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53)
필 모리스의 예상대로 지원은 거절당했다, 소문만 가지고 추적하기에는 쓸데없이 예산이 많이 든다는 소리와 함께.
“뭐든 소문에서 시작되는 거 아닌가?”
“맞아.”
“그런데 저건 뭐지?”
“인정하기 싫은 거지.”
오광훈에게 노형진은 느긋하게 말했다.
그들은 지금 트럭을 타고 있었다.
말이 트럭이지 장갑차나 마찬가지다.
보강을 통해 장갑차 노릇도 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
“좌천된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싫다는 마음도 있고.”
“에헤, 인간이 사는 곳은 다 똑같네.”
“똑같지.”
필도 최선을 다해서 설득했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쩌면 믿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리어 땡잡은 거지.”
그들이 도움을 거절한 덕분에 인디언 민간 군사 기업인 토마호크가 기회를 잡았다.
그 덕에 장기적으로 해외에서 활동은 못 하지만 토마호크가 미국 내에서 갱단과 싸우는 쪽으로 일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석하게도 다른 민간 군사 기업들은 그쪽으로 손을 안 대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노형진과 함께 그 중간 집결지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방송국까지 부르다니.”
“팍스? 아, 거기는 이런 걸 좋아하는 집단이거든.”
“그래?”
“그래.”
언론이 중심을 잡고 저널리스트로서 아무런 편견이나 이념 없이 활동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인간이 활동하는 조직이라는 특성상 그건 불가능하다.
“팍스는 그중에서도 우파적 성향이 강하지.”
우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애국을 강조하며 영웅주의를 추구하고 그와 동시에 남성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전국 채널이 바로 미국의 팍스다.
“그들이 이걸 촬영해서 뿌리면 전 미국이 난리가 날걸. 애초에 말했잖아, 너와 필 모리스를 영웅으로 만들 거라고.”
“영웅이라…….”
오광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하긴, 그는 그저 조폭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되살아나더니 한국도 아닌 미국의 영웅이라니.
“그러면 늘씬한 금발 미녀가 나한테 육탄 돌격 같은 거 많이 하겠지? 이야, 콘돔을 박스로 사 놔야겠네, 이히힛.”
갑자기 웃는 오광훈을 보고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문제는 그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일이라는 거다.
미국의 문화 특성상 하룻밤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향도 있는 데다가, 실제로 영웅이라고 하면 그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디 보자, 백자연 양 전화번호가…….”
“어허! 쓰읍! 동지! 이러긴가? 여기 미국이야, 미국!”
“그래서?”
“나 스님 아니다.”
“여기 찾았네. 요즘 국제전화 비용이 얼마더라?”
“아,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결국 오광훈은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장난으로 대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난만으로 끝낼 상황은 아니다.
“너는 지금부터 영웅이 되어야 해. 쉽게 말해서 한국에서 날아온 영웅이라는 거지. 그래서 너랑 필 모리스 두 사람이 담보대출 형식으로 마이스터에서 돈을 빌린 거고.”
“끄응…….”
“그런 놈이 여자 끼고 다니다 걸려 봐라. 그러면 어떻게 되겠냐?”
“어…… 미국은 그런 거 신경 안 쓸 것 같은데?”
“미국이야 신경 안 쓰겠지.”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한국에서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청렴이라는 내용에는 여자관계도 포함된다.
실제로 여자관계가 복잡한 공무원은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 위반 사유로 징계 대상이기도 하다.
자기 일만 하면 이혼을 하든 바람을 피우든 그건 개인 사정으로 두는 미국과 완전히 다르다.
“더군다나 지금 너를 보낸 놈들은 너를 좌천시킨 놈들이야. 네 실적 깎고 싶어서 눈을 뒤집고 있는 그놈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냐?”
아마도 일하라고 보냈는데 가서 여자들이나 후리고 다닌다는 식으로 보고를 올릴 것이다.
“씨발. 진짜 머리 깎고 스님 되어야 하나. 필 모리스 이 개객기.”
자신이 고자 노릇을 하면 필에게 인기가 쓸릴 건 당연한 일.
거기에다 필은 미혼이고 검사라는 유망한 사람이다.
거기에다 미국 사람이니 그런 관념에서 자유롭다.
“선물로 콘돔 한 박스 사 줘야겠네, 바늘로 구멍을 뚫어서.”
“뭔 큰일 날 소리를 해?”
노형진은 오광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더 좋은 거 생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그나저나 도착한 모양이다.”
차량이 멈추는 걸 느끼고 노형진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뜨거운 열기가 확 닥쳐왔다.
“여기에 중간 기지가 있다고요?”
“네. 저 언덕 두 개만 넘어가면 됩니다.”
“음, 확실한 겁니까?”
“확실합니다.”
“어떻게 확신하세요?”
‘그거야 당신이 쓴 보고서를 봤으니까.’
그가 갱단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한 여자의 실종 사건 때문이었다.
매춘으로 조사를 하던 여성이 갑자기 실종되었다.
지역 경찰은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그는 그 사건을 추적했다.
‘매춘부라고 해서 다 같은 조직이 아니었으니까.’
전형적인 금발 백인, 파란 눈의 매춘부. 조사 대상이던 그녀가 사라지고 추적을 하다가 그들과 마주친 게 필 모리스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후지.’
노형진은 이미 그녀에 대해 찾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실종 상태였다.
필 모리스도 그녀를 안다고 인정했고.
‘그리고 지역 경찰들은 신경도 안 썼지.’
돌아다니면서 매매춘을 하는 여자들은 많으니까.
즉, 시기적으로 보면 그들이 활동하는 시기는 맞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납치된 사람들은 저곳에 있다고 했고 말이다.
“중요한 건 거기에 병력이 얼마나 있느냐는 건데.”
물론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들이닥쳤는데 열 명 정도만 있으면 사회적 이슈를 불러오기 힘들다.
‘결국 그건 운에 맡겨야지.’
아무리 이슈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팔려 나가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일단 정찰 팀이 먼저 그곳으로 갔으니 곧 정보를 가지고 올 겁니다.”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정찰 팀이 정보를 가지고 온다면 그들을 체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일단 정보에 따르면 그곳은 외부에서 봐서는 농장입니다. 메인 건물이 있고 그 주변으로 소들이 다니기는 하지만 눈가림용이죠.”
축사로 보이는 건물은 사실 감금 시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분류해서 팔아 대는 게 그들이다.
“저기 정찰 팀이 오는군요.”
노형진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산악 오토바이를 보고 말했다.
불을 끄고 산악 오토바이로 접근했던 인디언들은 어렵지 않게 정찰을 마쳤다.
불을 켜 두면 외부의 어둠 속을 잘 못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착한 정찰 팀이 가지고 온 정보는 생각과 달랐다.
“텅 비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도 없다는 소리입니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
“네. 외부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어서 조금 위험해도 창문으로 실내를 확인해 봤는데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잡혀 있던 흔적은 있는데…….”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분명 여기인데?”
이곳은 미래에도 운영되는 곳이었다.
10년 후 필 모리스가 본진을 칠 때 가장 먼저 습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즉, 그때까지 운영되어야 정상이라는 거다.
그런데 텅 비다니? 그건 불가능하다.
안 쓰는 시기라고 해도, 분명 관리인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한다.
‘뭐지? 정보가 샌 건가?’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때 갱단의 자세한 정보는커녕 이름도 알려 주지 않았으니 거기서 정보를 빼돌렸을 리는 없다.
‘토마호크도 내가 나서서 고용했으니 중간에 샐 곳이 없는데.’
그러면 다른 곳에서 새어 나갔다는 건데.
노형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한정된 상황.
이 상황에서 필 모리스가 도움을 청할 곳은 뻔했다.
“여기 누군가 중 한 명이군요.”
“네?”
필 모리스는 당황해서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둘러보자 보이는 것은 토마호크 멤버들과 자신이 도움을 청한 지원자들, 그러니까 파견 나온 검사들뿐이다.
“설마요, 그럴 리가요! 다들 파견 나온 자들 아닙니까? 갱단과는 선이 없을 텐데요.”
노형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보통은 없다.
‘보통은’ 말이다.
“하지만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네?”
“어차피 좌천 아닙니까? 돌아가 봐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좌천당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가 봐야 한직으로 쫓겨나는 거고, 운 나쁘면 검찰에서 잘리는 거다.
즉, 여기에 온 순간 미래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누군가 접근한다면 안 넘어갈까요?”
“이런.”
필 모리스는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노형진 역시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입술을 깨물었다.
‘10년 전과 다른 것. 그건 사람이야.’
일반적으로 여기에 파견 나오는 기간은 2년.
그러니까 10년 후 이곳을 습격할 때 도와준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없다는 소리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 있는 거고.
“잠시만요. 오 검사랑 함께 다시 이야기를 해 보죠.”
노형진은 오광훈을 불렀다.
물론 거기에 들어가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들어가 봐야 아무런 실적도 없다.
‘도리어 위험하지.’
이런 경우 놈들이 그곳에 폭탄을 설치했을 수도 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일망타진을 노릴 테니까.
“그래서 도망갔다고?”
“그래.”
“그러면 뭐야? 닭 쫓던 개가 된 거야?”
“그런 것 같은데 어쩐다.”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의 계획과 완전히 틀어진다.
걸린 걸 알았으니 분명 꼬리를 말기 시작할 테고, 그러면 당연히 미래와 달라질 테니 그들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누가 범인인지 모른다고?”
“그래. 분명 여기에 있는 파견 검사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하는데 누구인지 특정할 수가 없어.”
물론 노형진이 기억을 다 읽으면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걸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노형진이 기억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 증명을 할 수가 없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뭐든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건 무리야. 들어갔는데 폭탄이라도 설치되어 있으면 어쩌려고?”
“폭탄?”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폭탄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일부 조직에는 파이프 폭탄을 만드는 법이 알려져 있고요. 실제로 범죄 조직은 자기네 아지트가 드러나면 경찰에 타격을 주기 위해 폭탄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로 텅 비어 있는 그곳에 들어갈 만큼 필 모리스는 바보가 아니다.
“흠.”
오광훈은 잠깐 고민하더니 씩 웃었다.
“어떤 새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네.”
“뭐?”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자신도 기억을 읽어 내지 못하면 찾을 수가 없는데 알 수 있다니?
“어쩌려고?”
“어쩌긴. 날 믿어. 나 오광훈이야! 대한민국 검사! 범죄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아.”
“검사는 개뿔.”
노형진은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범죄자들의 생각에 정통한 건 사실이다.
범죄자 출신이니까.
“대충 의심이 가는 새끼가 있기는 하거든.”
“누군데?”
“내가 보여 줄게.”
“헐?”
한술 더 떠서 보여 준단다.
당장 노형진도 증거를 보여 줄 수가 없어서 기억을 읽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오광훈의 행동은 파격적이었다.
“‘검사님들, 여기 모여 주세요!’라고 영어로 말해 줘.”
“얼씨구?”
“아, 빨리.”
“그래그래, 알았다.”
노형진은 그의 말대로 검사들을 모았다.
노형진은 그가 무슨 일장 연설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가 한 행동은 트럭에서 몇 개의 소총을 가지고 와서 검사들에게 나눠 준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저기에 돌입합니다.’라고 말해 줘.”
“미쳤냐? 저기는 위험해!”
“그래서 들어가는 거야.”
그러면서 오광훈은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냥 말해 줘. 대충 감이 오는 새끼가 있으니까.”
“끙.”
노형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광훈의 말을 그대로 통역해 줬다.
당연히 검사들은 당황했다.
“최초 돌입은 저기 훈련된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었나요?”
“그랬지요.”
“그런데 우리가 돌입한다고요?”
“네.”
“아니, 왜요?”
여기까지 와서 만에 하나라도 총격전을 벌이면서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돌입이라니?
“보고로는 그들이 도망갔다고 합니다. 현재 추격조가 그들을 발견해서 추적 중이고, 병력은 그쪽을 추적할 겁니다.”
“추격조?”
“그들이 도망갔다고?”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이 다급하게 도망간 이상 거기에는 그들이 남겨 둔 정보들이 가득할 겁니다.”
“아!”
“그건 우리가 챙겨야겠지요?”
그 말을 통역해 주던 노형진은 오광훈이 뭘 노리는지 알았다.
‘똑똑한 새끼.’
지금 도망간 거라면 폭탄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물론 다들 그 말을 믿을 것이다.
한 명만 빼고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돌입해서 정보를 챙깁시다. 추적은 여기 필 모리스 검사가 하기로 했으니까,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실적만 챙기면 됩니다.”
“그러면 이건요?”
“기자가 촬영 중 아닙니까? 그래도 그림 좀 만들어야 목소리라도 좀 내 보죠.”
무장도 안 하고 터벅터벅 가서 서류만 챙기면 그냥 주워 먹었다는 소리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그림 좀 만들어 봅시다.”
그러면서 소총을 건네주는 오광훈.
그걸 보고 노형진은 살짝 걱정했다.
‘너 미필이잖아?’
다른 나라에서 온 검사들은 능숙하게 무기를 받아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에 온 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 쪽 검사들인데 중국은 공산당 휘하에 있다 보니 소총 정도는 만져 볼 일이 있고 러시아 역시 그건 마찬가지다.
동남아는 반군도 있는 나라가 많아서 경찰도 소총을 다를 줄 아니까.
다행히 오광훈도 주워들은 건 많은지 그럴듯하게 파지를 했다.
“자, 여기 받으세요.”
오광훈은 아까 전 자신이 바라보던 쪽, 그러니까 일본 검사에게 다가갔다.
“어, 전 소총을 써 본 적이 없는데요.”
“그냥 저처럼 잡으시면 됩니다. 어차피 총 쏠 일 없어요.”
쭈뼛거리는 일본 검사에게 다시 한번 총을 내미는 오광훈.
그러나 일본 검사는 재차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는 권총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그림이 안 나오는데?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그래도 그림은 나와야 하니 저랑 같이 선두에 서시죠.”
“아니…… 그럴 필요야…….”
“왜요?”
“전 그냥 후방에서 따라가겠습니다. 군사훈련을 받은 적도 없어서 자세도 잘 모르고…….”
“다 그래요. 대충 영화 따라 한다 생각하세요. 이참에 영웅 한번 되어 봐야지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전 총격전 같은 걸 겪어 보지 않아서…….”
오광훈이 씩 웃었다.
“다 그렇다니까요. 선두에 서시죠?”
“전 그냥 빠지겠습니다. 일본 검사는 대중에 신분을 쉽게 노출하면 좀 곤란해서…….”
극구 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일본 검사.
그랬기에 그런 그가 범인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광훈은 자기가 말한 대로 확실하게 그가 범인이라고 보여 줬다.
“그렇다면야.”
어깨를 으쓱하는 오광훈.
다음 순간 그는 개머리판으로 검사의 얼굴을 후려쳤다.
“억!”
이빨을 허공에 날리면서 바닥에 쓰러지는 일본 검사.
오광훈은 그런 그에게 다가가 얼굴에 한 번 더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만둬요!”
“스톱! 스톱!”
다들 다급하게 말리려는 찰나 노형진과 필 모리스는 그들을 멈춰 세웠다.
지금 상황에서 의심스러운 건 그였으니까.
“으어어…….”
일본 검사가 허우적거리는 사이 오광훈은 능숙하게 수갑을 채우고 그를 포승줄로 묶어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래, 가기 싫다고? 오냐, 나랑 같이 가자.”
“으어어어!”
“왜 그렇게 앙탈이야? 내가 어디 못 갈 데 가냐? 그냥 빈 건물만 가자는 거야!”
“안 돼! 안 돼!”
“뭐라는 거야! 한국어 해! 한국어! 몰라? 그러면 같이 가는 거지, 뭐.”
일본 검사가 몸부림쳤지만 오광훈은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몸부림치는 그를 붙잡고 어깨에 올렸다.
“앙탈은. 너도 좋으면서 왜 그래? 일본어로 뭐라더라? 기모치? 맞나? 좀 가만히 좀 있어 봐. 내가 아주 높은 곳으로 훨훨 보내 줄게. 아주 뿅 가게 해 준다니까. 아, 이거 대사가 너무 범죄 삘 나는데?”
‘저거 일본어라고는 야동에서 나오는 것만 아는 거 아냐?’
노형진은 헛웃음을 감추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오광훈은 저항하는 그를 짊어지고 차로 다가갔다.
“실적이라고. 가서 건물 한 바퀴만 돌면 되는 거야.”
“안 돼!”
“뭐라는 거야!”
거리낌 없이 차량 뒤에 그를 태운 오광훈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디 보자, 액셀에 고정 장치 하나만 해 두면 건물 안으로 굴러들어 가겠지?”
주변을 확인해서 나뭇가지 하나를 찾아 액셀에 고정하려고 하자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차린 일본 검사는 몸부림을 쳤다.
“제발 그만둬! 이봐요! 이 미친놈 좀 말려 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저 사람 좀 말려요!”
총을 쏘자니 주변에 무장 병력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는 검사들.
하지만 노형진의 말에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 안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누가 우리가 온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더군요.”
그리고 검사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 계속 후방에만 있지 않았어?”
“그러네. 돌입도 거절하고.”
“아니, 애초에 작전에 별 관심도 안 보였어.”
도와주러 왔으면 다들 총격전을 각오하고 오는 거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인지 총격전에 꺼림칙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일이 별로 없는 일본 출신이라서 그런가 했지만, 생각해 보면 오광훈도 그다지 총격전이 있는 나라 출신인 것은 아니다.
“말려 줘! 제발!”
“폭탄 안 터지면 내가 정중하게 사과할게. 걱정하지 마. 아니다. 형진아, 번역 좀 해 줘라. 너의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 아니다, 그러면 안 되겠구나. 혹시 예쁜 여동생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너 혹시 예쁜 여동생 하나 있냐? 어? 누나는 일본어로 뭐라고 하지?”
“미친놈.”
“이히힛!”
노형진은 진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다른 검사라면 저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긴, 오광훈이 미친 짓 하는 게 한두 번이야?’
아무리 전생했다고 하지만 본질은 조폭이다.
조용히 가만히 있다가도 수틀리면 미쳐 날뛰는 게 그의 본질이다.
“붐!”
뒷좌석에 일본 검사를 꽁꽁 묶은 채로 운전석에 타려고 하는 오광훈.
그러면 이대로 헛간으로 갈 테고, 거기서 내려서 액셀에 미리 준비한 작대기만 고정하면 차는 알아서 건물로 들어가는 거다.
“으아, 이 미친놈아! 거기 폭탄이 있다고!”
“폭탄?”
“지금 폭탄이라고 했어?”
다들 일본 검사의 말에 깜짝 놀랐다.
폭탄이 있다는 것. 그건 그가 배신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배신자 새끼야, 잘 구워지면 내가 유가족한테 알려 줄게, 영웅적으로 온몸으로 폭탄을 막았다고. 아, 그런데 시신은 남나? 안 남으면 뼈라도 하나 찾아서 줄게. 유언은? 아, 맞다. 나 일본어 모르지? 남기지 마라. 뭐라는 거야? 나 일본어 못한다니까. 낫 재팬? 이거 맞나? 아, 씨발, 몰라.”
아주 막나가는 오광훈.
그리고 이제 일본 검사는 아예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나야! 내가 정보 흘렸어! 살려 줘! 이 미친놈 좀 말려 줘! 그래! 내가 배신자야! 제발 살려 줘! 아는 거 다 불게! 제발 말려 줘!”
노형진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광훈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광훈아.”
“응?”
“너 졸라 못생겼대.”
“이 씨발 롬의 새끼가!”
뒤통수를 후려친 오광훈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뒷좌석에서 그를 내리고는 트렁크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쾅’ 소리가 나도록 트렁크를 닫은 뒤 몸을 돌려 열쇠를 들었다.
“그래서 이거 운전해 보실 분?”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검사들은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제스처로 이해했다.
만일 자신들이 돌입했다면 죽은 건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오광훈 덕분에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렸고 트렁크에는 그 원흉이 들어가 있다.
아마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는 공포에 벌벌 떨면서 몸부림칠 것이다.
그리고 운전석에서는 그 처절한 비명이 다 들릴 테고.
다들 검사라서 죽여 버릴 수는 없으니 소소한 복수인 셈이다.
“제가 하죠.”
러시아 검사가 가장 먼저 나서서 오광훈의 손에서 열쇠를 낚아챘다.
오광훈은 씩 웃으며 문에서 비켜 줬다.
“잠깐, 옆자리 내 거.”
“뒷좌석 세 개 남았으니까 다 타고도 남겠네.”
일본 검사에게 이렇게나마 복수를 하고 싶은 건 다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우르르 차에 올라탔고, 러시아 검사가 시동을 걸자 트렁크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 살려 줘! 제발! 뭐든 다 말할게! 으아아!”
심지어 필 모리스조차 슬쩍 뒷좌석에 올라타서 비명과 함께하는 드라이브에 동행했고 비명은 저 멀리로 멀어져 갔다.
뒤에 남은 노형진은 오광훈을 바라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안 거야?”
“뭘?”
“저놈이 범인인 거 말이야. 난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알긴?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범인은 일본 놈이야.”
“뭐?”
“당연히 일본 놈이 범인이지.”
“허.”
그러니까 진짜 의심스러운 게 보여서가 아니라 투철한 반일 감정을 가지고 그냥 무조건 일본 사람을 찍어 본 것이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아도 유분수지.’
안 그랬으면 진짜 국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뻔했다.
“그래, 운 좋은 것도 실력이다.”
노형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이상한 점이 있었다.
“도대체 총 파지법은 어디서 배운 거야? 너 병역 미필이잖아.”
군대도 가기 전에 전과를 달아서 군대를 못 갔으니까.
“예비군 훈련.”
“예비군? 네가 무슨 예비군을, 아…….”
전에 조폭일 때는 그런 게 없었겠지만 그는 현재 검사 오광훈이다.
당연히 예비군 훈련이 있을 것이다.
“이 새끼 완전 운발이네.”
노형진은 진짜 운발 하나만은 끝내준다고 생각하면서 오광훈을 바라보며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현대판 히어로
“일본 검사가 다 불었습니다.”
필 모리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와서 3개월쯤 되었을 때 접근했다고 하더군요.”
수사 자료를 빼 주는 대신에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고 말이다.
사실상 좌천되어서 여기까지 왔기에 답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 검사에게 제시된 금액은 절대 적은 게 아니었다.
‘어쩐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년이나 걸렸다 싶었다.’
무려 10년이나 숨어 다닌 놈들이다.
누군가 정보를 빼 주지 않으면 그럴 수는 없다.
아마도 그 습격 당시는 전에 정보를 빼 주던 자가 귀국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데…….”
필 모리스는 노형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 검사가 인정한 이상 노형진이 줬던 정보는 진실인 셈이니까.
그리고 자신이 멍청하게 구는 바람에 그 기회를 날려 버린 셈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한 일이기는 한데…….”
노형진은 턱을 긁으면서 고민을 했다.
현재 상황은 바뀌었다.
‘아마도 내가 아는 지점은 다 철수하고 있을 테지.’
한 지점이 드러났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들은 철저한 자들이니까.
‘결국 아래에서 추적해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해질 거야.’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관련 정보를 모두 폐기할 테니까.
“상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사건에서 손을 떼랍니다.”
“그래요?”
“별로 안 놀라시네요?”
“일본 검사가 꼈잖습니까?”
일본 검사가 변절했다.
그가 정보를 흘려서 갱단이 도피한 건 큰 사건이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일본에 양보를 얻어 낼 생각이겠지.’
물론 갱단이야 계속 추적하겠지만, 그건 필 모리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시킬 것이다.
“더군다나 그 갱단이 미국에서 납치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음…….”
노형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리고 이제 와서 어떻게 잔챙이 몇몇 잡는다고 해도 두 사람이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오광훈이 마냥 여기에 잡혀 있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지.’
오광훈은 노형진이 계획한 검찰 스타 계획의 핵심이다.
그러니 그가 여기서 잊히도록 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절대 바꿀 수 없는 걸 노려야지.’
조직에서,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결국 부품일 뿐이다.
아무리 아래를 잡아도 위에서는 계속 사람을 고용해 채우면 그뿐이다.
하지만 위가 박살 나면 아래는 재생하기 힘들다.
“보스를 압니다.”
노형진은 결국 보스를 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네? 그런데 그걸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언제 보스가 증거를 남겨 두는 거 봤습니까?”
“그건 그런데…….”
“제가 여기서 그에 대해 말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을 테지요. 그리고 그 때문에 아마 필 모리스 씨는 커리어가 끝장났을 겁니다.”
“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이기에요?”
“심슨 머레이입니다.”
필 모리스는 입을 쩍 벌렸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네? 그 사람 유명한 재력가 아닙니까? 자원봉사로 유명한 사람인데요.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아니, 그 사람이 보스라고요?”
심슨 머레이.
텍사스주의 유명 자원봉사 단체 ‘남부의 태양’을 이끄는 사람이다.
그는 밀입국자들의 인권 운동가이며 또한 빈민들을 위해 저가의 치료소를 운영한다.
그리고 수많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남부의 태양을 통해 전 지역에서 남는 음식을 모아서 빈민들에게 나눠 주는 자원봉사를 한다.
“그래서 더 안전하죠. 누가 그가 보스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음식은…… 아…….”
그제야 필 모리스는 아차 싶었다.
“저들이 매년 데리고 오는 피해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을 먹이는 것도 일이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것도 일이고, 그 정도 규모가 되는 조직이라면 그런 걸 사다 쓰거나 의료인을 부르면 범죄가 드러날 수도 있다.
“음식 공유라는 게 뭐지요? 결국 남는 음식물을 나눠 먹는 거 아닌가요?”
가령 빵집에서 만든 빵 중 하루가 지난 것들.
그리고 즉석 식품 코너에서 만든 것 중 이틀쯤 지나서 팔 수 없는 것들.
그런 걸 버리는 데에는 돈이 든다.
하지만 그걸 공유하면 버리는 사람은 음식 쓰레기 처리 비용을 덜고 가난한 사람은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다.
그리고 지구적으로는 음식 쓰레기를 덜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서로 윈윈한다.
“그리고 그건 추적이 불가능하죠.”
버리는 거니까.
“그게 납치 피해자들에게 넘어가도 알 방법이 없지요.”
“그…… 그런…….”
더군다나 그는 밀입국자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누가 그를 의심하겠는가?
“거기에다 그에게는 사람을 나를 수 있는 트럭이 충분히 있지요.”
“으음…….”
남부의 태양 소속 자원봉사자 트럭.
공식적으로는 전 지역의 기부된 음식을 나르는 트럭이다.
“그걸로 사람을 나를 거라고, 그 누가 의심할까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람, 재력가로 소문났죠? 그 돈이 어디서 오던가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넓은 땅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는 전문 투자자라고 소개를 하고 다니는데…….
“저는 마이스터의 한국 대리인입니다.”
마이스터에서 심슨 머레이 정도의 큰손에 대해 모를 수는 없다.
물론 다른 기업에 투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심슨 머레이라는 투자자의 존재 여부는 확인해야 한다.
“하기는 하더군요. 대략 200만 달러 수준으로요.”
“200만 달러요?”
“네.”
한국 돈으로 치면 23억 정도.
“그 정도 재력을 가진 사람이 투자자로 이름을 떨칠 수는 없죠.”
즉, 돈이 나오는 다른 구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원도 메꾸기 쉽지요.”
진짜로 밀입국도 하기 때문에 그들을 데려다가 자기네들이 써먹어도 된다.
“심슨 머레이라고요…….”
필 모리스는 신음을 흘렸다.
노형진이 한 말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적 인맥이 많은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자신 정도는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다.
“그게 확실…… 아니, 확실하겠지요.”
노형진이 심슨 머레이에게 무슨 억하심정을 가지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면 어쩌죠? 그를 잡아야 하는데.”
영장? 턱도 없는 소리다.
아래부터 잡아서 증거? 이미 물 건너갔다.
‘그래, 그게 문제지.’
원래 역사에서 필 모리스는 조용히 움직이며 심슨 머레이를 엮고 집결지 습격부터 심슨 머레이 체포까지 2주도 안 걸렸다.
그만큼 치밀하게 자료를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건 글렀다는 거지.’
노형진은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했다.
“더군다나 노 변호사님 말씀대로라면 미국 갱단이라는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지하 터널은 멕시코 갱단이 뚫어서 밀입국용으로 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반대 상황이다.
“그러면 지하 터널은 사유지 안에 있겠네요.”
“정확하게 잘 아시네요.”
그럼 영장이 없으면 접근도 못 한다.
그렇다고 몰래 접근하자니, 그건 증거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끄응…… 방법이 없나…….”
고민하는 필 모리스를 보다가 노형진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했다.
“역으로 움직이죠.”
“역으로요?”
“필 모리스 씨가 여기서 손을 떼는 겁니다.”
“네?”
“오광훈 검사를 전면에 내세웁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분은 미국에서 수사권도 없는데요.”
공조수사라고 해서 오광훈에게 미국 내에서의 수사권이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미국의 수사에 ‘협조’를 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연락선 정도였던 것뿐이고.
“그래서 그를 내세우자는 겁니다.”
오광훈은 여기 검사가 아니다.
여기서 지랄을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물론 진짜 누명을 씌우는 거라면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니까요.”
당연히 미 정부에서는 거칠게 항의할 테고, 한국 정부는 오광훈을 한국으로 소환할 수밖에 없다.
“그사이 필 모리스 씨가 움직이는 거죠.”
“제가 움직인다……. 그러니까 오 검사님이 가면이 되는 거군요.”
“네. 그게 목적입니다.”
오광훈이 지랄 지랄 하면서 시선을 끄는 사이, 필 모리스가 뒤에서 비밀을 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커지면 심슨 머레이는 부담을 느끼겠지요. 그러면 사람을 팔지는 못할 겁니다.”
“그건 그렇지요, 그들의 목적이 인신매매라면.”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필 모리스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런 식의 갱단은 대응법이 비슷하다.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고 위험하다 생각하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처리한다.
그게 그들을 풀어 준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마도 처분하겠군요.”
처분, 그러니까 죽여 버린다는 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팔았다가 헛소리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 순간을 노립시다.”
“너무 위험합니다!”
만일 타이밍을 놓치면 그 사람들이 죽는 거다.
“그러면 안 하면요?”
“그건…….”
안 해도 죽는다.
어차피 지금 저들은 뒷수습을 위해 움직일 테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본 검사까지 회유해서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도리어 오광훈 검사가 전면에 나서면 그들의 움직임은 제한됩니다.”
심슨 머레이와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곳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써야 하는데, 그런 곳은 한곳뿐이다.
“사막이겠네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사막은 공유지이지요.”
사유지가 아니기에 영장과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내시려고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 * *
‘오광훈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아마도 최신 게임의 설명을 빌리자면 그런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심슨 머레이는 천하의 개썅놈입니다. 그 새끼는 인신매매로 먹고사는 놈입니다.”
딴 사람도 아닌 한국에서 파견된 검사가 그런 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그냥 미친놈이 헛소리하는 걸로 무마할 수가 없었다.
“야! 오광훈이! 너 미쳤어!”
대사관에서 나온 남자는 언성을 높였다.
소속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전혀 관련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미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 잔뜩 고생하고 온 참이었다.
“내가? 미쳤냐고? 전혀 안 미쳤는데?”
“내가? 내가? 지금 ‘내가?’라고 했냐?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내가 누군지 알고 반말을 지껄여?”
“모르지? 하지만 네가 반말하는데 내가 왜 존대를 해야 해?”
“너 이 개새끼……!”
“너만 3대 고시 통과했냐? 나도 고시 통과한 사람이야!”
3대 고시.
사법 고시, 행정 고시 그리고 외무 고시.
그 세 가지 중 하나를 통과한 사람들은 한국의 핵심 인력이 된다.
일단은 말이다.
“그리고 나보고 인신매매범 잡으라면서? 그래서 내가 잡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지랄이?”
“뭐? 너 이 미친 새끼! 심슨 머레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알지. 아주 잘 알지.”
오광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 노형진과 필 모리스에게서 다 설명을 들었다.
단순히 독지가가 아니라 정치계의 거물이다.
그가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주는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인이 돈 주면, 수사하면 안 돼?”
“뭐?”
“수사해서 그 새끼가 인신매매범인 걸 알아낸 거니까 떠든 건데?”
“이런 미친 새끼! 증거 있어! 증거 있느냐고!”
“있지.”
“내놔!”
“그걸 네가 뭔 권한으로 내놓으래?”
“뭐?”
“넌 외교부 직원이지 미국 쪽 직원도 아니잖아? 그런데 네가 뭔 권한으로 자료를 내놓으래? 돈이라도 받았냐?”
“이런 미친 새끼…….”
그는 입을 쩍 벌렸다.
물론 오광훈이 미친 꼴통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미국에 온 꼴통은 많다.
하지만 그들은 발악을 하다가 결국은 도태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으로 파견 나왔다고 해서 미국의 검사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당연히 미국에서 수사를 할 수는 없고, 해 봐야 연락관 역할뿐이었으니까.
‘미친 새끼들! 뭐 이런 꼴통을 보냈어?’
그래서 꼴통 하나 보낸다는 소리에 ‘또 좌천시킬 새끼 하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꼴통은 그냥 발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자회견을 해 버렸다.
그것도 아주 핵폭탄급으로 말이다.
유명 독지가가 사실은 인신매매범이라면서.
하지만 자신이 한국에서 파견 나온 검사일 뿐인지라 수사가 불가능하니 미 정부에서 수사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정작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미 정부는 달라는 소리도 안 하는데 한국 정부의, 그것도 상관도 없는 어디 외교부 찌꺼기가 와서 지랄이야?”
“지이랄?”
“지랄이지, 그럼. 너 삼권분립 몰라? 너 그 머리로 어떻게 합격했냐? 뇌물 줬나? 야, 이거 조사 좀 해 봐야겠는데?”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오광훈을 보면서 외교부 직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씨발…….’
아무래도 단순히 꼴통을 넘어선, 말 그대로 ‘미친놈’인 듯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당장 저놈 아가리 다물게 하라면서 날뛰던 주미 한국 대사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울리는 듯하자 외교부 직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