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36)
“물뽕요?”
여자는 당황했다.
술에 취해서 잠든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물뽕이라니?
“네. 시중에서는 데이트 강간약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황당하다는 표정이던 여자는 다음 순간 치욕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그 개자식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어렴풋하게요.”
자신에게 질척대면서 부비적거리던 남자가 있었다.
놀러 간 곳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 줬는데, 그다음부터 기억이 없다.
“일단 병원의 조사 결과는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놈!”
“그래서 그러는데,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요? 무슨 부탁요?”
“그분은 제 의뢰인입니다. 그러니 일단 신고를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여자의 얼굴에 혐오감이 서렸다.
하지만 노형진은 계속 그녀를 설득했고,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일단은 보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손채림은 눈을 찌푸렸다.
“그 새끼, 지금 넣으면 안 되는 건가?”
“지금 넣어 봐야 뭐가 바뀌는데?”
“하, 씨발.”
분명히 그 정도 사건은 무마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하잖아? 어제만 해도 세 번이다, 세 번.”
“알아. 그러니까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거야.”
“아오, 짜증 나. 그나저나 너, 그 새끼가 물뽕 쓰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대마초를 했다는 소리를 했을 때부터 예상했지.”
“예상했다고?”
“그래. 결국 마약이니까.”
대마초를 구할 수 있다면 물뽕도 구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그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그 녀석이 한 짓거리를 보면 더 의심스럽지.”
“왜?”
“그 녀석이 우리한테 진술할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지금까지 만난 여자가 너무 많아서 정확하게 기억 못 한다고 했잖아.”
“그렇지.”
“상식적으로 클럽에서 매일같이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응?”
“거기는 여자들이 모두 남자 만나러 가냐?”
“아니지.”
여자들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거기에 가는 거다.
모든 남자가 거기에 여자 꼬시러 가는 것은 아니듯이, 모든 여자가 거기에 남자 꼬시러 가는 건 아니다.
도리어 여자가 남자를 만나기 위해 클럽 가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러 간다.
“거기서 매일같이 여자를 꼬신다고? 모델도 그건 안 될 거다.”
“하지만 그만한 재력과 능력이 있잖아.”
“거기가 무슨 맞선 장소야, 그런 데서 통성명하고 앉아 있게?”
“아하!”
거기에다 그곳에는 남자가 자기를 어필하기 위해 상당히 꾸미고 간다. 온갖 뻥을 다 치고, 가끔은 짝퉁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거기서 만난 남자를 100% 믿고 따라 나오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냐? 그것도 술이 떡이 돼서 말이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박주식의 행동을 보면 그가 무슨 짓거리를 했을지 추측하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 알아차린 거야.”
“쩝, 그런 놈을 보호해야 한다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어. 조금만 참아.”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병원 바깥에 동터 오는 새벽하늘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 여자는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 *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노형진은 박주식에게서 신경을 끄고 있었다.
따로 사람을 붙여서 그가 사고를 치지 못하게 계속 방해하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마냥 그를 따라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사건에 신경 쓰느라고 박주식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살짝 흐릿해질 때쯤, 드디어 일이 터졌다.
“네, 노형진입니다.”
새벽에 울리는 벨 소리.
자고 있던 노형진은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서 간신히 귀에 댔다.
-노 변호사님, 저 정보 팀의 규 팀장입니다.
“아, 규 팀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박주식이 여자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안 그런 날이 있던가요?”
-‘그 여자’입니다.
노형진은 잠이 확 달아났다.
‘그 여자’.
정보 팀에서 ‘그 여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확실합니까? 맞아요?”
-맞습니다. 같이 손잡고 나갔습니다.
“이런 똘빡 자식!”
노형진은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함정을 판 사건이다.
거기에다 그게 여자다.
대가리에 생각이 있다면 여자를 조심했을 것이다.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하더니, 바깥으로 나가더군요. 일단 말씀하신 대로 방해는 안 했습니다만.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자신 때문에 그동안 계속 여자한테 손대지 못한 건 안다.
그렇다고 여자가 알은척 접근하자 그걸 넙죽 물어 버리다니.
“어디로 향하던가요? 근처 모텔로 가던가요?”
물론 모텔로 가면 다행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바깥으로 나가더군요. 이미 사람을 붙였습니다. 시외 쪽으로 빠졌답니다.
“멍청하긴.”
노형진은 일어나서 옷을 입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꼭 따라가라고 하세요. 아마 여자는 오늘 그를 죽이려고 할 겁니다.”
함정이 실패했다.
똑같은 함정을 파기에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바로 그의 여성 편력을 이용해서 죽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힘이 부족한 거지 멍청한 건 아닙니다.”
이미 그녀는 박주식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계속 위치를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뛰어나가면서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 되었군.”
* * *
털썩.
바닥에 쓰러진 박주식은 완전히 기절해서 인사불성이었다.
양시호는 그런 박주식을 보면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네놈이 내 손에 떨어졌구나. 네놈부터야.”
자신을 보고 걸레라고 비웃던 그 모습.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이 접근하자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두려움에 차마 직접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는 또다시 아버지와 변호사의 힘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
그녀는 품에서 기다란 줄을 꺼내 들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 왔던 일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애써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가 당한 사람이 박주식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져 나갔다.
그 후 그녀는 복수만을 위해 살았다.
“미친놈.”
자신을 모욕하고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동료를 죽이고 동료의 아이까지 죽였다.
그런데 뻔뻔하게 반성한다고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기회만을 노렸다.
“내가 오빠 오빠 하니까 좋아서 그렇게 웃더니.”
클럽에서 ‘오빠, 오랜만.’이라면서 접근하자 눈에서 빛나던 그 탐욕과 색정.
자신에게 잘해 주는 척하면서 슬쩍슬쩍 자신을 탐하던 더러운 손길.
“끄르륵!”
목에 줄이 감겨 숨을 쉬기 힘들어지자 박주식은 기절한 상황에서도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똑같은 것에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박주식이 물뽕을 쓰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 그의 품에서 슬쩍 물뽕을 훔쳐서 드링크에 섞은 다음 정력에 좋은 약이라며 먹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죽어! 죽어!”
“끄으으…….”
기절한 상태라고는 하나 숨을 쉬지 못하자 고통에 몸부림치는 박주식.
그걸 보면서 양시호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자신이 모든 걸 지배하는 느낌.
자신이 이겼다는 강렬한 쾌감.
하지만 그 쾌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들어. 더 이상 움직이면 바로 쏜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강렬한 플래시의 불빛.
“어떻게……?”
자신은 분명히 조용히 움직였다.
그동안 혹시나 의심이라도 받을까 봐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따라왔단 말인가?
“뭐, 일반적이지는 않지요.”
노형진이 부스스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변호사들이 자기 의뢰인을 미끼로 던지는 건 말이지요.”
노형진은 히죽 웃었다.
“하지만 또 그게 아예 경우가 없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뭐?”
“가장 완벽한 변론. 그건 진범을 잡아내는 거 아니겠습니까?”
노형진은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압니다. 아마 당신의 유전자를 검사하면 조작된 증거에서 나온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을까 싶네요.”
“너…… 너……!”
양시호는 분노로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조준된 권총 때문에 더 이상 목을 조를 수도 없었다.
“망할 변호사! 너는 피해자보다 가해자 편을 들지! 언제나 말이야!”
노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일부죠. 당신이 그런 변호사를 만났을 뿐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가 만일 자신을 먼저 만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이런 비극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입으로만 정의를 말하는 네놈들 때문이야! 너희가,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정의라…….”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정의는 각자 다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당신이 한 행동을 정의라고 볼 수는 없겠네요. 함정을 판 건 이해하지만, 그걸 위해 네 명이나 되는 여자를 죽였습니다. 안 그런가요?”
“다 똑같은 걸레 년들일 뿐이야!”
“그건 박주식과 그 친구들이 당신에게 한 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형진도 애초에 대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당신이 죽인 네 명의 여자들의 정의는, 최소한 당신과 겹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지! 이런 놈은 살려 둬 봐야 똑같은 피해자를 만들 뿐이야!”
“그 말은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노형진은 안타깝게 말했다.
“그걸 막을 방법은 그것 말고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뒤쪽으로 눈짓을 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수갑을 채웠다.
“당신이 저지른 잘못을 충분히 뉘우치기를 바랍니다만.”
“흥.”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정의니까.’
양심이 없으니까.
자신이 우선이고 자신이 정의다.
그러니 노형진이 뭐라고 말해도 그녀는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요.”
경찰에 끌려가는 그녀의 모습.
그사이 박주식은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을 향했다.
“사건 진짜 더럽게 씁쓸하네.”
손채림은 뒤에서 보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가해자 한 놈은 잡았는데…… 다른 가해자는 풀려났잖아?”
수사가 다시 진행될 테고, 박주식은 풀려날 것이다.
그리고 또 똑같이 피해자를 찾아다니면서 성욕을 풀 것이다.
“다른 변호사라면 그렇지.”
“다른 변호사라면 그렇다고?”
“그래.”
노형진은 깊은 심호흡을 했다.
“일단 진범은 잡았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변론은 종결된 거지.”
“하지만 누가 그를 잡으려고 할까?”
“잡으려고 하는 사람 많을걸.”
노형진은 멀어지는 앰뷸런스를 바라보았다.
“아직 내 설계는 끝나지 않았거든.”
“설계?”
“그래, 설계. 나도 변호사이지만 그 전에 인간이야. 배알이 꼴려서 저런 놈 가만두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