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58)
“그런가요?”
“네. 복직 생각은 없으시지요?”
“전혀요.”
그는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 말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거기에 다시 기어들어 갑니까?”
‘그럴 만하지.’
가 봐야 좋은 꼴은 못 본다.
더군다나 착취만 당할 게 뻔하다.
그가 누리고 살고자 한다면, 그냥 지금까지 번 돈으로 놀고먹어도 된다.
그는 노숙자의 삶을 선택했다.
타고나기를 그런 성향이다.
‘그런 성향을 누르고 30년을 살았으니.’
일단 터진 이상 말릴 방법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거절한 걸로 알겠습니다.”
“의외네요.”
“네?”
“애들을 팔아서라도 절 끌고 갈 줄 알았는데.”
박구호의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부모를 존중하지도 않는 애새끼들인데 제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요. 더군다나 그 아이들, 지금 다 성인 아닙니까?”
“성인이지요.”
아들 하나, 딸 하나. 둘 다 성인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무시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게 성인입니다.”
“노 변호사님은 진짜 다른 사람들하고 다른 것 같네요.”
박구호는 그런 노형진을 보면서 실실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래도 애들을 생각해서 들어가라고 할 텐데요.”
“뭐, 한 스무 살까지는 그러겠지요.”
하지만 이미 아들은 스물여덟 살, 딸은 스물여섯 살이다.
나이를 그만큼이나 처먹고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를 무시한다면, 그다지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의뢰인들을 잃어버린다면서요?”
“그러겠지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원래 변호사라는 직업에 영원한 관계는 없습니다.”
주거래처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주거래처라는 것은 말 그대로 거래처일 뿐이다.
그들이 사라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그 재산 날린다고 길바닥으로 나앉을 분들도 아니고요. 그리고 거래처가 무서워서 계속 끌려가면 결국 위법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로펌에서 위법을 저지르다 걸리면 그 이미지는 개판이 된다.
차라리 깔끔하게 털어 내는 게 장기적으로는 나은 선택이다.
“마음에 드네요, 새론.”
노형진의 말에 박구호는 씩 웃었다.
“뭐, 새론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네?”
“자유롭게 사는 것과 오래 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서요.”
머리를 북북 긁는 박구호.
“슬슬 길바닥 생활 좀 청산해 봐야겠어요.”
“노숙자의 삶이 힘겨우신가요?”
“편하다면 거짓말이지요. 애초에 제가 의사인데 이런 삶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모르겠습니까? 돈을 잃으면 절반을 잃어버리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면 전부를 잃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원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무시를 받고, 삶도 불편하다.
그건 자유와 맞바꿨던 선택이다.
“하지만 사실 제가 꼭 다 버려야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가 벌어 둔 재산만 해도 적지 않다.
월급쟁이라고 하지만 분명 그의 소득은 상위 1%다.
“그 말씀은?”
“제가 자리를 잡기 위해 움직이면 말이죠, 분명 드러날 겁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고민 중이었거든요.”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신분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작은 원룸이라도 하나 얻는 순간 전산에 등록되고, 세풍은 그걸 잡아낼 것이다.
“뭐, 세풍이 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럴까 생각도 했는데, 또 제가 이룩한 게 완전히 망하는 것도 영 마음이 불편하고.”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그가 혐오한 것은 자신을 무시한 가족이지, 자신이 키운 세풍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복직하더라도 더는 무시당하지 않고 싶은데요.”
“복직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시군요.”
“가족들은 망해도 그만, 안 망해도 그만입니다.”
다만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할 뿐이라는 게 박구호의 마음이었다.
“기회라.”
“네. 사실 그렇잖습니까? 여기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저는 또 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또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그들이 모든 대비를 다 해 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나가도 큰 타격은 없다.
‘묘한 감정이네.’
망하게 두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망하게 두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신을 무시해서 보기도 싫은 가족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자기 새끼라는 마음.
“감정이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요.”
히죽 웃는 박구호.
노형진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방법이 있지요.”
“방법이 있다고요?”
“네. 가족을 버리시면 됩니다.”
“네?”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같이 먹고사는 사람 아닌가요?”
“네.”
“그러니까 가족을 버리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한테 의뢰하시면 절대적 갑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후후후.”
* * *
“이혼요?”
“네.”
노형진의 말에 투자자들은 당황했다.
설득하러 간다고 갔던 사람이 갑자기 최후통첩을 들고 왔다.
그것도 아주 핵폭탄급으로.
이걸 리디어가 알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돈을 모조리 빼내 갈 것이다.
“진짜로 이혼을 하고 싶어 한다고요?”
“자꾸 찾아오는 게 짜증 난다고, 아예 이혼하고 선을 끊어 버리고 싶으시다네요.”
“망했다.”
“이거 어쩌지?”
“지금이라도 빼야 하나?”
“아니, 빼고 싶다 해도 그쪽에서 줄 돈이 없잖아.”
“건물이라도 잡아야…….”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들은 당장 날리게 된 돈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노형진은 그들이 한참 그렇게 떠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다들 지쳐서 슬슬 침묵이 흐를 때 슬쩍 사탕을 던졌다.
“하지만 이게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지요.”
“네? 기회라니요?”
“이혼한다는 건 가족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재산 역시 분할되죠.”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박구호 씨는 세풍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전 고용인일 뿐이지요. 하지만 이혼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홍지연의 아버지는 병원을 가진 의사였지만 이미 죽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재산은 홍지연이 물려받았으며, 가족이기에 그리고 아내이기에 박구호는 최선을 다해서 회사를 키웠다.
“반대로 말하면 이혼을 하게 되면 그 재산 중 상당 부분을 박구호 씨가 가지고 가게 된다는 겁니다. 현금으로 그 모든 걸 줄 수는 없을 테니, 아마 병원의 지분 역시 포함되겠지요.”
다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건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의미고요.”
관계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안에서 돈이 나온다면 박구호는 세풍이 망하게 그냥 두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그게 모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이혼을 하게 되면 주주 중 한 명이 된다는 건가요?”
“네, 현행법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집이 한 명의 명의로 되어 있다고 해도 이혼을 하게 되면 그 집은 분할 대상이 된다.
설사 그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주부로서 생활을 했다고 해도 기여분이라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건 회사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리고 이 경우는 박구호 씨의 기여분이 압도적입니다.”
그는 작은 병원을 키워서 한국에서 손꼽히는 체인점을 만들어 냈다.
30년간 대표로 활동했으니 그 기여를 증명하는 것은 충분하다.
“이혼을 할 때 그 부분을 어필하는 겁니다.”
기여분을 많이 확보할수록 그는 세풍의 지분을 더 많이 가지고 가게 된다.
“그러면 그분 입장에서는 자기 재산이 날아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게 되지요.”
“오오, 그런 방법이! 그러면 그분도 동의하신 겁니까?”
“일부만요. 그분은 자세한 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혼하고 싶다고만 하셨지요.”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가족 관계를 끊고 살고 싶다고 했다.
최소한 노형진은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원했다.
“이혼이라…….”
“웃긴 일이지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때는 그렇게 무시받던 사람이, 정작 가족을 버리면 존중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하는 겁니까?”
“도와주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끄응…… 그렇지요.”
만일 이혼소송을 하여 그가 지분을 가지게 된다면, 그에게는 그를 편드는 우호 지분이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
“리디어는 무조건 박구호 씨를 편들 겁니다.”
이쪽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지분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의 편을 들어 준다면…….”
“그걸 가지고 설득해 보겠습니다.”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망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