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4)
“쇼라고요?”
“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쇼일 뿐이죠.”
“그럼 두 사람의 이름은?”
“양친이 이 씨와 미 씨. 그리고 김 씨와 박 씨라는 거죠.”
“헐, 그럼 다음 세대는요? 성이 네 글자?”
“그럴 수도 있죠.”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법적으로 안 받아들여지는 데다가 애초에 이건 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 두 사람이 주범이라고 생각하세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쇼라고? 목적이 없으면 쇼를 할 이유도 없지요.”
“아…….”
더군다나 노형진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극단적 평등 이론은 극단적인 좌 편향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극단적인 좌 편향은 인간은 완전히 평등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종북. 즉, 북한 찬양 주의자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야말로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니까.
‘그리고…… 이 방식은 그들이 자주 쓰는 방식이지.’
보수 측은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자신들이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진보 측 역시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보수 측보다 지지도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한 사람을 매장시켜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반인도 아닌 유명한 대학교수를 말이다. 하지만 딱 한 명, 즉 극단적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종북 계열에서는 가끔 이런 방식을 쓴다. 단 시간 내에 자신들의 지명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적과 싸움으로써, 아니 싸우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들과 동급으로 보이도록 눈속임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극단적으로 공격적이며, 그들과는 이성을 통한 타협이 되지 않는다.
“그럼 어쩌죠?”
“곤란하군요.”
증거에서도 밀리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인민재판까지 끝나 버리면 100% 재판에서 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은 교수님을 만나 봐야겠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네요.”
“난 그 아이한테 전혀 손대지 않았네!”
서정훈 교수는 나이 45세의 미중년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잘 관리된 그의 모습은 제법 미남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의 고생 때문인지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럼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별거 없네. 그 학생의 부탁을 받고 나갔는데 다짜고짜 매달리더군. 그동안 그 학생이 이상하게 많이 접근했기 때문에 조심했지만. 하여간 난 선은 확실하게 그었네. 난 가정이 있다고 말이야. 그러고 나서 이 사달이 난 걸세.”
“접근요?”
“그래.”
“그럼 그 학생이 먼저 호감을 표시했단 말입니까?”
“호감이라…… 호감이라기보다는 집착일세.”
“집착요?”
“그러네. 전부터 이상하게 날 보는 건 알고 있었네만.”
‘오뉴월 서리 사건이라는 건가?’
노형진은 대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오뉴월 서리 사건이란 노형진이 부르는 말로 집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그 분노가 엉뚱한 형태로 나가는 것을 뜻한다. 남자들의 경우 살인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의 경우 파멸시키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서처럼 말이다. 문제는 여자에게는 여성성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는 것.
“그럼 도대체 정액은 어떻게 구한 겁니까?”
“그건 나도 도저히 모르겠네.”
“혹시 바람을 피우셨다거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펄쩍 뛰는 걸 보니 바람을 피워서 어디서 구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그럼 술집에 가셔서 접대를 받으셨다거나.”
“난 알코올 알레르기 체질이네.”
도무지 정액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다. 이쪽에서 정액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그걸 구할 방법은 저쪽 말대로 강간이나 합의에 의한 성관계뿐이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의뢰인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걸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후우!”
총여학생회에서 대대적으로 공격을 나섰고 이에 호응하여 여러 여성 단체들에서 학교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재판 결과가 어찌 되었건 조만간 징계가 확실시되는 상황.
“나도 모르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는 얼굴을 가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제가 봤을 때는 버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상황에서? 그 욕을 먹어 가면서?”
“어차피 인민재판은 벌어졌습니다. 물러나면 죄를 인정한 거라고 할 테고 버티면 염치없는 놈이라고 하겠지요. 어떤 선택을 하시든 욕을 먹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끄응…….”
“그러니 최대한 버티십시오. 기왕 욕먹는 거, 자신이 정당하다는 이미지를 줘야 하니까요. 그 후에 그만두시면 정당성은 교수님한테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수업을 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수업을 해 봐야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일단 휴직 정도만 하십시오.”
“끄응.”
서정훈 교수는 한숨이 나오는 모양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인민재판의 무서운 점은 무슨 선택을 하든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제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좀 조사해 보겠습니다. 혹시나 외부에서 취재하러 오더라도 절대 대응하지 마십시오.”
“알았네.”
노형진은 확답을 받고는 그곳을 나왔다.
노형진은 사건 기록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고소인은 뭐 합니까?”
“일단 정신정 충격을 핑계로 언론과의 대면을 거절하고 있다네요.”
“조사는 나오고요?”
“네.”
“조사는 나온다라……. 대질은요?”
“여기요.”
노형진은 대질 기록을 보면서 시간 라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결국 밤 10시까지는 두 사람 다 확실하게 알리바이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네요.”
그날 해당 여학생의 대시를 받은 서정훈 교수는 뿌리치고 집으로 와서 잠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간에 여학생은 강간당했다고 했다.
“시간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봐도 시간이 비어요.”
“40분…….”
해당 장소에서 서정훈 교수의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40분. 그런데 서정훈 교수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하고 나서 1시간 30분 후. 그리고 그 여학생이 강간으로 신고한 시간은 다음 날 아침 9시 30분.
“무려 50분이나 빈다는 건데.”
서정훈 교수의 말로는 도로 공사가 있어서 차가 엄청나게 막혔다고 한다.
“공사 내역을 확인해 봤습니까?”
“그런 공사가 없었다네요.”
“공사가 없었다?”
“네, 그래서 더 부담되는 거예요.”
공사가 있어서 차가 막혔다면 어떻게 해서든 시간이 이상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공사가 없었다니?
“블랙박스도 없고. 돌겠군요.”
“변호사님들, 편지가 왔는데요.”
“편지요?”
“네, 여기.”
그 순간 직원이 한 무더기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걸 본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주 단체로 미쳤구나.”
그들에게 온 것은 다름 아닌 협박 편지였다. 강간범을 지켜 주는 강간범 옹호자라는 말부터 강간범 양성소라는 말까지 별별 욕설들이 가득했다. 특히 이은영 변호사에게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날아왔다. 여자 변호사가 염치도 없이 강간범을 변호한다고 말이다. 벌써 강간범에게 뚫렸나는 둥 한번 대 주니까 좋냐는 둥 말로 못 할 욕설이 엄청났다.
“미친 꼴페들 같으니라고.”
노형진은 페미니즘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중 일부인 오로지 남자에 대한 증오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들은 여성 인권 향상이 아닌 자신들의 분노와 복수를 풀어 낼 대상을 남자로 정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 변호사님, 들어와 보세요.”
“네.”
무태식이 들어오자 노형진은 그 편지 무더기를 보지도 않고 박스째로 그에게 들이밀었다.
“이거 읽어 보시고 좀 과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모조리 협박과 모욕으로 고소 넣으세요.”
“몽땅 다요? 못해도 이백 개는 넘을 텐데요?”
“메일이나 전화도 아니고 편지로 보낼 정도면 각오한 놈들 아니겠습니까?”
물론 메일이나 전화도 오고 있다. 그러나 메일 역시 들어오는 족족 고발되고 있는 상황. 전화는 좀 덜 적극적인 놈들인지라 녹음 중이라는 한마디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현장 답사를 한번 가 봐야겠군요.”
어찌 되었건 모든 것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당연히 현장에 가 봐야 하는 것이다.
“이곳인가?”
노형진이 도착한 곳은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는 어느 교외의 작은 커피숍이었다.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교수라는 사람도 바보 같은 것 같았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오다니.
“실례합니다.”
커피숍으로 들어간 노형진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바리스타를 발견했다.
딸랑.
문이 닫히면서 그 위에 달린 종이 울리자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나는 바리스타.
“츄릅, 어서 오세요.”
그는 입에 흐르는 침을 닦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이분들을 알아보실 수 있나요?”
노형진은 그에게 사진을 건넸고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긴 손님이 온 줄 알았는데 또 사진이라니.
“지난번에도 경찰이 왔다 갔는데 또 오시다니요.”
“하하하, 전 변호사라서요.”
“끄응…… 일단 그때 두 분 다 뵙기는 했습니다. 두 분 다 상당히 격해진 모양입니다만,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버럭 화내면서 나갔고 여자도 그 뒤를 따라갔거든요. 그 후에는 못 봤습니다.”
“흠…… 혹시 외부에 카메라 같은 거 있습니까?”
“아니요, 없는데요.”
“그렇군요.”
피해자, 아니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구진미의 주장에 따르면 이곳에서 자신에게 고백한 사람은 서정훈 교수이며 자신은 그를 거절했고 이곳에서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좀 떨어진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서정훈 교수가 자신을 강제로 끌고 산으로 들어가 강간했다는 것.
“결국 여기까지는 동일하다는 건데.”
기록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이 커피숍까지는 경로가 동일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달라져 버린다. 서정훈 교수는 구진미의 고백에 화내면서 나와서 차를 타고 출발했고, 구진미는 그곳에 남겨졌기 때문이다.
“이곳인가?”
그들이 갈라졌다고 말하는 장소. 그곳은 커피숍에서 좀 떨어진 주차장이었다. 자갈로 만들어진 임시 주차장이었는데 주변에 있는 연인을 위한 커피숍과 산으로 올라가는 차들을 위해서 만들어 둔 임시 주차장이었다.
“흔적은 없을 것 같군.”
노형진은 자갈을 ‘팍’ 소리가 나게 차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자갈이나 시멘트 등으로 된 공간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설사 남는다고 해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럼…… 남은 장소는 저곳인가?”
구진미가 강간당했다고 하는 장소.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노형진은 천천히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 증언하고는 맞군.”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서정훈 교수는 그녀를 강제로 끌고 작은 샛길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보이는 작은 정자에서 강간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가 보니 작은 정자가 있었다.
“가끔 사람이 오는 모양인데?”
잘 보이지 않는 위치이기는 했지만 깨끗하게 정리된 걸 보니 아마도 가끔 사람이 오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불리해, 역시.”
그녀는 이 지역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즉, 증언에 구체성이 있다. 하지만 서정훈 교수는 그런 게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없었던 일을 꾸며 내는 것은 쉽고, 없었던 일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
이리저리 정자가 있는 곳을 살펴보는 노형진.
“후우, 역시 증거는 없군.”
아니나 다를까, 노형진의 예상대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노형진이 여기까지 온 건 단순히 증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왔다는 것이지.”
그녀가 여기에 대해서 잘 설명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이곳에 왔다는 것. 즉, 강간이 이루어졌든 다른 이유로 왔든 그녀의 기억이 여기 있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