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293)
“위에서 시켰다고 하자고요?”
해당 경찰들의 모임에서 서장이 한 말은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때 계급이 높았습니까, 아니면 힘이 있었습니까?”
그저 일개 경찰이었고 윗사람들에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고문하라는 지시가 내려와도 그저 따를 뿐, 이들에게 저항할 수단은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위에다 대고 말하는 겁니다.”
“위에다 대고?”
다들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건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니까.
“하지만 대놓고 위에서 고문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게 중요합니까? 어차피 중요한 건 우리 증언 아니었어요?”
애초에 누군가를 고문해서 정보를 뽑아내라거나 죄를 뒤집어씌우라는 명령이 문서로 내려올 일은 없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으니 녹음도 쉽지 않았고 말이다.
결국 증언이 관건이었다.
“우리가 나서서 나라에서 고문하라고 시켰다고 말하는데 자기들이 어쩔 겁니까?”
“그건…… 그런데…….”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대놓고 고문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이라는 말이 따라붙었을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잡아라.’ 또는 ‘어떻게 해서든 정보를 찾아내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정범수 사건도 그렇지 않습니까?”
애초에 몇 달간 어떠한 정보도 없었던 사건을 고작 열흘 만에 해결해 내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당장 유전자도 없었고, 그 당시에 유전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술의 수준이 떨어져서, 금방 나오는 지금과 다르게 그 검사 기간만 몇 주는 걸렸으니까.
“사실 우리가 다 뒤집어쓰는 거, 억울하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좋아서 고문을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실적이 없으면 그 고문의 대상이 자신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상부에 중요한 건 실적이지 진실이 아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그때는 사람을 개 패듯이 패서 범인을 만들어 내더라도 실적을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우리가 다 같이 증언하는 겁니다.”
위에서 시켰다는 말. 그것처럼 책임을 벗어나기 쉬운 속삭임은 없다.
거기에다가 다른 말도 들어갔다.
“그리고 정부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으면 그 미친놈들이 포기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포기요?”
“그렇지 않습니까? 들고 있는 돈을 다 잃고 감방에 가고 싶은 새끼가 어디 있어요? 세상은 다 돈으로 움직이는 법인데요.”
고문 경찰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만 하더라도 무슨 거창한 사명감이 있어서 경찰 일이나 고문을 시작한 건 아니지 않은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경찰 일이었고 위에서 시켜서 한 고문이었다.
“우리가 돈을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경찰 노릇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받고 또 빼돌렸지만, 이런 사건은 제대로 터지면 수억 단위 배상금이 나온다.
그러니 그들이 그걸 내줄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요.”
“맞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거예요.”
그들은 하나둘씩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노형진이 노리는 부분이었다.
* * *
“뭐라고요?”
소송을 진행하던 정부 측 변호사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저희가 고문한 게 사실입니다.”
“아니 증인, 지난번에는 고문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부 측 변호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의 갑작스러운 변심.
“그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오더가 떨어진 것도 있고…….”
“오더?”
“네. 그렇게 진술하라고…….”
“이런 미친 !”
정부 측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피고 측 변호인, 여긴 신성한 법정입니다. 그런데 욕설이라니요. 재판장님, 피고 측 변호인의 행동은 명백하게 증인에 대한 위협입니다.”
“인정합니다. 피고 측 변호인, 욕설은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판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겠지.’
거짓 진술을 하라는 오더가 과연 경찰에게만 떨어졌을까?
그럴 리 없다. 진실을 감추고 줄 돈을 최소한으로 주라는 명령이 판사에게도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정부 오더라는 말이 나오면 상황이 바뀌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피고가 국가인 만큼 경찰뿐 아니라 판사에게까지 오더를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그 말은, 지금부터 판사가 하는 모든 행동이 감시된다는 거지.’
만일 피고 측에 이상하게 유리한 판결을 한다면 노형진은 정부 측의 오더를 문제 삼아서 판사를 교체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계속된다면 판사들은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공신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오더를 내릴 리가 없는데요?”
피고 측 변호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피고 측 변호인? 마치 정부 측의 오더에 관련해서 뭔가 아시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네요?”
“아니, 그게…… 크흠……. 이상입니다.”
그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다급하게 증인신문을 마쳤다.
뒤를 이어서 단상에 올라간 노형진은 서장을 보면서 씩 웃었다.
‘제대로 물었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문을 하는 놈들이 거짓말인들 못 하겠는가?
그리고 그 거짓말을 이용해서 노형진은 일을 키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증인, 고문을 한 사실을 인정하신다 이거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변심해서 고문 사실을 인정하신 겁니까?”
“그건 양심의 가책 때문입니다.”
“양심의 가책요?”
“저희도 좋아서 한 게 아닙니다. 그 당시에 시대가 그랬고, 고문을 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저희가 고문 대상이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요?”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빨갱이라는 증거를 찾아내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저희는 그에 맞춰서 어떻게 해서든 수사를 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을 찾아서 저 사람이 빨갱이가 아니라고 밝히면 그때는 저희가 빨갱이로 몰려서 고문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 당시 시대상은 그랬다.
겉으로는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하던 시절이지만 현실은 오로지 실적뿐이었다.
“하지만 제가 물은 건 그게 아닙니다. 오로지 명령에 따르신 거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이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서장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야 자신이 책임을 면제받으니까.
“경찰은 상명하복의 조직입니다. 명령 없이는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선보고 후조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보고 후조치라, 좋은 말이야.’
물론 지금 이 사건을 보고받는 사람들은 눈깔이 돌아갈 만한 말이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고문을 하라고 위에서 오더가 떨어졌다?”
“그렇습니다.”
“그 명령은 어디서 떨어졌나요?”
“그건 잘 모릅니다. 저희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드디어 제대로 떡밥이 물렸으니까.
“그러면 그 명령을 보통 서장이 하나요? 아, 이건 그 당시 서장을 말합니다.”
서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모든 수사 통제는 검사가 합니다. 서장이 그런 명령을 내릴 이유는 없지요.”
“수사 통제는 검사가 한다라…….”
“그렇습니다. 특히 정범수 사건은 더욱 그랬습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어서 더더욱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검찰이 전화해서 범인을 찾아내라고, 안 되면 만들어 내기라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지.’
경찰 조직은 지금 고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책임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를 끌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경찰의 징계도 최대한 피할 수 있고 말이야.’
운이 좋다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경찰 상부를 직격으로 때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게 실수지.’
결국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검사뿐이다.
“그 당시 검사가 고문을 해서라도 범인을 만들어 내라고 했다 이거지요?”
“그렇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권에 타격이 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노형진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변호사와 판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갔다.
이건 도무지 덮을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 당시 검사가 명령을 어떻게 내렸습니까?”
“구두로 내려보냈습니다. 전화를 걸었지요.”
당연하게도 그 당시 전화 기록을 추적할 방법은 없다.
“그렇군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로써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낼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러면 그 당시 검사의 이름을 기억합니까?”
“가물가물합니다.”
검찰이 수사를 지휘한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더를 내리는 거다.
각 사건마다 수사 검사가 다르니, 대부분의 경찰은 검사라는 존재에 대해서만 알지 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경찰과 검사가 일대일로 매칭되는 게 아니라 랜덤하게 매칭되어서 수사가 진행되니까.
“친애하는 재판장님, 사건 기록 갑제 33호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 당시 담당 검사는 서성욱입니다.”
노형진은 그러면서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노형진이 부른 기자들이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냥 단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고 생각하고 온, 그래서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던 기자들.
그들이 눈에 불을 켜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성욱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즉, 현 검찰총장입니다.”
증인석에 있던 서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는데 건드려서는 안 되는 최악의 거물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판결이 나왔겠지.’
검찰총장이 된 서성욱이 자신의 추문이 드러나지 않게 손썼을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지.’
피해자로부터 고문당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고문 경찰들로부터 그 고문을 하라고 한 사람이 바로 서성욱이라는 증언 역시 나왔다.
“아닙니다!”
피고 측 변호사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피고 측 변호인,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요?”
“그건…….”
“아니면 아니라는 증언이라도 있나요?”
“…….”
“지금 여기 서성욱 검찰총장이 고문을 지시했다는 명확한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증거도 증언도 없이, 어떻게 아니라고 확신하지요?”
“그게…….”
“혹시 서성욱 검찰총장 측과 접촉했나요?”
노형진의 말에 당황해서 땀을 뻘뻘 흘리는 변호사.
그걸 보고 판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잔뜩 독이 올라서 기사를 써 대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흠…… 새로운 증언을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기일에 계속하겠습니다.”
판사의 말에 노형진은 씩 웃었다.
그들의 치부가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