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65)
“암살?”
“그렇소.”
그릭스는 남자의 말에 턱을 문질렀다.
“상황이 급하게 되었소. 하디 잭슨이 우리에 대해 알고 추적하고 있고, 정식으로 고발까지 진행했소. 우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뒤에는 트릭스사를 포함한 경쟁사들이 있는 것 같소.”
“끄응.”
그릭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도 그 소문은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하디 잭슨이라는 놈이 문제군.”
“그놈이 죽어야 뭐든 정리될 거요.”
“우리도 인정하지. 하지만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그 미친놈들 사이로는 못 들어가.”
하디 잭슨은 극우 세력의 보호를 받고 있다.
자신들 조직이 암살에 특화되어 있지만, 고화력 병기를 다루는 것은 그들이 더 익숙하다.
“일을 하게 되면 암살이 아니라 전면전이 될 텐데, 그놈들 개틀링까지 가진 미친놈들이야. 우리가 어찌 손댈 수가 없어.”
그릭스는 제법 유명한 암살 집단의 리더다.
만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사실이라면 이 문제는 폴 에크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그놈 때문에 곤란하기는 한데.”
자신들에게 돈을 준 야고라는 유령 회사에 대해 안다는 것.
그건 자신들에 대해서도 안다는 뜻이니,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뜻도 되니까.
“그래서 그놈을 죽여야 한다는 거요.”
“하지만 어떻게?”
“어차피 이판사판이오. 그가 진술을 하러 갈 때를 노립시다.”
“진술?”
“그렇소. 고발을 했으면 당연히 진술을 하러 가야지.”
“호오?”
확실히 그렇다.
더군다나 그가 움직이는 곳은 도시일 수밖에 없다.
법원이든 경찰서든, 도시에 있을 테니까.
“그 미친놈들도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
그들이 요새화한 마을에는 고화력 무기가 즐비하다.
하지만 일단 그곳을 떠나 움직이게 되면 그 모두가 아무 소용 없다.
아무리 정부가 모른 척하면서 방치한다고 해도, 개틀링을 들고 도시 내부를 활보하는 걸 두고 보지는 않을 테니까.
“기껏해야 소총이겠지.”
그것도 법에서 허락하는 수준의 단발 소총.
인터넷 영상에서 연발 소총이 흔하게 나오지만, 사실 미국에서 민수용으로 허락되는 것은 단발이다.
물론 특수한 경우 연발 허가가 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일 뿐.
“그들은 빌미를 줄 수가 없겠군.”
뭐 하나 건드리면 미국에서 그걸 가지고 귀찮게 할 테니까.
안 그래도 미국의 총기관리국에서 가장 자주 터는 곳이 극우 세력이다.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게 없지.”
이들은 암살 조직이자 불법 조직이다.
법 따위 상관없다.
“좋아, 우리가 처리하지.”
그릭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준비하지요.”
남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의 거래가 끝난 후, 남자는 바깥으로 나왔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서 그를 비추고 있었다.
“뜨겁네.”
그는 하늘의 태양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이야기 끝났습니다. 네. 알아서 한다더군요.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그는 잠깐 통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유심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구부려 조각냈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고는 가차 없이 밟아서 부순 뒤 발로 뻥 차 버렸다.
핸드폰은 하늘을 날아서 ‘풍덩’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 있던 개천에 빠졌다.
“돈 벌기 참 쉽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노형진은 시계를 힐끔 보았다.
‘습격을 할 거란 말이지.’
노형진은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습격이 있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었다.
사실 암살을 청부한 것은 폴 에크먼이 아니라 노형진이다.
미친 소리 같지만, 진짜다.
물론 그게 쉬운 건 아니지만.
‘그게 익명과 대리인의 함정이지.’
폴 에크먼이 그들을 고용한 방법은 야고라는 회사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야고가 걸렸다.
‘그런 경우에 그들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하지.’
그 당시 접촉했던 회사나 대리인을 또다시 쓰면 문제가 될 게 뻔하니까.
노형진은 다행히 기억을 읽어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걸 가지고 접촉하자 그들은 의심하지 못했다.
상황도 그럴듯했고, 수십만 달러를 줘 가면서 그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 입장이지.’
그들이 어디에서 암살할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형진은 그들이 있는 그곳을 지나가기 전에 다른 암살 팀을 준비해 놨다.
“걱정됩니까?”
“후우!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디 잭슨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고발하면 경찰에서 정말 조사할까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입구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폴 에크먼은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무마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풀려난 고삐를 채우는 것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도리어 그게 더 큰 건이라고 생각한 기자들은 악착같이 매달렸다.
“미스터 노.”
“네?”
“고맙습니다.”
하디 잭슨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노형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비록 돈 때문이라고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설사 미국 국적이 아니라고 해도요.”
“별말씀을요.”
노형진은 왠지 살짝 양심에 찔렸다.
‘내가 당신에게 할 일을 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짧은 양심의 가책을 노형진은 애써 지우면서, 그를 안아 줬다.
“애국자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애국자가 호구를 뜻하거든요.”
“한국은 이상한 나라예요.”
그렇게 하디 잭슨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노형진.
하지만 그의 손은 재빠르게 움직여서, 미리 준비된 가느다란 고리를 힙색에 걸었다.
‘미안합니다. 나도 먹고살아야 해서.’
그 고리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튼튼한 물건이었다.
거기에다 이어지는 선은 가느다란 피아노 줄이라서 움직이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기에, 하디 잭슨은 자신의 가방에 뭐가 걸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도시에 들어갑니다.”
운전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노형진.
그리고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그의 눈에, 저 멀리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차량들이 보였다.
“어? 뭐지?”
“저게 뭐야?”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던 극우 세력은 차량들이 무리 지어 달려오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그들의 이성을 끊어 버렸다.
탕! 탕탕탕!
몇 발의 총성.
잔뜩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총소리에 놀라서 사정없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쏴! 쏴 버려!”
“저 새끼들 쏴 버려!”
“저거…… 중국인 아니야?”
힐끗 창문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
누가 봐도 동양계 인간들이다.
그걸 보고 극우 세력은 눈깔이 돌아갔다.
“쏴 버려!”
“죽여!”
“망할 중국 놈들!”
안 그래도 이번 사건에 중국 놈들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양계 남자들이 습격하자 당연히 중국인이라고 단정 지은 것이다.
습격자들은 몇 발의 총을 쏘다가 화력에서 밀린다 싶었는지 방향을 틀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망쳐!”
“잡아!”
원래 경호할 때 경호원은 경호 대상의 주변을 떠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데다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두 대는 남고 나머지는 따라가!”
앞뒤로 세 대씩 여섯 대나 있었지만 상대측이 도망가자 쫓아가기 위해 네 대가 대열에서 이탈해서, 이제 남은 것은 두 대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그때, 한쪽에서 또 다른 차량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허! 양동작전이다!”
“막아!”
남아 있는 두 대의 차량에 있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노형진은 그걸 보고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잘 움직이네.’
사실 저들은 중국의 요원이 아니다.
그들은 노형진이 사건으로 인해 접촉한 적이 있는 한국인 갱단이었다.
노형진이 원하는 건 대충 총 쏘는 시늉만 해 달라는 것이었고, 그들에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아시아 사람들을 잘 구분 못하지.’
특히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은 거의 구분 못한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중국인이라 생각할 뿐.
‘그래, 지금이다.’
사실 총을 쏴 대도 양쪽 모두에 의미가 없다.
노형진이 타고 있는 차는 방탄이다.
한국 갱단이 타고 있는 차도 방탄 처리가 되어 있고.
극우 세력의 경우 방탄 처리는 안 되어 있지만, 노형진이 절대 사람은 맞히지 말라고 했으니 피해자가 생길 리 없다.
저 총소리도 결국은 허공에 대고 하는 총질로 인한 것일 테니까.
사실 노형진이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퍼석.
뭔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앞 유리에서 불이 확 피어올랐다.
“허억!”
“화염병이다!”
“이런 젠장!”
방탄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
총알은 막을 수 있다.
수류탄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화염병은 상대방을 태우는 거지, 총알이 아니다.
당연히 방탄으로 막을 수가 없다.
“나가! 어서 나가!”
차가 불타면 방법이 없기에 다급하게 탈출하려고 하는 사람들.
마찬가지로 다급하게 나가려고 하던 하디 잭슨은 뭔가 걸리는 느낌에 당황했다.
“어어어……?”
겁을 먹고 나가려고 했지만 뭔가가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고,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렸다.
“뭐 해요, 안 나가고!”
노형진은 그가 나가야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반대쪽 문은 이미 불타고 있었고, 설사 그쪽으로 나간다 해도 순식간에 벌집이 될 테니까.
“뭐…… 뭔가 걸렸어요!”
“젠장! 잠시만요!”
노형진은 살피는 척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힙색이 걸렸어요! 어서 풀어요!”
“거…… 걸리다니요?”
“벨트 고리에 걸렸어요! 어서 풀어요! 엉켜서 어떻게 못 해요!”
“아아…….”
그는 잠깐 주저했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부, 불이……!”
화염병에 들어 있던 기름이 퍼지면서 차의 주변으로 점점 불이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덮쳐 오는 공포에, 그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고 다급하게 힙색을 풀고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빙고.’
노형진은 그가 차 바깥으로 나가기 무섭게 힙색을 열었다.
중요한 건 가방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USB니까.
그는 그걸 잽싸게 주머니에 넣고는 바깥으로 굴러 나왔다.
“도망친다!”
다급하게 멀어지는 차량을 보고 환호성을 내지르는 극우 세력.
하지만 누구도 불을 끄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 하겠지.’
소화기를 차에 싣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내…… 내…… 내 가방…….”
하디 잭슨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가가려고 했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노형진이 문을 열어 둔 채 허둥지둥 나온 탓일까?
이미 불은 안쪽으로 침범해서 차를 활활 태우고 있었다.
“큭…….”
“일단은…… 신고부터 하죠.”
노형진은 눈을 찡그리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후후.’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USB를 생각하면서, 그는 애써 웃음을 감췄다.
군수 비리는 세계 공통인 듯?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경찰과 갱단의 총격전은…….
-다행히 민간인 피해는 없었지만 경찰 중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부상을…….
-습격을 준비하던 갱단은 다섯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부상을…….
노형진은 그걸 보며 안타까운 듯 입을 쩝쩝거렸다.
“치밀한 놈들. 이중으로 설계한 건가?”
손채림은 사실을 모르고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봐.”
사실 그들은 이중 설계한 게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 실패했는데 예정대로 그 길로 갈 리 없으니까.
‘뭐, 상관없지. 그나저나 돌아가신 분에게는 미안하군.’
노형진이 함정을 파기는 했지만 경찰과 총격전을 한 것은 사실이고, 죽은 경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형진이 신고하자 경찰은 다급하게 출동했고 주변의 순찰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이상한 차량을 발견하고 접근했다가 기습적으로 총을 맞고 살해당한 것.
차량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료가 급하게 지원을 부르고 스와트 팀까지 출동한 총격전이 벌어져서, 결국 암살자들은 모조리 체포되었다.
‘이렇게 떠먹여 줬는데 병신같이 놓치지는 않겠지.’
그들에 대해 조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해를 실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 측에서 살해에 참가한 요원은 방법이 없지만…….
‘그들 중 일부가 입을 열면 상황은 바뀌지.’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시볼스사나 폴 에크먼에 대해 말하면, 계획 살인 혐의로 조사가 진행되어 폴 에크먼과 시볼스사는 끝장난다고 보면 된다.
“동료들의 복수는 했네요.”
뉴스를 보며 하디 잭슨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노형진은 그를 바라보는 대신에 그의 허리에 있는 힙색을 바라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누군가 한 명은 있겠지. 바보가 아니니까.’
그의 허리춤에 있는 힙색.
지난번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미끼가 된 건가?’
누군지 모르지만 사본을 가지고 있다.
아니, 디지털이라는 특성상 사본이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지 않은 누군가가 똑같은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힙색이 불타자 그는 똑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
‘이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야.’
그가 이걸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 자신만을 표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노형진이 그걸 빼돌린 걸 그는 모르지만.
‘뭐, 속이고 속는 거지.’
노형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볼 이유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