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9)
‘이게 뭐가 좋다고. 쯧쯧.’
사람들은 이렇게 범죄로 돈을 벌고 중국에 가서 살면 잘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노형진의 경험상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돈이 있어도 펑펑 쓰자니 주변에서 자신을 찾아올까 봐 두렵고, 그렇다고 한곳에 정착하자니 그건 더더욱 힘들다. 게다가 중국 범죄 조직은 그런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그들을 지켜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는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중국에서 겪는 것은 길고 고통스러운 도주 과정뿐이다.
“노 변호사님, 이미 경찰이 싹 수사하고 갔습니다.”
아까 대답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권강수는 이번 사건에서 노형진을 지키기 위해 그의 수제자들과 함께 유민택이 붙여 준 사람으로, 여러 가지 무술들을 배워서 그 합이 무려 14단이 넘는 경호 전문가다.
“그들과 제 수사 방식은 다르니까요.”
노형진은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과연 어느 곳에 기억이 가장 많을까.’
하루하루 성화와 계약한 날짜는 다가오고 있다. 자료를 넘겨주고 받은 돈을 쓰는 것은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면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도피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면…….’
노형진은 안방에 놓여 있는 커다란 더블 사이즈 침대를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침대.
수사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두고 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 고민이 있다면 저기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했을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고민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때가 바로 침대에 누웠을 때지.’
노형진은 그 침대로 다가가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걸 본 권강수는 깜짝 놀랐다.
“노 변호사님?”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잠깐 이대로 두세요.”
노형진은 침대에 누워 정신을 집중하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침대에 있는 기억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것은 이구환을 찾기 위해 온 집 안을 헤집는 경찰들과 회사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런 건 쓸모가 없지.’
노형진은 좀 더 과거의 시간대를 찾아 그가 혼자 있는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몰려오는 서러움과 외로움.
‘너도 편한 삶을 사는 건 아니었구만.’
대룡의 연구 팀장이라는 직책은 상당한 높은 직책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제대로 연애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한 채로 공부만 했다. 이제는 결혼하고 싶었지만 나이도 나이거니와 급격하게 늘어나는 대머리 때문에 맞선도 잡기 힘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하기로 한 거냐? 멍청하군.’
그는 그런 것이 억울했다. 하나 애초에 그건 대룡의 책임이 아니다. 그가 공부만 하는 것을 선택해서 대룡에 입사한 것이지, 대룡에서 입사를 조건으로 그에게 공부만 시킨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책임을 물을 곳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대룡이었다. 그래서 배신한 것이다.
‘그런 멍청한 자기 합리화는 그만두고…….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
노형진은 이구환의 기억을 보다가 짜증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의 범죄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말도 안 되는 분노를 대룡에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대머리라고 해도 대룡의 연구 팀장쯤 되면 어지간하면 장가를 간다. 심지어 대룡은 사내 연애에 상당히 관대한 편이라 가끔 회사 내 맞선 행사를 하기도 했고 이구환 역시 몇 번이나 나갔다. 하나 그곳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그럼에도 그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대룡에 전가하고 있었다.
‘그런 불만은 그만두고…… 어디냐…… 어디냐…….’
끊임없이 나오는 자기 합리화의 기억들.
노형진은 처음에는 불쌍하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머리는 좋을지언정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한참을 찾아서야 기억 내에서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곧 가게 될 중국에 대한 공포감, 두려움, 미래에 대한 걱정. 그걸 확인한 노형진은 눈을 번쩍 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 변호사님?”
권강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침대에 누워서 잠든 듯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 것이다.
“알 것 같군요.”
“알 것 같다니요?”
“어디로 갔는지 말입니다.”
“네? 그거야 중국으로 갔겠지요.”
문제는 중국이 너무나 넓어서 공항에서 내린 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북경 쪽일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많고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는 북경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경 쪽을 수색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 기억 속에서 한 가지 단어를 찾아냈다.
“완전히 당한 겁니다.”
“네?”
권강수는 노형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북경 쪽에 있지 않단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중국이 워낙 넓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다음 말은 더 황당했다.
“아예 중국 쪽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뭐라고요?”
노형진의 말에 어이가 없는 얼굴이 되는 사람들.
“하지만 그를 추적하니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얼굴을 보셨습니까?”
“네?”
“애초에 도피를 위해 중국 같은 곳으로 갈 때는 배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배를 타고 갔을까요?”
“그거야…….”
그 말에 권강수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언제 상대방이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간다? 그건 좀 이상하다. 더군다나 아직은 제대로 고발이 들어간 시점에 도망간 것도 아니니 체포 영장이 나오거나 출국 금지가 떨어진 시점도 아닌데 말이다.
“배는 비행기보다 신분증 검사가 느슨합니다.”
“그런가요?”
“네.”
배라는 것은 워낙 크기가 큰 데다가 사고가 난다고 해도 구조의 가능성이 켜서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검사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범죄자들도 남의 이름으로 움직일 때도 많다.
“그럼 설마?”
“아마도 중국으로 간 녀석은 다른 녀석일 겁니다.”
“헛!”
그럼 지금까지 중국과 북경 지역을 이 잡듯이 뒤지던 것은 완전히 헛짓거리라는 소리가 아닌가?
‘성화, 이번에는 제대로 머리를 썼어.’
노형진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건 그 기억 속에서 중국에 관련된 정보를 모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번 중국에 갔다 오거나 관련 정보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기억이 없었다.
‘완전히 당할 뻔했어.’
혹시나 아예 모른 채로 무작정 끌려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노형진은 우연히 일본과 관련된 기억을 읽었다. 별건 아니었고 일본 야동을 보면서 흥분하는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무시하던 노형진이었지만 그 기억에서 해외에 가게 된다면 일본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읽어 낸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과 관련된 기억을 찾아본 것이다.
“아마도 성화의 솜씨일 겁니다. 중국으로 가는 척하면서 일본으로 빼돌린 거죠. 그렇게 되면 경찰도, 대룡도 중국만 뒤질 겁니다. 설사 의심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약하게 수색할 수밖에 없구요.”
“크윽…… 망할 새끼들.”
권강수는 어이가 없었다. 범죄자를 감춰 주기 위해 그런 짓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일본에 가서 어디로 숨었을까요?”
“그건…….”
노형진은 입을 다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아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안다. 하지만 그걸 알려 주려면 사이코메트리에 대해 알려 줘야 한다. 하나 한편이라곤 해도 변호사에게는 비밀 무기가 있어야 하는 법.
‘일본에 간 건 예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정 지역을 말해 주는 건 뭔가 안다는 느낌이 든다. 재수 없으면 성화와 한패가 아니냐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문제다.
“그건 가 봐야겠지요. 하지만 일본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본 포르노에 중독된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음?”
“주변 인물들의 말로는 일본 포르노만 무려 10테라바이트가 넘는 양을 가지고 있다고 했답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렇군요. 역시 회장님이 극찬하실 만합니다.”
자신들은 그저 중국으로 갔다는 사실에 집중했지, 그가 일본 포르노 중독자인 것은 몰랐다.
물론 노형진도 몰랐다. 다만 기억에서 읽어 낸 뒤, 자신이 한 이야기에 맞게 대답한 것뿐이다.
“그럼 일본으로 바로 가야겠군요.”
“가능하면 빨리 따라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지요.”
노형진의 말에 권강수는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성진국 열도 (1)
“확실히 남쪽이라는 건가요?”
노형진이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옷깃을 여미자 권강수는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네?”
“서울보다는 훨씬 따뜻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네, 그러네요.”
그 말에 노형진은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마음이 추워서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던 노형진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답지 않은 표현을 쓰다니. 어지간히 심심하기는 한 모양이네.’
이구환을 찾아서 일본에 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구환이 중국으로 갔다는 유일한 증거는 배를 탈 때 제출한 여권뿐이었다. 하나 여권 위조는 무척 쉬운 일 중 하나다.
“일본에 오기는 했는데 과연 일본에 있기는 할까요?”
문제는 그가 일본으로 도망갔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 수사를 중국으로 돌리기 위해 고의로 떡밥을 흘린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중국으로 도망갔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노형진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일본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있기를 바라야지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글쎄요.”
과연 어디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까? 주변에 널린 것이 다름 아닌 호텔이고, 사람들으로 가득한 곳이 일본이다. 한국이 5천만 운운하지만 일본은 인구가 1억이 넘는 곳이다. 당연히 작심하고 숨어 버린다면 무척이나 찾기 어렵다.
‘하긴……. 야동 하나에 반해서 온 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그러나 노형진이 기억에서 읽은 이구환의 포르노 중독 증상은 엄청나게 심했다, 평균 하루 두 시간 이상 일본 포르노를 볼 정도로. 실질적으로 연구원들의 여가 시간이 부족한 점을 생각하면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포르노로 보냈다는 것이다.
“일단은 성화의 일본 지부 쪽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권강수가 말했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성화는 바보가 아닙니다. 어떻게 중국으로 시선을 돌렸다곤 하지만 다시 일본으로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하게 자신들의 구역 내부에 이구환을 둘 가능성은 낮다고 보입니다.”
“그럼…….”
“아마도 어디 먼 곳에 전담 직원을 두세 명 정도 두고 보호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완전히 뜬구름 잡기인데요?”
“그렇지요?”
기억을 읽는 것도 결국 그와 어느 정도 접점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라도 알아야 사이코메트리를 하지,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그런 걸 하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공항 입국장에서 기억을 읽자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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