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78)
“네가 무슨 수로 지검장이랑 친해진 거야?”
“어? 술 마시다가?”
“술?”
“응. 스타 검사들이 요즘 잘나가잖아.”
아무리 스타 검사라고 해도 서울 지검장이면 하늘 같은 자리다. 당연히 만날 때마다 그들은 잔뜩 얼어붙었단다.
한 놈만 빼고.
‘그래, 네가 알 리 없지.’
그는 천연덕스럽게 엉겨 붙었는데, 그걸 지검장이 받아 줘서 어쩌다 보니 친해졌다는 것.
‘몰라서 친해진 거네.’
일반 검사라면, 지검장급이라고 하면 엉기기는커녕 긴장해서 숨도 못 쉴 것이다.
거기에다 서울 지검장이면 말 그대로 승진 코스니까.
‘이놈의 무식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덕에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 사건 기록은 확실한 거야?”
“그걸 나한테 왜 물어? 본다고 내가 아냐?”
“그래, 알 리 없지.”
노형진은 한숨을 쉬면서 서류를 살폈다.
사건 자체의 기록은 발견된 한 건의 살인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기록은 부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입증 자체를 포기한 것 같은데?”
“듣기로는 방법이 없었다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멋모르고 살인 사건을 전부 자백했다.
하지만 변호사를 만나고 난 후 바로 묵비권 행사로 넘어갔다는 것.
“끄응. 이건 뭐 뻔하네.”
자신이라도 이런 경우는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할 것이다.
증명하지 못하는 살인은 살인이 아니니까.
“결국 그렇게 열일곱 건은 묻혀 버렸네.”
살인 사건으로 7년 형을 받았다.
하지만 5년째 되던 해에 암으로 사망.
“설득은 안 해 봤대?”
처음에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묵비권을 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암이 걸리고 죽음이 임박하면, 사람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때 제대로 설득했다면 그 시신이 묻혀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정 시설에서 검사에게 일일이 연락해 주지는 않잖아. 죽은 것도 한참 지나서 알았대. 자발적으로 입을 열지도 않았고.”
“그거 참 문제네.”
하긴, 아무리 검사라고 할지라도 이미 감옥에 가 있는 범죄자에게 신경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당시만 해도 지검장은 평검사였다.
한창 일이 많고 일에 치일 시기이니, 이미 감옥으로 보낸 범인에 대해 계속 조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래서 시신을 찾아 달라는 건데…….”
노형진은 턱을 스윽 문질렀다.
쉽지 않은 사건이다.
일단 범인은 이미 죽었다.
그러니 그 관련 기억을 읽을 방법이 없다.
“그나저나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살인했다면서?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일일이 찾을 수 있겠어?”
“그건 아닌가 봐.”
“응? 그건 아니라니?”
“살인 자체는 돌아다니면서 했지만 시신은 같은 곳에 묻었대.”
“얼씨구.”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대충 이해가 갔다.
그건 범인의 일종의 사인 같은 거다.
특정 장소에다 묻어 버리는 것, 그게 그의 사인인 셈이다.
“정말 최후까지 누구한테도 아무 말 안 했고?”
하다못해 감방 동료에게라도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입을 꼭 다문 듯했다.
“완전히 머리 아픈 일이네, 이거.”
노형진은 일단 주식환의 기록을 살폈다.
가장 먼저 그가 시신을 감췄을 만한 곳을 예측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도 신통찮았다.
“고아였나?”
고아로 태어나서 고아원만 네 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중 세 곳은 사라졌고 한 곳은 이미 재건축을 한 상황.
시신이 그 근처에 묻혀 있었다면 재건축을 할 당시에 발견되었어야 마땅하지만, 나온 것은 없었다.
“학력은 중졸이고, 노가다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사람이었고…….”
자연스럽게 한 지역에 고정되어 사는 게 아니라 공사판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삶을 살았던 주식환.
그 당시의 불우한 가정환경의 표본 같은 모습을 보여 주는 삶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상황 자체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가 생활한 반경이 너무나 넓었다.
애초에 정착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
“삶을 추적해서 장소를 찾는 것은 무리겠는데.”
오광훈도 대충 주워들은 지식이 슬슬 생겨서 기록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딱히 기억도 없고.’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가 사용했던 모든 물건은 이미 소각된 후였다. 하긴, 애초에 그가 죽은 지 벌써 10년도 넘었으니 그걸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증거에도 딱히 뭐가 있는 건 아니고.”
거기에다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죽였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증거는 그가 진술 초기 변호사가 동석하기 전에 했던 열여덟 건의 살인 자백뿐.
그중 한 건만 증거가 있으니까…….
“유전자 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란 말이지.”
주식환은 고아여서 제대로 공부를 못 했지만 범죄자로서는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모든 옷은 살인하기 전에 시장에서 새로 사서 한 번 쓰고 버렸다고 했다. 시장에서 몇천 원짜리 옷을 사서 쓰고 바로 태워 버렸으니 옷을 가지고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 당시에는 CCTV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그걸로 추적이 가능했다면 아마 다른 시신들 역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교도소에 가서 기억을 읽어야 할까?’
하지만 다짜고짜 가서 ‘기억을 읽게 그가 쓰던 방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는 뭐 느낌 오는 거 없냐?”
“전혀.”
“생각 좀 하고 답하지? 너도 어차피 범죄자 출신이잖아. 동질감을 느낀다거나 그런 거 없어?”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피식하고 웃었다.
“남한테 그렇게 동질감을 잘 느끼는 새끼가 깡패 노릇을 하겠니?”
“와, 네놈한테 내가 말로 밀리는 때가 올 줄이야.”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걸 못 느끼니까 깡패 노릇을 했을 것이다.
“끄응…… 그러면 이 녀석이 시신을 어디다 처리했을까?”
“영화처럼 공구리 치는 데 담갔을까?”
“그건 영화일 뿐이야.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해.”
“응? 안 돼?”
“그래, 안 돼. 그러고 보니 너 뻔질나게 공구리 친다고 하던데, 실제로 해 본 적이 있긴 한 거냐? 해 본 놈이 왜 이렇게 몰라?”
“뭐, 말이야 뭐든 못 하겠냐? 겁줄 때 그런 거 쓸 만하거든. 드럼통 하나 가져다 두고 옆에서 쎄멘, 아니 시멘트를 비비면 대부분 알아서 기어. 때리는 것보다 훨씬 낫지. 때리면 돌려보냈을 때 흔적이 남잖아. 그거 보고 다른 놈이 신고할 수도 있고. 이건 그냥 씻기고 옷만 갈아입히면 티도 안 나니까 협박할 때 가끔 써먹었지. 거기에 넣고 시멘트를 담기 시작하면 똥오줌 싸면서 살려 달라고 하지. 거기까지는 해 봤어도 사실 진짜 공구리 작업은 안 해 봤어. 그런 거 밥 먹듯이 하는 놈이었다면 내가 다시 살아났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일종의 말버릇 같은 거야.”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그를 다시 살려 보낸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인을 밥 먹듯이 하던 놈이라면 그를 살려 보내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조폭이라고 해서 다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실 조폭 중에서도 살인까지 저지르는 놈들은 막장 중의 막장이다.
“그 좋은 머리로 공부를 하지 그랬냐. 왜 그런 데 머리를 굴려?”
노형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법의학 상식이니 알아 둬. 콘크리트로 시체를 감추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영화나 미드에서 보면 콘크리트 안에 시신을 넣어서 감추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영화의 장면일 뿐이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선 콘크리트를 미터 단위로 쌓아 올려야 할걸.”
“어째서?”
“사람의 몸에는 생각보다 염분이 많아.”
그리고 콘크리트의 최악의 적은 염분이다.
그래서 염분이 섞인 모래를 쓰면 콘크리트는 쉽게 부서진다.
“거기에다가 시신이 썩으면서 나오는 가스가 생각보다 많거든.”
결국 두 가지가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시신의 염분으로 인해 콘크리트가 약해지고, 가스가 그 안에 차면서 벽은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다.
콘크리트라는 것이 건축자재인지라 늘어나는 성질은 없기 때문에, 부풀어 오른 콘크리트에 금이 가서 그 틈으로 쌓여 있던 악취가 한꺼번에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만일 시신을 바닥에 눕혀 둔 경우, 그 안에서 시신이 썩어 공간이 비면서 그 부분이 푹 꺼지기도 한다.
“그래서 벽이나 바닥에 숨겨 둔 시신은 그런 식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그거 확실한 거야?”
“확실한 거야.”
미국에서 마피아가 가장 선호하던 시체 처리 방식이 그거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게 다 드러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미터 단위로 쌓아 올리는 공사판도 있겠지. 하지만 거기에서 주식환만 일하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콘크리트를 가져다 부을 정도면 대단위 공사장일 테니 당연히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야간에도 경비원이 있을 테고.
“밤에 몰래 가져다 넣는 건?”
“콘크리트는 생각보다 빨리 말라.”
낮에 작업을 하고 밤에 시체를 던져 넣는다고 해도, 자국은 남을지언정 영화처럼 천천히 콘크리트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공사장에서 그런 작업은 레미콘을 불러다가 부어 버리지 귀찮게 사람이 일일이 삽으로 비벼 가면서 하겠어?”
“그런가?”
“그래.”
당연히 주식환이 레미콘을 불러서 부을 수는 없으니 그건 불가능하다.
“거기에다, 생각해 봐. 건물에는 철골이 들어간다고.”
“아아.”
안전을 위해 콘크리트 내부에 철골이 들어가는 건축 공법 특성상 당장 넣는다고 해도 빠지지 않는다.
설사 그 위에 부어 버린다고 해도 문제다.
“사람의 덩치는 크거든.”
설계상 높이 다 따져 가면서 만드는 게 건물인데, 사람 하나 높이만큼 바닥이 높아진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가스를 막기 위해서는 1미터 이상 콘크리트를 부어야 한다.
“그러니 공사판에 묻어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지.”
“다른 방법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검사는 너잖아.”
“배우는 입장이잖아.”
“끄응…….”
노형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그는 배우는 입장이 맞다.
“땅속에다가 묻거나 바다에 빠트리는 게 보통인데.”
“후자는 아닐 거야.”
“어째서?”
“해변에다 던질 수는 없잖아.”
한 해변에서 열일곱 개의 시신이 나왔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먼바다에다가 던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가 가진 게 없잖아.”
기록에 따르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자라면 요트라도 의심해 보겠지만, 그는 배를 빌릴 돈도 없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고정된 직장도 없는 그를 위해 시신을 감추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그건 그렇지?”
아주 친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려 열일곱 건이다.
그걸 과연 해결해 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남은 건 땅이네.”
“그래. 문제는 그 공간이 너무 넓다는 거야.”
주식환이 개인적으로 땅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도, 한국에는 개발 가능성이 0%인 땅이 넘쳐 난다.
그리고 국유지 같은 경우에는 감시 시스템도 없다.
“결국 그런 곳을 골랐다면 답이 없다는 거지.”
하물며 사유지라고 해도, 산 같은 곳은 산 전체를 개발할 일은 드물다. 어지간한 높이가 아니면 산사태도 일어나지 않으니 시신이 드러날 가능성도 없고.
“개인 소유의 산이라고 해도 들어가는 게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와, 너무 넓네.”
“그게 문제야.”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결국 이걸 알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지.”
문제는 그 사람이 과연 이야기해 줄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