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7)
“이상하기는 하죠. 저도 이해가 안 가는데요.”
노형진의 조사 결과, 이런 경우가 아예 없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지금과는 살짝 다른 게 보통은 작가가 특정 작품에 작품성을 부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작품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는 경우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에서는 작가가 부정하면 그걸로 끝이네요?”
“그게 정상이죠.”
만일 작가가 해당 작품을 부정하면 그 작품은 실질적으로 위작이나 모작급의 취급을 받게 된다. 작가 본인이 가치를 부정하는데 누가 그걸 인정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것과는 좀 달랐다. 화가는 부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그린 적이 없다고 말하는 상황이고 반대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 작품이 그 작가의 것이 맞다고 한다니.
“일단은 그쪽 세계 사람들을 만나봐야지요.”
노형진은 말하면서 제법 커다란 그림상을 바라보았다.
“실례합니다.”
안에 들어가자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그림들. 그리고 카운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 남자.
“실례합니다.”
노형진은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좀 크게 불렀지만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 그 모습에 노형진은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벽에 걸려 있는 작품으로 향했다.
“이거 참 좋네.”
슬쩍 손을 내밀려는 순간 그 뒤에서 컬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술 작품에 손대는 싸가지 없는 새끼가 꼭 있다니까.”
“그러면 제가 불렀을 때 대답하셨어야지요.”
“척 봐도 그림 사러 온 놈이 아닌데 왜 대답해?”
툴툴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남자. 그는 안경을 쓰고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그림은 안 사도 돈이 될 만한 건이 있으니까 온 거죠.”
“그래? 그렇다면 내 반갑게 맞아 주지. 어서 오십시오, 손님. 뭘 도와 드릴깝쇼?”
“그냥 반말하세요. 새삼스럽게 존대하지 마시구요.”
노형진이 다가오자 털썩 주저앉아서 노형진을 올려다보는 남자.
“그래서 왜 온 거야?”
“그림에 대해서 알아보려고요.”
“그림?”
“>안개 낀 한강>이라는 작품 아세요?”
“알지. 그림 팔아먹는 놈이 그걸 모를까.”
“그 뒷이야기는요?”
그 말에 그는 안경을 내리고는 노형진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안경을 올려 썼다.
“김가가 이야기한 게 네놈이었냐?”
“그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치죠.”
“쯧쯧, 골 때리는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구만.”
그는 툴툴거리면서 구석으로 가더니 한 장의 그림을 꺼내 들었다.
“그건?”
“네놈이 말한 작품이다. >안개 낀 한강>. 뭐, 알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나온 놈이지.”
“그런가요?”
노형진은 실물은 처음 봤기 때문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유화를 프린트로 뽑은 것이다 보니 유화 특유의 입체감과 질감은 없었지만 말이다.
“확실히 보면 천강우 화백의 그림과 비슷하지. 터치도 그렇고 질감도 그렇고.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색감을 보면서 아마 물감도 그 녀석이 쓰는 것이 맞을 거야.”
“그럼 진짜라는 뜻인가요?”
“아니, 가짜야. 그것도 아주 자아알 만든 가짜.”
“가짜?”
“그래.”
그는 다시 안 으로 들어가서는 몇 장의 그림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는 그 위에 투명한 비닐을 그 위에 올리고는 선을 쭉쭉 그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복제할 방법이 넘쳐나지. 과거에 비해서 말이야. 심지어 새로이 그 화풍을 복제하여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고. 아예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말이야.”
그는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아니, 투명한 비닐에 선을 쭉쭉 그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린 그는 널브러진 다른 그림들을 다시 둘둘 말아서 안쪽에 넣어 두고는 다시 >안개 낀 한강>을 꺼내 놨다.
“결과적으로 시대는 발전하는 법이지.”
노형진은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림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서 조언을 얻고자 왔는데 비닐에 선을 그리는 것만 해 대다니.
“내가 이걸 보려고 무려 사흘을 고생했다. 400만 원 정도는 줘야지. 안 그래?”
“헐?”
이번 사건으로 받은 수임료가 1000만 원이다. 평소보다 많은 건 꼭 이겨 달라고 화가 본인이 직접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400만 원이라니.
“싫어?”
“아니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자신들은 돈 욕심에 하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라 배울 게 있으니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었다.
“좋아. 그럼 봐 봐.”
비닐을 정리해서 >안개 낀 한강>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는 방향을 휙 돌려서 노형진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래, 이게 진실이지.”
노형진이 봤을 때 그 선들은 절묘하게 선이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전혀 다른 그림들을 기준으로 선을 그었는데 그 모든 선들이 >안개 낀 한강>이라는 작품 안의 구도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기존의 있던 작품들의 구도를 교묘하게 따라서 베낀 거야.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그러면 작가가 주로 쓰는 구도가 나오거든. 붓 터치야 그걸로 먹고사는 놈들이니 어려울 게 없을 테고.”
“헐?”
“그냥 그저 그런 놈은 아냐. 베껴 그리는 것과 그걸 다 섞어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노형진은 >안개 낀 한강>이라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강에 서 있는 다리의 위치, 흐르는 강물의 폭, 서 있는 사람, 강 건너의 빌딩들. 그 모든 게 교묘하게 과거의 작품들과 선이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그린 사람은 그럼 그 모든 걸 감안하고 위작, 아니 합성했단 말인가요?”
“그래.”
“어이가 없군요.”
“난 프로야. 그런 나도 무려 나흘이나 걸렸어. 평론가입네 모가지에만 힘주고 다니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무리 봐도 모를걸?”
“하루가 느셨네요?”
“시끄러워.”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확실히 실력은 있는 것 같았다.
“아주 꾼이야, 이거.”
기본적으로 위작이란 기존에 있던 작품을 똑같이 그려서 파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위작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그 사람의 화풍을 복제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순간 위작이 아닌 창작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가능할지도.’
위작이란 따라 그리는 것.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조금 저 작품에서 조금 그런 식으로 따라서 그려서 결과적으로 하나의 덩어리가 나왔을 때 그게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된다면 개별적으로는 위작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작품이다.
“이런 식이면 어중이떠중이들은 넘어갈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노형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라면 의외로 상황이 쉽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걸 가지고 가서 이야기하면 위작 판정이 나오겠네요.”
그 말에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안 날걸?”
“네?”
“안 난다고. 그건 확실해.”
“아니 어째서요?”
“평론가라는 새끼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모르는구만. 그 새끼들은 자기 눈깔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느니 작가가 치매가 왔다고 매장시키는 걸 선택할 놈들이야.”
“끄으응…….”
그 말에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그 문제가 있었네.’
자존심. 그건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 전반에 나오는 현상으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고 소송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봐서도 심각한 문제다. 사실 사건의 20%는 그런 식으로 생기는 사건들이다. 사과하고 합의하기보다는 끝까지 법대로 해서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싸움들.
“그 새끼들이 이걸 인정하고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는 쪽에 내 손모가지를 걸지.”
“그 정도 입니까?”
사실 그럴 것이다. 그들은 그냥 동네 평론가도 아니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의 평론가들이다. 당연히 자기들 스스로는 한국 최고의 평론가들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할까?
“그리고 돈 문제도 있지.”
“돈 문제요?”
“그래.”
“무슨 돈 문제요?”
“중앙 새끼들이 이거 복제해서 팔아먹었잖아. 얼마나 팔렸을 것 같냐?”
“아…….”
맞다. 천강우 화백이 이 가짜 그림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가짜 그림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팔리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였다.
“글쎄요…….”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이 꺼낸 그림도 중앙박물관에서 사 왔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걸 판 건 거기 뿐이니까.
“그냥 사진으로 찍고 프린트 한 것만으로도 천강우 화백 이름이 붙어 있으면 비싸지. 이거 8만 원이야.”
“8만 원요?”
“그래.”
“비싸네요.”
말 그대로 누가 그린 것도 아니고 그냥 프린트한 것뿐이다. 그런데 8만 원이라니.
“만일 이게 가짜라는 게 드러나면 얼마나 문제가 될 것 같나?”
“글쎄요……. 환불해 줘야겠지요?”
“그래, 문제는 대량으로 팔아서 만일 문제가 생기면 타격이 크다는 거지. 못해도 만장 이상은 팔았을걸?”
“만장요?”
“네.”
그 말에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만장이면 한 장당 8만 원이니 8억 원이라는 소리가 된다.
“만일 이게 가짜라고 하면 거기 있는 개눈깔들이 얼굴에 먹칠하는 건 둘째치고 박물관의 입장에서는 8억이나 손해 봐야 하지 아니지 작가한테 배상하고 구입한 사람한테 배상하고 제작비까지 생각하면 못해도 20억은 배상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절대 인정을 안 하지.”
“허.”
결국은 자기 자존심과 더불어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서 창작자의 의견은 무시된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판결하는 짓이라니.
“아마 절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거야.”
“끄응…… 그러네요.”
노형진은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그래도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말을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척 봐도 말이 통할 상황은 아닌 듯했다.
‘하긴…… 인간이라는 게 그렇지.’
인간이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데 무척이나 인색하다. 더군다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건 법 쪽도 예외가 아닌데 대표적인 예가 간첩 조작 사건들이다. 과거에는 간첩 조작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 60년대와 70년대에는 작은 불만만 가져도 간첩으로 몰고 갔고 그게 없으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간첩으로 몰고 갔다. 재판부는 정권의 명령을 듣고 그들을 간첩으로 처벌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무죄를 선고받기에는 4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법원에서 자신들이 잘못 판결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저 녀석들이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죠?”
“그렇다니까 아가씨.”
이은영 변호사의 말에 남자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아마도 그렇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던 그가 확답하는 것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송으로 가야 하나.’
노형진은 소송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부담을 느꼈다. 자신의 경험이 없는 사건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최대한 대화해 보는 쪽으로 해야겠네요.”
노형진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두지 않을 모양이었다.
따르릉.
“응?”
노형진은 벨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천강우 화백의 며느리인 박세린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네, 노형진입니다.”
노형진이 그걸 받아 드는 순간 그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무슨 일입니까? 설마 천 화백님이 화를 못 이기고 쳐들어가기라도 하신건가요?”
“그러기 직전이에요. 지금 막 소송장이 도착했어요.”
“소송장요?”
아직 자신들은 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송장이라니?
‘설마…….’
노형진은 설마 그런 병신 삽질을 하겠냐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그동안 봐 온 인간 군상의 생각을 봐서는 그 불안감이 현실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혹시 말입니다. 그 소장이라는 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온 겁니까?”
“네! 해당 작품에 대해서 자기가 제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소송을 걸었어요. 지금 시아버님이 화가 나셔서 당장 쫓아가서 박살을 내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계시고요.”
그 말에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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