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44)
“친애하는 재판장님.”
노형진은 접근 금지 명령을 청구했다.
사실 어려운 재판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접근 금지 명령을 개별적 본안으로 청구하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번 사건에서 피고 염가형은 원고 소주언에게 지속적으로 찾아와서 모욕적 언사를 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염가형은 피고의 딸을 강간한 가해자이면서도 반성은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족들을 찾아가 폭언을 하면서 그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습니다.”
노형진이 변호를 하는 상황에서도 염가형은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아서 피식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그걸 본 판사는 눈을 찌푸리면서 일갈했다.
“피고, 여기는 신성한 법정입니다. 자세 똑바로 하세요.”
“아, 네.”
옆에 있던 변호사가 툭 치며 눈치를 주자 그제야 자세를 바로 하는 염가형.
‘미리 다 듣고 왔다 이거군.’
노형진은 염가형을 보면서 알 것 같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렇겠지.’
이런 경우 접근 금지 명령에 따른 배상금은 많지 않다.
물론 회당으로 청구하기는 했지만.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노형진은 판사를 바라보다가 염가형의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피고 측 변호인, 변호하세요.”
“재판장님, 피고가 찾아간 것은 결코 협박이나 가해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진지하게 사과하려고 찾아간 것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서로의 오해와 불신으로 인해 언성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의 접근 금지 명령이 나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피고 측 변호인, 그 말은 피고 측이 계속 원고를 찾아갈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사과는 해야 하니까요.”
보통 일이 이 지경이 되면 찾아가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특수한 경우, 그러니까 스토커이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놈들이야 신경 안 쓰고 찾아가지만.
‘정신도 멀쩡한 놈이 계속 찾아가겠다 이거군.’
정상적인 변론이라면 반성하겠다, 사과하겠다고 하면서 더 이상 찾아가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저쪽 변호사는 찾아가는 것을 베이스로 깔고 변론하고 있었다.
즉, 염가형이 찾아가겠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아 둔 것이다.
“원고 측에서는 피고 측 사과가 필요 없다고 몇 번 말씀드렸을 텐데요?”
“원래 피해자분들이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피고 측 입장에서도, 사과하고 나서 마음 편하게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누구 좋으라고 우리가 사과를 받아 줍니까?”
“원래 세상은 용서로 평화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안 합니다.”
“그러니 찾아가서 사과하려고 하는 겁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의 주장.
보다 못한 판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 다 진정하세요. 원고 측, 여기서 피고 측의 사과를 받아들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극히 합리적인 말처럼 들렸지만 노형진은 그 말의 진의를 알고 있었다.
‘여기서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후에 이 소송을 취하하라 이거겠지.’
그러면 염가형은 다시 찾아와서 개지랄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소송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릴 테고 말이다.
“불가합니다.”
“용서의 의사가 없다는 말인가요?”
“무슨 용서요? 애초에 피고 측은 사과할 생각이 없는데 무슨 용서를 합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서로 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뿐입니다.”
“오해 풀 생각 없으니까 오지 말라고요.”
“재판장님,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사과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이번 사건에 대해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찾아와서 사과한다는 게 그딴 소리입니까?”
“그딴 소리라니요? 우리는 사과를 했는데 폭행한 건 원고 측입니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증거로 제출했는데 그거 안 보셨어요?”
“봤습니다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세상에 그런 소리를 하는 가해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건 그쪽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그 말을 했다는 녹음 기록이나 녹취록은 없지 않습니까?”
“그 당시 직원들이 들었습니다만? 그것도 수차례나요.”
“직원들은 원고 측의 휘하에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의 증언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좋습니다. 다 포기할 테니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찾아오지 마세요. 그거면 되는 겁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피고 측이 어떻게 해서든 진심을 담아서 찾아뵙고 사과하고 싶어 하니 저로서도 말릴 수가 없네요. 재판장님, 이렇게 사과하려고 하는 피고의 진심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척 봐도 상대방 변호사는 변호 자체를 포기한 듯 보였다
피고 측 변호사의 목적은 접근 금지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접근 금지를 어길 때마다 내야 하는 돈의 금액을 깎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방청석에 앉아 있는 고연미를 바라보았다.
고연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접근 금지 명령을 지키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방어 자체를 금액을 깎는 쪽으로 할 거라는 것도.
‘아마 접근 금지 명령에 대해서는 인정하겠지만 회당 강제 부과금은 인정하지 않겠지.’
즉, 찾아갈 때마다 따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소주언의 피를 말리게 될 테고 말이다.
‘강제이행금을 청구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설사 청구한다고 해도 그걸 인정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뭐, 그렇게 나온다면 말이지.’
노형진이라고 예상을 못 한 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예상해 놓은 방어조차 깨지 못한다면 변호사라는 이름을 버려야 할 것이다.
“재판장님, 피고 측이 어떤 소리를 했는지 명백하게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증인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인정합니다.”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리 요청한 청구였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사실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부정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강제이행금은 인정하지 않는 걸로 말이다.
그러나 그 증인이 바깥에서 들어오기 시작하자. 판사뿐만 아니라 피고 측 변호사와 염가형 역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원고 측, 증인이 다른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히 원고 측이 청구한 증인은 박정아라는 여성인데, 저분은 박보연 씨 아닙니까?”
“네, 박보연 맞습니다.”
증인석으로 올라와 있는 사람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연예인이니까.
“박보연의 본명은 박정아입니다. 박정아라는 이름의 연예인들이 많아서 박보연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으음…….”
바로 고연미의 동료였던 박보연이었다.
그 당시 그곳에서 술을 마시다가 소리를 듣고 나와서 상황을 봤으니 노형진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래, 이건 어떻게 못 하겠지.’
이미 답을 정해 놨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았을 때의 문제다.
‘박보연 씨가 나올 줄은 몰랐을 테고.’
증인 신청을 할 때에는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들어가지 사진은 안 들어간다.
당연히 판사가 연예인 박보연의 신분을 알 리는 없을 테니. 노형진이 내세운 증인이 연예인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으음…….”
피고 측 변호사는 박보연 이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뒤에 나오는 사람들은 같은 걸 그룹 멤버들이었으니까.
즉, 그 당시에 현장에 있던 멤버들을 다 불러들였던 것.
그 정도 되는 걸 그룹이 증언을 한다고 하면…….
“뭡니까, 이거?”
줄줄이 들어오는 기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당할 줄 알았나?’
아무리 돈을 쓴다고 해도 결국은 건물주 수준이다.
거기에다 그다지 큰 사건도 아니기 때문에 재판을 비공개 결정하지도 않았다.
즉, 여기서 기자들이 촬영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걸 그룹이 단체로 증언한 기록은 없지?’
당연히 기자들 입장에서는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재판장님, 왜 그러십니까? 표정이 안 좋습니다만.”
“아닙니다. 그런데 멤버들 모두 증언할 생각이신가요?”
“그럴 생각입니다. 모두 현장을 본 증인들이니까요.”
판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피고 측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만일 이 상황에서 자신이 사건을 편들어 주면 다음 날 아침에 메인으로 뜨게 생겼으니까.
“증언 시작해도 될까요?”
“네…… 원고 측부터 증인신문 시작하세요.”
판사는 똥 씹은 얼굴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