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70)
교두선은 노형진이 발견한 후에도 딱히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을 응대할 뿐이었다.
물론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세 사람요?”
“네. 고등학생이 한 명, 대학생이 한 명, 직장인 여성이 한 명입니다.”
고문학의 보고에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신분을 속였을 것 같군요.”
“그런 것 같더군요. 대화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복장이 다릅니다.”
“복장이라.”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만날 때는 대학생처럼 입고 나갑니다. 하지만 직장인 여성을 만나러 갈 때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가더군요.”
“사업을 하는데도요?”
“네.”
“대충 알 것 같군요.”
아마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는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 했을 것이다. 반면에 직장인 여성에게는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소개했을 테고.
“딱히 이상 징후는 없었고요?”
“네, 없었습니다.”
“만나는 남자는 없었습니까?”
이런 일을 하려면 분명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여자야 그렇다고 쳐도 노숙자는 납치를 해야 하니까.
“딱히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요?”
노형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혼자 만나나? 그럴 리가 없는데. 역시 대포폰으로 연락을 하고 다니는 건가?’
아무리 정보 팀이 감시를 한다고 해도 결국 개방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교두선의 성향을 생각하면 허술하게 움직일 리는 없다.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살인자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겁니다. 그렇게 뻔하게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겠지요.”
더군다나 교두선은 노형진이 회귀하기 전에 잡힌 적이 없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잡혔다면 언론에서 난리가 났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었다는 것. 그건 그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자극할 만한 방법은 없을까요?”
“글쎄요, 그가 자극받을 만한 게 없을 것 같은데요.”
고문학도 그 부분은 염세적으로 반응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만 그렇게 감정 표현이 절제된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진상 손님이 멱살을 잡아 올려도 그는 웃으면서 말릴 뿐이었다.
수천억대 자산가로는 보이지 않는 극히 소탈한 모습.
“이걸 그냥 공개하면 진짜로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요.”
“그럴 겁니다. 기부도 적지 않게 하고 있더군요.”
“끄응…….”
노형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딱 제슨 스타일이네.’
미국의 유명한 인간 사냥꾼 살인마였던 제슨. 그는 지역의 유지로, 드러난 모습은 선량하기 그지없었다.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그는 지역공동체에 헌신적이었고 또 사람들에게 자비로웠다.
심지어 지역 유소년 축구 팀의 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았지만 자신의 지역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 그러니까 시골에 여행 온 일행을 납치해서 인간 사냥을 즐겼다.
희생자의 숫자는 무려 백스물세 명.
납치한 피해자 중 하나가 재수 없게 군인 출신이었다는 게 그가 잡혀 버린 이유였다.
아무리 사냥꾼이라고 해도 전문 전투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는 못 미쳤고, 심지어 그 납치 피해자는 베트남전과 1차 이라크전까지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그저 나이 많은 노인으로 보였지만 그는 싸우는 법을 알았고, 제슨은 피해자가 마을로 다가가는 것이 확실하자 다급한 마음에 큰 실수를 해서 결국 역으로 제압당하고 만다.
‘그렇다고 이 싸움에 그런 사람들을 불러올 수도 없고.’
노형진은 고민을 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실수를 하게 만들면 되잖아?’
제슨은 수십 년 동안 잡히지 않을 정도로 은밀했지만 핀치에 몰리자 다급해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사냥이라는 게 그런 거지.’
저쪽이 치트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는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그가 다급하게 움직일 정도로 압박할 방법이 있을까요?”
고문학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을 것 같네요.”
“있다고요?”
“네.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다급함이 실수를 부르는 법이다. 제슨의 실수는 표적이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다급함이었다.
그렇다면 교두선에게도 그만큼 다급한 상황을 부여하면 되지 않을까?
“그 녀석, 군대는 갔다 왔습니까?”
“네?”
노형진의 엉뚱한 질문에 고문학은 고개를 갸웃했다.
* * *
“영장을 위조해서 보내자고?”
“그래. 그 녀석, 군대를 안 갔다 왔어.”
이미 확인해 봤다. 교두선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
“유학을 갔다 와서 사업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지. 가능하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이 군대니까.”
그렇다 보니 가능하면 입대를 미룬다.
“그리고 교두선이 군대에 가게 되면 살인은 꿈도 못 꾸지.”
“그건 그런데…….”
“그러면 그 녀석이 어떤 행동을 할까?”
“당연한 거 아냐? 어떻게 해서든 살인을 하려고 하겠지.”
영장이 나왔다.
군대에 가면 최소한 1년 반은 살인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리고 군인이라는 특성상 움직임도 극도로 제한된다.
“이런 연쇄살인범들에게 살인은 일종의 중독이야.”
당연히 살인을 못 한다는 사실에 극도로 긴장하고 다급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자기가 남들보다 더 우월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인간인 것은 마찬가지거든.”
남자는 영장이 나오면 일단 정줄 놓고 놀려고 한다. 현실 부정인 것과 동시에, 군대에 가면 그렇게 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 군대에 가면 군복 입고 술집에만 갔다가도 작은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헌병에게 잡혀가는 것이 현실이다.
“가기 전에 즐길 만큼 즐긴다, 그게 그의 당면 목표가 되겠지.”
“살인이 즐기는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광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어서다.
“뭐, 군대 두 번 갔다 온 네가 하는 말이니 맞겠지.”
“큭, 씨발. 팩트 폭행.”
왠지 노형진은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그 녀석이 움직일까? 그 녀석만 잡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같이하는 놈이 있을 거라면서?”
“그래, 그럴 거야.”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기 위해 보내는 영장이야. 이제부터 사냥을 시작해야지.”
“사냥을?”
“그래.”
노형진은 눈을 돌려서 창밖,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과연 이런 살인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모를 것이다. 안다면 누구도 못 믿을 테니까.
“사냥할 때는, 때로는 자신이 사냥감이 되기도 하니까. 이제는 우리가 사냥꾼이 될 차례야.”
오광훈은 노형진의 말대로 수사 차원에서 영장을 위조해서 보냈다.
혹시나 국방부에 연락해서 확인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교두선은 그러지는 않았다.
술에 취해서 며칠간 휘청거린 것이 다였다.
마치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형진은 스포츠카를 끌고 나가는 교두선을 보면서 씩 웃었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느긋함보다는, 다급함이 더 가득한 모습.
“근데 용케도 연기 신청을 안 하네.”
“저 나이대면 이미 다 썼을 테니까.”
그리고 연기 신청은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
학생도 아니고, 생계도 곤란하지 않고, 나이도 많다.
“결국 남은 건 군대에 가는 것뿐이지.”
노형진은 시계를 흘낏 보았다.
“그리고 그가 실수를 하면, 우리가 잡으면 되는 거거든, 후후.”
노형진은 시동을 걸고 차를 타고 교두선을 따라갔다.
얼마나 갔을까? 그는 어느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더니 허름한 준중형으로 차를 바꿔 탔다.
“준중형?”
“스포츠카를 타고 표적에게 다가가긴 힘들겠지.”
신분을 감추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마침내 교두선의 차가 서자, 노형진도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
“내가 이야기한 건 기억하고 있지?”
“그래. 이쪽에서 조여들어 가자는 거지? 이게 사냥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냥 맞아. 원래 사냥이라는 것은 대상을 조금씩 몰아가면서 하는 거야.”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오광훈을 데리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교두선을 찾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의 움직임.
“이럴 줄 알았지.”
영장이 나오면 그가 가장 빨리 노릴 수 있는 대상이 누굴까? 다름 아닌 자신이 공을 들이던 여자들이다.
그들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하면서 끌어내는 것.
여행을 가자고 하면서 인적이 없는 곳으로 꼬셔 내는 것.
“그러자면 아무래도 대학생이 만만하겠지.”
고등학생은 끌어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직장인도 마찬가지.
그러니 가장 만만한 것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대생인 것이다.
교두선은 커피숍에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과 만나고 있었다.
가방에 준중형 자동차, 그리고 어색하게 쓴 안경까지.
누가 봐도 공부 잘하는 대학생 오빠 같다.
“자, 그러면 깽판 치자고.”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교두선 씨, 여기서 뵙네요?”
“누구세요?”
낯선 남자가 다가오며 알은척을 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자.
“안녕하십니까? 서울 중앙 검찰청 오광훈 검사입니다.”
“네? 검사요?”
여자는 당황했다. 자신이 데이트하는데 검사가 상대방을 알고 있다는 듯 다가오는 건 이상했기 때문이다.
“교두선 씨 여자 친구이신가 보시네요?”
“네? 누구요? 교두선요? 그게 누군데요?”
‘역시나.’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만나는 교두선이다.
실명을 알려 줄 리가 없다. 실명을 알려 줬다면 이미 연쇄살인범으로 특정되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이름을 들었을 테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분이 교두선 씨 아닌가요?”
오광훈은 모른 척 말했다.
그리고 교두선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게…….”
“오빠, 이게 무슨 소리야? 교두선이라니? 오빠 이름, 박주석 아니야?”
“아니, 혜미야. 내 말 좀 들어 봐. 그게…….”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마땅한 반박이 바로 나올 수는 없다. 바로 옆에 오광훈이 있으니까.
“교두선 씨,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박주석이라니요?”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뭐 하긴요? 그냥 아는 분에게 인사드리는 거죠. 그런데 박주석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사정이 있어서…….”
“사정? 무슨 사정? 오빠, 나한테 지금까지 거짓말한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신분에 대해 거짓말한 남자. 그 남자에 대해 여자가 의심을 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아니, 속인 적 없어.”
“교두선이라잖아! 이게 뭔 소리야? 오빠, 한국대 다닌다면서?”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분이 나이가 몇인데 대학을 다닙니까?”
“네? 나이요?”
“이분 나이가 벌써 스물여덟 살입니다. 사업하시는 분인데 대학을 왜 다녀요?”
“오빠, 지금 이 상황 뭐야? 오빠 이름도 가짜고 대학생도 아니었어? 아니, 나이까지 속인 거야? 나한테는 스물네 살이라면서!”
오광훈은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킬킬 웃었다.
‘죽을 맛이겠지.’
이건 허위 사실 유포도 아니고 명예훼손도 아니다.
그저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인사한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이분이 한국대생이라고요?”
“네!”
“그럴 리가요.”
“전 학생증도 봤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오광훈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쐐기를 박을 시점이었다.
“교두선 씨, 잠깐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교두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서 신분증을 꺼내면 자신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꺼내면 자신이 거짓말한 게 들킨다. 그렇다고 박주석의 신분증을 꺼내면 자신이 신분을 위장한 게 들킨다.
“이런 씨발.”
“씨발?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 거짓말했다! 어쩔래!”
그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먹잇감 하나를 놓친 게 아쉽지만, 일이 틀어진 이상 더는 여기서 시간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
“오……빠?”
“그래! 내가 속였다! 어린애 좀 만나려고 속였다! 어쩔래!”
일이 이렇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은, 어린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 거짓말한 것이라고 해 버리는 것이다.
‘제법 머리를 쓰네.’
좀 떨어진 곳에서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오……빠가…… 어떻게 그런…….”
“아, 몰라! 씨발, 꺼져!”
그는 벌떡 일어나면서 오광훈을 팍 밀었다.
“비켜, 이 새끼야!”
“교두선 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 보면 몰라? 꺼지라고, 이 새끼야!”
짜증을 내면서 바깥으로 나가 버리는 교두선.
“흑흑흑.”
홀로 남은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교두선이 멀어진 후 오광훈은 노형진에게 다가왔다.
“진짜로 거짓말했네.”
“신분을 속였을 거라고 했잖아.”
노형진은 오광훈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네가 중요해.”
“내가?”
“저 여자를 설득해서 피해 사실을 진술받아야지. 그리고 그 후에 그걸 기반으로 교두선을 추적해야지.”
“아하!”
교두선은 분명 그녀를 속였다.
그게 범죄가 될지 조사하는 것은 오광훈의 책임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범죄만 해도 신분증 위조 혐의가 있으니까.
“당당하게 교두선을 조사할 수 있겠네.”
“그래.”
노형진은 교두선이 나간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교두선은 더욱 다급해지겠지.”
그러고는 슬며시 오광훈을 툭 쳤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잘 다독거려 봐.”
“어? 응? 내가?”
여자를 바라보면서 당황하는 오광훈.
지금까지 우는 여자를 달래 본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그래야지. 국민의 지팡이 검찰 아니겠어?”
“어…… 그런가?”
“아, 참! 혹시 이번 기회에 어떻게 꼬셔 보려는 파렴치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아니, 날 뭘로 보고!”
“자연이가 보고 있다.”
오광훈은 왠지 똥 씹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