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98)
“으하하! 그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김성식은 나중에 사건을 듣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공문 한 방에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말라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규정을 지키지 말라는 법은 아니거든요.”
지금까지야 사람들이 몰라서 그냥 넘어갔다지만 그들은 공무원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처리 지침이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 지금까지 판사들이 비공식적으로 해 오던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비공식은 비공식일 뿐이지. 공식적인 규정을 들이밀면 지키지 않을 수가 없지.”
일단 2심으로 넘어가면 규정을 안 지켰으니 판결이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눈앞에 공식 규정이 들이밀렸는 데다, 안 지킨다는 것은 명백하게 권력 남용이다.
“오해가 있었다, 또는 법리 해석의 문제다 정도로는 변명할 수가 없는 사항이죠.”
“맞아. 웃기게도 판사들이 법은 더 안 지킨단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처리 규정이 눈앞에 있으면, 그것도 처벌을 기반으로 하는 규정이 있으면 그들이라고 해도 방법이 없다.
“결국 그래서 무죄가 나왔군.”
“네, 나중에 피해 여성도 이해해 주셨습니다. 사실 자기도 미심쩍었다고는 하시더군요. 그런데 경찰이 무조건 성추행이라고 몰아붙여서 인정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그렇게 윽박지르면 겁을 먹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지.”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그도 그런 경찰이 많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단 하나는 해결했군. 이 판례는 나중에 교육용으로 적당하겠어.”
“실적 노리고 증거 조작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이겠습니까?”
오죽하면 노형진이 그런 경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번 한 건으로 해결될까요? 사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유명하잖아요.”
직권남용과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하기는 했지만, 끼리끼리 뭉치는 판사와 검사의 특성상 그들이 그걸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압니다. 이번 사건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다시는 증언만 가지고 판단하는 짓은 못 할 겁니다.”
“왜요?”
“자존심 때문이지요.”
자신들의 고발이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판사가 다른 판사 앞에 피고인으로 선다는 것.
검사가 다른 검사에게 고발당한다는 것.
그건 그들의 자존심을 엄청나게 자극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이 같은 식으로 판단하면 또다시 직권남용으로 고발할 테고, 그때마다 그들은 조사 대상이 될 겁니다. 처벌 자체는 받지 않을 테지만, 세상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엄청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하긴, 그렇겠네요.”
“그리고 그런 고발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인사고과는 떨어집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처벌을 안 한다는 거지, 그들이 올바르기 때문에 처벌을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하!”
결국 그 기록은 남고 상부는 그들에 대해 좋게 생각할 수가 없다.
새론은 이런 사건에서 매번 같은 질의를 할 테고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매번 같은 답변이 나올 텐데, 그 말은 그 판사와 검사가 매번 상부의 공식적 입장을 개무시한다는 걸 뜻하니까.
“결국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는 못하겠네요.”
“사실심이라고 하지만 결국 법률에서 정한 규정 내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일이 커지죠.”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으로 지는 경우 억울한 피해자들의 재판은 재심을 신청할 수 있게 되며, 그게 못해도 수십 건에서 수백 건은 될 것이다.
또한 그 피해자들은 그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그런 경우 공무에 의한 손해이기 때문에 국가에도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수억씩 그런 식으로 배상금이 나가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들로서는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들이 법을 어기는 이유는 여성계에서 욕먹기 싫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하지만 욕먹기 싫다는 개인적 감정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실적, 금전적 피해를 이길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맞아. 하하, 벌써 그쪽 판사들이 노 변호사 자네를 아주 씹어 먹을 것처럼 성토하고 있더군.”
“그래요? 다행이네요. 이쪽 업계에서는 포상이거든요.”
노형진은 키득거리며 웃었고, 그런 노형진의 어깨를 김성식은 강하게 두들겼다.
“이번에는 수고했네.”
“별말씀을요.”
“하지만 또 한번 수고해 줘야겠어.”
“네?”
안 그래도 힘든 사건 하나를 끝냈는데 또 다른 사건이라는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에게 사건이 몰려드는 거야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따로 언급하다니?
“대룡에서 도움을 요청했네.”
“아.”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룡과 대동의 싸움.
“때가 되기는 했지요.”
때가 되기는 했다.
그리고 그 ‘때’는, 싸울 때였다.
잡아먹기 위해서는 키워야 한다
“대동이 움직이고 있네. 그래서 내가 조용히 자네를 청한 거고.”
유민택은 차분하게 말했다.
“어디로요? 요 근래 조용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몰라.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어.”
노형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탁자를 두들겼다.
대동. 그들은 절대 섣불리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다.
과거에 싸웠던 성화 같은 경우는 벌써 무슨 짓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났는데, 대동은 조용히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성향을 보면 돈이 움직인다는 것은, 계획은 이미 완성되었고 본격적으로 구동된다는 뜻인데요?”
“그래, 하지만 그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어.”
“기업을 구입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요?”
“그 정도 자금은 아니야.”
고개를 흔드는 유민택.
“하지만 절대 적은 돈도 아니지. 지금까지 200억 정도 움직였으니까.”
“200억이라……. 그 정도로 우리한테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없지.”
200억.
절대 적은 돈은 아니지만, 절대 많은 돈도 아니다.
기업을 인수하거나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쳐서 이쪽에 타격을 줄 정도의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라인을 통해 들어오는 건요?”
“우리가 아는 한 없네. 그리고 기업을 구입하거나 할 돈이라면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가지고 들어오겠지.”
“네? 그러면 그 200억이라는 돈은……?”
“조용히 비선으로 들어오는 돈이야.”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비선으로 들어오는 돈.
그 말은 비밀리에 움직이는 돈이라는 건데…….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주려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한꺼번에 200억은 너무 많지 않나?”
“여러 명이라고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많지는 않은데요.”
“뇌물을 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동시에 모든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러면 소문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단순히 소문이라면 정치인들이 충분히 덮어 줄 건데요.”
“그게 아니라 정치인의 자존심 문제 때문이야.”
“정치인의 자존심?”
“3선 의원과 1선 의원이 같은 돈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뇌물을 뿌리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수사야 막을 수 있겠지만, 3선과 1선에게 비슷한 돈을 주면 당연히 발끈한다.
그렇다고 3선만 준다?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많다.
“그냥 비상 자금으로 쥐고 있으려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다급하게 들어왔단 말이지. 비상 자금이라면 걸리지 않게 들고 오는 게 더 나을 텐데.”
“그건 그러네요.”
대동의 힘이면 하루에 몇억 정도는 걸리지 않고 반입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번에 200억을 들여왔다는 것은, 단순한 비자금은 아니라는 거다.
“뭔지 모르지만 뒤통수가 근질근질해. 수십 년간 사업을 해 오면서 겪은 바에 의하면 무슨 일이 터지기 전에 꼭 이런 느낌이 있었지.”
“흠…….”
노형진은 턱을 문지르면서 생각에 빠졌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알 수가 없다.
역사는 이미 비틀렸다.
원래 역사에서 지금 대룡은 존재하지 않았고, 대동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서 한국의 기업들을 사냥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동이 대룡과 싸우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대통령마저도 그때의 대통령이 아니다.
‘거기에다 접근 방식도 다르지.’
회귀 전에 대동은 비선 실세를 통해 사실상 대통령과 정부를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은 비록 프락치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멍청한 녀석은 스파이 노릇을 하지도 못한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은 경계를 해야겠군.”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역습을 해야 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역습이라…….”
“자네가 해 준 일이 많은 건 아네. 하지만 본진에서 뭔가 해 볼 만한 게 없어.”
노형진이 일본의 많은 AV 배우를 데리고 와서 야쿠자들과 이쪽이 선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이라는 곳에 교두보를 만든 것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대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싶네.”
“일본에서 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그건 힘들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동이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대룡보다 압도적인 규모를 가진 대동이 대룡을 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한국이 대룡의 구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야. 저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말이야.”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생각나는 바가 없었으니까.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론 대룡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완전경쟁의 구조가 아니라 서로 나눠 먹기가 심한 일본에서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더군다나 일본의 정부는 철저하게 대동의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네.”
“방법요?”
“그래. 원래 전쟁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안쪽부터 흔드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지요.”
“대동에 있는 후계자 중 하나를 포섭하는 게 어떨까 싶네만.”
“네? 후계자요?”
“그래, 내분을 일으키자는 거지.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찢어지지 않나.”
쉽게 말해서 내전을 일으키자는 거다.
‘내전이라……. 그러고 보니 대동에서 내전이 벌어지기는 했던 것 같은데.’
다만 그때는 미국에 있을 때였고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용도 아주 개판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어 일어난 내전이었지, 아마?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실상 그때는 한국과 연 끊고 지낼 때였으니까.
“그래서 저를 부른 거군요.”
“그래, 내전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니까.”
노형진의 다른 모습, 미다스.
“우리가 도와줄 수는 없지 않나?”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대룡이 도와준다고 해서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도움을 받을 리는 없다.
분명히 대동의 핏줄일 테니까.
도리어 함정을 팔 수도 있고.
“하지만 저나 마이스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들은 명백한 투자자들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그들이 도와준다고 하면 분명히 넘어올 것이다.
“생각하신 사람이 있습니까?”
“신동성을 생각하고 있네.”
“신동성요?”
“그래, 차남이지.”
현재 한국을 공략하고 있는 신동우는 장남으로, 차차 대동을 물려받을 것을 생각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신동성은 차남으로, 그의 능력 역시 뛰어나다.
그는 아버지의 묵인하에 세력을 늘리면서 호시탐탐 신동우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맞아. 그래서 반란이 일어났지.’
신동성이 결국 들고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신동우가 한국 공략에 집중하는 사이에 신동성은 일본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웠고, 결정적인 순간에 들고일어나서 형인 신동우와 아버지에게 칼을 꽂았다.
‘아버지에게 칼을 꽂은 건 의외였지만.’
그들의 아버지 신강수가 그를 놔둔 것은, 강한 자가 그룹을 이어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건 대부분의 재벌가의 생각과 비슷하다.
하지만 신동성은 생각이 좀 달랐다.
아버지가 자신은 그냥 모른 척해 놓고 형인 신동우만 밀어줬다는 것에 대해서 심하게 질투를 했다.
장자가 기업을 물려받는다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신강수가 신동우 편을 들어 준 것도 사실이고, 자기 딴에는 자극을 준다고 한 모양이었지만…….
‘그리고 쿠데타가 성공했지.’
순식간에 아버지 신강수와 형 신동우를 몰아내고 그룹의 전권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제야 아차 한 두 사람은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패는 넘어간 상태였고.
“왜 그러나?”
“아닙니다.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대동의 쿠데타 사건에 대한 그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워낙 큰 사건이어서 미국 뉴스에도 나왔기 때문이다.
‘시기로 보면 분명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어쩌면 거의 끝났을지도 모르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한데 그런 사람을 도와준다?’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신동성은 능력이 있고 욕심도 있는 자다.
짜증 나는 일이지만, 신씨 일가는 분명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욕심만 많고 능력은 부족했던 성화의 김씨 일가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아무리 그들이 친일파라고 하지만 그들이 사업을 한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한국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무능하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된다.
그중에서도 신동우와 신동성은 능력이 있기로 유명했고.
“신동우와 신동성이라…….”
노형진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내전이야 일어나지만.’
이미 신동성은 상당한 준비를 해 놨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랬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룡이 도와줘서 승리해 봐야, 고맙게 생각할 인간이 아니다.
또한 대룡과의 싸움을 멈출 인간도 아니고.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어째서?”
“상대방은 신동성입니다. 제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그는 능력이 있지요.”
“그건 알고 있네. 그래서 밀어주려는 거고.”
“그가 자리를 잡으면 아마 다시 한국에 칼을 겨눌 겁니다. 당연히 그 안에는 대룡도 들어갈 테고요. 설마 그가 고마워하면서 한국에서 손을 뗄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닐 테죠?”
“그건 그렇지.”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눈을 찌푸렸다.
애초에 신동성을 고른 이유는 그가 유능해서다.
사실 능력만 보면 신동우보다 더 능력이 있는 자가 신동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동우를 도와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가능할 리가 없다.
당장 자신들과의 전쟁에서 전면에 있는 자가 바로 신동우다.
“그가 우리와 갑자기 손잡을 리가 없네. 설사 손잡는다고 해도, 나중에 맞잡은 손을 잘라 낼 건 뻔한 일이고.”
“그건 신동성도 마찬가지이지요. 그가 가진 세력이 작지 않을 테니까. 자기 세력이 충분한 자가, 과연 외부에서 도와줬다고 고마워할까요?”
“끄응…….”
유민택은 신음을 흘렸다.
노형진의 말이 맞으니까.
“하지만 대안이 없지 않나? 정말로 신동우와 손잡을 수는 없어.”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내전의 목적을 확실하게 상기하시면 됩니다.”
“내전의 목적을 상기하라고?”
“네. 내전을 일으킬 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건 뭘까요? 이기는 편에 붙는 거?”
“그건 아니지.”
어차피 누가 이기든 대룡과 대동이 같은 길을 갈 수는 없다.
내전이 끝나는 즉시 손절 하고 바로 투쟁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 이득을 챙겨야 할까요? 우리에게 이득이 뭘까요? 애초에 대표님의 계획은 뭐였나요?”
“뭐겠나? 내전을 일으켜서 피해를 주려는 거지.”
사실 전략적으로 노리고 있는 나라를 흔들어서 내전을 일으키려고 하는 시도는 흔하게 벌어졌다.
자기들 살을 깎아먹으면 외부에 저항하기도 힘드니까.
“그러니까 저는 신동하를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동하? 막내?”
“네, 지금 26세인가 그렇죠?”
느지막하게 태어난 막내다.
신동우와 신동성이 30대 초반인 것에 데 반해 그는 이제야 스물여섯 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엄마가 다르다.
신동우와 신동성은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지만 그들의 엄마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고 신강수는 그 당시에 잘나가던 젊은, 아니 어린 여자와 재혼했다.
그 당시 일본의 아이돌이었던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신동하.
“그는 아무런 세력도 없죠.”
신동우와 신동성의 엄마 쪽도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친일파 세력이었던 데 반해 신동하의 어머니는 그저 어느 정도 잘나가던 아이돌일 뿐이었다.
거기에다 그 여자도 좋아서 한 게 아니다.
그저 그런 집안 출신으로, 야쿠자가 결혼하라고 하니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야쿠자는 더 극렬해서, 거절하면 진짜 콘크리트 신발 신고 바다로 실종되는 일이 흔했으니까.
“그는 아무것도 없네. 진짜 아무것도 없어. 아예 내놓은 자식이야.”
노형진은 씩 웃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를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가 조커가 될 테니까요.”
“조커?”
“네, 제 정보에 따르면 신동우와 신동성의 내전은 조만간 벌어집니다. 그걸 아시니까 그런 작전을 준비하셨을 테고요.”
“그렇지.”
“하지만 누가 어떤 상황인지는 모릅니다.”
물론 노형진은 대충은 예상한다.
이긴 건 신동성이니까.
“그렇지만 신동하를 도와준다고 해도, 그가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네. 그 안에 자기편도 없거니와 나이도 어려서.”
“나이가 어린 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라고 해서 욕심이 없는 건 아닐 테니까. 사실 그는 자기 처지를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어째서?”
“신동우와 신동성이 자기를 싫어하니까요.”
“으음…….”
그들은 새엄마가 생모를 쫓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동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만일 아버지인 신강수에게 무슨 일이 터지면 신동하와 그 어머니는 어떻게 될까?
“땡전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겠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경우는 흔하니까.
오죽하면 어떤 기업의 총수 가족 중 일부가 굶어 죽은 일도 있다.
무려 현 회장의 사촌 동생이 말이다.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피붙이이니 회장이 호구지책이라도 만들어 줄 것 같지만, 돈의 세계는 비정하다.
현 회장은 후계 전쟁에서 그 사촌의 아버지, 그러니까 자기 삼촌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후에 혹시 재기라도 할까 두려워 평생을 그 집안이 망하도록 괴롭혔다.
그게 재벌의 숨겨진 얼굴이다.
“그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세력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문제가 있네. 성장한다고 해도 말이지.”
“상관없지요. 우리의 목표는 내전이 오래도록 지속되도록 하는 겁니다.”
“내전을 길게 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신동하는 그 카드고요.”
신동하를 자신들이 키운다고 해도, 결국 그가 이룩할 수 있는 세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는 단독적으로 본다면 세력이 약하다.
“하지만 다른 세력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아아.”
만일 신동우가 세력이 약하다면 신동우와 함께, 신동성이 세력이 약하다면 신동성과 함께 싸우면 된다.
그 뒤에 마이스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 둘은 신동하를 거절할 수 없을 테고, 세력이 비슷할수록 싸움은 길어지고 처절해진다.
“우리는 뒤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쪽이니 그걸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싸우고 싸워서 지쳐 버리면 유리해지는 것은 이쪽이다.
“최악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대동의 세력은 엄청나게 깎일 겁니다.”
만일 반대파가 승리한다고 해도, 내전이 끝난 대동은 걸레짝이 될 것이 뻔하다.
신동하 측이 승리한다면 승자와 2차전을 치를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대동은 세 개로 갈가리 찢겨 나갈 수도 있다.
“천하삼분지계인가?”
“여기서는 대동삼분지계가 맞는 말이겠네요, 후후후.”
“음……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자네, 신동하가 지금 뭐 하는지는 아나?”
“모릅니다.”
알 리가 없다.
노형진이 아는 거라고는 신동우, 신동성, 신동하 이들이 형제라는 것뿐이다.
“딴따라 따라다닌다네.”
“딴따라를 따라다녀요?”
“아, 딴따라는 우리 세대 표현이고 요즘 표현으로 하면, 그래, 아이돌. 아이돌을 따라다니네.”
“아이……돌요? 백수인가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이돌이라니?
“아니, 매니저야. 로드 매니저. 그래서 내가 일찌감치 포기한 거고. 그래, 자네도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군. 나도 그랬지.”
아무리 그래도 재벌 3세니까 호구지책으로 무슨 작은 기업이라도 하나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을 줄 알았다.
진짜 대동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작은 공장이 호구지책이니까.
그런데 로드 매니저라니?
“자네, 고작 매니저를 키울 자신 있나?”
“어…… 움…….”
노형진은 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