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79)
홍여주의 아버지인 홍삭구는 자신에게 날아온 소장에,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고얀 놈!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뭐? 지 할아비를 고소해!”
“일단 말은 정확하게 하죠. 당신들이 먹여 주고 재워 준 적은 없습니다.”
“그 망할 연놈이 사는 집도 내 딸이 구해 준 거잖아!”
“그러니까요.”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자식의 돈이 자신의 돈이라 생각한다는 것.
결과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리였다.
‘내가 그렇게 둘 리 없지만.’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차분하게 하나씩 그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줬다.
“일단 당신들이 사 줬다는, 아니 구해 줬다는 그 집, 아이들 명의가 아닙니다. 즉, 아직 그 아이들의 부모인 홍여주가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걸로 먹여 주고 재워 줬다고 하는 건 어폐가 있지요. 거기에다 그 아이들의 자산은 당신들에게 투자되어 있을 뿐입니다만?”
그랬다, 투자.
그리고 투자라는 것은, 그 회사에 지분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건 애엄마가 알아서 할 일이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감히 할아비한테 소송을 걸어?”
“황효연 씨는 이제 성인입니다. 투자를 한 성인으로서, 투자한 회사의 자금 내역을 보자는 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노형진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쪽은 잘못한 것이 없다.
“이미 사업 기록은 확인해 봤습니다. 공식적으로 투자한 회사는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유통사로 확인됩니다만, 그 실적에 대한 보고 같은 게 전혀 없더군요.”
“우리는 개인 사업자라구! 우리가 무슨 보고를 해!”
옆에서 소리를 지르는 남자.
홍여주의 오빠였다.
그는 원래 결혼을 했지만 바람피우다가 걸려서 이혼당했다.
더군다나 그 바람이 단순히 성관계를 넘어서, 따로 집을 사 주고 아예 살림을 차린 수준이었다.
결국 상대방이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이혼소송에서 패배한 후 거의 모든 재산과 양육권을 빼앗기고 부모 밑으로 기어들어 온 사람이었다.
‘안 봐도 뻔하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애정을 갈구하는 홍여주.
그에 반해 반성도 없고 잘못도 없고, 명백하게 자기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기어들어 와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오빠.
‘여자 주제에 무슨 공부냐고 했다고 했지.’
인간은 배운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과연 그런 말은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개인 사업자라고 해도 일단 실적에 대해서는 보고하셔야 합니다, 이쪽이 투자자인 만큼…….”
“개소리하지 마.”
보고라는 것의 어감 자체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당연히 새파란 자기 조카들에게 보고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저희는 보고서를 요청했습니다. 또한 기 지분을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자산이 그곳에 투입된 것을 다들 모르는 것은 아니실 테니까.”
노형진은 두 남자를 보면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결과를 기다리지요.”
* * *
“취하했다는데?”
손채림은 사건 기록을 계속 감시했다.
사실 사건 번호만 알면 그 사건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사건 번호만 넣으면 기록이 올라온다.
“역시나 그렇게 나오는군.”
사건 번호를 인터넷에 넣자마자 나오는 취하라는 내용.
당연히 이쪽에서 취하한 게 아니다.
“우리가 한 게 아니면 그 여자가 취하한 건데, 이게 그렇게 쉽게 되나?”
“되지. 사실 한국의 공무원들은 설렁설렁 일하는 편이거든.”
일단 소송을 한 사람 중 황주석은 아직 미성년자다.
당연히 그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그 취하 권한이 있다.
“하지만 황효연은 아니잖아. 성인인데?”
“그게 웃긴 거야.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거지.”
이제 스물한 살.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공무원들은 그들을 아직 부모 아래에서 살고 있는 학생으로 본 것이다.
“그런 경우 부모들이 취하서를 가지고 오면 어지간하면 다 받아 줘.”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냐? 딸이 강간 신고했는데 아버지가 그걸 취소한 경우도 있는데 뭘.”
“끄응…….”
“어찌 되었건 우리나 두 사람이 취하했을 리 없으니, 홍여주가 취하했겠지.”
일단 취하를 하고 황효연과 황주석을 설득하는 쪽으로 상황을 끌어갔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두 사람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을 테고.”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어떤 식으로 나올지 이렇게 빤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이 노형진의 함정에 빠진 것임을 말이다.
“두 사람에게 전화해 봐. 아마 상황이 제법 많이 바뀌었을걸.”
* * *
“등록금을 내준다고 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소송을 걸자마자 취하한 홍여주는, 황효연과 황주석의 등록금을 어떻게 해서든 내주겠다고 협상을 걸었단다.
“자식에게 협상이라니, 기가 막힌다. 아니, 무슨 부모가 그래?”
“협상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어. 다만 그쪽이 불리하니까 일단 꼬리를 말고 있다는 것이 중요해.”
서세영을 진정시키며 노형진은 황효연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소송 그만하고 싶어?”
“아니요.”
그녀는 매몰차게 말했다.
“차라리 애초에 진짜로 날린 거라면 저도 그만하겠지만…….”
이미 노형진이 한 조사 결과를 본 그녀다.
지금 저들이 주겠다고 한 돈은 그녀가 원래 가져갔어야 하는 돈의 100분의 1도 안 된다.
“제게 끝까지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투자한 게 망해서 돈을 줄 수가 없다는 식으로.”
“당연하지. 투자한 건 돌려받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아마 시간을 끌면서 재산을 정리하려고 할 거야.”
“그런데 소송이 취하되었는데 어떻게 해요?”
“애초에 예상했던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
“네? 예상했던 일요?”
“그래. 너는 성인이라 문제가 안 되지만 동생인 주석이 같은 경우는 미성년자라서 법정대리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거든.”
“그런…….”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노형진은 취하된 소장을 들었다.
“법정대리인이라고 해도, 당사자가 결정한 것을 전면적으로 뒤집을 수는 없어. 특히나 본인이 가해자가 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하지만,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걸 가지고 법원을 고소할 거야.”
“네? 법원요?”
“그래. 이건 민사사건이잖아. 저쪽에서 취하한다고 해도 다시 고소하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저쪽은 이미 당사자의 동의 없이 너와 너의 동생의 사건을 취하했잖아. 거기에다 이 사건 기록을 보면, 그 사람의 고의적 범죄도 의심되는 상황에서 말이지.”
“아!”
노형진이 알면서도 놔둔 이유.
그것은 바로 홍여주의 대리인 자격을 박탈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황효연이 성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주석을 전적으로 대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일로 확실하게 드러난 거야. 동생의 이득에 반해 소를 임의로 취하한 이상, 최소한 동종 사건에 대해서는 법률 대리를 할 수가 없다는 게.”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왜 법원에 소송을 걸어요? 그냥 법원에다가 사건의 가해자라고 하면 자격이 정지될 텐데요.”
“빡치라고. 법원은 그 특유의 선민의식이 있거든.”
판사와 검사의 문제가 아니다.
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민의식을 가진다.
“하물며 법원에서 일하는 공익도 선민의식을 가지는데 뭘.”
“네? 공익요?”
서세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익이면 군대를 대신해서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무슨 선민의식을 갖는단 말인가?
“법원 공익은 어지간한 특혜가 있지 않은 이상에는 못 들어가. 법원 공익으로 발령받았다는 것은 그 뒤에 든든한 사람이 있다는 거지.”
“아아…….”
업무 자체가 다른 곳보다 아주 힘든 것도 아니거니와,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출퇴근도 힘들지 않다.
거기에다 이런저런 인맥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 쪽은 피해자이지만 저쪽은 졸지에 속은 거잖아. 물론 우리가 고발한다고 해 봤자 기껏해야 감봉이야. 하지만 저들은 좀 다르게 반응하지. 아마 관련 소송이 다시 들어오면 최우선으로 처리할걸.”
그만큼 취하된 소송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최우선으로 처리한다고 한다면 아마 더 빨리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지.”
“무섭네요, 오빠. 세영이가 진짜 일 잘한다고 하더니.”
“너희도 열심히 배워서 여기로 와라. 내가 잘 가르쳐 주마, 후후후.”
“그러고 보니 채림이 언니는 어디로 간 거야? 매일 같이 있었잖아.”
서세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보통 같이 일하던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채림이? 다른 일을 하고 있지.”
“다른 일?”
“그래, 그게 끝나면…….”
노형진은 싱긋 웃었다.
“너희 엄마를 너희가 잘 챙겨야 할 거야.”
“네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에, 다들 얼굴이 사정없이 찡그러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