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1)
“으하아암.”
노형진은 피곤한 얼굴을 비비면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졸려 죽겠네.”
지난번 사건 이후 새론의 이름은 더욱 유명해졌다.
더군다나 지난번 사건으로 백민대학교에 수많은 교수들이 들어간 덕분에 백민대학교의 로스쿨 자격 가능성이 더욱 높아져 그쪽 일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여러모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다 커피 중독되겠어. 이번에는 커피 좀 줄인다고 그랬는데 말이지.”
야근이 길어질수록 커피를 점점 많이 마시게 되기에 회귀 전에는 커피 킬러라 불렸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줄여 보려 했지만 회귀 전보다 더 많은 일거리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를 줄였더니 자양 강장제들을 더 먹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구매해서 쌓아 놓을까.”
노형진은 툴툴거리면서 편의점 향했다.
“서울은 이게 좋다니까.”
근처에 편의점이 많아 언제든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물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그 많은 편의점들이 잘된다는 것은 그만큼 야근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인터넷에서 사는 게 싼 것 같기는 한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막 편의점으로 가는 코너를 도는 순간 노형진은 엄청난 비명에 얼어붙어 버렸다.
“끄아아아악!”
아무리 변호사라 해도 그런 비명이 익숙해질 수는 없다. 애초에 익숙해지는 것이 이상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 비명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은 너도 나도 건물 바깥으로 달려 나왔고 그중 몇몇은 안전을 위해서인지 무기가 될 만한 골프채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보니 사람들의 경계심은 최고조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비명이 어디서 들린 건지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첫 번째 비명이 누군가 고통에 지른 단말마라면 두 번째는 놀라서 지르는, 째지는 듯한 비명.
노형진과 사람들은 그 비명이 터진 곳으로 달려갔는데, 그곳은 황당하게도 노형진이 가려고 했던 편의점이었다.
그 편의점에 도착한 노형진은 깜짝 놀라서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편의점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노형진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벌벌 떨면서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방금 두 번째 비명을 지른 여자가 놀라서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봐요!”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황급하게 달려가려고 하자 노형진은 그들을 가로막았다.
“진정하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당신이 뭔데!”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네, 지금 여기는 사건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접근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주춤주춤 물러나는 사람들.
노형진은 그들이 물러나는 걸 확인하고는 주저앉은 여자를 일으켜 세워서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몽둥이를 들고 있는 여직원에게 향했다.
“자…… 영주 씨, 진정하시고, 저 지금 다가갈게요. 이 사람의 상태를 좀 확인하려고 하거든요.”
그 말에 움찔거리더니 몽둥이를 더 치켜드는 그녀.
분명 공격하고자 하는 모습이었기에 노형진은 그녀를 재빨리 말렸다.
“영주 씨! 진정하세요.”
“헉!”
영주라고 불린 여자는 이곳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가씨였다.
다른 편의점 알바들과 다르게 싹싹하고 또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데다가 힘들게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힘내라고 하는 등 성격도 좋아 주변에서 야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놈은…… 그놈은…….”
“진정하세요. 아셨죠?”
노형진은 천천히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 남자의 목에 손을 대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살아 있네요. 거기 당신, 당장 구급차 불러요.”
노형진은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당장 구급차를 부르라고 했다. 이런 경우, 아무에게나 부르라고 하면 누구도 부르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말에 그 남자는 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살아 있다는 말에 반응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녀석이 살아 있다구요?”
몽둥이를 치켜들고 달려들 것처럼 보이는 영주.
노형진은 그녀를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진정하세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공격하시면 안 됩니다.”
“그 녀석은…… 그 녀석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진정하세요.”
그녀는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몽둥이를 아래로 떨궜다.
노형진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들린 몽둥이를 넘겨받았다.
‘뭔가 잘못되었어.’
남자를 보는 영주의 시선과 주변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복장을 보자 노형진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무리 봐도 영주는 그 남자를 아는 것 같았고 그 남자는 이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아닌 듯했다.
애애앵.
그때 저 멀리서 들리는 구급차의 소리. 그리고 털썩 주저앉는 영주.
노형진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영주 씨가요?”
“네.”
아무래도 야근이 많은 새론에서는 편의점에 자주 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주를 모르는 직원이 드물 정도였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저야 모르지요.”
송정한조차 그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야간 근무는 힘들다. 물건도 새로 받아야 하고 사람은 거의 다니지 않으니 위험하기도 한 데다 밤과 낮이 바뀌는 탓에 체력적으로도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언제나 오는 손님들을 환한 미소로 맞았고 힘내라고 응원했다. 그래서 다들 그런 그녀가 누군가를 공격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경찰차를 타고 갔으니까 무슨 일인지 나오겠지요.”
“쓰러진 남자는?”
“복장이 좀 허름하던데 강도 같은 것일 수도 있고요.”
“끄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과도하게 공격하는 게 좋진 않은데.”
“어쩌겠습니까? 세상은 한쪽 면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기는 하지.”
아무리 착해 보이는 사람도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이 잡고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바른 사람인 경우가 많다. 독실한 종교인이나 주변에 사회적으로 바르다고 소문난 사람이라 주변에서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제법 많은 탓이다.
“잘 해결되면 좋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네.”
그렇게 새론, 아니 주변을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은 잊혀 가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새론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수십 개씩 들어오는 수많은 사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벌어진 일로 인해 그 사건은 다시 새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네?”
그를 찾아온 사람이 편의점의 사장이었던 것이다.
“의뢰를 맡기고 싶다고요?”
“네, 영주에 대한 변론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영주 씨를요?”
그날 분명 남자를 폭행한 이유로 경찰서로 잡혀가기는 했다. 그런데 변론이라니?
“죄목이 뭔데요? 그놈, 강도 아니었습니까?”
“그게…….”
잠시 입을 다물고 한숨을 푹푹 쉬던 편의점 사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존속 상해입니다.”
“뭐라고요?”
상해란 말 그대로 누군가를 공격해서 상처를 입히는 걸 말한다.
문제는 그 앞에 존속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는 것.
존속이란 말 그대로 그와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뜻이다.
“그 남자, 아버지랍니다.”
“아버지요? 그 사람이요?”
노형진은 그날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던 남자의 모습이 기억났다.
허름한 복장에 오래된 옷을 입은 남자.
땅값 비싼 서울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던 그가 아버지였다니?
“그런데 왜 공격한 겁니까?”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영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어서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영주가 그곳에서 야간 알바로 일한 지 벌써 3년째란다.
편의점 알바로 3년을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사장은 그녀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제가 알기로는 그다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툭하면 술을 마시고 가족을 패고, 도벽에 도박 중독까지 있어서 뻔질나게 감옥을 들락날락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주의 대학 등록금까지 들고 가서 도박으로 날려 버려서 영주가 고졸이 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고 하더군요.”
“음…….”
“그래서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와 버렸답니다. 그 후로 우리 편의점에서 계속 일해 왔던 거지요.”
그 말에 노형진은 한숨이 푹 나왔다. 그런 경우는 제법 많았기에 그런 경우가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찾아온 거군요.”
“네.”
그런 인간이 집을 나간 딸이 걱정돼서 찾을 리 없다. 분명 돈이 떨어져서 딸에게 돈을 요구하러 나타난 것이다.
‘아직 개인 정보 보호법이 없으니…….’
개인 정보 보호법이 있다면 달라고 해도 주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 가족인 것만 증명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정보를 넘겨주곤 했다.
“그래서 공격한 거랍니까?”
“네.”
“하아.”
술에 취해 나타나서 돈을 달라고 난리를 피웠을 게 뻔하니 당연히 그녀는 어떤 수를 써야 했을 것이다. 경찰을 부르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경찰을 부르는 대신 직접 공격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리라.
“그런데 사장님이 우리를 고용하신다니 의외입니다.”
“솔직히 영주 같은 알바생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열심히 하고 주변에 사람도 모이고요. 영주가 야간 알바를 하고 나서부터 야간 수입이 몇 배는 뛰었습니다.”
“하하하.”
그럴 수밖에 없다. 멍하니 서서 계산하는 사람보다는 한마디라도 힘내라고 말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매일같이 야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이 더더욱 이해가 가는 노형진이었다.
“그런데 존속 상해라…… 좋지 않아요.”
상황이야 이해하지만 존속 상해라는 게 가벼운 죄는 아니다.
“존속 상해는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이거나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벌금은 거의 안 나오고 대부분은 징역입니다. 그만큼 존속 상해는 처벌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변호사를 알아보려고 하는 겁니다. 영주가 그렇게 인생이 망가질 아이는 아니라서요. 솔직히 그날도 욱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편의점을 지키려고 한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네요.”
그런 인간이라면 딸이 일하는 곳에 와서 돈 줄 때까지 깽판을 칠 게 당연했다.
‘사실 경찰을 불러 봐야 의미가 없었겠지.’
아마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영주는 직접 공격했을 거라고 노형진은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심각한 가정 내 폭력 행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찰은 이를 가족 내 문제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처벌하거나 예방하기는커녕 제대로 해결해 주지도 않거나 폭행을 가하던 사람을 잡아 와도 적당히 훈방해 주는 게 보통이었을 테니 그걸 보고 자란 영주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가 없었으리라.
“흠…….”
“좀 무리인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해 주고 싶지만 배당된 사건이 너무 많다.
들어 봐도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해결해야 하는 사건인데 매일 밤 야근하는 노형진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사건을 담당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다른 변호사님들에게 부탁해 보도록 하죠.”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주변 변호사들은 너무 비싸서…….”
“그렇기는 하죠.”
새론은 무조건 300만 원부터 시작이고 나머지는 실비 청구다. 하나 다른 곳은 못해도 450만 원 정도 청구하고 승소 비용에 실비까지 따로 청구한다.
가족도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원을 위해 의뢰하는 사장도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금전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던 노형진은 이번 사건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모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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