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
“납치 사건과 관련해서 체포 당시 이재명과 그 일당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입니다. 경찰의 업무 처리 지침에 의거하여 소지품은 모두 압수당하여 경찰이 기록을 관리하였습니다. 즉,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물건입니다.”
“물건이라고 해도 흉기가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만?”
무심결에 그걸 이리저리 살피는 판사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긴급피난이 아니라는 증거가 그 안에 있습니다.”
“긴급피난이 아니라는 증거?”
“관리 번호 4번 물품을 보십시오.”
“4번이면…… 라이터?”
그걸 보고 순간 멍해진 판사. 그리고 그게 왜 확실한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가해자 측 변호인들은 지금까지 긴급피난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살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영하의 날씨로 떨어진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보다시피 가해자들에게는 라이터가 있었습니다. 최근 가물었던 상황과 주변의 숲이 말라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그 말에 증거를 받아 든 박&선 소속의 변호사는 말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영하의 날씨가 생명을 위협했다지만 정작 그들은 라이터가 있었고, 어렵지 않게 라이터로 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기본이라는 것. 그건 바로 사소한 것이다. 흔하게 들고 다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물건. 심지어 아직도 경찰서에서 보관 중인 가해자의 소지품, 그 안에 있는 라이터. 라이터가 있으면 불을 피우는 건 쉬운 일이고, 불을 피웠으면 얼어 죽었을 리가 없다. 즉, 긴급피난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론의 기본이다.
“피고 측 변호인, 할 말 있습니까?”
하지만 변호사는 할 말이 없었다. 죽어라 긴급피난을 주장했고 그걸 위해서 과학기술이 어떻고 실질적 생존률이 어떻다고 한참 떠들었지만 라이터 하나에 다 무너진 것이다.
“끝난 것 같군요. 이틀 뒤에 결심(형을 선고하겠다는 뜻의 법률 용어)하겠습니다.”
그렇게 그 재판은 터무니없는 물건 하나로 끝나 버렸다.
나쁜 여자는 나쁜 여자다(1)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만 딱 그 짝이네.”
노형진은 이재명의 사건 결과를 듣고는 피식 웃었다. 라이터가 있으면서도 머리가 나빠서 생각을 못 하고 친구를 죽여서 옷을 빼앗아 입은 이재명은 살인죄가 성립되어 12년 형에 처해졌다. 살인만 12년 형이고, 거기에 자신에 대한 납치 및 상해 미수로 1년 형이 더해졌으니 총 13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뭐, 12년이면 잘 나왔네.”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죽여도 12년씩 나오는 건 드물다. 여중생을 납치해서 성폭행하고 성매매를 시키고 심지어 뜨거운 물을 들이부으면서 고문하고 죽인 작자도 고작 9년이 나왔다. 뜨거운 물을 부어서 자기 제자를 죽인 선생에게는 2년이 나왔다.
“그나저나 진짜 심심하다.”
변호사들의 삶을 표현하자면 쉽게 말하면 투쟁의 삶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쉽게 하려면 쉽게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싸움을 하려면 진짜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변호사들과 다르게 인맥에 기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삶이 아닌, 한 명 한 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노형진에게 있어서 지금의 평화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공부만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학교에 다닐 때는 굵직한 사건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심심한 걸 몰랐는데 이재명 사건이 끝나고 난 후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 최대한 연관되는 것을 피하다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조용하다고 할 정도였다.
“독학사 1차는 붙었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슬슬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독학사란 독학에 의한 학위 취득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위 취득자를 뜻한다. 독학사가 정식으로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1차부터 4차까지 네 번에 걸쳐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1년에 한 번씩 시험이 있기 때문에 1년 내내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벌써 1차가 끝났고 탈락한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나갔기 때문에 학원은 상당히 공허한 느낌이었다.
“뭐, 조만간 다시 사람들이 들어오겠지만.”
1차에 붙은 사람은 계속 공부하고 떨어진 사람은 나가는 것이다. 난이도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1차에서부터 붙지 못하고 허송세월한 사람들이나 부모님의 압력으로 마지못해서 오거나 한 사람들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20% 이상의 사람이 빠져나갔다. 그 바람에 기숙 학원은 더 조용해졌다.
“남은 건 5월, 8월, 11월인데.”
남은 세 번만 붙으면 자신은 정식으로 학위 취득자가 되며 사법시험 자격을 얻게 된다.
“아, 그런데 지겨워.”
다 좋은데 생각지도 못한 이 지루함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학원 수업도 이제는 다 아는 수준이고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 애초에 들어온 것도 부모님의 주장 때문이었지, 자신이 원한 건 아니었으니까.
“삶이 짜릿해질 만한 거 없나?”
일종의 일중독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평안하고 조용한 삶을 겪어 본 지 너무 오래된 노형진은 너무 지루하고 심심했다.
“뭐 해?”
“그냥 지루해서요.”
“세상에, 1등의 위엄이니?”
“누나, 그건 아니구요.”
효린도 1차에 합격해서 남아 있었다. 다만 노형진과 다른 건 노형진은 당장 4차까지 봐도 합격할 수준이지만 그녀는 남은 기간 동안 죽어라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좀…… 지루해요.”
“여친이라도 만들지?”
“제 또래나 소개시켜 주고 말씀하시죠.”
“쿡쿡.”
맞는 말이다. 이 안에서 제일 어린 것이 바로 노형진이었다. 이제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 나이. 그다음 세대는 효린 또래다. 고 3을 졸업하고 독학사를 따러 온 머리 좋은 아이들. 문제는 그 애들이 노형진을 남자로 볼 리도 없거니와 노형진은 연상은 그다지 안 좋아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연하지.’
“그러면 바깥이라도 나가지그래?”
“바깥에 나가라구요?”
“그래, 가끔 머리를 식히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흠.”
그러고 보니 바깥에 나간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공부만 했으니 말이다.
‘세 달이 넘었나?’
이재명 사건 이후로 최대한 나가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그래 볼까요?”
“가끔 머리도 식히고 그러는 거지, 뭐.”
“하긴.”
사람을 너무 몰아붙이면 탈진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끔은 머리를 식히면서 멍하니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봄이잖아. 시내에 나가면 할 일 많겠네.”
“봄이라…….”
노형진은 결국 봄의 정취를 만끽하기로 마음먹었다.
“콜록콜록, 봄의 정취는 개뿔.”
바깥으로 나온 노형진은 봄의 정취 따위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디서 정취를 느끼라는 거야?”
사방에 가득한 매연과 가득한 사람들. 봄의 여유로움을 느끼기 위한 휴식처 따위는 없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 어떻게 돌아가라고.”
봄이랍시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는데, 학원 근처는 대놓고 자연이라 더 돌아가면 석기시대인지라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너희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난 문명을 즐기련다.”
결국 마음을 바꿔 정취가 아니라 문명, 즉 전자 기기를 즐기기로 한 노형진. 그리고 그제야 그는 자신이 도시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와! 이 형 봐!”
“짱이다!”
>버추어캅>이라는 사격 게임을 하는 동안 그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초딩들. 양손에 총을 들고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는 노형진을 마치 아이돌을 바라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훗! 이 정도쯤이야.”
피식 웃으면서 마지막 보스를 때려잡고 피날레를 울리는 노형진.
‘내가 이 게임에다가 꼴아박은 게 얼만데.’
성인이 되고 난 후로는 이런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하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미래에 비하면 진짜 그래픽도 후지고 반응 속력도 느려서 난이도도 쉬운데 말이다.
“장난 아니다!”
“최고다! 형!”
“훗!”
멋지게 폼을 잡으면서 게임기에서 내려오는 노형진.
“역시 난 도시인이었어.”
고즈넉한 농촌의 삶 따위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노형진은 오락실 바깥으로 나왔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지?”
오락실에는 갔다 왔고 피시방에는 가면 왠지 오랜만에 나온 주말을 허송세월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차나 한 잔 마실까?”
그때 노형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피숍이었다.
“커피라…….”
그러고 보니 자신은 과거에 커피를 아예 입에 달고 살았다. 하루에 다섯 잔은 기본이고, 많으면 열 잔 이상 마셨다. 잠을 줄여야 했는 데다가 손님이 올 때마다 한 잔씩 마셨으니 말이다.
“먹어 본 지 오래됐네.”
나중에는 에스프레소처럼 쓰디쓴 놈을 먹었지만 지금은 왠지 달달한 커피가 당겼다.
“한 잔 마실까?”
오랜만에 기대하는 눈빛으로 커피숍을 들어간 노형진. 그런데 들어간 커피숍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얼레?’
서빙하는 사람들이 죄다 또래의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성문여중 일일 카페입니다.”
‘아, 이때쯤인가?’
어릴 적의 기억 중 하나가 갑자기 떠오르는 노형진이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일 찻집, 또는 일일 카페라는 것이 유행했다. 학생들이 커피숍이나 찻집을 빌려서 직접 돈을 버는 행동 말이다.
‘흠.’
노형진은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봤다. 생글생글 웃는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에 들었다.
‘뭐, 나쁘지는 않겠지.’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법. 학생들의 자립심과 모험심을 채워 주기 위한 커피숍이 나중에는 변질되어서 소위 말하는 일진들이 돈을 빼앗는 수단으로 변해 버렸다. 일일 찻집을 연다고 하고는 강제로 학생들에게 티켓을 팔아서 말이다. 물론 그 일일 찻집이라는 건 고작 세 시간 동안 빌리는 거고 티켓은 수백 수천 장을 강매하니 애초에 손님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고 웃는 얼굴로 하는 걸 보니 그런 식의 찻집은 아닌 모양이었다.
“커피 한 잔 주세요.”
“뭐로 드릴까요?”
“초코 모카.”
“초코 모카요? 그게…… 없는…….”
초코 모카라는 말에 당황하는, 서빙하던 여중생 한 명. 그걸 본 노형진은 왠지 장난기가 돌았다.
“블랙 티 라테.”
“그것도 없고…….”
“그럼 차이 티 라테.”
“그것도 없는데…….”
‘있을 리가 있나.’
몽땅 다 미래에 특정 브랜드에서 만들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상품들이다. 지금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럼 초코 크림 칩 프라푸치노.”
“죄송합니다.”
“에스프레소 꼰 빤나.”
“그게 뭔가요?”
“있는 게 뭡니까?”
“믹스요.”
“이런, 이런.”
하긴, 이런 어린 학생들이 그런 여러 종류의 커피를 알 리가 없다. 여러 종류의 커피가 유행하는 건 노형진이 대학에 다닐 때부터니까. 그곳에서 일하면서 제조법을 배웠지만 이 시대에서 커피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아메리카노, 아니면 거기에 약간의 우유를 더한 라테뿐이다. 아니면 녹차나 홍차 같은 거.
“죄송합니다.”
미안해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노형진은 더 이상 장난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 믹스 주세요.”
“네.”
솔직히 믹스를 돈 3천 원 주고 사 먹는 건 아까운 짓이긴 하지만, 어차피 커피숍이라는 게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니까.
‘이것도 나쁘지 않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동급생 여자애들이 가득한 커피숍이라니, 왠지 나쁘지 않은 기분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딱 커피가 나올 때까지만.
“저기요.”
“네?”
“이거 먹으라는 건가요?”
“아, 안 맞으세요?”
‘안 맞고 자시고를 떠나서.’
머그잔 가득 물을 붓고 거기에다가 커피 한 봉지를 넣었으니 도대체 무슨 맛이 나겠는가? 그냥 커피 냄새 나는 맹물이지.
“하아, 그냥 내가 하겠습니다. 주방 좀 씁시다.”
“네?”
“어차피 학생들이 하는 거잖아요. 나도 열여섯 살이니까. 또래니까 잠깐 쓰죠.”
“하지만…….”
“맛있으면 한 잔씩 드시든가요.”
다짜고짜 주방, 아니 커피를 만드는 곳으로 간 노형진은 스팀을 켜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서 내가 부탁한 것 좀 사다 줘요. 일단 생크림하고 오레오랑 초코 시럽이랑. 돈은 내가 낼 테니까.”
과거의 생각 때문에 왠지 흥이 난 노형진은 아예 재료를 몇 개 구해 달라고 했다. 여자애들은 순간 당황하다가 얼떨결에 재료를 사 가지고 왔다.
위잉.
스팀을 내리고 그걸 섞은 다음, 거품을 내서 올리고 우유와 초코를 적당히 내리자 순식간에 완성되는 커피 한 잔.
“우와!”
“초코 칩 프라푸치노입니다.”
맛있어 보이는 커피 한 잔을 본 여중생들의 눈이 커졌다.
‘뭐, 이 정도야.’
왠지 우쭐해지는 노형진이었다. 하긴, 그도 남자이니 또래 여자애들이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우쭐해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먹어 봐요.”
“먹어도 돼요?”
“더 만들면 되니까. 설마 아까 그 커피를 손님들에게 내려구요?”
“아…….”
한 입씩 먹어 본 학생들의 눈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진짜 맛있다!”
“장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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