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48)
“룰루.”
노형진은 차량을 몰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연미는 옆 좌석에서 뒤에 따라오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진짜 이대로 하시려고요?”
“네, 왜요? 문제 될 게 있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요. 왜 하필 강원도예요?”
지금 그들이 달리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강원도다.
노형진은 모든 소송 준비를 마치고 뜬금없이 강원도를 소송 장소로 정한 것이다.
“그냥 서울에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죠.”
노형진은 우회전을 하면서 힐끔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을 따라오는 차들과 그 뒤의 방송국 차들.
이미 그쪽에는 이야기해 놨으니까.
“그런데, 그러면 이길 것 같나요?”
“그건…….”
고연미도 짧은 시간 변호사 노릇을 한 게 아니다.
그 안이 얼마나 더러운지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정치적 부담이 큰 사건들은 절대로 중앙의 판사들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노형진은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걸 모르고 퍼포먼스를 한답시고 소장 들고 촬영해 가면서 서울 중앙 지법으로 들어가죠.”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서울 중앙 지법이나 기타 법원은 쉽게 말해서 엘리트들이 가는 하이 커리어 코스다.
“우리도 거기에 소송을 넣으면 퍼포먼스야 멋있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죠?”
퍼포먼스를 잘한다고 해서 소송에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이기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 제가 강원도로 온 겁니다.”
“왜요?”
“강원도에 발령받은 사람들은 하이 커리어가 아니거든요.”
상대적으로 서울의 커리어에 밀린 자들, 쉽게 말해서 좌천된 자들이 지방 도시로 가는 거다.
“거기에다 제가 가는 곳은 그냥 지방법원도 아닌 하위 법원이죠.”
재판정이라고 해도 다 같은 등급이 아니다.
예를 들면 무슨 학교가 있고 분교가 있는 그런 것과 같다.
가장 상위 등급이 어디 어디 법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령 강원도 같으면 춘천 지방법원이 가장 상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아래가 춘천 지방법원 무슨 지원이 있다.
즉, 일종의 파견 같은 느낌인 셈이다.
중앙에서 일을 다 못 하니 다른 곳으로 파견 보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아래에 다시 법원이 하나 더 있다.
그중 하나가 현재 노형진이 가는 곳인 강원도 춘천 지방법원 속초 지원 고성군 법원이다.
지원도 아닌, 지원에서 다시 한번 파견 나간 곳이랄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알죠.”
고연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곳에 파견된 판사들은 대부분 백도, 힘도 없는 이들이다.
아니면 소위 말하는 꼴통들, 그러니까 현 정권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서 너 나가라는 거죠.”
지원만 가도 커리어는 끝장났다고 징징거리는 게 판사들이다.
그런데 그 이하 법원에 가라는 건, 쉽게 말해서 판사에게 ‘너는 퇴출 대상이다. 그러니까 알아서 기어 나가라.’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덜 받지요.”
아니, 도리어 정부가 더 불리해진다.
그곳의 판사들은 정부에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집단소송이라는 게 중요한 거죠, 후후후.”
대부분 퍼포먼스를 하면서 중앙 지법으로 가지만 노형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재판의 장소는 세 곳 중 한 곳을 정할 수 있다.
사건의 발생 장소와 피고, 또는 원고의 주소.
“그리고 우리에게는 천 명이 넘는 의뢰인이 있죠.”
당연히 그중 한 명의 주소지를 소송 당사자로 고를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춘천 지방법원 속초 지원 고성군 법원이다.
“아마 교육부는 당황해서 말도 안 나올걸요.”
* * *
“이런 미친.”
교육부 장관은 입을 쩍 벌렸다.
당연히 서울 중앙으로 들어올 거라 생각해서 그쪽에 가서 알랑방귀 뀌며 잔뜩 먹여 놨는데 뜬금없이 강원도라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어? 강원도라니? 도대체 왜 강원도로 간 거야?”
“그게…… 저희도 잘…….”
부하들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당연히 서울이 중심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재판을 하기 위해 노형진이 매번 강원도로 가는 것도 힘든 일 아닌가? 그런데 강원도라니.
“새론 이 새끼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소송을 건 것도 당황스러운데 강원도까지 내려간 그들의 행동에 교육부 장관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 사건 담당 누구야?”
“주아서 판사입니다.”
“주아서? 계집이야?”
“네.”
“전화해서 그 사건에 관해서 협조 요청해.”
부하들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말입니다.”
“또 뭐야?”
“그 주아서 판사, 원래 서울 동부에 있던 사람입니다.”
“뭐?”
서울 동부에 있다가 지원까지 내려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말을 들은 교육부 장관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니, 왜?”
“전에 국회의원 재판 하나를 담당했는데…….”
“국회의원 재판?”
“네, 집권당 국회의원이 3선 의원이었는데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 때렸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 아니, 미친년이네, 미친년!”
선거법 위반은 벌금 300만 원 이상이면 무조건 당선무효다.
그래서 알음알음 무조건 벌금 300만 원 이하가 규칙이다.
특히나 집권당이라면 어지간하면 봐준다.
심지어 3선이란다. 당에서도 실세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그런데 징역 1년을 때렸다고?”
“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까지 떨어진 국회의원이 당연히 지랄 지랄을 해서, 법원에서 그녀를 그곳까지 좌천시킨 거다.
“그년 완전 꼴통입니다. 상급자의 말을 안 듣는 걸로 유명합니다.”
“염병…….”
교육부 장관의 얼굴은 잔뜩 찡그러지기 시작했다.
* * *
“친애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의 핵심은 과연 화자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관한 내용입니다.”
마침내 시작된 재판.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고 재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인 주아서는 시큰둥했다.
아니, 어느 쪽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원고 측 변호인, 변론 취지는 이미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째서 틀렸다는 건지 정확하게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깐깐하네.’
주아서는 커리어에 신경 쓰지 않는 판사로 유명하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 타입인지라 위에서 뭐라고 하든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새론에서 데리고 오고 싶은 판사이기도 하지.’
물론 그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아직은 판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재판장님, 화자의 심정이라는 것은 구체화된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 작품을 읽은 독자나 평론가의 상황이나 사상에 따라 부정확한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 측인 교육부 담당 변호사는 노형진의 말에 반박했다.
하지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피고 측 변호인, 지금 질문을 원고 측 변호인에게 했습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네?”
“질문을 원고 측 변호인에게 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원고 측 발언 시간입니다. 추후에 발언하세요.”
그녀의 칼 같은 자름에 피고 측 변호사는 벙 찐 표정이 되었다.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겠지.’
판사가 이렇게 칼같이 구는 건 처음일 것이다.
그동안은 대형 로펌의 후광을 등 뒤에 지고 편하게 재판했을 테니까.
‘태양 쪽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겠지.’
손채림의 아버지인 손하균이 운영하는 태양은 현 정권의 사건을 싹쓸이하고 있다.
그러니 법원과도 무척이나 긴밀하다.
따라서 이런 경험은 더더욱 처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화자의 심정이란 말 그대로 그 작품을 통해 작가가 세상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21세기, 기회를 박탈당하고 노예 취급을 받는 청년들의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이 전혀 뜬금없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면서 현실에 수긍하라는 식으로 되어 있지요.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해석입니다. 정상적인 해석이 아닌 변질된 해석으로 인해 문제는 정상적인 풀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심지어 다른 예문에조차도 관련 해석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애초부터 문제가 잘못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재판장님, 문학작품은 제대로 된 해석이 중요합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주아서는 그제야 피고 측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피고 측, 진술하세요.”
“재판장님,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개개인이 보고 판단하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릅니다. 당장 누군가는 이슬람을 보고 평화의 종교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테러의 종교라고 합니다. 코란은 하나인데 그걸 해석하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상반된 양면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쪽만을 볼 수는 없고 여러 면을 봐야 진실이 보이는 것이 문학입니다.”
‘말은 잘한다.’
노형진은 나름 방어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였으니까.
차마 정치적 해석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 사람들의 해석의 차이를 들고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넘어가겠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주아서 판사의 얼굴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전혀 동조하지 않을 테니까 당연한 거다.
‘저건 궤변이거든.’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판사를 쥐고 흔들어 봐야 그녀가 넘어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더군다나 이 문제를 제출한 사람들은 한국 최고의 석학들로서 그들의 해석은 다년간의 연구를 거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런 것을 일반인이 봤을 때 이상하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거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 할 말 있습니까?”
주아서의 말에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서로 주장할 시간은 끝났다.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시기다.
“피고 측 변호인에게 묻겠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은 한국 최고의 석학들의 연구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연구 논문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뭐라고요?”
“개개인의 주장이 아닌 석학들의 연구 논문에서 나온 결과라면 그걸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 그건…….”
‘그래, 권위에 기대는 오류의 함정이지.’
수능 문제를 제출한 사람들은 분명 한국에서 골라서 뽑은 인재들이니 그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걸 연구한다고? 개소리.’
수능 문제를 내는 사람으로 선발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수능이 끝날 때까지 풀려나지 못한다.
연구 논문을 발표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 논문은 아직…….”
“그러면 석학들의 연구로 나온 결과가 아니죠.”
“지금 시험관들을 무시하는 겁니까?”
“무시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 자리는 문제의 오류 여부를 따지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문제 출제자의 권위를 들고나온다면 어떤 문제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문제의 오류 여부를 따질 때는 그 문제를 만든 사람의 권위는 계산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이 만든 논리는 모두 절대적인가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인슈타인도 살아생전에 잘못된 계산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절대적이지 않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 그가 대단한 사람이니 오류가 없을 거라는 것 자체가 완벽한 오류다.
“그리고 피고 측 변호인, 객관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아십니까?”
“압니다.”
지금까지 감성으로 패 버렸다면, 이제는 팩트로 두들겨 패야 하는 시점이 왔다.
노형진은 팩트라는 무기를 슬금슬금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래요? 뭔지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지금 장난합니까?”
“장난이 아니라 변론입니다. 설명해 주시죠.”
피고 측 변호사는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남과 내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어느 정도는 맞네요.”
“어느 정도?”
“재판장님,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객관은 없다. 오로지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주관만 있을 뿐이다.”
“흠…… 심오한 말이네요.”
주아서는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객관이라는 것은 어쩌면 진짜로 없는지도 모른다.
가령 전쟁은 나쁘다는 것은 현대에 와서는 객관화되어 있지만, 일부는 과거에 전쟁이란 영광된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객관이라는 것은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다수가 생각하는 것이 객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죠?”
“이 문제에 대해 피고 측 변호사는 피고 측이 객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작 그 문제의 정답률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답률?”
뜬금없는 정답률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갸웃하는 주아서.
“증거 갑제3-1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기록은 지난 수능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해당 문제의 정답률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문제의 정답률은 0.72%입니다. 즉, 백 명 중 한 명도 이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문제라는 것은 객관화가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심지어 주관식도 아닌 객관식 문제입니다. 오지선다형 문제인 만큼 단순 계산을 한다고 해도 20%의 정답률은 나와야 하지만 정답률은 단 1%도 안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출제자의 주관에 맞춰서 해석하라는 문제는 객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형진의 팩트 폭력에 피고 측 변호사는 점차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팩트로 두들겨 패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지문의 선택률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선택률 89.7%인 3번이 가장 해석이 가깝습니다. 그나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3번 지문을 보자면 주인공은 현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세상만을 탓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답은 아니지만 사실상 절망감에 대한 감정을 토로하는 지문은 유일하게 이 지문 하나뿐입니다.”
“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객관성이라는 것은 결국 같은 생각을 뜻합니다. 그런데 89% 이상의 지지를 받은 해석이 도리어 틀린 답이라는 논리가 가능할까요? 화자의 심정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라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절망감을 느꼈는데 뜬금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정답이라는 게 해석으로서 온당할까요?”
노형진이 공격을 할 때마다 피고 측 변호인은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그가 궤변을 늘어놓아도 상대방이 팩트로 나오면 결국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까 피고 측 변호인은 개개인이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정답이었던 1번의 선택률은 0.72%, 다섯 개의 지문 중 최하위입니다. 즉, 그 감정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거나 수긍하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문제가 제대로 출제된 게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노형진의 말에 피고 측 변호사는 다급하게 말을 잘랐다.
“석학들의 연구에 따르면…….”
“피고 측,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은 원고 측 변론 시간입니다. 말 자르지 마세요.”
주아서의 말에 피고 측 변호사는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판사님.”
판사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한 노형진은 피고 측 변호사를 보며 씩 웃었다.
‘아주 죽을 맛이겠지.’
어떻게 해서든 소송을 무마해야 하는데 그 답이 안 보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해당 문제는 극히 일부의 해석을 주류 해석으로 판단하여 만들어 낸 것입니다. 수능이라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로 해야 하는 만큼 주류가 아닌 소수의 해석을 정답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해석이라니요! 그건 석학들이……!”
“피고 측 변호인, 원고 측 말을 끊지 말라고 세 번째로 경고드립니다. 한 번만 더 끊으면 법정 모독으로 체포하겠습니다.”
그러자 피고 측 변호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깐깐한 원칙 주의자라고는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로서는 다행이지.’
노형진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피고 측 변호사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사실 정부에서는 사건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이첩을 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아서는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이첩을 할 경우 정치적 의견이 개입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재판장님, 피고 측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 말이 맞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이 문제는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문제가 됩니다.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화자의 심정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피고의 주장을 반박하는 셈이 되니까요.”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이라면 그런 문제는 제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제출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정해진 답을 고르도록 강요했다.
“으으…….”
피고 측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멍청하긴.’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은 나름대로 방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어라는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지.’
차라리 법리에 의한 싸움이라면 모를까, 감성에 기대는 판단은 그들의 말대로 법에 따라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재판장님, 지금 이 사건의 핵심은 화자의 심정입니다. 그러면 화자란 무엇인가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보입니다.”
노형진은 당혹한 상대방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래 끌 수는 없지.’
분명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덮기 위해 사건을 이첩시킬 것이다.
그게 안된다고 하면 주아서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녀를 정직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당연히 그녀가 담당하던 사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골 법원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놈도 있기 마련이거든.’
좌천되어 여기로 온 사람들이 다 정의롭지는 않다.
그중에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징계를 받아 온 사람도 있다.
다시 불러 준다고 조건만 달아 준다면 진실은 그들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 된다.
“화자라는 단어의 정의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화자, 그러니까 이런 소설의 경우, 말하는 이입니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옵니다. 그냥 복제된 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그래서요?”
“즉, 이 소설에 있어서 말하는 이는 이 작품의 작가일 수밖에 없고 이런 문제는 길게 끌 필요도 없이 그 화자 당사자, 그러니까 작가를 증인으로 요청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형진의 말에 주아서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지요.”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가 하는 말은 평론가니 석학이니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러므로 저는 이 소설의 작가인 서중서 씨를 증인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상대방 변호사의 얼굴은 흉신 악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