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29)
그래도 노형진은 양심이 있었다.
최대한 해당 고소장을 여러 곳으로 분류해서 집어넣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사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노 변호사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요? 뭔 큰일요?”
“엘라인대량고소대책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져서 저희를 규탄한답니다!”
상주상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노형진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한 노형진의 모습에 상주상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떻게 합니까, 노 변호사님! 그놈들이 내용증명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반엘라인운동도 전개한다고…….”
“내용증명이라…….”
노형진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마치 본 것처럼 내용을 읊어 대기 시작했다.
“아마 주요 내용은 이런 거겠지요. 사회적인 공론의 장을 막고 어쩌고 집단 고소로 블라블라. 결과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면 합의금 장사하지 마라, 뭐 그런 거 아닙니까?”
“에?”
상주상은 깜짝 놀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용 자체는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그쪽 고문 변호사를 아시나요?”
“아니요. 뻔한 겁니다.”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찌뿌둥한 몸을 한번 움직여서 풀고는 느긋하게 상주상에게 말했다.
“사실 이런 집단 소송에서는 100% 나오는 변명이 그거거든요. 합의금 장사하지 마라.”
“네?”
“이런 사건이 한두 번인 줄 압니까?”
인간은 뭐 하나 있으면 그때마다 휩쓸린다.
물론 고소한 사람이 나쁜 놈인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범죄자들이 피해자를 억압한 경우도 차고 넘친다.
“그때마다 집단의 힘을 빌려서 주장하죠, 합의금 장사하지 마라.”
“합의금 장사라니요?”
“그런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범죄자입니다. 범죄자 마인드가 뭐 어디 가겠습니까?”
그들이 보기에는 자기들이 잘못한 게 아니다.
그냥 고소한 사람이 자기한테 돈 뜯어내려고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인간들은 집단을 이루면 자기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런 걸 집단의 허상이라고 하죠.”
“집단의 허상요?”
“네, 이번 사건의 경우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전반에서 바뀐 게 뭐가 있죠?”
“그건…….”
없다.
그들이 만나서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와서 협상권을 얻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인터넷에 대책위원회라고 카페 하나 만들고 거기에 들어가서 와글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욕하고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다고 빽빽거린 것뿐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바뀐 게 없습니다. 그들이 뭉쳤다고 해도 말이죠. 그래서 제가 허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집단으로 퍼트리면…….”
“뭐, 지금까지는 안 그랬나요?”
노형진의 말에 상주상은 아차 싶었다.
그래서 고소를 넣었던 인간들이다.
여기서 그들이 다시 그런다고 해도 엘라인 입장에서 바뀌는 것은 없다.
“도리어 저는 일거에 소탕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째서요?”
“저렇게 뭉쳐 있으면 자기들끼리 뭔 헛소리를 해도 다 편들어 주거든요. 그래서 그 자체가 증거가 됩니다. 그러니 들어가서 감시해야지요.”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걸 예상해서일까? 가입 조건이 고소장을 증명하는 거다.
그렇다 보니 마음대로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압니다. 그런 규정이 있더군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시나 보군요.”
“매일같이 보고 있으니까요.”
“네? 매일요?”
그 말은 자신이 알기도 전에 이미 관리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떻게요?”
고소장을 증명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말이다.
“제가 넣은 고소장은 삼천백쉰여덟 개입니다.”
“그건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엄청 많다고 다들 놀랐죠.”
“그런데 제가 만든 고소장은 삼천백여든여덟 개죠.”
“네?”
그러면 만든 게 서른 개가 더 많다는 소리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죠, 우리 직인이 있느냐 없느냐. 설마 우리 직인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그걸 못 찍겠습니까?”
상주상은 입을 쩍 벌렸다.
“그 말은, 저런 걸 만들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저런 작자들의 행동 패턴은 뻔하거든요.”
일단 뭉쳐서 자기 사람들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집단의 힘으로 대항하려고 한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인터넷처럼 좋은 곳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그들이 돈을 들여서 따로 홈페이지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런 집단은 누군가 붙어서 열심히 관리해 줘야 하지요. 생계를 포기하고 누군가 계속 카페 내부에서 통제를 해 줘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네? 잠깐, 그러면 그 관리인이?”
“카페 주인은 저희가 아닙니다만 관리를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은 저희 사람입니다.”
상주상은 그 말을 들으면서 노형진이라는 변호사가 왜 무서운지 알 것 같았다.
나름대로 대응책을 만들려고 했겠지만 결국 그걸 예상하고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저항하지 못한다.
“그들이 거기서 떠드는 모든 말은 지금 실시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나중에 소송을 할 때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합의금 장사라는 이미지가…….”
그게 문제다.
합의금 장사라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생긴다.
당장 3천 명이라고 하면 한 사람당 100만 원만 해도 30억이다. 절대 작은 돈이 아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유명인이라는 점과 명백하게 악의를 가지고 허위 사실 유포를 한 점을 생각하면 절대 100만 원은 안 나오죠.”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분명 돈을 벌면 합의금 장사라는 저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게 된다.
“하지만 그 돈을 다르게 쓴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달라진다?”
“네, 후후후.”
노형진은 서랍에서 꺼낸 종이를 상주상에게 건넸다.
“내일 이걸 발표하세요. 그러면 상황이 뒤집어질 겁니다.”
“이건?”
“미리 만들어 둔 합의서입니다.”
노형진은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걸 들은 놈들이 합의금 장사를 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 *
다음 날, 상주상은 해당 합의서 내용을 기자들 앞에서 공개했다.
합의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합의의 조건은 가해자의 정신과 상담 및 치료 증명이다.
해당 치료가 증명된다면 저희는 합의금을 한 푼도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둘째, 치료를 거부한다면 합의금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며 해당 금액은 해당 가해자의 범죄 피해자들에게 전액 상담 치료비로 제공한다.
정신과에는 ‘진짜 미친놈이 아니라 그 미친놈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오더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한 가해자들이 공격하는 대상이 저희 엘라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피해자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다른 분들 역시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셋째, 모든 세무 기록은 법원에서 정한 세무서를 통해 처리되며 모든 입출금 역시 해당 계좌를 이용한다.
저희는 단 한 푼의 이익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이로 인해 정신병적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합의금에 관해서 파격적이다 못해서 아예 대놓고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여론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자기들을 미친놈 취급하느냐면서 광분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엘라인 측이 돈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애매하기는 하네요.”
고연미는 노형진의 말대로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곤란한 듯 말했다.
“전체적으로 우호적이기는 한데요, 그렇다고 딱히 우리를 우호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아니네요.”
“한국은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하죠.”
한 사람이 하든 열 사람이 하든 백 사람이 하든, 그건 범죄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은 집단적으로 고소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집단적 괴롭힘은 아닌데 말이죠.”
도리어 반대다. 가해자가 많을 뿐 이건 1 대 1의 범죄행위이고 그에 대한 처벌일 뿐이다.
“뭐, 이것도 길게 갈 생각은 없지만요. 제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되어 갑니까?”
“가해자들에 대해 조사하는 거 맞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뻔하죠.”
노형진은 느긋하게 말했다.
“그런 범죄적 성향을 가진 애들이 과연 피해자를 엘라인만 만들었겠습니까?”
단순히 글을 퍼다 나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일부는 진짜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협박을 하기도 했고 몇몇은 동물의 사체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애들은 타고난 공격성이 있죠.”
노형진은 느긋하게 말했다.
“그런 애들은 엘라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공격적으로 대할 겁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저 애들이 써먹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나는 어리다’라는 것일 테고요.”
합의금 장사라는 명목으로 압박을 가하려고 했지만 표준 합의서를 공개한 이상 그 주장은 먹히지 않는다.
다른 합의서를 작성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그럼 대부분은 어리니까 봐 달라는 식으로 나올 텐데, 그러면 불리한 건 이쪽이죠.”
물론 엘라인의 멤버들도 어리다.
멤버 중 한 명은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저쪽은 미성년자니까.”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럴 때는 저쪽에 더 많은 피해자를 들이밀면 됩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걸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에게 당한 다른 피해자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저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애들은 학교에 분명 다른 피해자가 있을 겁니다.”
노형진은 그 부분을 감안해서 고연미에게 질이 아주 안 좋은 몇몇에 대해 조사를 부탁했다.
“맞아요. 몇몇은 학교에서 일진으로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아셨어요?”
“글과 행동은 전혀 다르거든요.”
글이나 허위 사실을 퍼 나르는 것은 별 느낌이 없다.
하지만 짐승을 직접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버튼을 눌러서 미사일을 쏴서 1만 명을 죽이는 건 별 느낌이 없지만 자기 손으로 백 명을 죽이는 건 심각한 일이죠.”
즉, 정신적 부분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거다.
“그런 놈들에게 당한 피해자를 우리 쪽에서 전면에 내세울 겁니다. 그러면 저들은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지겠지요.”
“아…… 그래서…….”
그래서 노형진이 그들이 뭉치게 둔 것이다.
뭉치게 하고 그들 중 질이 안 좋은 몇몇을 전면으로 내세워서 그들의 이미지를 완전히 망친다.
그러고 나면 그들이 아무리 자기들이 정상이라고 주장해도 누구도 믿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대표성이라는 게 중요한 거죠.”
중요한 건 피해자들을 찾는 거다.
“그래서 두 번째 조항을 넣은 겁니다.”
뜬금없이 가해자들에게 당한 다른 피해자들을 챙기겠다는 조항. 그 부분을 넣은 이유가 그거였다.
“피해자들이 나오면 그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두고 보자고요,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