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재판과 관련된 싸움은 재판정 내부에서만 벌어지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바깥에서 더 많은 싸움이 벌어진다. 서류의 정리부터 우호적인 증인의 확보까지, 모든 것이 재판과 연결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싸움은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결판만 재판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없지.”
한 명이 죽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놈이 죽었다고 죄책감에 몸부림치기에는 노형진이 더러운 것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모른 척해 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어차피 그 녀석들의 인생은 박살 났기 때문에 모른 척해 주려고 했다. 애초에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짰던 놈들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납치와 살인 미수로 처벌받아야 하지만 막대한 로비와 돈 때문에 그들은 살인 미수가 아닌 납치와 상해 미수로 처벌받게 되었다.
물론 그 처벌은 약하기 때문에 금방 나올 테지만 이제는 볼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저 무시하려고 했는데 싸움까지 걸어오니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싸우러 갈까?”
노형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은 제법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딩동.
“누구세요.”
“실례합니다. 오늘 약속하고 왔는데요. 노형진이라고 합니다.”
벨을 누르자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잠시만요.”
약간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더니만 문이 열렸다. 노형진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호화롭네.”
돈이 있으니 인생을 개판으로 산 건지, 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호화로웠다.
“뻔뻔한 얼굴로 잘도 오는군.”
한 여자와 한 남자가 그런 노형진을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강형문이라는, 이번 사건으로 죽은 사람의 부모였다.
“합의를 애원하러 온 거냐?”
“합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절대 합의는 없어! 내 아들을 죽여 놓고!”
남자는 차가웠고 여자는 분노했다. 당연하다. 그들은 노형진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합의하러 온 거 아닌데요?”
“뭐라고?”
“그럼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애초에 할 말이 있다고 했지, 합의하겠다는 말은 한 적 없습니다만.”
“뭐라고! 이익! 너 이 새끼, 진짜!”
남자가 분노해서 자신도 모르게 골프채를 잡고 휘두르려 했다. 노형진은 그런 그를 말 한마디로 멈췄다.
“진짜 살인범을 잡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아버지인 강성찬은 그대로 멈췄다.
“네놈이 죽이지 않았느냐! 네놈이 내 아들을 그렇게 얼어 죽게 만들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렇게 말하던가요, 경찰이? 물론 제가 다리를 부러뜨린 건 압니다. 그래서요? 전 살기 위해서 저항한 겁니다. 절 납치한 게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신 건가요?”
“이이익!”
맞는 말이다. 설마 아들이 아무리 개판으로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강력 범죄를 저지를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무리 좋게 봐줘도 납치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제가 다리는 부러뜨렸을지언정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궤변이란 말이냐!”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인정하지요. 그런데 정말 다리만 부러뜨렸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죽인 건 제가 아니라 같이 있던 놈들이라는 겁니다.”
“헛소리!”
“그럼 아드님의 옷은 보셨습니까?”
“옷이라니?”
역시나였다.
그들이 아들을 확인하러 갔을 때는 차가운 부검대 위에 놓여 있었을 테니 옷은 없었을 테고, 그때는 두 놈이 옷을 갈아입은 후였을 것이다.
“경찰이 사실을 말해 주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걸 보시죠.”
노형진은 경찰에서 받아 온 사진을 건넸다. 그걸 받아 든 두 사람의 눈이 격하게 떨렸다.
“보다시피 아드님은 동사하기 직전에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전 다리만 부러뜨렸습니다. 얼굴이나 손에는 손도 안 댔죠.”
차가운 부검대 위에 놓여 있는 아들의 얼굴에서는 여기저기 상처와 멍이 보였다.
“물론 동사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동사할 수밖에 없었죠. 이걸 보십시오.”
노형진은 그들이 체포당했을 때의 사진을 꺼내서 보여 줬다. 그들은 범죄로 체포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 즉시 사진이 찍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본 두 사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 이건…….”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은 눈에 익은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는, 눈에 익은 옷들.
“저도 저 옷을 압니다. 아마 아드님이 자주 입고 다니던 옷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
순간 혼란에 빠지는 두 사람. 아들이 얼어 죽었다는 사실만 알았지, 이런 사실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네, 아드님은 얼어 죽었습니다. 그건 부검의가 확인한 거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근데 말이죠, 옷을 입고 있었다면 어쩌면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증거로 두 사람은 옷을 입고 있으니 살아남았잖습니까?”
“그…… 그 말은 지금 두 놈이 내 아들을 죽이고 옷을 빼앗아 입었다는 소리냐?”
생각지도 못한 말에 격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남자의 목소리.
“아마도요.”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럼 옷에 묻은 피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전 분명히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만 이 부검 소견서를 보시면 알겠지만 다리에서의 출혈은 없었습니다. 즉, 저 피는 다른 곳에서 묻었다는 소리입니다.”
“…….”
“아마도 저쪽에서 여러분에게 같이 소송하자고 부추겼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알려 주지 않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
그랬다. 전혀 듣지 못했던 사실이다.
“따라서 살인자는 제가 아니라 저쪽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이길 수 있다? 아들에 대한 최소한의 복수를 해 줘야 한다?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그들은 그저 사건을 무마시키고 여러분의 신경을 돌릴 일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요?”
맞는 말이다. 그들은 이번 사건에서 이상하게 소송해야 한다면서 필사적으로 사망자의 부모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분노는 노형진에게 향했고, 그들은 소송에 매달리느라고 자신의 아들에 대한 문제는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한 번이라도 경찰에 가서 자세한 사망 사유에 대해 알아보셨습니까? 시체의 어디가 얼마만큼 손상됐는지 보셨나요?”
“…….”
그저 사망자 본인 확인만 했다. 고통스러워서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가해자들의 부모들이 끗발 날리는 사람들이니 슬쩍 감추는 건 일도 아닐 테죠. 거기에 원수 하나 만들어 주면 아들들은 완벽하게 자유롭게 되는 거겠죠.”
“…….”
“뭐, 전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소송을 더 진행하시든 진실을 찾으시든 그건 두 분 마음입니다.”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는 두고 가죠. 보시면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나갈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분 유도야 기본 중 기본이지.’
다음 날, 두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찰서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양 사건의 당사자 두 명이 가면 경찰은 자료 모두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시죠.”
굳은 얼굴을 보고 있는 노형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죽은 아들을 들먹이는 건 나쁜 짓일지도 모르지만 재판에 그딴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건 기록 열람을 하러 왔습니다.”
“네?”
“사건 기록을 열람하겠습니다.”
그 말에 경찰은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노형진은 더욱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건 기록 열람은 기본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그걸 신청했는데 당황한다는 건 누군가 그들에게 따로 언질해 줬다는 뜻이다.
원래 형사사건은 원고는 원고의 관련 기록만, 피고는 피고의 관련 기록만 볼 수 있다. 그런데 양쪽이 다 오면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결국 그 당시 사진과 인터뷰, 증언 등 모든 기록을 보게 된 부모들은 점점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느 쪽을 봐도 노형진이 다리를 부러트린 것 말고는 상해를 유발했다는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원인 불명의 폭행 흔적과 골절이 있었다고 되어 있었다.
“그 원인 불명의 상처는 왜 생긴 겁니까?”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수사를 하지 않아서.”
“원인 불명의 상처가 이렇게 많은데 수사를 안 해요?”
“그거야…… 아무래도 그냥 동사한 사건이다 보니…….”
슬쩍 고개를 돌리는 수사관.
하지만 사망자의 부모는 확신했다, 애초에 이재명의 아버지가 지역 의회의 의장을 할 만큼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건을 무마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그럼 정식으로 고소하면 수사를 시작합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아버지 되는 사람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뭔가를 감추려고 했던 만큼 자신도 힘을 쓰려면 힘을 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그런 연유로 그렇게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정식으로 고소하겠습니다.”
“이런…….”
남상주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당황했다. 애초에 이번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사망자의 발생에 노형진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공판이 열리기 직전, 사망자의 부모가 고소 취하서를 넣어 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결국 호신용 스프레이에 당한 두 사람뿐인데, 이 정도 가지고는 이기기는커녕 역습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건?”
“오늘 접수할 소장입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죠.”
노형진이 바보처럼 역습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허허, 망했군.”
제대로 하기도 전에 재판이 망해 버린 것이다.
“자네 짓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일 말일세.”
소송을 취하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살인죄로 두 사람을 고소한 피해자의 부모, 특히 강성찬은 인맥을 통해 사방에 경찰에 압력을 넣고 있었다.
“경찰이 양쪽에서 죽을 맛이라고 하더군.”
“법이란 공평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왠지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이거 참, 탐나는 인재로군.”
“칭찬 감사합니다.”
“농담 아닐세. 변호사 자격증을 따거든 꼭 한 번 연락 주게나.”
“필요하면 그러지요.”
“하하.”
남상주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 재판은 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피해자인 사망자의 가족이 고소를 취하했으니 애초에 정당방위인 최루가스 정도로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어쩔 건가?”
“뭘 말입니까?”
“저쪽에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일세.”
즉, 강성찬이 고용할 변호사로 자기를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조종한 것이 노형진인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어찌 보면 황당한 말이지만 그게 변호사의 세계다. 방금 전까지 싸운 사람을 위해 변호를 할 수 있는 것. 그게 변호사다.
“알겠습니다. 말은 해 보죠.”
노형진 역시 그걸 알기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알아야 말이지.”
노형진은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일단 자신에게 헛짓거리를 한 놈들을 그냥 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 위해서 산으로 온 것이다. 물론 경찰에 고발했지만 경찰이 여기까지 와서 증거를 찾아 헤맨다는 건 영화에서나 나올 게 뻔한 일이기 때문에 기대도 안 했다.
“아, 멀미 나네.”
닥치는 대로 영사, 즉 기억을 읽는 행위를 해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징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사실 사람이 거의 안 오는 지역인지라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흔적들을 보다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온 곳이었다. 특히 눈에 불을 켜고 헛짓거리 하러 오는 방탕한 청춘들이 많았다.
“내가 수사를 하는 거야, 야동을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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