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25)
야반도주라고 해야 하나?
박광석의 이사는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이루어졌다.
사실 이사라고 해 봐야 기존 집은 그냥 두고 몸과 간단한 짐만 옮긴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형진은 다시 그자를 마주쳤다.
“확실하네.”
모니터로 조혁우를 보면서 손채림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조용히 옮겼는데 따라왔어. 어디서 정보 캐서 따라다닌다는 소리네.”
“역시나.”
혹시나 자신이 설레발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용히 한 이사였다.
하지만 그걸 따라온 이상, 확실해졌다.
조혁우는 매형과 그 가족을 노린다.
“어쩔 거야? 당장 경찰에 신고해?”
“뭐라고? 범죄자가 따라다닌다고?”
“그건 그러네.”
“경찰이 건드리면 도리어 다급해져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는 계획대로 움직여야지.”
“문제는 어떻게 이야기해 주냐는 거야. 우리가 이야기해 주면 이상하잖아?”
노형진이 씩 웃었다.
“우리 변호사들의 좋은 점이 뭔지 알아?”
“뭔데?”
“검사든 판사든, 모든 법조계 사람들과 사법연수원 동기 출신이라는 거지, 후후후.”
그러니 대신 말해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 * *
“그러고 보니…….”
가끔 있는 동기들끼리의 모임.
노형진은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막내 취급이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노형진은 그 안에서 슬쩍 운을 띄웠다.
“동배 형이 동부 쪽이죠?”
“그렇지. 왜, 너 담당 사건 있어? 으아, 몸 사려야겠다. 너랑 친하다고 일단 자르고 봐야겠는데?”
엄살을 떠는 동기 출신 형님의 말에 노형진은 씩 웃었다.
“날 피한다고 그게 피해지나?”
“에이, 저승사자 같은 놈. 진짜 판사들이 너 하나 잡으려고 눈깔 뒤집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네가 날려 버린 판사 모가지가 몇 개인데.”
“그 덕에 승진하신 분이 불만을 가지면 안 되죠.”
“하여간 한 번을 안 지려고 하네, 저거.”
키득거리는 사람들.
노형진은 눈치를 보다가 슬슬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진짜 동부 맞죠?”
“맞아. 왜?”
“요즘 이상한 소문이 들려서요.”
“이상한 소문?”
“누가 주지희 판사 뒤를 캐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요.”
갑자기 주변이 싸늘해지면서 침묵이 흘렀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판검사, 변호사다.
그러니 누군가 신상을 털고 다닌다는 이야기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너 그거 무슨 말이야?”
아까와 다르게 웃음기를 싹 지우고 말하는 동배.
“새론에 정보 부서 있는 거 아시죠?”
“알지.”
다른 로펌과 다르게 정보 부서에서 감춰진 정보까지 캐는 것이 새론의 승리 비결이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었다.
노형진은 그 말을 하면서 슬쩍 운을 뗐다.
“그쪽에서 사건 하나 추적하다가 우연히 나왔는데, 주지희 판사 조사하고 다니는 놈이 하나 있대요.”
탁.
마지막까지 들고 있던 술잔이 탁자에 놓였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진짜냐?”
“저도 변호사예요. 설마 제가 이런 걸로 농담하겠어요?”
“으음…… 그렇지.”
변호사인 노형진이 이게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뒷조사를 좀 부탁했는데…….”
“벌써?”
“형님들도 듣자마자 꺼림칙한데 저라고 안 그랬겠습니까?”
“끄응…… 그렇지.”
“거기에다 형님들은 조사할 수단도 없잖아요. 경찰이야 뭐, 온갖 요란을 떨다가 도망치게 할 테고.”
“그건 그래. 그래서 뭔데?”
“그 새끼, 주지희 판사님이 빵에 넣은 놈이더라고요.”
“빵?”
“네. 5년 때렸는데 가석방으로 4년 반 만에 나왔어요.”
“니미 씨발.”
동배의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빵에 넣은 범죄자가 나와서 판사를 캐고 다닌다.
이건 빼박이다.
“네가 조사까지 하고 여기서 말하는 거 보니까 뭐 있는 것 같은데…… 사실대로 말해 봐.”
“그래. 이거 그냥 못 넘어가는 말인 거 알지?”
“사실은…….”
노형진은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매형의 이야기는 쏙 빼 버렸다.
당연히 조혁우가 주지희 판사를 노리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이건…… 위험한데.”
“맞아. 집안까지 망했으면 원한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이들도 안다.
일단 원한을 품으려고 들면 범인은 자기 잘못도 남에게 뒤집어씌우고 판사의 잘못도 아닌 걸 판사 잘못이라고 뒤집어씌운다는 것을.
“제가 주 판사님이랑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해서, 말하기가 영 좀 그래서요.”
“아니야. 말 잘했다. 아, 씨발, 술맛 팍 떨어지네.”
누군가 주지희 판사를 노린다는 것.
그건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주 판사님 가족이 어떻게 됩니까?”
“가족? 왜? 아, 씨발…….”
동배는 눈을 찌푸렸다.
가족을 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더군다나 주지희 판사는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딸만 둘인데. 남편분은 지금 세종에 혼자 내려가셨고.”
“딸들은 서울에 있고요?”
“그래. 지금 고등학교 다녀.”
“혹시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아세요?”
“왜?”
“형님도 아시잖아요, 미친놈들이 가끔 가족부터 노리는 거.”
“아오…… 부정 못 하겠다.”
동배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는 알아내서 문자 줄게. 혹시나…….”
“회사에 말해서 사람 붙여 줄게요. 우리는 경호 팀 있으니까.”
“미안하다.”
“미안은 무슨.”
사실 올바른 사람일수록 경호원을 붙일 정도의 돈이 없다.
주지희 판사는 공명정대하기로 소문이 나 있으니 두 딸에게 경호원을 붙일 돈이 있을 리 없다.
경찰이 붙어 다닐 수는 없고.
“다른 때였으면 거절하겠지만…….”
아무래도 이것도 일종의 접대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보통 상황이 아니잖아요. 다행히 우리 새론은 경호 팀도 있고.”
“내가 가능하면 빨리 연락할게. 나 먼저 들어간다.”
동배가 먼저 일어나서 나가면서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었고, 남은 사람들은 술맛이 떨어진 듯 입맛을 다시다가 남은 술을 털어 넣고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이쯤에서 파하자.”
“그래. 영 꺼림칙하네.”
자신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다들 왠지 어두운 얼굴들이었다.
“한 번은 겪을 일이었잖아요.”
“그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진짜 엿 같네.”
그렇게 파하고 각자 자신의 집으로 가는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노형진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거기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면서 노형진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