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75)
다음 날 보육원에 자원봉사를 간 새론의 직원들은 입구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이거 뭐야? 너무 거창한데?”
“그러게.”
입구에 붙어 있는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
그건 누가 봐도 새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번잡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얼씨구?”
보육원의 뒤쪽에 있는 작은 공간에는 심지어 ‘재롱 잔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아이들은 힘없이 뭔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저기, 원장님. 이거 뭡니까? 저희는 이런 건 원하지 않습니다만?”
노형진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원장을 찾아가서 물었다.
자신들이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이런 준비는 너무 과했다.
“아, 형진 씨 오셨어요?”
나이가 지긋한 여자 원장의 얼굴에는 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지요? 저희를 위해 이러시는 건 아니죠?”
“아, 그게…….”
“그런 거면 저희 진짜 섭섭합니다.”
“설마 새론 직원분들을 위해 그러겠어요? 새론 직원분들이 얼마나 좋은 분들인데.”
“그런데요?”
“우리 시의 국회의원하고 시의원들이 방문한대요, 기증품을 가지고.”
“네?”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그러면 이게 그들을 위한 준비란 말입니까?”
“네. 그쪽에서 요구했어요.”
“이것들이 미쳤나?”
노형진의 입에서 험악한 말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입구의 플래카드는 그렇다 치고, 저 재롱 잔치는 뭡니까?”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이건 무슨 사단장이 이등병 옆에 끼고 짬밥 처먹는 소리랍니까?”
“네?”
“아,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사단장은 응원 차원에서 병사들과 함께 밥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단장이 온다고 하면 이 주일 전부터 주변 정리 작업하고, 일주일 전부터 대청소하고, 사흘 전부터 두발 정리에 옷을 다리는 등 개판이 된다.
한데 그걸 일과 시간에 할 수 없으니 결국 병사들의 휴식 시간을 빼야 한다.
사단장은 응원일지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병사들 입장에서는 고문일 뿐이다.
“어쩌겠어요, 그쪽에서 그렇게 요구하는데.”
원장도 체념한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싫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다음 선거를 위해 사진 하나 박아 두는 게 더 급한 사람들이니까요.”
씁쓸하게 웃는 원장.
노형진은 그걸 보고 속에서 열불이 났다.
‘미친놈의 새끼들.’
보육원에 있다고 해서 애들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안 그래도 보육원에 있다는 이유로 여러 생각이 많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데려다가 갑자기 재롱 잔치라니.
아마 아이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갈 것이다.
“안 하면 어떻게 될지 아시잖아요.”
“알죠.”
이들이 이렇게 을의 입장이 되는 것은,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국가 지원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막말로 저들이 배알이 뒤틀려서 지원을 끊으라고 하면, 내년부터는 아이들에게 밥 한 끼 먹이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아니까 저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고.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어쩌겠어요. 저희도 방법이 없어요. 그들이 요구한 거니까.”
“그런가요.”
노형진은 턱을 스윽 문질렀다.
‘의원들이 직접 요구했을까? 아니야. 그럴 가능성은 낮아.’
이런 행사를 짜는 것은 의원이 아니라 보좌관이다.
그러면 이야기는 뻔하다.
그들이 한꺼번에 간다고 하자, 보좌관이 촬영용 영상 같은 걸 뽑아 보겠다고 했을 것이다.
‘의전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뒤에서, 그 알아서 기는 의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기껏해 봐야 아이들이 춤추는 거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어떻게든 안 될 겁니다.”
“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저 사진을 찍어서 홍보용으로 쓸 게 뻔한데, 그러면 아이들이 인터넷에 ‘나 보육원 출신’이라고 떡하니 박혀 버리는 겁니다.”
물론 그걸 일일이 찾아다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안 좋은 것은 안 좋은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식으로 요구하면 다음에는 또 뭘 요구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건…….”
“작년 사건, 잊어버린 거 아니시죠? 그 사람, 올해도 올 텐데.”
“…….”
작년에 있었던 사건.
보육원에 마냥 어린애들만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청소년기의 아이들도 있다.
“어떻게 그 사건을 잊겠어요.”
시의원 하나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슬쩍, 열일곱 살 먹은 여자 보육원생에게 성추행을 시도했던 사건.
그 아이는 사흘을 울고불고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노형진이 없었기 때문에 막지도 못했고.
“이 새끼들은 자원봉사가 무슨 자기 치적 채우는 건 줄 아나?”
노형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가 안 한다고 하면 내년에는 지원이 끊어질 텐데.”
“우리가 터트리지 않으면 되죠.”
“네?”
“우리가 터트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정확하게는, 보육원 측에서 터트리지 않으면 됩니다.”
“어떻게요? 당장 그 사람들이 올 때까지 두 시간도 안 남았는데요.”
“두 시간요? 한 시간이면 됩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