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32)
“무조건 거절을 할 수는 없는데 어쩔 셈인가?”
그들은 금방 서중공업을 비롯한 납품 중지 업체들을 대체할 곳들을 데리고 왔다.
물론 끼리끼리 뭉친다고 결국 비슷한 놈을 데리고 왔지만.
“우리가 계속 거절하면 명백하게 우리가 계약을 거부해서 피해를 입힌다고 할 걸세. 소송에 들어가면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유민택은 계속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이쪽에서 강하게 나가자 그들은 예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 줬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8개월 후 그들이 이쪽과 재계약을 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어차피 서로가 엇나가는 이상, 돌아갈 길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계약의 실패는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절하는 건데?”
“우리가 거절한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거죠.”
“그게 무슨 말인가?”
“디자인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디자인?”
“네. 그들이 가지고 온다는 부품이 완벽할 수가 없지요. 애초에 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이 다르니까요.”
가령 서중공업은 외부 케이스를 만들어서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대룡의 계약 시스템이다.
하청에 이런 걸 만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이런 걸 만들어서 팝시다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그 외부 케이스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는 대룡이 아닌 서중공업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중공업에서 그 디자인을 팔지 않거나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아하! 그래서 미국으로 도피하라고 한 거군!”
“네. 단순히 공급하라고 쫓아갈 게 아니니까요.”
그걸 팔라고 또는 외부에 디자인 사용 허가를 내 달라고 매일같이 찾아가서 읍소하고 협박할 게 뻔하다.
당연히 그건 서중공업 사람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없다면 허가를 받을 방법도 없지요.”
“그렇지! 그들이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허락도 없이 외부의 디자인을 베낄 수는 없지!”
유민택은 노형진의 계획에 탄성을 내질렀다.
설마 그런 작전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이 그런다고 해도, 불법 복제를 이유로 이쪽에서 거래를 하지 않아 버리면 그만이다.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분은 있네. 디자인이나 부품을 바꿔서 공급하면 어쩔 건가?”
사실 디자인 같은 건 살짝만 바꾸면 쓸 수도 있다.
부품 같은 경우도,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부품을 구할 수 있고.
그런 만큼 노형진이 제시한 것이 완벽한 해결책이라 볼 수는 없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뭐, 대응책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사실 해결 방법 자체는 쉽습니다. 디자인 같은 경우는 그 원래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소송전으로 가면 됩니다.”
디자인을 살짝 바꾸는 정도면 분명히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룡 입장에서는, 그 디자인의 법적인 주인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상 그걸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랬다가 지기라도 하면 모조리 대룡에서 책임져야 하니까.
“그건 불법이 아니죠. 소송 중인 거니까요.”
“아예 새로운 형태라면?”
“그러면 적용되는 법이 바뀌죠. 그런 경우 품질 경영 및 공산품 안전 관리법에 걸리게 되죠.”
“품질 경영 및 공산품 안전 관리법?”
“네.”
미래에는 다른 법과 합쳐지면서 사라지지만 아직은 있는 법률이었다.
“아마 실무적인 부분이라 회장님께서 직접 관여하지는 않으셔서 잘 모르실 겁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전기용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이 법률에 따른 판매 허가를 취득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KC 마크인데, 그걸 인증받지 못해도 판매 자체는 할 수 있지만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물건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기업인 대룡이 KC 마크도 없는 물건을 팔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유통만 대신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이 경우 부품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KC 마크를 다시 받아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군.”
일단 KC 마크를 받는 것 자체가 쉬운 게 아니다.
실험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걸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건수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그걸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 걸리지요.”
그래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바로 판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는 KC 마크를 받고 나서야 양산 체제를 갖추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미 양산 체제를 가진 상황이라도, KC 마크가 없다면 대룡이 그걸 팔 수는 없다.
안전 인증도 안 된 물건을 팔다가 화재라도 나면 그건 대룡 책임이니까.
“그리고 대룡의 힘이면 KC 마크를 받아 내는 것을 조금 미루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크게 껄껄 웃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물건은 파는 게 아니지, 암! 으하하! 절대 안 되고말고! 사람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당연하지요.”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다급해질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아마 쭉정이만 남을 겁니다, 후후후.”
* * *
노형진의 예상대로 그들은 일단 디자인을 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대룡 측 사장들이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그들의 계획은 막혀 버렸다.
“생각보다 머리를 쓰는군.”
전관서의 보고에 신동우는 피식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서 그 이후는?”
“아직 생산도 못 하고 있습니다. 대룡에서는 해당 물품을 받지도 않고 있고요.”
“대룡 측 사장단이 도주한 것에는 대룡이 관여한 거겠지?”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동시에 납품을 중지하고 도망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나쁘지 않은 작전이야. 자네가 그걸 예상했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우리한테 놀아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 표정이 과연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군.”
신동우는 전관서를 참으로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사실 전관서가 이 계획을 가지고 왔을 때 그는 속으로 무척이나 기뻐했다.
안 그래도 전자 쪽으로 라인이 없는 대동이다.
이렇게 전자 쪽 라인을 얻으면 그가 후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부사장인 전관서는 그런 그의 생각을 읽고 충실하게 움직여 줬다.
“사장님의 혜안 덕분입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분명히 노형진에게 도움을 청할 거라 생각하셨잖습니까?”
“그렇지. 지금까지 대부분 그래 왔으니까. 노형진이라는 변호사, 참 아까워. 우리 쪽 사람이 되었으면 쓸 만했을 텐데 말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완전히 친유민택 파입니다. 사실상 우리 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아깝다는 거야.”
커다란 유리창 밖 세상을 내려다보던 신동우는 몸을 돌려 의자에 앉은 뒤 맞은편에 서 있는 전관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현 상황은?”
“그들이 지금 쓰는 방법 자체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예상대로 대룡에서 중소기업들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덤비고 있습니다. 노형진 변호사의 성격상 자기를 먼저 공격한 배신자를 그냥 두는 타입은 아니니까요.”
사실 그들이 예상한 것은 노형진이 만들어 낸 복잡한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형진이 수작을 부릴 거라 예상했고, 그 때문에 기업들이 위험해질 거라는 것도 알았다.
아니, 사실 그렇게 만든 건 대동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우리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겁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순서를 바꿀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대동이 공격하는 방식은 기업을 흔들고 헐값에 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룡과 노형진도 알고 있다.
대동 역시 노형진의 사건들을 분석해서 노형진이 길을 찾을 것임을 알아낸 상황이고 말이다.
전관서는 그 부분을 아예 바꿔 생각해서, 자신들이 떡밥을 먼저 던지고 대룡이 자신들을 흔들게 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그들이 먼저 흔들면 우리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중소기업들을 모조리 집어삼킬 수 있지, 후후후.”
동남아에서와는 다르게 자신들은 이번에는 돈 한 푼 안 들였다.
“이제 슬슬 돈을 풀까 합니다.”
“그래. 그놈들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집어넣어. 무너지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될 테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들이 거절할 수는 없겠지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매달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아예 매출이 끊겨 버린 중소기업들은 버틸 재간이 없었고,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 봤지만 애석하게도 대룡과 싸움이 난 것이 소문이 나서 누구도 그들에게 대출을 해 주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 대동도 전자 쪽에 진출하게 되는군.”
신동우는 만족스러운 듯 의자에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느 브랜드나 전자는 큰돈이 된다.
그의 상상 속에서는 자신이 회장이 되어서 호령하는 세상이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