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6)
가령 집단 폭행을 당하던 한 명이 앙심을 품고 누군가 한 명을 공격한다면 과거야 어떻든 그는 유죄다.
하지만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먼저 공격한 사람이 나쁜 놈이지, 저항한 사람은 나쁜 놈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라고는 겪어 본 적이 없는 대다수의 판사들이 그저 법대로 판결해 도리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런 국민의 법에 대한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게 국민 참여 재판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은 국민 참여 재판의 선택은 피의자가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공분을 사는 강력 범죄들은 신청하지 않아서 도리어 형량이 깎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1천만 원을 훔친 도둑에게는 실형이 나와도 수천억을 빼돌린 기업가에게는 집유가 나오는 게 대한민국.
그들은 절대 국민 참여 재판을 신청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돈을 빼돌린 그들을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일단 배심원들이 어떤 선고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온다면 아무리 판사라 해도 그걸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만일 국민 배심원들이 무죄를 선고했는데 판사가 유죄를 선고한다면 그에 맞는 이유를 표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터무니없는 이유로 선처해 주지 못한다.
실제로 판사들의 그런 판결에 대해 거의 항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선처의 이유가 정상적인 것을 넘어서 봐줄 만하니 봐준다는 식의 핑계까지 대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일단 판사야 어쩔 수 없이 유죄를 선고할 겁니다. 다른 증거가 명확하니 어쩔 수가 없어요. 하지만 배심원들이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그걸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민간의 법 감정을 수용하고자 만든 게 국민 참여 재판이니까요.”
그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민간의 법 감정이 어느 정도 들어간다면 과거처럼 터무니없는 판결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배심원들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는 거군.”
“그렇겠지요.”
다만 이번 재판에 배심원들이 얼마나 이쪽에 동조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노형진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노형진이야 이러한 재판에 대한 경험이 많지만 대한민국에서 처음 벌어지는 국민 참여 재판이라 배심원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잘되기를 빌어야지요.”
노형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 * *
“배심원 측의 평결은 무죄입니다.”
발표가 나오자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만세!”
“와!”
모두 전영주를 지원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 방심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제 판사.’
무죄가 나왔다 해도 결국 판결은 판사가 한다. 그리고 노형진이 아닌 대한민국 판사라면 유죄를 내릴 거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 배심원들의 판단에 대하여…….”
드디어 판사의 판결이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한민국 최초의 배심재판. 그에 대해 과연 판사는 무슨 판결을 내릴까?
“법원 측은 유죄로 판단합니다.”
“아!”
“이럴 수가!”
사람들의 탄성, 아쉬움.
하지만 노형진은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그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승패가 아니라 형량이다.’
이번 사건은 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증거가 명확하니까.
중요한 건 형량이 얼마나 나오느냐다. 질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잘 지는 쪽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의자의 행실로 보아 원래 바른 사람이고 개정의 가능성이 높은 점, 또한 사건의 원인이 된 부녀 간의 불화가 피해자 전광한의 도박 및 알코올중독과 주취 중 발생한 다수의 폭행 사건 등으로 인한 점으로 보아 이번 사건에 대하여…….”
계속되는 판결에 대한 근거들.
하지만 노형진의 귀에는 그런 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단 하나, 형량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걸 다른 사람들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판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헛기침을 하더니 최종 형량을 선고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합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 * *
“수고했네.”
“수고했어.”
송정한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증거가 명확한 데다가 존속 상해라는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은 졌네요.”
“지기는. 이건 존속 상해 사건일세. 이런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낸 거라면 실질적으로 이긴 거야, 이 사람아.”
집행유예란 말 그대로 범죄가 인정되고 형량도 정해졌지만 처벌을 유예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면 앞으로 4년 사이에 그 사람이 다른 범죄행위로 인해 처벌받는 경우 이번에 있던 3년을 함께 묶어서 처벌한다는 뜻이므로, 전영주가 조용히 살아가기만 한다면 4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더 이상 처벌하지 않는다. 실형은 나왔을지언정 감옥에 가거나 생활 자체가 박살 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존속 상해 사건에서 집유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는…….”
그것도 작은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머리에 골절상을 입고 입원한 사건이다. 머리 골절은 다른 부위와 다르게 훨씬 처벌이 강하다. 다리나 팔은 다쳐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머리 골절은 다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고했네. 수고했어.”
노형진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는 사람들. 그때 전영주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가왔다.
“노 변호사님, 너무 감사해요.”
감옥에 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옥에 가지도 않았고 끝나지도 않았다. 과거처럼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고는 제가 한 게 아니라 영주 씨가 한 거죠.”
전영주의 가정환경은 막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게 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바르게 자랐다. 심지어 이번 공격도 원한이 아니라 자신의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 벌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탓하면서 엇나갈 상황에서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노형진이 그런 그녀의 두 손을 잡자 그녀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 * *
얼마 후 노형진은 편의점으로 갔다가 카운터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장님?”
분명 이 시간은 전영주가 일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녀가 아니라 사장이 서 있는 것이 이상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영주 씨가 사정이 있어서 못 나왔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난 또 영주 씨를 자른 줄 알았죠.”
“정직원을 자르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껄껄껄.”
전영주가 편의점을 지키려고 싸웠다는 사실에 감동한 사장은 그를 정식으로 채용해서 매장의 매니저를 맡겼다. 그 덕분에 전영주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데요?”
보통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노형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사장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군요.”
그 말에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죽어요? 설마 후유증으로?”
그렇다면 전영주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절연한 사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
“그건 아니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탈출했다가 얼어 죽었다고 하더군요.”
“탈출요? 얼어 죽어요?”
“네.”
어찌 되었건 그녀가 가해자인 것이 맞으니 어쩔 수 없이 병원비를 내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젯밤 그의 아버지인 전광한이 병원을 탈출한 것을 알았다고 한다. 환자들이 자주 자리를 비우기에 사라지는 것을 바로 알 수 없었던 병원은 새벽이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경찰에 신고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이 틀 때쯤 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으음…….”
알코올중독인 전광한은 병원에 있는 동안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했다. 비록 싸웠다고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전영주는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이겨 내지 못하고 바깥으로 도망쳐 술을 사 마신 뒤 길바닥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어제가…… 엄청 추웠지요.”
“그렇지요.”
1월. 한겨울 밤의 추위는 엄청나다. 그런데 얇은 환자복 하나를 입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 상태로 술에 취해 잠든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음…….”
“그래서 장례를 준비한다고 하더군.”
“씁쓸하군요.”
그 상황에서조차 아버지가 혹시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기대했던 전영주다. 공격한 것은 그가 주변에 행패를 부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지, 결코 그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씁쓸한 일이지요.”
“네, 그러네요.”
술이라는 놈이 결국 목숨까지 빼앗아 갔다.
“조문이라도 가야겠네요.”
노형진은 커피를 사 들고 나오면서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저, 형진이입니다.”
성화의 반격 (1)
“참 가지가지한다.”
노형진은 뉴스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는 나온 것은 어이없는 뉴스를 전하는 일종의 토픽이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장갑수 이 새끼는 도대체 거기에 왜 간 거야?”
정치 면도, 사회 면도 아닌 토픽 면에 그의 이름이 올라간 것은 그의 황당한 죽음 때문이었다.
장갑수는 노형진이 군대에서 법무관을 하던 당시에 성추행하고 덮으려다가 노형진에게 걸려서 영혼까지 털리고 해직당한 대령이었다. 그 당시 그의 형이 현직 경기도지사여서 무척이나 입김이 강했지만 그 사건이 외부로 나가면서 그도 군대에서 해직당했을 뿐만 아니라 형까지 경기도지사를 뽑는 선거에서 탈락했다.
군대에서 쫓겨난 뒤 아버지연합이라는 괴상한 곳에 가입해서 여기저기에 시위하러 다닌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런 황당한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쯧쯧.”
아버지연합이라는 단체는 극단적이다. 자기들의 의견에 반하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덤벼든다. 그런 행동 중 하나가 바로 가스통을 들고 위협하는 것이다. 가스통은 터지면 폭탄 저리 가라 하는 무기가 돼서 당연히 엄청나게 위험하다. 그 덕분에 그들의 별명이 ‘가스통 할아범’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런데 이 멍청한 장갑수가 진짜로 거기에 불을 붙여 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고 해도 위협으로 쓸지언정 실제로 가스통에 불을 붙이지는 않는다. 그건 명백하게 테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안 상대방이 그를 무시하자 욱하는 마음에 진짜로 가스 밸브를 열고 불을 붙인 것이다.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가스통을 들어 본 사람은 알지만 그 무게가 상상을 초월한다. 더군다나 그 형태상 쉽게 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그걸 여러 명이 들고 있는데 그가 진짜로 불을 붙여 버리자 깜짝 놀란 사람들이 그걸 놓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가스 밸브를 열면 한쪽으로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누군가 잡아 줘야 하는데 사람들이 도망가 버렸으니 그대로 기우뚱하면서 불이 붙은 가스통이 그대로 쓰러졌는데, 하필이면 그 불이 나오는 방향이 장갑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장갑수는 그대로 불을 뒤집어쓰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굴렀지만 시위하던 사람이든 아버지연합 쪽 사람이든 가스통에 불이 붙었는데 거기서 얼쩡거릴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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