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73)
“요로치구미더군요.”
“요로치구미요?”
“요로치구미는 일본에서 서열 2위입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죠. 미안하지만 우리가 싸울 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노형진은 야쿠자와 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야쿠자라는 단어는 일본의 조폭을 의미할 뿐, 한 계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조직폭력배라는 의미니까.
그래서 노형진은 그들에게 혹시 아는 게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고, 오래 걸리지 않아서 신동성이 손잡고 있는 조직이 어느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얀지구미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얀지구미.
노형진이 손잡은 야쿠자로, 야쿠자 계파에서는 그나마 깨끗하다고 하는 곳.
‘뭐, 깨끗도 나름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큰 건수들, 그러니까 마약 같은 것은 감당하기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안 한다.
보통 그런 것에 손대는 곳은 큰 곳이기에 잘못 진입하면 학살당할 테니까.
“서열 2위라……. 그 정도 되는 조직이 이런 일까지 하다니. 그렇게 사정이 안 좋습니까?”
“저희가 왜 형진 상과 손잡았겠습니까?”
얀지구미에서 나온 남자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폭대법 이후로 야쿠자들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그래요? 전혀 몰랐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야쿠자가 한국의 변호사인 노형진과 손잡고 가해자들을 데려가서 강제 노역을 시킨다는 게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상황이 무척이나 안 좋은 모양이었다.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요. 대중매체에서는 그렇게 안 보이던데요.”
“한국의 조폭 영화들도 마찬가지지요.”
“아아.”
“거기에다가 야쿠자들은 폼으로 죽고 삽니다. 만일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그리면 보복을 서슴지 않지요.”
힘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건 정부 대상으로 그런 거고, 민간인 한두 명 죽여 없애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위 세 개 조직은 정부와 손잡고 그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그 아래 조직은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많은 조직이 양성화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죠.”
“흠.”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요로치구미는 서열 2위라고 했다.
그 말은 정부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동에까지 손을 대는 겁니까? 이해가 안 가는데.”
“권력의 비대칭성 때문이지요.”
“권력의 비대칭성이라…….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정치인들과의 선은 그대로지만 힘이 부족해졌다 이거군요.”
“네.”
권력이라는 것은 한 명이 강해지면 한 명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파이가 커지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가진 파이를 누가 더 먹느냐의 문제다.
“맞습니다. 폭력단 대책법 이후의 현상이죠. 노 변호사님도 아실 텐데요?”
“그냥 감만 잡았지요.”
일본 조폭과 엮일 일이 없었으니까.
“쉽게 표현하면 이런 거죠.”
과거에는 이 돈을 줄 테니 사건을 무마하라는 식의 강압이었지만, 지금은 이 돈을 드릴 테니 제발 무마해 달라는 정도로 파워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지.’
양쪽 다 사건을 덮을 수야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제는 갑의 위상이 정치권으로 넘어갔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폭대법 자체가 야쿠자의 힘을 빼기 위한 법이었으니까요.”
“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공식적으로 폭대법의 목적은 야쿠자들을 박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쿠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에 조폭을 때려잡기 위한 법이 있지만 조폭들이 여전히 존재하듯이 말이다.
‘결국 힘을 빼 놓고 쓰기 좋게 만들겠다 이거군.’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런 경우 갑이 된 자들이 을이 된 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세습이 바탕이 된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인 신념이나 올바름도 없을뿐더러 당연히 정의심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세습으로 자리를 지키는 귀족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니 거리낌 없이 무리한 요구를 할 테고.’
야쿠자들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양성화를 함과 동시에 돈이 나올 구멍을 만드는 것.
“요로치구미 정도의 규모가 되면 양성화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속한 야쿠자만 3만 명 이상이니까요.”
인정받는 패밀리만 3만 명.
그리고 그 아래에서 기생하는 인정받지 못한 양아치들까지 합하면 10만 이상의 조직.
“대동 정도가 아니면 양성화를 할 수도 없겠네요.”
물론 그들이 기업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야쿠자라는 조직이 그게 가능할 리 없지.’
당장 한국에서 조폭들이 양성화하면 회사를 만들어 주는 것도 노형진이고, 그 경영을 조언하는 것도 노형진이다.
스스로 기업을 세우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경기가 살아나면 더더욱 축소될 겁니다.”
“그걸 어떻게?”
노형진은 움찔했다.
남자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야쿠자라고 해서 다 무식한 건 아닙니다. 저만 해도 도쿄대를 나온 사람입니다.”
“네?”
노형진은 깜짝 놀랐다.
자신과 이야기를 하러 온다고 해서 아예 무식한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도쿄대라니?
“도쿄대를 나왔는데 야쿠자를 하신다고요? 아니,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으로 치면 ‘한국대를 나와서 조폭 합니다.’랑 똑같은 말이 아닌가?
아니, 세계 학교 서열로만 따지면 한국대보다 더 높은 곳이 도쿄대다.
그런데 야쿠자라니?
“잘 모르시겠군요. 야쿠자의 70~80%는 재일 교포와 부라쿠민입니다.”
“재일 교포와 부라쿠민요?”
“네, 저만 해도 부라쿠민이지요.”
“아…….”
노형진은 아차 싶었다.
부라쿠민.
일본에서 인정하지 않는 천민. 불가촉천민.
도쿄대를 나왔다고 해도 그가 갈 만한 곳은 없다.
그가 부라쿠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회사에서 해직시켜 버리니까.
설사 해직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왕따당하고, 최악의 경우 그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조리 그만둔다.
“도쿄대라는 타이틀을 따면 그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높은 곳은 차별이 더하더군요.”
씁쓸하게 웃는 남자.
‘쩝.’
재일 한국인에 대한 대우도 사실상 부라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관광하러 와서는 그런 거 못 느꼈는데요.”
“한국인은 한국에서 온 외국인입니다. 관광객이지요. 하지만 재일 교포는 일본인이면서 한국의 핏줄을 가진 자들이지요. 그 둘은 엄연하게 다릅니다. 한국인은 돈을 쓰고 가는 존재지만 재일 교포는 바퀴벌레 취급당합니다. 하지만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본은 30년 장기 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면서 도리어 지금은 인력이 부족해서 난리다.
과거에는 일자리가 모자라 일본인들이 부라쿠민과 재일 교포를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다 나와서 일해도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야쿠자로 흘러들어 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공식적으로 현재 야쿠자의 70% 이상이 40대 이상입니다.”
즉, 야쿠자라는 조직 자체가 늙어 가고 있다는 의미다.
40대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뿐이지 그 안에 실질적 전력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50대 이상도 상당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대동과, 아니 신동성과 손잡은 거군요.”
신동성은 요로치구미의 힘으로 대동의 황제가 되고 그 힘으로 요로치구미를 양성화시킨다.
그리고 요로치구미는 근본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기면서 규모를 키운다.
‘아주 끼리끼리 잘 만났군.’
노형진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요로치구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있을 리 없죠. 저희랑 비교하면 몇 배나 차이가 나는데요.”
어깨를 으쓱하는 남자.
하긴, 서열 2위와 7위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얀지구미가 들어갈 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요로치구미 정도나 되어야 협박이 제대로 먹힙니다.”
“네?”
“우리가 다수의 사람을 죽이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큭.”
하지만 요로치구미는 아무리 세력이 줄었다고 해도 2위급 규모다.
그러니까 몇 명 죽여도 충분히 덮을 수 있다는 소리다.
“결국 요로치구미를 빼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힘을 빼야 한다는 건데…….”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야쿠자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들이 외부적인 모습은 충과 의리다.
그러니 내부에서 배신을 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누가 그들과 전쟁을 해 주지 않으려나요?”
“그들과 전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세력이 안되는데.”
“그렇지요. 다른 조직은 세력이 안되는…….”
말을 하던 노형진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까 전에 남자가 했던 말, 야쿠자의 주요 멤버에 대한 정보.
‘그러고 보니 숫자가 제일 많은 사람들이 빠진 것 같은데?’
야쿠자에 속한 사람들, 그들의 대다수는 부라쿠민과 재일 교포이지만 일본에는 그들을 수적으로 압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면 중국인들은요?”
“네?”
“중국인 말입니다. 중국인 야쿠자들은 없는 건가요?”
어마어마한 인구를 바탕으로 밀려오는 중국인들.
그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니, 일본은 더하다. 한국은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 그들을 쓰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돈도 더 많이 주는 데다가 사람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야쿠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삼합회에 들어가지.”
“에? 잠깐만요? 삼합회요? 일본에서요?”
“네, 일본에서요. 안 그래도 야쿠자들이 힘이 빠지고 그 자리에 삼합회가 들어가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노형진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야쿠자는 조직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거죠.”
지역별로 야쿠자라는 세력이 토착화되고 나이가 들어 가면서 소위 말하는 항쟁이라는 것은 거의 사라졌다.
특히나 폭대법의 기본 방식이 무슨 일이 저질러지든 그 책임은 무조건 보스가 진다는 식이기 때문에, 단순한 폭행이나 살인이 아닌 항쟁이 터지면 일본 경찰이 야쿠자의 오야붕까지 싸그리 잡아들이게 된다.
“야쿠자들은 그래서 개별적 살인이나 협박, 폭행은 해도 대대적인 전쟁을 하지는 못합니다. 개별적 살인이나 협박, 폭행은 우리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독단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는 있지만 항쟁은 그게 불가능하니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으면 일단 그걸 실행할 사람을 조직에서 내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일을 저지르게 하죠. 하지만 중국은 아니죠. 일단 시설이 다르니까.”
“아아.”
노형진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
한국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으니까.
“중국의 감옥은 열악하죠.”
일단 범인으로 의심되면 개 패듯이 패고 수사 과정에서 폭행이 수반되는 것이 당연한 중국이다.
더군다나 중국 감옥은 살아서 나오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데다가, 살인 같은 경우는 거의 100% 사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일본은 아니죠.”
일본은 사형도 없고 처벌도 약하고, 감옥도 어떻게 보면 조폭들의 합숙소보다 훨씬 안락하다.
한국도 그러한 문제 때문에 중국인들이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사람을 죽이고 때려서 골치인데, 더 좋은 환경인 일본 감옥을 삼합회 같은 중국인들이 무서워할 리 없다.
노형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에서 삼합회의 세력이 커졌다는 건가요?”
“엄청요. 물론 대대적으로 전면전을 할 수준은 안 됩니다만.”
전면전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둘 다 폭력 조직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는 야쿠자를 편들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야쿠자들도 삼합회를 어찌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노형진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어렸다.
“그래요? 우후후.”
“왜 그러십니까?”
“아니,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노형진은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이제이
일본의 야쿠자가 막대한 자금을 세탁하고 조직을 양성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대동이었다.
그리고 그 첨병은 다름 아닌 둘째 아들 신동성.
“기가 차군.”
한국으로 돌아온 노형진에게 보고를 받은 유민택은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본격적으로 나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대부분의 세계적 범죄 조직은 양성화 과정이 대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어째서 말인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범죄 조직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결국 돈은 많지만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거든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
그건 국정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힘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메꾸려고 한다.
정치인의 최종적인 꿈은 재벌이고 재벌의 최종적인 꿈은 정치인이듯이 말이다.
“거기에다 일본은 폭대법의 영향으로 야쿠자의 권력이 많이 깎였죠. 아실 겁니다. 애초에 없었다면 모를까, 있다가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없는 걸 가지는 건 꿈이지만 있던 걸 빼앗기는 건 상실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야쿠자들이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대동을 노린다는 건가?”
“정확하게는 요로치구미입니다만.”
“하여간 그게 맞지 않나?”
“맞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동의 힘이면 권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정치인이 야쿠자를 만나는 건 문제가 되지만 기업인을 만나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되니까요.”
뇌물도 그렇다.
야쿠자가 주는 돈이라고 하면 의심스러운 돈이지만 기업의 정치 후원금이라고 하면 합법적인 돈이 된다.
“폭대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게 대동이라…….”
“아마 그럴 겁니다.”
“의외군. 야쿠자 중에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이 있나?”
“야쿠자의 문화 때문이죠.”
노형진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해 줬다.
유민택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까 힘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머리 좋은 자들이 그곳에 간다 이건가?”
“당연한 겁니다.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슨 드라마나 영화 같은 세계는 아니니까요.”
폭력 조직도 조직이고 그걸 이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주먹질해서 이기면 전 재산을 넘겨받고 형님 취급받는 세계 같은 건 존재한 적도 없었다.
“결국 신동성을 막기 위해서는 야쿠자가 그들에게서 손을 떼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지금 떼라고 한들 그들이 뗄 리도 없고요.”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단순히 협박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전쟁은 군수품이 지원되지 않으면 확정적으로 패배한다.
신동성이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기업의 전쟁에서 쓰는 총알,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협박은 협박으로 끝날 뿐이다.
“그 돈이 야쿠자에게서 나왔다는 거군.”
“야쿠자 입장에서는 기회죠.”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겠지만, 대동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주 작은 돈이다.
그 돈으로 대동을 집어삼킬 수 있다면 해 볼 만하다.
“멍청한 놈.”
유민택은 혀를 끌끌 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업을 이끌다 보면 그런 실수를 하는 놈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앞에 놓인 이득에 눈멀어서 손잡아서는 안 되는 자들과 손잡는 자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아무리 야쿠자들이 힘이 빠졌다고 해도 일본에서 야쿠자의 도움 없이 회사를 경영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슨 뜻인지 알겠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어. 그들을 어떻게 막을 건가? 자네 말마따나 이제 와서 빠지라고 할 수도 없을 텐데.”
그런다고 들을 자들도 아니고 말이다.
“이이제이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이이제이?”
“네, 오랑캐는 오랑캐의 힘으로 물리친다.”
“일본에 오랑캐가 있다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는 유민택.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있습니다.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대동에 신경 쓰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요.”
“무슨 뜻인가?”
“일본에 있는 삼합회를 이용하는 겁니다.”
유민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곳도 아닌 삼합회다.
“자네, 농담하나?”
야쿠자라는 범죄 조직을 상대하는 것도 위험하다 못해서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삼합회를 이용하자니.
“더군다나 삼합회는 야쿠자보다 더 질이 안 좋아.”
야쿠자는 최소한 문명인으로서 선은 지킨다.
하지만 중국계 조직들이 그렇듯이, 삼합회는 아직도 자신들이 무슨 춘추전국시대의 무장인 것처럼 날뛴다.
“얼마 전에 뉴스도 못 봤나? 그치들 이 시대에 청룡언월도를 만들어서 휘두르고 다니는 놈들이야.”
중국계 조직 하나를 중국의 공안이 털었는데 칼부터 활과 총, 심지어 청룡언월도까지 나왔다.
아주 대놓고 전쟁 준비를 하던 놈들이다.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자 포지션을 취해야 합니다.”
“피해자 포지션?”
“네. 우리가 그들에게 야쿠자와 싸워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야쿠자의 앞마당으로 이끌 수는 있겠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폭력 조직은 짐승들의 무리와 비슷합니다.”
힘을 추구하고, 그 힘에 휘둘린다.
“그리고 짐승들이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을 때지요.”
“그래서?”
“야쿠자들의 앞마당에 삼합회를 드롭시켜 버리는 겁니다.”
“미쳤군.”
야쿠자들이 그런 삼합회를 두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건드릴 수도 없다.
“중국인들의 특성 아시죠?”
“몰려다니지.”
“맞습니다. 특히 삼합회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더더욱 그러지요.”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야쿠자들은 그곳에서 걷고 있는 보호비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건 삼합회도 마찬가지다.
두 조직이 동시에 보호비를 걷으면 그 지역 상권이 박살 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본 경찰이 그들을 그냥 둘 리는 없고요. 사실 싸움이 시작되면 불리한 건 야쿠자죠.”
“어째서?”
“그들은 일본인이니까요.”
사고가 터져도 그들은 갈 곳이 없다.
나간다고 해도 결국은 해외 도피일 뿐이다.
그에 반해 삼합회는 중국인이다.
그들은 중국으로 돌아가면 된다.
나가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전혀 느낌도 다르고, 드는 돈도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더군다나 일본의 감옥 시설은 편하지요. 한국보다 더 좋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아아.”
한국에서 중국인들이 서슴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
그건 한국의 경찰이 중국의 공안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 공안에게 잡혀가면 폭행은 기본 옵션 같은 거고 가끔은 실종이라는 터무니없는 결말로 끝난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게 전혀 없다.
“거기에다 감옥에 간다고 해도 처벌도 다르죠.”
중국의 감옥이 거지 소굴이라면 한국의 감옥은 가정집 수준이다. 그리고 일본의 감옥은 4성급 모텔은 될 것이다.
그만큼 중국의 감옥은 열악하다.
거기에다 중국은 살인이 엮이면 무조건 총살이라고 봐야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거의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며 그 처벌 역시 10년에서 15년 사이다.
“중국인들이 무서울 게 없다는 의미군.”
“그렇습니다.”
기업의 전쟁이 돈으로 이루어진다면 조폭은 칼이다.
“하지만 야쿠자의 칼은 무디어진 상황입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암살에는 적당하지만,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암살자가 활동하는 곳은 조용한 밤이지 전쟁터가 아니다.
도리어 전쟁터 한복판에 닌자복 입고 알짱거리면 가장 먼저 맞아 죽을 것이다.
“삼합회의 세력을 키워서 힘을 깎아먹는다. 하지만 삼합회가 좋은 조직은 아닌데.”
“우리 땅 아닙니다.”
노형진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일본은 한국이 아니다.
자신이 그들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 이득을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현재 야쿠자와 삼합회는 둘 다 한국에 못 들어와서 안달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모국의 국민이 고통받는다고 내버려 두면, 고통받는 것은 한국 국민이 될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네. 하지면 어떻게 삼합회를 그 지역으로 끌어들인다는 건가? 들어가 달라고 한들, 그들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문제야. 당장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삼합회가 들어간다고 해도 싸울 리도 없거니와, 그 정도 대립하려면 10년은 앙금이 생겨야 할 텐데?”
노형진은 씩 웃었다.
“뭐, 그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키워 놓은 신동하가 있지 않습니까?”
“신동하?”
유민택은 눈을 찌푸렸다.
이 상황에서 신동하라는 카드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비밀입니다. 다른 곳하고 접촉해서 뭘 좀 알아봐야 하거든요.”
“끄응…….”
유민택은 더 곤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자신에게조차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라니.
“자네가 하는 일이라니 믿겠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민택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노형진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거기에 어떻게 중국인들을 끌어들일 생각인지만 대충 알려 주게. 그냥 모여 달라고 한다고 모일 것 같지는 않은데.”
고개를 갸웃하는 유민택에게 노형진은 자신이 있는 태도로 확실하게 말했다.
“중국인들이라면 영혼을 팔 정도로 좋은 아이템이 있지요, 후후후. 아마 삼합회라면 그걸 절대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놓치지 않을 곳이 한 곳 더 있지요,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