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3)
어찌 되었건 이번 용서 퍼포먼스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박광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기…….”
김요화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인생이 파멸되기 직전 박광석이 용서해 줘서 파멸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는 일.
“자자.”
박광석은 세 사람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환영…….”
“세 분 다 이 학교의 학생입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여러분들을 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마십시오. 어차피 젊어서는 실수도 하는 게 우리 청년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휴학을…….”
“휴학하신다고 하더라도 우리 학교의 학생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실 테니까요.”
“회장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들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던 말. 지금까지 회장 새끼나 그 새끼 와 같은 험한 말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들은 절로 박광석에게 님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같이 식사하러 가실까요?”
“식사요?”
“휴학하신다면 당분간 못 드실 텐데 학식을 한 번은 먹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학 기간 동안 푹 쉬고 마음을 추스르고 오십시오. 우리 한국대학교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할 겁니다.”
“흑흑흑.”
결국 그 세 사람은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기자들은 그 장면을 연신 찍어 댔다.
‘이거 참, 이번에는 내가 안 나서도 알아서 잘하네.’
노형진은 그런 장면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애라고 무시하냐? (1)
“도와주세요!”
“뭘?”
노형진은 출근하다 말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남학생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석진아, 난데없이 뭘 도와 달라는 거야?”
소석진. 노형진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네 주민의 아이로 몇 번 이야기해 봤던 사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도와 달라니?
“형, 변호사라면서요. 저 좀 도와주세요.”
“아니, 다짜고짜 도와 달라고 하면 난 모르지. 무슨 일인데? 고소라도 당했어?”
“그건 아니에요.”
“그럼?”
“수련회에 가기 싫어요.”
“엥?”
난데없이 수련회라는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수련회라는 것은 학교에 다닐 때 학생들의 정서 발달을 위해서 가는 그런 것을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 가기 싫다고 한다니?
“안 가면 되잖아?”
“안 가면 학교에서 결석 처리하고 내신 깎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솔직히 가기 싫어요.”
“왜?”
“아니, 내 돈 주고 내가 왜 고생하러 가요?”
“추억이야, 그거. 그냥 갔다 와.”
“싫다니까요. 가 봐야 좋은 꼴 못 보는데 왜 가요?”
“거참, 그럼 엄마한테 말해서 안 간다고 하든가.”
“엄마는 내신 깎인다고 꼭 가래잖아요.”
“그럼 가야지.”
“아, 싫어요! 형, 한 번만 도와줘요!”
“야, 난 변호사야.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우우…… 자본주의 변호사.”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지, 사회주의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 봐. 그게 다 추억이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머리를 쓱쓱 문지르고는 그곳을 떠나서 출근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 하루 종일 그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련회라…….”
수련회.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한 번씩 가는 행사. 학생의 육체를 단련하고 심신을 발달시키기 위한 야외 활동.
‘그러고 보니…… 영 찝찝하단 말이지.’
한국에서 수련회라는 것은 오래된 전통 같은 것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마다 가는 것이 수련회다. 그게 왜 찝찝한 것일까? 그건 간단했다.
‘추억이라…….’
노형진은 소석진에게 추억이라고 가라고 말은 했지만 자신의 수련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좋은 거라고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좋은 기억은 아니네.”
이번 생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련회에 가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때 안 가서 까먹고 있었던 수련회의 기억. 그러나 실제로는 회귀 전에 갔던 기억도 있으니 수련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그 기억을 더듬어도 절대 좋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흠…….”
“노 변호사님.”
그 순간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이은영 변호사.
“바쁘세요?”
“아닙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사건 때문에 그러는데요.”
“들어오세요.”
이은영 변호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사건에 대해서 몇 가지 분석을 부탁했고 노형진은 어렵지 않게 그걸 해결해 줬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이은영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그냥 뭐 좀 이상한 게 있어서요.”
“어떤?”
“수련회요.”
“수련회?”
중요한 법률적인 사건이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얼굴인데 고작 수련회라니?
“회사 수련회라도 가시려구요?”
“그게 아니라 말입니다. 혹시 이은영 변호사는 수련회에 좋은 추억이라도 있나요?”
“네? 좋은 추억요?”
“네.”
그 말에 이은영 변호사는 한참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없네요.”
“네?”
“없어요. 수련회에 가 봐야 솔직히 뻔하잖아요, 가서 욕먹고 구르고 고생하고.”
“그렇지요?”
“네.”
“다른 곳도 그럴까요?”
“그럴걸요? 그게 왜요?”
그 말에 노형진은 턱을 스윽 문지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걸 왜 가요?”
“네?”
“아니, 내 돈 주고 가는 건데 그걸 왜 가느냐는 거라는 거죠.”
“그러니까…… 어…… 글쎄요?”
이은영은 그 말에 자신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가 봐야 결국은 고생이다. 먹는 것은 부실하고 가 봐야 수련이라는 이유로 기합을 받거나 인간쓰레기라고 무시당한다. 제대로 된 콘텐츠도 없이 그냥 괴롭힘의 연장.
“음…….”
“한국 사람이면 당연하게 가기는 하기는 한 건데.”
문제는 한국 사람치고 그거 안 가는 사람은 없는데 그걸 왜 그딴 식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지?”
“그렇지요? 저도 그랬는데요?”
“그래? 흠…….”
노형진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단순한 투정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소석진이 고생하기 싫어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고작 중학생밖에 안 되는 아이가 수련회라면 치를 떨면서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정상은 아닌 것이다.
“무슨 일 있어요?”
“사실은 말입니다.”
노형진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건지 이은영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기대했는데 현실을 알고 나서는 무척이나 가기 싫었어요.”
“그래요?”
“솔직히 수련회라는 곳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수련회라고 하면 생각나는 게 형편없는 밥에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은 방에 벌레에 기합에 욕설에…….”
“흠…….”
“그 학생을 나무랄 건 아닌 것 같네요.”
“단순히 나무랄 건 아니라는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이은영은 ‘설마.’ 하는 얼굴이 되었다.
“설마…… 노 변호사님.”
“잘못된 건 잘못된 거잖습니까?”
“아아아…… 못 말려요, 진짜.”
이은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으슥했다.
“이거 참, 생각보다 문제가 많네.”
노형진은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수련회라는 곳에 대해서 이미지를 확인했고 의외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연대 책임에 폭행에 왕따 조장에 욕설에 인신공격에, 감금에 재물 절취에…….”
“그렇게 말입니다. 이걸 왜 했지?”
다들 그때는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미친 짓도 이런 미친 짓이 없었다.
“타성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겁니다.”
타성에 젖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 그게 익숙해지게 되면 잘못된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대로 흡수한다. 그리고 점차 노예가 되어 간다.
“이 짓을 몇십 년이나 해 먹었으니, 쯧쯧.”
무려 수십 년이나 계속된 수련회. 그건 결코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노 변호사, 설마 진짜로 할 생각이야?”
“왜요? 못할 건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동안 변호사들과 직원들이 겪었던 일을 정리해 보니 이건 말이 수련회지, 그냥 범죄 집단이나 감금 후 고문에 가까웠다.
“하지만 부모들이 좋아할까?”
“그중 한 명만 제대로 호응해 줘도 우리는 손해 볼 건 없습니다. 더군다나 누군가는 나서서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말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음…….”
송정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노 변호사의 말이 맞아. 애들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런 일을 시키는 게 도리어 잘못된 거지. 생각해 보면 우리가 멍청한 거야. 우리는 이걸 다 당하고 산 세대잖아? 분명 우리가 당할 때는 ‘내 자식은 이런 짓 안 시켜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을 텐데,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추억이랍시고 보내 왔다니……. 생각해 보면 추억 따위는 없는데 말이야.”
“그렇지요.”
연대 책임이라는 이유로 누구 한 명이 실수하면 모든 학생들이 고문에 가까운 기합을 받고 그 학생은 학교에서 왕따당한다. 제대로 된 강사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욕설과 기합뿐.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도와줄 방법이 없잖아?”
“일단은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요?”
“구조 요청?”
“네.”
“하긴 이제 슬슬 봄이니까 여기저기서 수련회 하겠다고 생난리 치겠네.”
봄이 되면 학교들은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가서 시간을 때운다. 그리고 아이들은 고통받는다.
‘그러고는 그 대신에 교장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겠지.’
조금만 생각하면 수련회가 그 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모조리 커미션으로 교장과 교감 등 학교 일파에게 들어가니 돈을 투자해서 정상적인 과정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교장의 입장에서는 일주일 동안 놀아서 좋고 돈까지 두둑하게 챙기니 안 할 리가 없는 노릇.
“일단은 제가 그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 볼게요.”
“그럴까?”
“네.”
노형진은 이참에 잘못된 문화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이 나서서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갔어?”
“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시무룩한 소리.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착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래? 이런.”
실수였다. 언제 가는지 확인하지 않은 바람에 노형진이 소석진에게 전화했을 때는 이미 출발한 후였고 심지어 거의 도착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언제 도착하는데?”
“한 30분 있다가 도착할 것 같아요.”
“그래? 혹시 그 수련회 주소 알아?”
“정확한 주소는 몰라요. 선창수련원인가 라고 했어요.”
“알았다. 그곳에서 보자.”
“형, 진짜로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래.”
“진짜 고마워요. 가기 싫었거든요.”
“이해한다. 조금만 기다려.”
노형진은 전화를 끊고는 바로 인터넷으로 선창수련원이라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벌써 갔데요?”
“그렇다네요. 날짜를 몰랐으니 뭐, 어쩔 수 없죠.”
노형진이 선창수련원이라는 이름을 찾아서 지도에 뜨자 옆에 있던 남자 직원 한 명이 힐끗 그걸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혹시 그 후배가 다니는 학교가 대강중 아닌가요?”
“아? 아세요?”
“알죠. 제가 대강중 나왔거든요.”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 말에 남자 직원을 수련원을 가리켰다.
“대강중는 사립중학교인데 매년 여기 선창수련원으로 가요. 완전 지옥인데, 저기.”
“지옥?”
“밥에서 벌레도 나오고 이불이라고 던져 주는 게 누더기에 보일러도 안 틀어 주고……. 아주 죽을 맛이에요. 이불에 피가 묻어 있다니까요.”
“피?”
피라는 말에 어이없는 노형진. 설마 그 안에서 구타당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구타한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닌데 소문에는 생리혈이라는 소리도 있고.”
“엥?”
“중학생만 오는 건 아니니까요.”
“아!”
대한민국에서 수련회는 한 번의 일이 아니다. 각 학교에서 최소한 한 번 이상 하고 자주 하는 곳은 1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하는 곳도 있다. 당연히 그중에는 여학생도 있을 것이다.
“더 무서운 건 다음해에 같은 이불을 봤는데 같은 자리에 그대로 피가 묻어 있었다는 괴담도 있다는 거죠.”
“설마.”
“글쎄요…… 거기 하는 짓거리 봐서는 괴담이 아닐지도.”
남자 직원이 어색하게 웃는 걸 보니 어째 정상적인 곳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지옥입니까?”
“지옥이 아니라 평균이죠.”
“하긴…… 평균이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들.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기가 막혔다.
‘뭐? 수련회? 이딴 걸 왜 하는 거야?’
직원들을 대상으로 물어보면 제대로 된 교육은 진행되지도 않으며 그것에 대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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