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29)
“으아악!”
“뭐야, 이거!”
산 위로 올라가는 경찰들과 노형진.
앞에서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비명이 퍼지지만 싸우는 소리는 아니다.
간간이 욕설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싸우는 소리 자체는 들리지 않았다.
“철사에다가 절연테이프를 감아서 만든 함정이야.”
“절연테이프?”
“그래. 그거 검은색이잖아.”
절연테이프를 철사에 감아서 발목 높이나 얼굴 높이의 아무 같은 데에 올려 두면, 한밤중의 산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그들은 도주를 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는 상태였다.
당연히 시야는 극도로 좁아지고, 발목이 걸려서 넘어지거나 목이나 얼굴이 걸려서 나자빠지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아하, 이게 네가 말한 함정이구나.”
“민간인이 싸우게 할 수는 없잖아.”
다른 곳으로는 이 산으로 넘어오는 길이 없었기에 헬기를 동원해서 몇 시간 전에 이곳에 그들을 투입했고, 그들은 산 주변을 그런 함정으로 빙 둘러놨다.
당연히 도주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한번 나자빠지면 최소 3분은 끙끙거려야 일어날 수 있는 데다, 발까지 접질리면 도주는 물 건너가니 공포감에 발이 안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썅!”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 중 일부를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은 도주가 힘들다고 판단되자 몸을 돌려서 주먹을 쥐었다.
“얼씨구?”
혀를 끌끌 차는 오광훈.
노형진은 그런 오광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응?”
“아까 되게 시원하더라.”
“그래서?”
노형진은 손가락을 들어서 주먹을 들고 싸울 준비를 하는 놈들을 가리켰다.
“저 새끼들 임플란트비, 내가 내줄게.”
“오오,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는 주먹으로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나섰다.
“화끈하게 한번 해 볼까? 으흐흐흐.”
* * *
대한민국의 사법이 무능하다는 건 여러모로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지금 같은 사건은 처음이라며,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질타가 계속되었다.
사건은 그 현장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사무실에서는 아이들이 어디로 팔려 갔는지도 드러났다.
소식을 들은 검사들은 지체 없이 그곳으로 내달렸다.
발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스타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오광훈이었다.
-이거 뭐야! 영장 있어! 영장 있냐고!
-유력한 증거가 있고 아이들이 위험하니까 데리러 온 겁니다. 그러니까 저리 꺼지시지.
사회 유력 지도자라는 인간이 하는 말에 깔끔하게 대꾸하는 오광훈.
그러나 그 지도자 입장에서는 다급했다.
-이거 불법 수사야! 저리 안 꺼져! 어! 내가 누군지 알아!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그에게, 오광훈은 대답 대신 아주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 허공으로 하얀 이빨을 흩뿌리면서 쓰러지는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남은 이도 임플란트 하기 싫으면 아가리 다물어라.
그 장면은 촬영했던 사람들에 의해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오광훈은 그 장면 하나로 스타 검사가 되어 버렸다.
“괜히 임플란트비 내준다고 했나 봐요. 아니, 투입된 검사가 몇 명인데 왜 하필이면 저 녀석이야?”
노형진은 눈을 찌푸리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주인의 이빨을 작살 낸 오광훈이 문을 부수고 지하로 들어가서는 중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 한 명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 한 명을 데리고 나오면서, 그대로 날아 차기로 집주인의 남은 이를 털어 냈던 것이다.
“아마 다들 노 변호사님과 같은 기분 아닐까요? 법으로 처벌한다 어쩐다 하는 말보다는 확실하게 눈앞에서 단죄하는 게 속 시원하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노형진 스스로도 그런 말을 하면서 계속 화면을 돌려 보고 있었다.
무태식의 말대로 자신이 변호사 노릇 하면서 느낄 수 없었던 시원함이 있었으니까.
‘하긴, 난 절대로 저러지 못하지.’
모든 변수를 감안하고 판단하며 예측해서 움직이려고 하는 노형진.
그에 반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오광훈.
상극이지만 동시에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노형진은 문득 생각했다.
‘마냥 나쁜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서는 오로지 칭찬 일색이었다.
-와, 씨바. 이런 게 검사지.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다.
-영화보다 더 시원하네.
-저 치과 의사입니다. 연락 주세요. 임플란트 원가로 해 드립니다. 팰 놈 있으면 언제든 환영해 드립니다.
인텔리라며 몸 사리는 검사가 아니라, 단죄할 때 확실하게 단죄하는 검사.
영화에나 나오는 그런 검사가 현실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광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태식 변호사님도 스타가 되셨잖습니까?”
“그래도 최고의 수훈자는 오광훈 검사님이죠.”
“오광훈의 진실을 알게 되면 다들 실망하실 텐데요?”
노형진의 말에 무태식은 씩하고 웃었다.
“그건 노 변호사님이 잘 감춰 주시겠지요.”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노형진은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총기 사용 규정 위반 시말서’라고 쓰인 종이가 놓여 있었다.
물론 맨 아래에 오광훈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을 뿐, 그 위는 백지였지만.
“그런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한다면 고민 좀 해 봐야겠습니다.”
졸지에 시말서를 쓰게 된 노형진은 애써 미소 지을 뿐이었다.
노예근성 어디 안 간다
“전자연합 내부에 싸움이 났다고 하더군. 서로 아주 악다구니를 하는 모양이야.”
유민택은 노형진을 불러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대룡에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전자연합에서 나온 상품을 우리가 판매하고 A/S를 담당하고 있지 않나? 일선 수리 센터에서 부품이 부족하다고 난리인 모양이야.”
“뭐,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네요.”
전자연합.
노형진이 대룡과 함께 성화와 싸울 때 만든 회사다.
성화전자를 붕괴시키기 위해 그 하청 회사들을 묶어 주고 핵심 부품을 대룡이 공급해서 그들이 직접 상품을 만들게 해 주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당시에 그게 성공해서 성화는 자금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그곳이 도리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상대로? 지금 자네, 예상대로라고 했나?”
“네. 전자연합이 오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대룡이 도와준 덕분에 지금까지 버틴 거지, 전 더 일찍 붕괴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노형진의 차가운 말에 유민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이게 사회적으로 무척이나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제법 오래갈 거라 생각했네. 그런데 자네는 무너질 걸 예상했다니, 의외군.”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지가 가능하다는 건 아니라는 걸, 유 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끄응…… 그렇지.”
사회적으로 올바를지는 모른다.
그러나 올바르다는 것이 잘 유지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리어 올바르기 때문에 유지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유토피아는 불가능하지요.”
“하하핫, 그 말이 맞네. 유토피아는 불가능하지.”
씁쓸하게 웃는 유민택.
그럴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가 불가능한 만큼 전자연합의 유지 또한 불가능하다는 소리이니까.
“인간이 욕심을 좀 버렸다면 모를까,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 애초에 전자연합은 오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연합이라는 형태로 운영되는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회장이 아니라 사장단이라 불리는 대표들.
그렇다 보니 각자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전자연합은 급속도로 흔들렸다.
어느 정도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각자 자기네 이득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연합이라는 구조가 성공한 적이 있던가요?”
“없지.”
연합.
말이 좋아서 연합이지, 사실 연합이라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승리야 할 수 있지만 승리 이후에 이권으로 서로가 대립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물며 국가 간 연합도 그런데, 이권을 다뤄야 하는 전자연합이 오래 유지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노형진은 이미 그들이 무너질 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걸출한 누군가가 나서서 그걸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게 가능했다면 제가 투자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악질적인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낭중지추를 두고 보지 못하지요.”
“크음…….”
“분명 큰 그릇을 가진 누군가는 있을 겁니다. 그들을 묶어 두고 그들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노형진은 그런 사람들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고.
“하지만 그들은 모두 퇴출되었지요. 왜 그런지 아시지요?”
“크흠…….”
“이룩하는 자는 그 그릇이 다릅니다.”
물려받는 거야 운이 좋아서일 뿐이다.
하지만 이룩하는 자는 스스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마냥 운이라고 볼 수 없다.
“좆소기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좆소기업? 그건 또 뭔가?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
“요즘 들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말이지요. 쉽게 말해서 이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왜 취업을 못 하면서 대기업만 노릴까요? 왜 중소기업들에는 가지 않을까요?”
“글쎄.”
“일이 힘들어서요? 아닙니다. 대기업 중에도 일이 힘든 곳은 많습니다. 대룡만 해도 일이 힘든 쪽에 속하지요.”
“그건 그렇지.”
“그러면 왜 그럴까요?”
유민택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사실 대기업의 대표인 그가 이런 문제로 생각해 볼 일은 없었다.
자신은 고용하는 입장이지 고용되는 입장이 아니니까.
그러니 그들의 사정을 잘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군.”
“비전 때문입니다.”
중소기업 중 일부는 비전이 없다.
그들은 유능한 사람들을 쓸 줄 모른다.
일부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고용하고 잘 배치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최대한 착취하는 데 매달린다.
야근은 기본이고, 철야를 시키면서도 야근 수당은 주지도 않고, 직원들에게 줄 월급은 밀리면서도 사장은 심심하면 외제 차를 바꾸고 다닌다.
“좆소기업은 그런 곳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그런 곳은 진짜로 답이 없다.
단순히 돈을 많이 준다 안 준다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앞으로 성장해 나갈 구조가 아니다.
최저임금으로 사는 사람에게 무슨 미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곳은, 능력 있는 사람은 오래 있지 못하지요. 유 대표님은 회장의 가장 큰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용병술이지.”
유민택은 알 것 같았다.
사장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혼자서 트럭에 배추를 싣고 다니면서 팔아도, 공식적으로는 개인 사업자를 가진 사장이다.
하지만 회장은 극히 일부만 할 수 있다.
왜냐?
사장은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지만, 회장은 회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장들에게는 용병술이 없겠군.”
“그것도 재능입니다.”
매출 10억짜리 회사라면 사장이 직접 영업해서 수익을 낼 수 있다.
매출이 100억을 넘어가면 그럭저럭 사람을 배치해서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매출이 1천억을 넘어가면?
용병술이 절대적이다.
믿을 수 있으며 동시에 능력 있는 사람을 적소에 배치하지 않으면, 기업이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론 내가 봐서는 사장단이 무능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서 제대로 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대표님, 우리가 전자연합을 만들어 주기 전의 상황,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그들은 망해 가고 있었던……. 그렇군. 그런 인간이 없겠군.”
어떻게 해서든 성화의 품에서 벗어나서 자립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가 후려치기를 당하고 목을 죄여 가면서도 성화 하나만 붙잡고 있던 그들이다.
그리고 성화와 거래한다는 타이틀 하나로 눈먼 호구 하나 붙잡아서 기업을 비싸게 털고 나오는 게 그들 대부분의 목적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제대로 일을 한다고요?”
“끄응…….”
변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능력은 거기까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재기는 불가능한 건가?”
“선별을 해야 할 때가 된 거죠.”
“선별이라…….”
다 똑같은 기업이 아니다.
애초에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기업들이었다.
다만 성화라는 존재와 싸우기 위해 잠깐 묶어 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사회입니다. 착한 자본도 있지만, 모든 기업이 다 살아남을 수는 없죠.”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의미다.
공산주의는 모든 생산을 국가가 통제하니까.
“그래도 너무 갑자기 싸움이 터지기는 했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유민택.
노형진의 말대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런 싸움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대기업에서도 싸움으로 인해 기업이 갈라지는 경우는 흔하게 벌어진다.
심지어 형제끼리 그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보통은 징조라는 게 있는데 말이지.”
“징조가 전혀 없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이상한 점이 바로 그거야. 징조가 없었네.”
유민택은 꺼림칙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판매 라인 자체는 우리한테 기대고 있지 않나?”
그러니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가장 먼저 기대는 것이 바로 대룡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전에는 안 그랬고요?”
“사사건건 매달려서 도리어 귀찮을 정도였지.”
대기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뭉쳐서 사업을 시작하자, 도리어 공포감에 대룡에 기대려고 했던 것이 그들이다.
“물론 자립하는 건 좋지만, 자립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유민택이 말을 그렇게 하자 노형진은 다른 내막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뭐 같나요?”
“글쎄…… 알아봐야지. 하지만 뒤통수가 서늘한 것이, 아무래도 이번 일은 그냥 조용히 넘어갈 사건은 아닌 것 같아.”
유민택의 얼굴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