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30)
“헐.”
주형소는 혀를 내둘렀다.
노형진이 빨리 진행될 거라고 하기는 했지만 도리어 공단에서 빨리 서류를 내 달라고 읍소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내시면 됩니다. 아마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겁니다.”
“그러면요?”
“이제 독점 공급은 끝이지요.”
당연히 전국으로 퍼져 나가서, 성우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때마침 투자한 건물과 기계가 들어오고 있으니까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주형소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 그래도 아파하는 사람들 때문에 계속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는데 드디어 고난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군요.”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한국을 바탕으로, 세계로 가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물론 그 전에 살인마 새끼들부터 족치고요.”
“살인마들?”
“의사들 말입니다.”
“아…….”
확실히 의사들이 그걸 막지 않았다면, 어쩌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신만이 아는 일이겠지만, 확실한 건 그 자칭 의사라는 작자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신약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형진이 아니었다면 성우는 사라졌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텐데요?”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이 리베이트 받고 나을 거 알면서도 약 안 썼습니다, 할 리 없으니까.
“물론 의사들이야 그렇지요. 하지만 현대라는 곳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곳 아닙니까?”
“그런가요? 그런데 그거랑 리베이트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신지?”
“아실지 모르지만 리베이트 사건은 대부분 내부 고발로 시작됩니다.”
의사나 병원 그리고 다국적기업은 인정하지 않지만 갑질에 지쳐 버린 사람들이 그만두면서 터트리는 게 대부분의 리베이트 사건의 현실이다.
만일 그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그냥 묻혀 버리는 거고 말이다.
“그들이 강제로 입을 열게 하면 상황이 달라지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게 가능할 리 없을 것 같은데요.”
노형진은 씩 웃었다.
“그들은 제약 회사에서 일하면서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줬지요. 당연히 성우의 항암제가 효과가 좋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망하게 하려고 리베이트를 준 거고요.”
“그렇지요.”
“그러면 그들은 살인의 교사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 살인의 교사범요?”
주형소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물론 애매하기는 합니다.”
그들이 한 건 그저 돈을 전달해 준 것뿐이다. 그리고 부탁을 한 것뿐이고 말이다.
사실 살인의 교사범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죠.”
애매하다는 것, 그건 일단은 우길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의사와 다르게 그들은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기 위해 모든 죄를 다 불겠지요.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죄를 의사와 제약 회사에 뒤집어씌우겠지요.”
“하지만 고작 그걸로 그들이 죄를 인정할까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한국에는 정식 재판 말고도 다른 재판이 있거든요.”
“어떤 거죠?”
“바로 여론 재판입니다.”
“여론 재판?”
“네, 누군가 먼저 터트리면 그와 관련하여 여론 재판이 시작되지요.”
“하지만 누가 그걸 터트리겠습니까?”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게 중요합니다. 어차피 누가 터트렸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 * *
인터넷에는 여러 가지 사이트가 있다.
기본적으로 가입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가입하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있다.
당연히 그런 곳은 본인 특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그런 곳에서 익명으로 쓰이는 글은 신빙성이 없거나 관심 종자가 쓰는 글이 많아 상당히 많이 묻혀 버린다.
하지만 ‘살인에 대한 양심 고백’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살인에 대한 양심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처벌이 두려워 차마 자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살인을, 누군가가 막아 줬으면 합니다.
저는 모 제약 회사의 영업 사원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제가 하는 일은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고 우리 약을 써 달라고 하는 겁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 일은 갑질이 심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리베이트를 주고 어떤 약을 쓰지 말라고 부탁하라고요.
저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 말에 따라 리베이트를 뿌렸습니다. 그 당시에 들어간 리베이트는 평소의 몇 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던 중에 젊은 의사분에게서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의사분이 묻더군요, 그 약이 뭔지 아느냐고.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 시끄러운 그 항암제입니다. 효과가 20%나 좋은 항암제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그건 저랑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하는 직원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의사분이 그러시더군요.
당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그 약을 썼다면 살 수 있었을 사람이, 당신이 그 약을 쓰지 말라고 해서 죽었다고.
그제야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살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맞습니다. 20%나 효과가 좋다면 죽은 암 환자들 중 누군가는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걸 쓰지 못하게 하는 게 제 일이었고, 그래서 거의 모든 암 병원에서 해당 약이 퇴출된 겁니다.
얼마 전에 스무 번이나 의료보험화를 거부당한 것도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는 정상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차마 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준 돈이, 제가 놀린 혀가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무서웠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뉴스를 보고 그 약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작은 용기라 이름도 소속도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회사에서 저를 잡아낼까 봐 자세한 건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 치 혀로 수백 명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영업 사원의 세 치 혀 때문에 죽어 나갈지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는 겁쟁이라 차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글이 뻥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과 너무 많이 맞아떨어졌다.
상식적으로 의료보험 대상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스무 번이나 떨어지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기존 약과 대비해서 20%나 좋은 약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아주 난리가 났네.”
노형진은 그걸 보고 키득거렸다.
인터넷에서는 영업 사원들을 아예 살인마 취급하고 있었다.
다국적기업들이 어떻게 해서든 입을 막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미 퍼지기 시작한 글을 삭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거 노 변호사님이 쓴 거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태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용이 참 자세한 것 같은데 정작 특정된 건 하나도 없잖아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엿 먹이는 거 잘하시잖습니까?”
“그게 보입니까?”
“뭐, 같이 일하니까 보이죠. 그런데 진짜 교묘하네요.”
유지식의 말과 조사 결과를 적절하게 섞어서 익명으로 만들어 낸 글이다.
하지만 그 글은 진실을 담고 있었다.
“저라면 여기에 인증한다고 이름 같은 건 가리고 명함을 찍어서 올렸을 텐데요.”
“그러면 안 됩니다. 명함을 보면 소속을 특정할 수가 있잖아요.”
“소속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회사 명함은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잖습니까?”
그러니 명함을 도용해서 만들면 그 회사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 그 회사에서 그 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회사가 특정되지 않았으니 무작정 삭제 요청할 수도 없죠.”
“아!”
“그리고 지금 이 사람은 공포와 자괴감에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인증하려고 할까요?”
“그 부분은 생각을 못 했네요.”
무태식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그저 글의 신빙성만 생각했지 그들의 움직임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인증을 하지 않았으니 믿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조작해서 관심을 끌려고 하는 관심 종자는 충분히 많다.
그런 미친놈들이 현재 상황을 그럴듯하게 엮어서 거짓말을 하는 게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 국민들이 이걸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건 누군가 익명으로 사실상 살인, 정확하게는 미필적고의의 살인이 일어났음을 이야기했다는 거다.
그것도 거의 대량 학살 수준으로 벌어지는 살인.
그게 세상에 드러났는데 조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회단체들은 움직일 수 있는 핑계를 얻었지요.”
지금까지는 이번 사건에 검찰과 경찰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리베이트가 밝혀진 것도 아니었고 의료보험 적용에 관해 위법 사항이 밝혀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익명이라고 해도 대량의 살인이 드러났으니까…….”
그것도 아주 신빙성이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 그들을 움직이게 해야지요, 후후후.”
* * *
얼마 후 복수재단은 해당 사건을 정식으로 고발했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고발이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인지 수사라는 형태로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론이 너무 안 좋았다.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
물론 병으로 죽었으니 살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중요한 건 로비를 통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했다는 거다.
이 사실은 주변에서 암 걸린 사람 한두 명은 본 적이 있는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당연하게도 첫 번째 대상은 소위 리베이트를 주고 다니는 영업 사원에 대한 소환이었다.
물론 영업을 다니는 사원을 특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누가 영업하러 다닌다고 말해 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그 해결책은 복수재단이 간단하게 제시했다.
“복수재단에서는 영업 사원들에 대한 현상금을 걸겠습니다. 영업 사원의 연락처를 아시는 분이 저희에게 제보를 해 주신다면 최초 고발일 경우 200만 원의 현상금을 지급하겠습니다.”
복수재단의 발표에 그들의 신분에 대한 제보가 연일 이어졌다.
“신분을 감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특정되는군요.”
“영업 사원들은 결국 간호사를 거쳐서 들어가거든요.”
의사를 바깥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병원에서 만난다.
물론 그가 거기서 돈을 주는 경우는 없지만, 일단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병원에서 간호사를 거쳐서 만나서 번호를 따야 한다.
“그리고 로비라는 게 자주 가야 하는 거거든요.”
그냥 돈 좀 던져 주는 게 로비가 아니다.
자주 가서 굽실거리고 좀 추앙해 주는 게 로비다.
“의사들이 그런 식으로 영업하는 영업 사원을 집으로 불러서 자기 집 제사 음식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뉴스 못 보셨습니까?”
“하긴 몇 번 보지도 못한 사이의 사람에게 그런 짓까지 시키지는 못하겠지요.”
무태식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간호사가 그 존재를 알 수밖에 없죠.”
설사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그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아니면 주변에서 알 수도 있다.
워낙 영업 일이 더럽다 보니 술 먹고 하소연도 자주 할 테니까.
“그 사람들에 대한 고발이 한꺼번에 들어갔으니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이런 일에 대해 관련이 없는 영업 사원도 결국 리베이트를 준 것은 드러난 상황이니까 처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마 말 그대로 멘붕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뒤처리는 경찰과 검찰이 해 줄 겁니다.”
* * *
“나는 진짜 몰랐다니까!”
대학교수들, 특히 상위직에 있던 교수들은 난리가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소환 조사에 불려간 영업 사원들이 모조리 죄를 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누구한테 얼마나 리베이트를 줬는지 다 이야기했다. 차라리 뇌물죄를 뒤집어쓰고 말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교수님,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일개 영업 사원도 아는 걸 대학교수님이 모른다는 게!”
“아니, 그건 임상 실험 결과고, 현실은 달라, 현실은!”
“이미 현실적으로 치료 효과가 드러났는데요?”
“그건 이제 드러나는 거지! 전에는 몰랐잖아! 난 몰랐다고! 리베이트? 누가 그딴 개소리를 하는 거야! 난 의사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라고! 내가 사람이 죽는 걸 알면서 그랬을 것 같나?”
병원의 대학교수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유지식은 지나가다가 피식 웃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지랄한다.’
그가 아는 한 그걸 가장 개떡같이 여긴 사람이 바로 지금 저기서 몰랐다고 우기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에게 그 약을 쓰지 말라고 뺨을 때린 것도 저 인간이었고, 빌고 있는 그에게 발길질을 날린 것도 저 인간이었다.
‘이제 와서 모른 척하시겠다? 지랄하네.’
유지식은 마음 같아서는 입구에 딱 붙어서 그가 곤혹스러워하는 걸 계속 듣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래, 몸을 좀 사리자.’
꼬라지를 보아하니 조만간 모가지가 날아갈 게 뻔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의 모가지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인간이니까.
‘아오, 속이 다 시원하네.’
지금 의과대학 교수들 중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직접적으로 암을 다루지 않는 학과라고 해도 리베이트죄가 뒤집어씌워졌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저 벌금이나 내고 끝이겠지만 이제는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면 업무상 과실치사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국이라 정부에서도 엄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긴 정부 입장에서도, 사람 목숨을 가지고 리베이트를 주고받았는데 그걸 또 벌금으로 끝내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것이다.
당연히 실형은 무리라고 하더라도 자격정지는 내릴 텐데, 대학교수가 자격정지를 받으면 당연히 교수 짓은 못 한다.
즉, 교수들 중 상당수가 커리어가 끝장나게 생긴 판국이라는 거다.
“룰루.”
유지식은 오랜만에 즐거운 얼굴로 병동으로 내려왔다.
물론 사람이 없는 계단을 이용했다.
병원 내부가 발칵 뒤집어졌는데 웃고 다니면 욕을 먹을 테니까.
하지만 어디선가 웃지 않으면 진짜 빵 터질 것 같았다.
“아이고, 기분 좋아라.”
그는 그렇게 병동으로 내려가다가 아래쪽에서 뭔가를 하는 간호사와 마주쳤다.
간호사는 유지식을 발견하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연히 유지식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자신의 웃는 얼굴을 봐서?
아니다. 설사 봤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 있어서 웃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간호사가 하는 행동은 그걸로 커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 간호사? 지금 뭐 하는 거지?”
“유…… 유 선생님! 아니, 그러니까 이게…….”
최 간호사는 암 병동의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지금 차트를 가지고 와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네만?”
“그게…….”
유지식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그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위에서 내려온 말 못 들었나?”
“…….”
위에서 내려온 말, 그건 차트를 ‘조작’하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인만은 면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부분은 모조리 조작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 조작 전인 차트를, 간호사가 찍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최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상황이 어떤 건지 모를 리 없으니까.
“후우.”
유지식은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와서는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저장된 사진들을 확인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스러웠던 대부분의 차트들이 사진 형태로 저장되어 있었다.
“자네…….”
“…….”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는 최 간호사.
‘그러고 보니 최 간호사 아버지가 여기서 돌아가셨지?’
그것도 암으로 돌아가셨다.
과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대부분의 암 환자 가족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약을 썼으면 아버지가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찍은 건 아버지 것뿐만이 아니다.
그러면 다음 이야기는 뻔하다. 이걸 찍어서 유가족에게 주겠다는 소리다.
“후우.”
당장 경비를 부를 거라 생각했는지 최 간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유지식은 경비를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녀에게 핸드폰을 도로 건넸다.
“선생님?”
“이거 새어 나간 거 알면 분명 핸드폰부터 검사할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클라우드에 올리고 바로 삭제해. 아니다, 복구할 수도 있겠군. 일단 오늘 나가서 같은 기종으로 하나 새로 사. 혹시 모르니까 사용감 좀 있는 중고로. 그래야 새 핸드폰을 제출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사진을 복구할 수도 있으니까 차트 사진 말고 옛날 사진 몇 개 옮겨 놨다가 제출하고.”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이거 찍느라고 시간 얼마나 보냈어?”
“그게…… 한 40분 정도…….”
“간호사가 자리를 그 정도 비우면 다른 사람이 모르겠어? 다른 사람한테 가서 내가 개인적인 심부름 하나 시켰다고 해. 아, 지금 돈 가진 거 얼마나 있어?”
“네? 돈요?”
“그래, 돈. 현금.”
“어…… 그러니까 한 10만 원 정도…….”
“기다려 봐.”
유지식은 지갑을 뒤져 대략 30만 원 정도를 꺼냈다. 다행히 찾아 둔 돈이 좀 있었다.
그는 최 간호사에게 그 돈과 함께 체크카드 하나를 건넸다.
“이거 가지고 가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돈하고 카드 나한테 줘. 빈 시간 동안 최 간호사는 내 심부름으로 은행에 다녀온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아, 네…….”
“빨리 정리하고 들어가. 이거 가지고 온 거 아무도 모르지?”
“네…… 네…….”
“빨리 찍고 어서 가. 어서.”
그렇게 말하면서 유지식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그곳을 떠났다.
저게 새어 나가면 아마 병원은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분명 병원에서 제출한 서류는 저것과 다른 조작된 서류일 테니, 저게 나타나는 순간 병원 차원에서 범죄를 은폐한 정황이 드러날 테니까.
“아…… 모르겠다. 몰라. 뭐. 어떻게 되겠지.”
그는 입맛을 다시면서 병동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