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57)
“아, 지겨워 죽겠네.”
노형진은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회의실로 들어왔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성식이 그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또 왔나?”
“네, 또 왔네요.”
노형진이 우려한 대로였다.
어디서 샌 건지 모르지만 노형진이 박구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풍에서는 매일같이 찾아왔다.
“그 애들은 바보랍니까? 박구호 씨가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무태식 변호사 역시 혀를 끌끌 찼다.
지금 세풍의 상황이 아주 안 좋은 건 안다.
그러나 박구호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니까요. 그 카드가 싫어해서 문제지. 회사라는 조직이 다 그렇지요.”
회사에서 쪽쪽 빨아먹힐 때는 개무시하다가 나가면 아차 싶어서 다급하게 다시 돌아오라고 한다.
“그래 놓고 조건은 쥐꼬리만큼 올려 줘요.”
“그런가요?”
“네, 제가 아는 분도 그런 식으로 취급받더군요.”
망해 가는 회사를 살려 놨더니 월급은 최저임금 이상 주지를 않았단다.
아무리 사원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뒀는데, 나중에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노는 것보다는 출근하는 게 나을 거라면서 회유를 했단다.
“그래서 어떻게 했대?”
“개소리라고 씹어 버렸답니다.”
노는 줄 알고 있었겠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주는 곳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기존 연봉의 네 배를 받고 있었거든요. 슬쩍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20만 원 더 준다고 했답니다.”
“허허.”
“멍청한 회사네요.”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하면 그를 잡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산다.
그런데 어떻게든 싸게 부려 먹을 생각만 한다.
“그러니까 망하는 겁니다.”
경기가 나빠서 망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망하는 이유는 능력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박구호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건가?”
“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라도 그 정도는 못합니다.”
“자네는 더 벌잖나?”
“뭐, 운이 좋았던 거죠.”
노형진은 회귀해서 미래를 안다.
거기에다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이 있어서 기억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박구호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만일 경영이라는 부분만 놓고 판단한다면 그는 노형진 이상의 천재다.
“아무래도 그 인간들 접근 금지 받아야겠습니다.”
노형진은 이번 일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 * *
“안 된다니까요!”
노형진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노 변호사, 제발 부탁이네.”
“도대체 뭔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들 왜 그러십니까?”
접근금지명령을 받아서 세풍의 인간을 막았더니 투자자들이 몰려왔다.
이번에는 심지어 의뢰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몰려왔다.
“우리가 다 망하게 생겼어.”
“다른 분 고르세요, 다른 분. 경영 잘하는 분들 많으시잖습니까?”
“그러고 싶지. 하지만…….”
말을 흐리는 그들을 보면서 노형진은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가 모르는 다른 게 있나 보군요.”
단순히 박구호가 전에 운영을 잘했다는 이유로 찾는다고 보기에는, 너무 절박했다.
무태식 변호사의 말마따나 그는 마법사가 아니다.
손만 대면 당장 망할 회사도 짠 하고 무조건 되살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리디어 투자회사에서 자금 회수를 중지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게 박구호의 복직이야.”
“리디어?”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들었으니까.
“거긴 뭡니까?”
“전문 투자회사인데 말이지……. 하아, 대투자자일세. 투자금이 대략 1조 3천억쯤 된다네.”
“네?”
“아니, 노 변호사, 우리가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투자금이 300억이야. 여기 없는 사람을 합해도 1천억은 못 넘어. 그걸로 서울에 빌딩 하나 사겠나?”
“끄응…….”
노형진은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사실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큰손이기는 하지만, 이런 병원에는 전문 투자회사의 자금이 없을 수가 없다.
당장 서울에서 노른자위 빌딩은 수천억 단위가 훌쩍 넘어간다.
이들이 300억을 투자했다고 한들, 거기에 병원을 세울 정도의 능력은 안 된다.
거기에다 전국에 비슷한 규모의 열일곱 개 체인점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노 변호사가 그 사람을 찾은 게 문제가 되었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노형진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그를 찾은 거랑 리디어라는 회사랑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리디어의 투자를 이끌어 낸 것이 박구호였네.”
리디어는 박구호의 천재성을 알아봤고, 그를 믿고 투자를 했다.
그런데 그가 실종되었다.
“그 이후에 병원은 말 그대로 몰락 과정을 거치고 있었고.”
리디어 입장에서는, 몰락한다고 해서 이미 퍼부은 투자금을 섣불리 뺄 수가 없었다.
당장 박구호가 사라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데 그걸 가지고 투자를 빼기에는 명분이 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가 그를 찾아낸 걸 그들이 안 거군요.”
“그래.”
노형진은 박구호를 찾아냈다.
그리고 박구호는 공식적으로 도움을 거절했다.
“천재가 이끌던 조직은, 그 천재가 사라지면 가치를 잃어버리지요.”
박구호가 없는 세풍은 가치가 급락했다.
더군다나 그가 사라지고 난 후 실제로 세풍은 조금씩 추락하고 있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회귀 전에는 분명히 노형진이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세풍은 망해는 가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찾은 게 문제가 된 거군.’
찾았는데 도움을 거절당했다.
리디어 입장에서는 무능한 운영진이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할 가치는 없다.
당연하게도 투자금을 회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1조 3천억 정도의 돈이면 세풍은 한 방에 날아간다.
“우리도 미치겠네.”
일단 정상화라도 시켜야 뭐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상화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 바로 리디어의 돈이다.
그걸 빼 가겠다고 하니…….
“자네가 좀 설득을 해 주게.”
“끄응…….”
노형진은 사실 이 사건에 관심도 없었다.
박구호는 선을 그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박구호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냥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노숙자다.
그가 뭐가 아쉬워서 이쪽에 매달리겠는가?
“제발 어떻게 안되겠나?”
“하아.”
노형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안 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들에게 사건을 맡기는 큰손을 몇 명이나 잃어야 한다.
이런 경우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마디뿐이다.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것 말고는 노형진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