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75)
“그래서 결국 다 불었어?”
“그래. 사망자 겁나 많더라. 노숙자 열두 명에 여자가 아홉 명이야.”
오광훈은 영 꺼림칙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노숙자로 시작했는데, 납치한 사람 중에 여자 노숙자가 있었던 모양이야. 정확하게는, 가출한 여자애였지.”
“뭔지 알겠네.”
처음에는 살인만으로 만족하다가 여자 노숙자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아니 범죄자는 자극에 익숙해지면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주로 여자들을 노렸고.”
얼굴 되고 돈 되는 놈이 있으니 여자를 꼬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검찰에서는 사형을 구형한다고 하더라고.”
“그러겠지.”
물론 한국은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이다.
그러니 그들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들만 억울하지.”
그들은 자신들이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어디에 묻었는지 이야기했고, 경찰은 총력을 기울여 찾는 중이었다.
“나 같으면 죽여 버릴 텐데.”
오광훈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노형진의 생각은 좀 달랐다.
“에이, 그건 아니지.”
“너도 사형 폐지론자야?”
“아니. 개인적으로는 사형은 너무 쉽다고 생각해.”
“그러면?”
“맘 같아서는 평생 고문 같은 거나 당했으면 좋겠지만 말이지.”
사형수들은 잘 먹고 잘 잔다. 심지어 노역 대상도 아니다.
거기에다 교도소에서도 사형수는 건드리지 않는다. 설혹 그가 다른 사람을 또 죽인다 해도 변하는 게 없으니까, 그만큼 막나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물러.”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법이 또 미친놈을 만들지도 모르지.”
왠지 노형진은 오늘은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기분이었다.
블랙리스트
엔터테인먼트조합.
노형진이 만든 조직으로, 지금은 연예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작은 회사라고는 해도 그들이 뭉쳐서 거대한 집단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리고 그들이 같이 쓰는 공간은 대룡에서 폐교를 개조해서 지원해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본건물만 쓰다가 지금은 아예 주차장을 따로 만들고 운동장에서 새로운 건물까지 올릴 준비까지 하는 상황이다.
노형진이 그곳이 만들 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지금은 노형진이 생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양민 학살은 그만해, 이놈아.”
“양민 학살이라니요?”
“네가 와서 괴롭히니까 애들이 숨도 못 쉬잖아.”
연습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강사 한 명이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에게 툴툴거렸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선생님, 제가 언제 애들을 괴롭혔다고 그러세요?”
“얀마, 네가 와서 애들 연기 가르치면 그게 양민 학살이다. 주연상만 네 개를 탄 놈이 와서 생초짜를 가르치면 애들이 배우겠니? 얼어붙지!”
“아니에요. 우리 애들이 저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렇지?”
그는 지긋한 눈빛으로 연습생을 바라보았고 연습생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게 긍정이냐? 그냥 살고 싶어서 하는 몸부림이지! 안 그렇습니까, 노 변호사님?”
“그래 보이네요, 하하하.”
노형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진짜로 그렇게 보였으니까.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네.’
소속사는 다르다고 하지만 연습실을 같이 쓰고 같이 어울린 덕분에, 조합에 속한 연예인들은 거리낌 없이 잘 지내는 편이었다.
당장 연기 지도한다고 와서 깐죽거리는 이 남자도, 다른 곳에서는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는 사람이다.
미친 듯한 연기력으로 주연상만 네 번을 받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회귀 전에는 없었던 사람이지.’
아마도 노형진 덕분에 이번 생에 삶이 바뀐 사람일 것이다.
“어? 왕섭섭, 내가 그렇게 가르쳤냐?”
“아닙니다!”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그, 그게…….”
“아오, 그만 좀 괴롭히라니까.”
“킬킬킬.”
대선배가 와서 저런 식으로 장난을 치면 분명 후임들은 얼어붙는다. 하지만 나중에는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인맥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뭐, 좋아 보이네.’
그냥 괴롭히는 장난이라고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 그는 나름대로 연습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니까.
그러니까 강사도 타박만 할 뿐 그를 진지하게 쫓아내지는 않고 있었다.
“연기라는 건 말이야, 내가 그 사람이다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왜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는 거거든. 그러니까 제대로 연기하려면 평상시에도…….”
“저거 또 썰 풀기 시작하네.”
혀를 끌끌 차던 강사는 그에게 한 소리 했다.
“야, 서종태. 너는 가서 영화나 찍어.”
“아오, 선생님. 제가 찍을 게 있어야 찍지요.”
서종태라고 불린 배우는 입을 빼쭉 내밀었다.
“아니, 예약된 영화가 잔뜩 쌓여 있을 것 같은데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출연할 영화가 없다니?
‘말이 안 되는데.’
그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골라 가면서 찍어야 정상이다.
“영화가 없다고요?”
“뭐, 시나리오도 안 들어오고 CF도 없고.”
서종태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 애들 군기 잡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저 썅놈의 시키. 내가 저거 가르칠 때부터 알아봤어. 뺀질거리기는.”
그들은 사제지간이기에 티격태격했지만 노형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CF도 없다니?”
“누가 불러 줘야 말이죠.”
“서종태 씨쯤 되면 못 모셔 가서 난리일 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이 썅놈의 나라가…… 아, 죄송.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썅놈의 나라?”
노형진은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그가 좋은 말 예쁜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사실 그의 성격은 털털하고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소시민들과 비슷하다.
“우리 사장님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하지 말라고 했다고요? 뭔 일 있습니까?”
연기자 선생이 입맛을 다셨다.
“뭐, 소문이기는 하지만요.”
“소문요? 무슨 소문요?”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를 뿌렸답니다.”
“블랙리스트? 아아아.”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블랙리스트. 쉽게 말해서 제거 대상이나 불이익을 적어 두는 리스트를 뜻한다.
반대로 이익을 줄 리스트를 화이트리스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 쪽도 이상하기는 하지.’
지금 영화계의 기류는 이상하다.
아무리 영화라는 게 분위기를 많이 탄다고 하지만 뜬금없이 국뽕 영화가 넘쳐 난다.
전에도 다른 곳에서 블랙리스트가 터지면서 사실상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를 운영한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서종태 씨가 가장 마지막으로 찍은 영화가 뭐였지요?”
“ 부산 그날>이라는 영화였죠.”
부산 그날>. 민주화 운동의 중요 사건으로 여겨지는 부산 마산 민주화 운동, 속칭 부마 민주화 운동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랬군.’
노형진의 눈이 살짝 찡그러졌다.
부산과 마산. 그곳의 민주화 운동은 사실 그 위력에 비해 언론에서 찬밥 대우를 받는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추앙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부산과 마산은 그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신민당의 텃밭이다. 아니, 텃밭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어도 자유신민당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동네다.
‘그걸 재조명해서 그 지역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다는 걸 다시 일깨우고 싶진 않았겠지.’
하지만 서종태는 그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그건 현 대통령이 속한 당인 자유신민당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쁜 행동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영화에 투자해서 돈 좀 만졌지?’
원래 역사에는 없던 영화지만 노형진은 그 영화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영화를 찍을 수 있게 지원을 해 줬다.
최종 관객 스코어 480만.
절대 적은 수는 아니었고, 노형진은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별게 없었네.’
자신이 바쁜 탓도 있지만 그 이후에 그 관련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 자체가 잘되었으니까.
‘젠장.’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출연자 중에 지금 새로 영화에 출연한 사람이 없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요. 뭐 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노형진은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궁금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