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35)
노형진은 며칠간 병원 감시를 느슨하게 했다.
애초에 병원은 그다지 감시할 일이 없기는 했다.
특히나 제2종 창고, 그러니까 공산품을 쌓아 두는 창고는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기는 하루 종일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뭔가를 꺼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난 뒤 어느 늦은 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스윽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것 또한 확인했다.
그리고 조용히 제2종 창고로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그곳은 문이 열려 있었기에 쉽게 그 안에 들어간 그는 품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주사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약 열 개의 링거주사 호스를 꺼내서 거기에 조금씩 어떤 물질을 주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호스들을 원래 자리에 잘 넣고 정리한 뒤 다시 주사기를 품에 감추고 그곳에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왕주림 씨, 여기서 뭐 하시는 거지요?”
갑자기 불이 켜지자 당황해서 눈을 데굴거리던 사람, 왕주림은 다급하게 변명을 했다.
“그게, 재고 확인을 할 게 있어서요.”
“그래요? 재고 확인을 왜 의사가 합니까?”
“그냥, 간호사들이 힘들까 봐서 그랬습니다.”
“미리 간호사들에게 말도 안 하고요?”
“그……게…… 이제 가서 이야기하려고…….”
“그래요?”
노형진은 힐끔 시선을 돌렸다.
잔뜩 쌓여 있는 박스들.
“그래서 몇 개던가요?”
“네?”
“지금 재고 확인하고 나오려던 것 아니었나요? 그래서 뭐가 몇 개이고 뭐가 부족하던가요?”
왕주림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지금이라도 세고 싶었지만 이미 그는 몸을 돌린 후라 뒤쪽의 재고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우리 재고에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노형진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요?”
노형진이 고갯짓을 하자 뒤에 있던 인디언 경비들이 다가가서 그를 양쪽에서 잡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건 계약 위반입니다!”
“계약 위반은 그쪽에서 했지, 왕주림 씨.”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구석을 가리켰다.
“야시경 카메라라고 아십니까?”
“야시경 카메라!”
쉽게 말해서 카메라와 야시경을 연결한 거다.
그런 카메라들은 아주 작은 빛만 있어도 그걸 증폭해서 아주 선명하게 촬영을 한다.
“아주 비싸더군요.”
노형진이 가리킨 창고의 구석, 거기에 교묘하게 감춰진 카메라를 본 왕주림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워낙 컴컴해서 카메라가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거기에다 내일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어 놓으셨더라고요?”
“…….”
“오늘 당직이고 내일은 쉬는 날, 모레는 연차. 아주 잘 짜 놓으셨던데요.”
그렇게 해 두면 정작 일이 터졌을 때 그는 현장에 있을 수가 없다. 당연히 의심에서 벗어난다.
이쪽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중국으로 돌아가 있을 테고.
“증거가 없으니 미국으로 송환도 불가능하고 말이죠.”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약 회사의 힘이라면 중국에서도 제법 괜찮은 자리 하나 얻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테고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말입니다…….”
“자세한 건 경찰에게 말하시지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한 뒤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이 안에 있는 모든 물품은 증거입니다. 일절 손대지 마세요.”
“전 억울합니다! 진짜로 억울해요! 아무런 짓도 안 했단 말입니다!”
왕주림은 애원하다시피 외쳤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카메라로 모두 다 보고 왔으니까.
“당장 이 새끼 끌고 가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인디언 보호구역 병원에 있는 모든 물품에 대한 전수조사를 명합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형진은 희미한 미소를 감춘 채로 어두운 창고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 * *
얼마 후 경찰에게 끌려간 왕주림은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명확하게 자신의 행동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 미쳤습니까?”
“돈에 눈이 멀어서 그만……. 미안합니다.”
“이게 미안하다는 말로 될 일입니까?”
경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탄저균 살포에 대한 제보를 받고 움직이던 중 왕주림이 걸려든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안 된다니까요! 지금 당신이 어떤 일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압니까?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사람들한테 탄저균을 주사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타…… 탄저균요?”
왕주림은 고개를 벌떡 들었다.
“자…… 잠깐만요! 탄저균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모른 척이야! 너 때문에 지금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어! 알아!”
환자의 링거주사 호스에 탄저균을 주사하는 의사라니.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왕주림은 당황했다.
‘이……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탄저균은 미국에서 공포의 대상이다.
테러 단체에서 정치인과 국가 단체에 그걸로 테러를 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저균이라니.
더군다나 탄저균의 치사율은 무려 95%다.
주사 대상이 암 환자인 걸 생각하면 100%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탄저균이라니! 나는 탄저균을 주사한 적이 없습니다!”
“개소리하지 말고! 같이 일한 놈들 불어! 지금 거기서만 발견된 줄 알아!”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수사관을 보면서 왕주림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에게 그걸 주면서 주사하라고 한 사람은 그게 단순히 구토와 오한 그리고 설사만 발생시키는 약물이라고 했다.
‘타…… 탄저라고?’
하지만 탄저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탄저병을 뿌리려고 하는 셈이 된 거다. 거기에다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인디언 보호구역에는 그가 일하는 병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인디언 보호구역에 탄저병이 발생한다면…….’
수만 명이 죽을 수도 있고,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도 거기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인디언 보호구역 병원들은 모조리 망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는 돈을 받고 주사하기로만 했지 그게 뭔지 전혀 몰랐다. 그저 단순한 설사약쯤 된다고 듣고 믿었을 뿐, 실제로 그게 뭔지 조사해 본 적은 없으니…….
‘크…… 큰일 났다.’
왕주림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제야 당신이 뭔 짓을 한 건지 안 거야?”
“그…… 그게 아니라…….”
손이 벌벌 떨리는 왕주림.
“제…… 제가 그걸 가지고 오다가 바늘에 살짝 찔렸는데…….”
“뭐? 뭐? 뭐라고! 이런 씨발!”
순간 조사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바이오해저드!”
“뭐라고?”
“무슨 일이야?”
“이 새끼가 탄저 바늘에 찔렸단다!”
일순 사무실 내부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들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사람이 나가는 거 막아!”
“오늘 이 새끼랑 접촉한 사람들 다 불러들여!”
“이 새끼 격리해!”
순식간에 창문이 닫히고, 누군가는 전화기에 대고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바이오해저드! 바이오해저드! 오늘 잡혀 온 사람이 탄저병 감염 위험이 있답니다! 당장 사람을 보내 주세요! 이 지역 모조리 봉쇄하세요!”
사방이 삽시간에 비명으로 가득해지는 것을 들으며, 왕주림은 공포에 젖은 미소를 띤 채 울었다.
“으흐흐흐흐…….”
그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