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05)
노형진은 고연미에게 부탁해서 다시 사건 서류를 확인했다.
그러다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다.
“아니, 이 여자가 고소인, 그러니까 간통남의 아내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 여자가 아내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이 사람도 아는 사람인가요?”
“아는 사람이지요. 그것도 아주 잘 아는.”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변호사님이 오시기 전에 제가 해결한 사건의 가해자거든요.”
“가해자요? 우연치고는 공교롭네요. 그때는 가해자였다가 이번에는 피해자라니?”
고연미는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노형진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 당시 사건은 강간 무고였습니다. 그때 이 여자는 꽃뱀, 그러니까 피해자를 꼬시는 역할이었지요.”
“허어?”
“이거…… 냄새가 좀 많이 납니다.”
꽃뱀이 갑자기 피해자로 둔갑해서 두 건의 고소를 했다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막힌 우연이었다.
“과연 우연인지는 좀 알아봐야겠지만.”
노형진은 소송 서류로 가득한 보관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진짜네.”
쫙 나열된 세 건의 사건.
정확하게는 두 건의 사건 서류철과 한 장의 사진.
고연미는 거기에 있는 사진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이건 아내라고 주장하는 곽경화가 꽃뱀으로 있던 사건이고, 제가 해결한 겁니다.”
흔한 사건이었고, 아직 새론에 지금 같은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시절, 노형진이 새론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배당된 사건이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꽃뱀 사건이었죠.”
남자를 꼬셔서 여관으로 간 후, 가족이라는 작자가 들이닥쳐서 협박하고 강간으로 고소한다고 하며 돈을 뜯어낸 사건.
“그러고 보니…… 그때 사건이 조금씩 생각나네요.”
노형진은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왜 갑자기 오라버니가 남편이 되었을까?”
그 당시 노형진은 곽경화에게 남자와의 가족 관계 증명서를 요구했고, 곽경화는 제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남자는 튀었고.
“박주서. 애초에 성이 다른데 남매라고 주장하더군요. 그 때부터 판사가 의심했지요. 사실 가해자들이 어설퍼서 그다지 어려운 사건은 아니었습니다만.”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곽경화가 자발적으로 꼬셔서 모텔로 향했다는 걸 증명해 내는 데 성공했고, 노형진은 피해자를 구해 줬다.
“그때 무고로 고소 안 했어요?”
“했죠. 하지만 고 변호사님도 아시잖아요, 한국에서 무고죄 처벌이 얼마나 개떡 같은지?”
“하긴, 그렇죠. 기껏해야 벌금 100만 원 정도였겠네요.”
“20만 원 나왔습니다.”
피해자가 없다는 이유로, 즉 피해자가 정식으로 감옥 가기 전에 드러났다는 이유로 처벌이 약해진 것이다.
‘웃긴 거지.’
그가 감옥에 가지 않은 것은 노형진이 노력해서 그런 거지 그들이 뭘 어찌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그들의 처벌이 약해졌다.
“오래돼서 남자는 기억이 안 났습니다만. 하긴, 한 번 본 게 다였으니까요. 그때 제가 가족 관계 증명서를 요구하자마자 바로 튀었거든요.”
하지만 여자는 재판 내내 자기는 강간당했다고 질질 짜며 재판정에 나왔으니 알 수밖에 없고.
“그래도 고정관념을 가지고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꽃뱀이라고 해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마음잡고 결혼해서 조용히 살 수도 있잖아요?”
머리를 긁적거리는 고연미.
자신이 가지고 온 사건이지만 무조건 색안경을 쓰고 볼 수는 없으니까.
“그건 고연미 변호사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둘 다 연관된 꽃뱀 사건이 있다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요.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하물며 같이 사기 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부부라고 등장하니 이상할 수밖에요.”
“그런가요?”
“네, 꽃뱀이라고 하면 보통은 남자가 피해자이기는 합니다만…….”
노형진은 서류를 나란히 정리하면서 눈을 찌푸렸다.
“여자가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경우도 가능하겠습니다. 이야……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한 참신한 방법이네요. 사기꾼들이 변호사보다 빠르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 노형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사기.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이런 경우요? 설마 이것도 사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아마도 사기일 겁니다. 전혀 새로운 방식의 사기죠.”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형법상의 간통죄가 사라졌잖습니까? 형사적으로 추적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사라진 거죠. 그러면 민사로 해서 엮어 낼 수 있지요.”
노형진은 입맛을 쩝쩝 다셨고, 고연미 역시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형사보다는 민사가 더 안전하죠.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 것 같네요. 허…… 이런 방식은 진짜 듣도 보도 못 했는데.”
형사로 강간 사건이 터지면 당연히 기록에 남는다.
형사 기록은 국가에서 관리한다.
만일 피해자를 조사하는데 그 전에도 강간 사건으로 고소한 경험이 몇 번이나 있다면, 경찰은 꽃뱀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민사는 그게 안 되니까. 개별적으로 각 법원이 관리하는 데다가 피해자가 그걸 검색할 권한이 없으니까요.”
“처벌로 협박하는 게 아니라 돈만 노리는 거라면 확실히 민사도 가능하지요.”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야……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는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네요.”
방법은 간단하다.
결혼한 남자가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부인이 나타나 여자에게 민사소송을 건다.
그럼 바람피운 상대 여성은 배상을 해 줘야 한다.
전에 형사로 고소한 것은 기록이 통합 관리되기 때문에 기록을 찾기 쉽다.
하지만 이건 걸리지 않는다.
아니, 걸릴 일이 없다.
피해자 여성이 의심이나 하겠는가?
어찌 되었건 자신이 바람피운 건 사실이니까.
“더군다나 이건 강제로 한다 안 한다의 문제가 아니까요.”
전형적인 꽃뱀 사건은 간단하다.
여자가 타깃을 꼬셔서 잠자리를 가지거나 여관으로 간다.
그리고 성범죄로 묶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간통에 관한 민사라면 횟수 제한이 없죠. 궁극적으로 수익률은 이쪽이 더 나을 것 같네요. 거리만 충분하다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를 할 수 있으니까.”
여성을 이용한 전형적인 성범죄 무고의 경우, 아무리 수익률이 높다고 해도 두 번까지가 한계다.
그 이상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민사는 철저하게 개별적 사건이니까. 개개인의 금액 자체는 작겠지만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모르고 넘어가겠네요.”
노형진의 말에 고연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그렇지도 않을 거예요. 간통 사건을 잘 안 해서 잘 모르시겠지만, 안 그래도 간통죄가 사라진 후에 간통에 대한 민사상의 손해배상금이 증액되었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형사 합의로 받는 돈보다는 더 받을 수도 있고요.”
이런 식이면 진짜 과거의 성 무고 사건보다 훨씬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신나게 사기를 치고 다닐 것이다.
“이건 무고로도 방어할 수가 없잖아요. 이거 완전 답이 없네요.”
“맞습니다. 무고는 형사상 처벌이니, 민사소송은 무고죄의 소송 대상 자체가 안 되죠. 거기에다 당사자 동의에 의한 관계인 만큼 성적 자기 결정권의 문제군요. 간통죄 폐지 이유가 성적 자기 결정권의 자기 책임 문제였죠? 결국 간통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피할 수가 없네요.”
어찌 되었건 성관계에 동의한 순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들이 그렇게 쉽게 넘어간다고요? 전 이해가 안 갑니다.”
여전히 고연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안 넘어가겠습니까?”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남자의 사진을 내밀었다.
“고 변호사님이야 아이돌 하면서 방송국에서 진짜 잘생긴 사람을 많이 보셔서 눈이 높아지셨겠지만, 이 외모를 보세요.”
남자의 사진을 보면서 고연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긴, 더럽게 잘생기기는 했네요.”
“원래 모델 겸 모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잘나가는 모델은 아니었다고 한다.
모델이라고 해서 잘생긴 것으로 끝이 아니다.
스스로 그 장점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남자는 그럴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멍청한 놈이 다른 가수들을 건드리려다가 걸려서 퇴출되었던 거랍니다. 심지어 데뷔도 안 한 애가 이제 막 데뷔한 여자애를 꼬셨다고 하니 소속사 입장에서는 돌아 버릴 일이죠. 데뷔했다는 건 이제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고 한다는 건데, 그 순간 남친이랑 사귄다 뭐 한다 하면 최소한 수억 날리는 거니까. 고정 팬층도 없는, 남친 있는 걸 그룹 멤버를 누가 좋아합니까? 그 여자도 그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사귄 거 보면, 여자 꼬시는 데에는 도가 튼 놈이라고 봐야겠지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모델계와 엔터계. 거기서 발정 나서 이리저리 헐떡거리다가 결국 양쪽에서 퇴출된 사람.
“이 얼굴에 화장까지 하고 여자한테 달라붙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거기에다 엔터 쪽에서 좀 배웠으니 어느 정도 연기도 될 테고 노래도 좀 될 테고. 유부남 아닌 것처럼 접근해서 꼬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끄응…… 부정은 못 하겠네요. 사실 남자 연예인 중에도 그런 사람들 있어요, 어린애들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멍청한 애들은 거기에 홀딱 넘어가서 아예 그룹을 날려 버리기도 하니까, 후우.”
거기에다가 처음에는 총각인 척 접근한다.
그 후 여자가 완전히 빠져들었을 즈음에 유부남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 알고 나서 잘라 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많지요.”
노형진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가해자인 줄 알았던 간통녀들이 도리어 피해자였던 것.
완전히 사랑에 빠진 사람이 벗어나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건은 저도 처음 들어 봤네요.”
“사기꾼은 법보다 빠르다는 게 없는 말이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이걸 뭐 어떻게 찾아내? 찾아낸 게 신기한 거지.’
어찌 되었건 상대방 여성은 간통녀다.
어디에서든 간통녀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 부모조차도 안 좋게 본다.
당연히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설사 있다고 한다고 한들, 그들이 전문 사기꾼이라 생각해서 법원을 일일이 다 뒤지면서 관련 사건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완전 머리 좋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 머리로 공부를 하거나 노력을 했으면 사기꾼이 아니라 세계적인 아이돌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 남자는 아이돌보다는 사기꾼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보스 같습니다.”
“보스요?”
“네,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이 여자예요. 아마 이번 작전도 이 여자가 생각했을 겁니다.”
노형진은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말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하죠? 신고부터 해야 하나요?”
“안 받아 줄 겁니다. 동종 형태의 사건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타입의 범죄는 보통은 안 받아 주죠.”
동종 사건이 없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범죄다.
그런데 당신은 사기꾼한테 당한 거라고 하면 사건이야 수임할 수 있겠지만, 재판에서 질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당연히 수사 방식도 확실하지 않아서, 경찰에서 이런 사건을 받아 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고민을 하던 노형진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려 냈다.
법에 대한 고정관념이 전혀 없는 사람.
아니, 고정관념이 없다기보다는 아는 게 없는 사람.
그러니 그는 받아 줄 것이다.
“이걸 받아 줄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누군데요?”
“제가 아는 검사입니다. 뭐, 일은 잘 못하지만.”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받아는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