는가?
* * *
“하여간 유 회장님은 그냥 날로 먹네, 날로 먹어.”
“큭큭큭.”
어차피 대룡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게 없다.
아예 개별적 자선단체라 자신들의 내부 문서를 보여 줄 이유도 없고.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안 한 거야?”
“구심점이 없잖아. 다들 각자 자선사업을 하고.”
그런데 만일 다른 기업에서 자선사업 같이하자고 하면 의심부터 할 거다.
그게 기업이니까.
“하지만 난 딱 소개만 하고 손 털었지.”
그러니 의심할 것도 없다.
투자한 기업에 손해를 줄 만큼 멍청한 미다스가 아니니까.
거기에다 손을 턴 덕분에 사람들의 의심도 피했고 말이다.
“남은 건 어떤 자선단체를 하느냐지.”
“어떤 자선단체? 장학금? 아니면 뭐 의료봉사나…….”
“아니, 우리는 사업을 할 거야.”
“사업? 사업? 잠깐, 사업이라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손채림.
사업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 사업이라고 하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저기, 난 이해가 안 가는데……. 사업이 왜 자선이 된다는 거야?”
“너, 냉철한 자비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어?”
“냉철한 자비?”
정반대되는 말이다.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손채림에게 노형진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변수를 계산하느라 많이 고민하지. 하지만 자선사업을 한다고 하면 그냥 막 퍼 줘.”
“으음…….”
“예를 들어 미국의 모 기업은 1년에 1억 달러 이상의 자선사업을 하고 있어. 나름 조심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그 돈 중 상당수가 사라지는 건 사실이지.”
“그런데?”
“만일 그 기업이 1억 달러짜리 인수 합병을 한다고 쳐 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음…… 아…… 피바람이 불겠지.”
주식시장은 요동을 칠 테고, 그 기업이 어떤 곳인지 알아내려고 사람들은 난리가 날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1억 달러를 다른 곳에 투자한다고 하면?”
“아마 미친 듯이 그 회사 주가가 오르겠지.”
“근데 정작 1억 달러를 공짜로 주면서 사회적인 영향은 없어. 왜일까?”
“그러게.”
생각해 보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선사업을 하는 곳은 많다.
당장 대룡만 해도 매년 100억대 이상의 자선사업을 한다.
하지만…….
“그 영향이 거의 없네. 어째서지?”
“냉철한 자비가 없거든.”
“냉철한 자비?”
“그래, 좋은 일이니까. ‘착한 일 하는 거니까 좀 더 느긋하게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 그게 사람들의 생각이야. 예를 들어 볼까? 만일 네게 100만 원이 있다고 했을 때, 그걸 가지고 옷을 산다면 어떻게 할까?”
“엄청 고민하겠지.”
디자인이나 가격이나 품질이나, 하여간 여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고 고를 것이다.
자기 물건이니까.
“하지만 100만 원을 무조건 기부해야 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좋은 곳을 찾아서…… 아…….”
좋은 곳을 찾아서.
그게 중요했다.
“어디가 좋은 곳인지 모르겠네.”
어디가 좋은 곳인지 모른다.
그러니 기존에 있던 곳 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기부한 후 그 돈을 제대로 잘 썼는지 감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게 자선 행위의 심리적 한계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데 자선이니까, 좋은 일이니까 사람이 너그러워지는 거지. 자선 사기꾼들은 그 부분을 노리고 치고 들어오는 거고.”
“자선 사기꾼이라…….”
“우리나라에 많잖아.”
왠지 씁쓸한 표정이 되는 손채림.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곳은 단순히 자선에 그치지 않고 그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는지를 고민하는 곳이 될 거야.”
“의외네.”
“그래.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거지.”
대부분의 자선사업은, 특히 기업들의 자선사업 방식은 똑같다.
먹을 거, 입을 거, 질병 치료용 약제를 지원하는 것.
“우리나라의 옛날 대통령이 찬양받는 이유를 생각해 봐.”
“으음…… 결국 돈이구나.”
“돈이지.”
친일 이력이나 독재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소한 ‘경제 대통령’으로서는 인정받고 있다.
일단 국가 기반에 투자해서 발전의 기틀을 만든 건 사실이니까.
그게 비록 미국의 요구에 의한 거라고 해도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기본 시설에 투자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는 거야?”
“결국 돈 때문이지.”
“응?”
“세계 곡물 시장에서 파동이 터지면 곡물 회사는 문제의 곡물들을 어떻게 할까?”
“싸게 판다?”
“아니, 폐기해.”
“뭐?”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아주 비참하다.
“폐기한다고.”
가령 미국에서 밀가루 파동이 터진다고 치자.
밀가루값이 대폭락하고, 창고에서 밀가루가 썩어 나간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밀가루를 싸게 팔려고 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곡물 기업들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밀가루를 폐기해 버린다.
“그리고 밀가루를 비싸게 팔지.”
“어째서?”
“그게 수익이 나오니까.”
“으음…….”
“문제는 그 부분이야.”
기업들이 내놓은 돈.
그 돈으로 그 밀가루를 사서, 그걸로 빈국의 사람들을 돕는다.
“잠깐…… 그 말은?”
“그래. 우리가 내는 대부분의 돈은 이런 식이야.”
난민 지원에 필수적인 몇몇 업체들, 식량 업체, 의약 업체 등등, 그들은 자선사업이 활성화될수록 막대한 돈을 벌게 된다.
“결국 자선의 끝이 없는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어떤 나라들에는 그 나라 GDP의 몇 배에 달하는 자선 자금이 들어가. 그런데도 나라는 점점 망해 가지. 어째서일까?”
“그 돈이 해외로 가니까?”
“정답.”
일단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까 식량을 사 와야 한다.
하지만 그 가격이 절대 싼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자선으로 들어온 대부분의 돈은 다시 나가서 몇몇 기업의 배를 채우는 데 들어간다.
“그리고 악순환이지.”
무료로 나눠 주는 식량.
거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라는 더 가난해지고, 자선이 끊어지면 나라가 무너지는 지경에 이른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최소한의 자급자족을 시키면 되잖아.”
“자원이니까.”
“응?”
“의외로 자선사업가들은 그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충격을 먹었다.
지금까지 자선사업이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 그리고 성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발전을 싫어한다니?
“아니, 발전을 싫어한다고?”
“정확하게는 수뇌부지. 아래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걸 몰라. 대부분은 그저 아래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려 보겠다고, 자기 돈을 내 가면서 열정 페이로 부려 먹힐 뿐이지.”
노형진은 안타깝게 말했다.
그가 회귀 전 미국에서 일하면서 진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자선사업을 하는 자들 중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가면을 쓰고 활동을 했다.
“어째서?”
“후원하는 나라가 발전하면 후원금이 필요 없어지니까.”
손채림은 입을 다물었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후원금이 없으면 그들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도 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빈국이 발전하는 것을 싫어해.”
“어째서?”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건 돈이거든.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데 자선이라고 안 그러겠어?”
“그게 무슨 상관인데?”
“자원 문제가 걸려 있거든.”
자선으로 들어오는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충분하게 들어온다고 해도 중간에 빼돌리는 놈들이 많아서, 결국은 부족하게 된다.
빈국들의 공통점이 바로 어마어마한 부패니까.
“그러면 부족한 걸 메꿔야 해. 그런데 문제는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는 거지.”
물건을 팔자니 기술력도 달리고 품질도 안 좋다.
식량은 자기들끼리 먹기도 부족하다.
그럼 남은 것은 단 하나.
천연자원.
“문제는 지역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원의 소비도 늘어난다는 거야.”
한국에서는 흔하게 보는 게 쇠지만 아프리카는 죄다 흙이다.
자연을 가공할 수도 없고, 대부분의 자원은 수출하니까.
“결국 빈국의 발전은 기업들의 제조 단가 상승으로 이어져.”
“그…….”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멘붕이 왔다.
그간 알고 있었던 자선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선 기업들은 알게 모르게 협약이 되어 있지.”
빈국에 대한 발전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옷을 주로 지원한다.
“너도 옛날 생각해 봐. 좀 더 효율적인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곳이 없었을까?”
“아…… 기억난다.”
인터넷에서 몇몇 기업들이 그런 시도를 해 보기는 했다.
돈으로 주기보다는, 염소나 닭을 준다거나.
“바보 같은 짓이었지.”
염소를 주면 뭐 하나, 거기에 키울 수 있는 기반이 없는데.
심지어 전 세계에 닭을 수출하는 나라에다가 닭을 키우라고 병아리를 주는 삽질까지 했다.
“와…… 진짜 염세주의 쩔게 만드는데?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게 현실이야. 이번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을 봐.”
노형진이 말하면서 참가자 명단을 건넸다.
명단을 본 손채림은 어렵지 않게 참석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알아냈다.
“제조업은 없네.”
“그렇지?”
제조업은 충분한 규모를 가진 거대 기업들이 많다.
당연히 노형진은 그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그래서 오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목적이 밝혀진 후에 계획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제조업자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IT나 서비스 쪽 기업들이야.”
“그들은 자원에 대한 압박이 없거든.”
도리어 한 지역이 발전해서 IT나 서비스를 받게 되면 수익이 늘어나니까.
“음…….”
손채림은 왠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면 넌 공장을 만들겠다는 거야? 하지만 그냥 둘까?”
필요하다면 공장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지역이 발달하는 걸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노형진 스스로가 지금 말하지 않았던가?
“그냥 두지 않겠지.”
노형진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일단은 그들의 무기부터 빼앗아야지.”
노형진은 씩 웃었다.
“무슨 일을 하든 한 가지만 생각하면 돼. 그게 최우선이야.”
“뭔데?”
“머리는 차갑게, 하지만 가슴은 뜨겁게.”
그리고 노형진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지
대룡은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던 데다가, 이미 같은 꼴을 당한 수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하군.”
유민택은 그들이 내놓은 돈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세계적 기업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 돈을 내놓을 줄은 몰랐던 것.
“클래스 차이가 어디 가겠습니까?”
“비참하군.”
한국에서는 나름 크다고 자부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니 도리어 대표직을 맡고 있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다행히 외국에서는 기업인들이 자선단체 대표자를 잘 맡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런 것 같더군.”
기업인이 손대면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그런지 운영 자금을 구해 주는 서포터나 스폰서는 할지언정 직접 나서서 재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허망하게 맞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지만.
“그나저나 자네 진짜인가? 종묘 회사라니. 이건 좀 뜬금없는데?”
여기서 말하는 종묘 회사는 조선 시대의 종묘사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씨앗을 말하는 거다.
“유민택 회장님도 대부분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민택.
“씨앗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줄은 몰랐네.”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랑하는 대부분의 작물은 결국 해외 품종이지요. 대표적인 게 청양 고추죠.”
“뭐? 청양 고추가 외국 거라고? 금시초문인데?”
깜짝 놀라는 유민택.
청양 고추는 한국인이 좋아하기로 유명한 매운맛을 내는 대표적인 재료 아닌가?
“외국 건데 어째서 청양 고추야?”
“간단합니다. 기업이 넘어간 거죠.”
“아…….”
한국의 종묘 회사를 집어삼키면 그 회사가 소유한 종자들은 외국 종자가 되는 거다.
그럼 그렇게 집어삼킨 기업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어 낼 수 있다.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참외나 토마토 같은 것도 결국 다 외국에 로열티를 줍니다.”
“참 좋은 사업 방법이기는 한데…….”
사업가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방법이다.
물론 양심이 좀 걸리지만.
“자선사업이랑 종묘 회사랑 무슨 관계인가?”
“종묘 회사를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 식량 회사와 종묘 회사의 트렌드는 뭘까요?”
“뭔데?”
“질이죠.”
“그게 나쁜 건가?”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다.
더 많은 종류의 맛있는 음식들과 과일들을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
문제는 이런 종류는 보통 맛이 상승하면서 산출량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동일한 영양분을 한정된 열매에 공급하는 게 보통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빈국에서 필요로 하는 건 양입니다.”
“통일벼 말이군.”
한국에서 한때 엄청나게 생산된 품종.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먹지 않는 품종.
“하긴…… 그게 더럽게 맛이 없기는 하지. 나도 한때 그걸 먹고 살았으니까.”
오로지 생산량 하나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품종.
그래서 맛이 없었고, 사람들이 살 만해지자 가장 먼저 없어진 품종이었다.
물론 마냥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통일벼의 등장으로 국민들이 자급하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기반이 완성되었으니까.
“식(食)이라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배고픔을 정신력으로 이기라는 것이 사실 개소리야.”
“하지만 생산량만이 중요한 게 아니죠. 지금처럼 도리어 곡물이 넘치는 시대에는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군. 산출량이 적어지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지.”
양보다는 질.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산출량이 줄어든다.
그러면 빈국은 그걸 커버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종묘 회사들은 새로운 품종이 나오면 다른 걸 단종시킵니다.”
종자가 사라진다?
아니다.
종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 만큼, 인공적으로 없애지 않는 이상 말이다.
“단종시킨다?”
“결국 기업이니까요. 대룡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긴.”
신형 텔레비전이 출시되면 구형은 단종시킨다.
그게 더 단가가 싸지만, 기능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구형을 살 테고 결과적으로 수익이 떨어질 테니까.
나이 먹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있는 수십 개의 기능을 다 쓰지 않는다.
하물며 젊은 사람들도 쓰는 기능만 쓴다.
그러니 기능이 많은 비싼 걸 팔기 위해서는, 기존의 하위 기종 폰을 없앨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유전자조작이 안 되어 있는,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품종의 씨앗을 개발하는 겁니다. 맛이 좋으면 좋겠지만 우선순위는 그게 아닌 거죠.”
무조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무조건 양이 많을 것.
“그거야 알겠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물론 돈이야 많지만.”
각 기업이 내놓은 돈은 어마어마하다.
충분히 새로운 씨앗을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그걸 연구하는 데에만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돈을 아무리 많이 밀어 넣는다고 해도 연구 기간이 확 줄어들지는 않는다.
“뭐, 장기적으로는 좋겠지만.”
“장기적으로요?”
노형진은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건 한계가 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만.
“전 오래가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뭐?”
“내년에는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무슨……. 노 변호사, 연구라는 게 말일세, 그렇게 갑자기 진행되는 게 아니야. 게임처럼 돈을 두 배 넣는다고 연구 기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란 말일세.”
“압니다. 그리고 제가 왜 굳이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있는데요.”
“이미 있다고?”
“네.”
이미 그런 품종이 있다.
다만 종묘 회사에서 생산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왜냐?
돈이 안 되니까.
“우리는 그걸 꺼내 오면 됩니다.”
“그건 종묘 회사에 있다면서?”
“맞습니다.”
“그거 주려고 하겠어? 설마 이 돈으로 사려고?”
“아니요. 천만에요. 얼마나 비싸게 부를 줄 알고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