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2)
송승현은 코웃음이 나왔다. 자신들이 이 자리에서 버틴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말은 듣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이 있는 작가라고 해도 밟아 버리고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면 극찬을 아끼지 않아서 유명 작가로 만들어 준다. 결국 화백이라는 놈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준 이미지로 먹고 사는 광대들이다. 그런데 자신들을 매장시키겠다니.
“그래서 그 녀석이 어떤 방법을 쓸 것 같나?”
“뻔하지요. 우리가 평론가이니 우리에게 진짜 그림을 찾아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 말에 송승현은 작게 신음성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실 평론가니 어쩌니 해도 그걸 확실하게 잡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걸 잡아내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결국 원점이군.”
자신들이 작품을 인정하라고 소송까지 한 것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인터넷에서 검증하게 된 상황이니 자신들이 소송한 실익이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회로 볼 수도 있습니다.”
“기회?”
“네, 만일 우리가 모든 그림을 맞힌다면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쉽습니다.”
“쉽다고?”
동료 평론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송승현이었다. 그러자 평론가는 웃으면서 자신의 방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에서 작품을 유통하는 과정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프린트된 작품을 검증에 동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극단적으로 표시가 나니까요. 그러니까 아마도 모작(작품을 따라 그린 작품. 위작은 원본인 척 속이는 것일 목적으로 만들지만 모작은 명확하게 복제 판매가 목적으로 만들어진다.)을 살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진짜 작가의 작품을 넣어 두겠지요.”
“올커니!”
그런 모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연락처는 대부분 자신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들의 연락처도 알고 있지요.”
“그렇지!”
그들이 어떤 모작을 사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떤 작가의 작품으로 시험할지도 알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그 작가에게 전화해서 조금만 겁을 주면 그들이 사 가든 빌려 가든 한 작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100% 맞힐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녀석들이 불리해지겠군. 흐흐흐.”
송승현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드디어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어떤 보고?”
그들은 며칠 전부터 그런 모작 작품들을 거래하는 모든 상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거래 내역을 확인하라 시켰고 드디어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녀석들이 총 다섯 개 작가들의 그림을 총 네 개씩 구입했다고 합니다.”
“4개씩?”
“네, 각각 다른 그림으로요.”
“오호, 그렇단 말이지?”
송승현은 노형진이 어떤 식으로 테스트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챘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작 네 개 사이에 진짜 작품 하나를 두고 그중에서 진짜 작품을 찾으라고 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니, 그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럼 그 작가들에게 연락해 봐야겠군. 흐흐흐.”
저쪽에서 무슨 카드를 들고 나올지 안다면 무서운 건 없었다. 결과적으로 천강우 화백은 이게 자신의 그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은 더욱 유명해질 거란 생각에 그들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네? 그건 좀…….”
“말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노형진에게 그림을 빌려준 다른 화백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도 귀가 있고 주변에서 교류가 있는 사람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과 천강우 작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다.
“이게 무슨 용도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
모를 리가 없다. 노형진은 이들을 찾아와서 왜 빌리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줬고 동료 작가들을 위해서 잠시만 작품을 빌려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횡포에 억눌려 있던 작가들은 슬쩍 모른 척 빌려주기로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와서는 어떤 작품을 빌려줬는지 말하라고 하는 것이다.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좋게 이야기합시다.”
“…….”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림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이들이고 생계가 달려 있는 화가들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들에게 찍히고 난 후에 나오는 그림마다 악평을 받고는 결국 자살로 몰리기까지 했다.
‘우리가 그런 것에 놀아날 것 같냐? 흐흐흐’
송승현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이 미리 정답을 알고 있다면 틀리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은 더욱 강해질 테고 말이다.
‘고작 변호사 나부랭이 주제에 대들어? 전문가들이 왜 전문가인지 보여 주마. 흐흐흐.’
송승현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람 많네.”
“그렇지요?”
노형진이 도착한 곳은 다름아는 한강 둔치 공원이었다. 그곳에서 검증한다는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심지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그림을 빌려준 화가들까지 찾아왔다.
‘지금이라도 말할까?’
노형진이 빌려간 작품들이 뭔지 저들은 알고 있다. 즉, 그 안에 자신의 그림들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구입한 모작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 이번 싸움은 질 수가 없는 상황.
‘안 돼……. 그럴 수는…….’
그들은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한국 예술계에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검증을 위해서 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노형진은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홍보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천강우 화백님의 작품과 관련하여 평론가들의 실력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평론가 협회는 기꺼이 그 도전을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표로 열 분의 평론가들이 나오셨습니다.”
노형진이 소개하자 앞으로 나서서 인사하는 송승현과 그 동료 평론가들.
“방식은 간단합니다. 저희가 다섯 작가의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한 작가분들당 다섯 개의 그림이 나올 것이며 평론가들은 그 안에서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아주시면 됩니다.”
“호오.”
그렇게 많은 수라면 단순히 우연으로 찾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노형진은 준비되었느냐는 눈으로 평론가들을 바라보았다.
‘훗,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송승현은 그런 노형진의 도발적인 시선에 비웃음을 날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노형진이 신호를 보내자 뒤에 있던 차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얀 천이 씌워진 작품을 들고 나왔다.
“이 안에서 찾으면 되십니다.”
미리 준비된 이젤에 그림을 올리고 하얀 천을 벗기는 노형진.
“결과는 나중에 한꺼번에 발표하겠습니다. 감정 부탁드립니다.”
노형진의 말에 그림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리저리 그림을 살피는 것처럼 행동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그림 중에서 어떤 게 진짜인지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 왔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그저 살피는 척할 뿐이었다.
“이게 그 작가의 원작품입니다.”
드디어 시간이 지나자 한 남자가 그림을 지명했고 사람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려서 동감의 의사를 밝혔다.
“확신하십니까?”
“확신합니다.”
송승현은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그림의 사진까지 보고 왔으니 헷갈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그림을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노형진의 말에 기존에 있던 그림을 들고 나간 사람들은 다시 새로운 그림들을 가지고 나왔고 그걸 한참 살핀 송승현은 역시나 자신들이 알고 있던 그림을 결정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섯 작가들의 그림들이 스치고 지나갔고 송승현과 동료 평론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특정 그림들을 골랐다. 모두 다 사전에 이야기를 들은 작품들이었다.
“확실하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다음 그림으로 골랐고 그들이 하나씩 고를 때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천연덕스럽게 다음 작품으로 넘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총 다섯 작품들이 골라졌다.
“이 그림들이 확실하게 화가들이 그린 진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화가들이 그린 진품입니다.”
송승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가짜일 가능성은요?”
“없습니다. 모든 전문가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자신들이 골랐으니 이것이 진품이라는 그들의 주장. 지금까지 하던 그들의 말과 똑같은 행동.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그들을 편들어 줄 판사도, 그들의 힘이 통하는 증인도 없었다.
“여러분들이 고른 작품 중에서 진짜 작품은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뭐!”
“무슨 개소리야!”
“헛소리 하지 마!”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평론가들은 벌 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맞춘 그림들 중에서 진짜 작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위작입니다.”
“개소리하지 마!”
듣고 있던 송승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들은 분명히 고른 작품들은 본인 작품이 맞다. 그걸 넘겨준 화가들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본인 작품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여러분!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자기들이 불리하니까 모두 가짜라고 거짓말하는 겁니다!”
“우우우! 꺼저라! 사기꾼 새끼들 같으니!”
몇몇 그들을 편드는 선동꾼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맹세코 저건 가짜입니다.”
“헛소리 하지 마! 그게 진짜라는 증거는 사방에 널렸어. 당장 그 작가들이 우리한테 말…….”
뭐라고 하려던 송승현은 아차 싶었다. 자신이 말하면 안 될 걸 말할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그들에게 쏠려 있던 상황. 그 말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래요. 작가들이 당신들에게 말했겠지요. 어떤 작품을 받아 갈 거라고.”
노형진은 애초에 이번 일을 꾸미면서 그들이 자신의 특성을 알고 받아칠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주특기 중 하나가 언론 플레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저들도 그냥 당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한 상황.
‘내가 그렇게 당할 줄 알았냐?’
저 녀석들은 자신들이 한 수를 내다보고 신의 한 수를 내놓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노형진은 그런 그들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사건이 나한테 생소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모르는 사건도 아니란 말이지.’
사건은 다를지언정 그걸 저지르는 범인들의 심리는 비슷하다. 특히나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가지고 통제하려고 하는 녀석들은 더욱 비슷해서 아집으로 똘똘 뭉친 채로 사전에 정보를 얻으려고 할 게 뻔했다.
“여러분들 이 장면을 보셔야 합니다.”
노형진은 뒤에 댄 차로 가서 커다란 텔레비전을 하나 꺼내왔다.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어떤 영상을 재생했다.
“대문?”
“저건 아파트인데?”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다름 아닌 어떤 집들의 입구였다.
“맞습니다. 저 집들은 우리가 찾아간 화가분들의 자택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걸 그분들에게 자기 작품을 하나씩 빌려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화면에는 자신들이 들어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화면과 날짜가 바뀌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본 송승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으음…….”
“보다시피 저 말고도 다른 분들이 그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여기 계신 열 분하고 동일한 분들로 보입니다. 안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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