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7)
* * *
“내가 너랑 부부라니.”
“그렇게 말이다. 내 눈이 삐었지.”
“좀 웃어라.”
무태식과 민시아는 티격태격하면서 병원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고문학이 생각한 가장 어울리는 커플은 민시아와 무태식이었다.
둘 다 결혼 적령기이고 동기여서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덕분에 상대방을 속여 넘기기도 쉽다. 더군다나 변호사여서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일의 적임자였다.
“그나저나 진짜일까?”
무태식은 병원으로 다가가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겠지. 노형진 변호사가 언제 틀린 적이 있어?”
회사에서야 노형진이 상급자니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지만 둘이 있을 때는 나이가 어려 이름만으로 부르는 두 사람.
“하긴…… 그러기는 한데…… 좀 소름 끼친다.”
“왜?”
“아니, 그렇잖아. 어디서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내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니. 그렇게 소름 끼치는 일이 흔하냐?”
“흠…… 남자는 그런가?”
“여자는 안 그래? 아, 그럴 수가 없겠구나.”
여자는 자기가 열 달 고생해서 낳아 키우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미혼모 만드는 녀석들은 넘치고 넘쳤는데, 뭘.”
“그런 놈이랑 같냐? 그건 그냥 인간쓰레기, 아니 인간 폐기물이고 정상적인 남자라면 자기 자식 정도는 책임진다고.”
“그래?”
“그래, 오죽하면 남자가 일생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기회가 군대 갈 때랑 자기 아이를 볼 때라는 말이 있겠냐?”
실제로도 막 살던 남자들이 자기 아이를 보면서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제법 많다.
“하긴.”
민시아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어느 정도는 수긍했다.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보기 마련이니까.
“만일 이 일이 커지면 난리 날걸.”
“하아, 거참…… 묘한 사건이네. 노형진 변호사는 진짜 사건 키우는 데에 도가 튼 느낌이야.”
“격하게 동감한다.”
그렇게 말하던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얼굴에 철판을 깔고는 부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로 오셨지요?”
“이화미 원장님하고 상담 약속을 잡았는데요.”
“잠시만요. 아, 김숙자 씨 부부시죠?”
“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능숙하게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두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들을 맞이한 건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이화미 원장이었다.
“어서 오세요. 불임 치료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의뢰서는 받았습니다. 남자분이 문제네요.”
“크흠.”
그 말에 무태식은 헛기침했다. 아무리 가짜라고 하지만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게 일반적인 행동이었는지 피식 웃는 이화미.
“아무래도 남자분들이 좀 기분 나빠하시기는 하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러기는 하죠.”
“무정자증이라……. 이건 대책이 없네요.”
노형진이 보낸 가짜 진단서대로 무태식은 무정자증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자 이화미는 미소를 지으면서 무태식을 바라보았다.
“건수 씨 같은 경우는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제시해 주신다고 들었어요.”
민시아가 절박한 것처럼 행동하자 그걸 본 이화미는 마치 안되었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보통은 정자를 기증받아서 진행합니다.”
“정자를 기증받아서 한다고요?”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깜짝 놀라는 무태식.
“네, 남자가 무정자증인 경우라면 어쩔 수가 없답니다. 반대로 여자가 무난자증이라면 여성에게서 난자를 기증받기도 한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요. 난자가 정자처럼 넘치는 경우는 없거든요.”
“그, 그래요?”
“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둘 다 돈이 좀 있어 보인단 말이지.’
입고 온 옷이나 차를 보면 있는 집의 자식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더욱 다급할 수밖에 없는 노릇.
“더군다나 유전자의 힘도 무시하지 못하니까요.”
“유전자의 힘?”
“네, 아무래도 난자 같은 경우에는 거의 기증자가 없기 때문에 젊은 여자에게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구입이라니.”
무태식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불편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건강한 난자에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법이니까요.”
“그거야 그렇지요.”
“그러기는 뭐가 그래!”
슬쩍 화내는 민시아. 그리고 괜히 ‘깨갱.’ 하듯 움츠리는 무태식.
물론 수십 번이나 연습하고 간 것이기에 어색한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평소에도 이와 비슷한 관계라서 이화미 원장은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왕 받으려면 좋은 정자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두 사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자 이화미 원장은 마치 비밀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난자도 그렇고 정자도 그렇고, 결국은 유전자가 중요하답니다.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남자의 유전자를 받고 싶지는 않으실 거 아니에요?”
“전 어느 쪽이든 별로입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지요. 건수 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무태식의 가명을 부르면서 친근하게 구는 이화미 원장.
“그렇지만 그래도 자식이 잘난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기왕 생기는 자식, 좀 잘나게 태어나야 노후에도 편하고요.”
“크흠…….”
무태식은 모른 척했고 거의 넘어왔다고 생각한 이화미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원하신다면 유명인들과 선을 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정자를 공여한다는 게 아내분과 동침한다는 건 아니에요. 말 그대로 착상 이후에 출산하는 것뿐이니까요.”
“유명인?”
“네, 원하는 사람의 정자를 받아서 똑똑한 아이를 낳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 돈이 좀 들기는 하지요.”
“공여받는 거라면서요?”
“그런 건 어디 가서 대충 해도 되지요. 하지만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유전자를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호호호.”
웃는 이화미를 보면서 두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진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그건 좀 그렇군요. 얼굴을 아는 사람의 것을 받는다니.”
유명인이라면 방송에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볼 때마다 생각날 수도 있다.
“그래도 손해는 아니에요. 멍청해서 꼴찌를 하는 녀석보다는 똑똑해서 1등을 하는 녀석이 더 좋지 않겠어요?”
“흠…….”
무태식은 불편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건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보!”
“시끄러워. 나와.”
무태식이 우악스럽게 민시아의 손을 잡고 나가자 그 뒤에서 이화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확실히 미쳤군.”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녹음된 내용이 누가 봐도 위험한 이야기였던 탓이다.
“진짜로 거래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송정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했지만 노형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건 위험한 짓이죠. 만일 후계자 싸움이 난다면 어쩌겠어요?”
“후계자 싸움?”
“네, 가령 어떤 부자의 유전자를 받아서 아이를 가졌다고 쳐 봐요. 그 나중에 그 부자가 죽을 때쯤 되었을 때 혼외자로 후계자 싸움에 나서면 대책이 안 서는 거죠.”
“아!”
그때까지 병원이 존재할지도 의문이거니와 설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자료 보호 기간은 훨씬 지난 상태이니 거기서 증거를 받을 수도 없다.
애초에 병원과 증거가 존재한다 해도 불법적인 거래인 이상, 병원에서 줄 리 없다. 경찰에서 연락이 오는 순간 모든 증거를 파기하고 증거가 없다고 발뺌할 테니까.
결국 남은 건 유전자뿐인데,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송 변호사님이라면 그러시겠습니까?”
“음…… 그럴 리가 없지.”
수천만 원의 돈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미래의 싸움을 생각하면 작은 돈이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그만큼 못 버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마 그 기증자라는 건 분명 사람들 몰래 거래되는 것일 겁니다.”
“그럴까?”
“유명인이 체외수정 했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하긴.”
유명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외부에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위험한 장난을 하는군.”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짓을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서정훈 교수의 정자가 유출된 거야? 정자 유출과 이번 사건은 전혀 다르잖아?”
“그건 제가 알 것 같습니다.”
고문학은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송정한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화미 원장이 이미성숙의 엄마라고?”
“네.”
“그럼 이미성숙이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는 뜻이잖아?”
예상하지도 못한 사태에 노형진조차 어리둥절해질 정도였다.
구진미가 고소 당사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구진미와 이미성숙이 한패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알아봤습니다. 이미성숙과 구진미는 같은 학교 출신입니다. 즉, 서로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큭.”
“미친년들 아냐?”
척 보니 구진미가 거절에 앙심을 품고 복수할 방법을 찾기 시작하자 그걸 들은 이미성숙이 자신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서 계획을 짰는데 거기에 이화미 원장이 정자를 제공해서 완벽한 증거를 만들어 낸 듯했다.
“이런 미친. 아무리 생각이 없기로서니.”
“이화미부터 생각이 없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유명인들의 정자를 가지고 거래할 때부터 도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딸까지 그럴 거라고는 노형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미성숙이 정계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화미의 기록을 보면 그녀 역시 몇 번 정계 진출을 노렸습니다만 실패한 걸로 나오네요.”
“젠장, 모전여전이라는 건가?”
물론 성공한다면 그들은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들의 계획이 정확하게 먹혀들고 있었다.
이미성숙의 경우, 벌써 언론을 통해 여성운동의 대표 주자로 얼굴을 알리고 있다. 여성운동이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여성운동가가 없는 상황이라 그녀의 입지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계획이었다니.
“끄응……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은…… 아무래도 사건을 확실하게 못을 박는 게 우선이겠지요.”
“못을 박는다?”
“서정훈 교수님의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시키면 분명 관련 증거를 폐기할 겁니다. 당연히 그 증거를 모두 없애기 전에 확보해야겠지요.”
“흠…….”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방법이 있다?”
“네,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요.”
노형진은 탁자를 톡톡 두들기면서 입맛을 다셨다.
* * *
“누구로 하시겠어요?”
확실한 증거를 모으기 위해 무태식과 민시아는 다시 그곳으로 들어갔다.
“누가 있는데요?”
“여러 분들이 있죠. 그런데 남편분의 얼굴을 보니 후대를 위해서는 미남 계열 남자 배우가 좋다고 생각하네요.”
‘아놔, 콱!’
안 그래도 범인처럼 보인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는 무태식은 얼굴을 찌푸렸다.
“뭐, 그런 소리를 많이 듣죠. 호호호호.”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민시아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원하세요?”
“잘생긴 사람이 좋겠네요. 역시 잘생겨야 뭐든 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공부를 잘하는 쪽이…….”
“공부는 내가 잘하니까 괜찮아. 잘생긴 사람으로 해 주세요.”
아주 천연덕스럽게 구는 민시아.
무태식은 졸지에 멍청하고 도둑놈처럼 생긴 남자가 되어 버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있는 남자는 약자에 속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화미 원장은 그걸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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