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5)
“얼굴 봐라.”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차면서 법원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얼마 전 사건으로 인해서 단체로 고발된 인간들이었다.
“많기도 해라.”
노형진은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서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학생들은 부모가 동의를 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의 부모들은 이번에 벌어진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서 충격받았는지 거의 대부분이 동의해 줬다.
“이봐, 노형진 변호사.”
노형진이 막 재판을 준비하는 그때였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노형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있었다.
“얼레? 형이 어쩐 일이에요?”
잘생긴 외모에 깨끗한 정장. 그리고 손에 들린 명품 가방과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
‘저인간은 또 왜 온 거야?’
노형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이거 형님을 만났으면 인사라도 해야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노형진을 비릿한 시선을 내려다보는 남자. 키가 무려 188이나 되니 당연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반갑기는 하죠.”
노형진은 성의 없이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와는 그다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별로 반갑지 않은 녀석인데’
이도현. 노형진이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자신을 지독하게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뼛속까지 성공한 사람의 전형 같은 사람이었다. 미래의 표현을 빌린다면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할 만한 스펙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아, 진짜 반갑지 않은 녀석인데.’
커다란 은행의 지부장인 아버지. 미술 재단의 이사장인 어머니를 둔 그는 전형적인 다이아몬드 수저를 타고났다.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뭐, 가진 사람이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그에게 있어서 동수저 출신인 주제에 언제나 자신을 제치고 1등을 하는 노형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우리 잘나가는 후배님 보러 왔지.”
“엄밀하게 말하면 동기입니다만?”
“그래도 후배잖아? 내 말이 틀려?”
“틀리죠.”
법정에 서면 당연히 후배고 동기고 의미가 없다. 둘 중 한 명이 승리해야 하며 서로가 서로의 의뢰인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
“끝까지 잘난 척은.”
히죽거리면서 다가오는 이도현.
“네가 요즘 잘나간다고 아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인데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요즘 선배들을 제대로 엿 먹이고 있다면서?”
“제가 엿을 먹인 게 아니라 결국은 의뢰를 받았으면 그걸 행해야지요.”
“하여간 잘난 척은.”
잘난 척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사법연수원은 현재 모든 법률계 종사자가 거쳐 가는 곳이다. 그곳을 먼저 나왔다면서 선배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아예 법의 정의 따위는 이룩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후배가 감히 선배를 이기려고 덤빌 수가 없다는데 무슨 정의가 선단 말인가?
“이번에는 물러나는 게 좋을 텐데?”
“네?”
“물러나는 게 좋을 거라고. 알아들어?”
“아아아.”
노형진은 왠지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현 상황에서 이 녀석이 나타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이 상대방 변호사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거지는 거지답게 아래서 굴란 말이야 알았어?”
“거지?”
“그래, 이 거지 새끼야.”
그 말에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 집, 그렇게 가난하지 않습니다만?”
“그래 봤자 거지 새끼지. 거지가 어디 가겠어?”
‘그래, 원래 이런 녀석이었지.’
애초에 이 녀석이 사법연수원에 온 이유도 노형진처럼 정의를 지킨다거나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온 게 아니었다. 장차 정치 쪽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법 쪽에 인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다.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도 이런 식으로 공공연하게 세력을 만들고 그랬지.’
단순히 친해진다거나 끼리끼리 뭉친다는 개념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서 정치계에 진출하려고 했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니 이런 사건을 담당해도 이상할건 없지.’
지금 이 사건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권이 걸려 있다. 그 덕분에 이런 녀석이 담당하게 될 것이리라.
“마음대로 하세요.”
“뭐라고?”
“날 거지라고 부르든 흙수저라고 부르든 마음대로 하시라고요.”
“흙수저?”
‘아, 아직은 이런 표현을 모르겠구나.’
“어찌 되었든 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새끼가 정말.”
자신이 먼저 도발하고 노형진이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하자 도리어 더 발끈하는 이도현.
“우리 연수원에서 수업받을 때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법원은 세 치 혀의 전쟁터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걸로 싸우면 되지, 뭘 어쩌라고요?”
“너 지금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협박입니까”
노형진의 말에 아차 싶은 그였다.
‘네놈이 지금까지 이겨 온 방식으로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웃기네.’
노형진도 이도현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이기기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인맥을 동원해서 자금력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변호사라고 하지만 이제 막 개원한 사람들은 돈이 없고 사무실을 얻기 위해서 결국은 대출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방이 그럴 필요가 없는 금수저이거나 대형 로펌 소속이면 여러 가지 이권을 준다고 꼬셔서 물러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힘든 싸움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변호사는 변호사로써 자기 세 치 혀 만 믿으면 되는 겁니다.”
노형진이 따끔하게 한마디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노형진이 들어간 입구를 바라보면서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저 개새끼…….”
“이번 사건에서 피고들은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 아동들을 학대한 것입니다.”
노형진의 공격은 강력했다. 워낙 증거가 넘쳤고 피해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도현 역시 그냥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판장님, 이번 사건은 학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증거 을제 4호를 보시면 보다시피 모든 부모님들은 이번 수련회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그것에 대해서 동의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학대에 대한 동의는 아닙니다. 수련회란 말 그대로 정신과 육체를 수련하고 나아가 성품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수련회의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갑자 4호증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수련회의 시간표를 보시면 나흘간의 스케줄이 실질적으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육체적 고통을 주는 과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판장님, 밤에 이루어지는 야간 담력 훈련이 육체적인 가혹행위라는 말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바로 반박하는 이도현. 하지만 노형진은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정상적인 담력 훈련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담력 훈련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습니다. 담력 훈련이 정상적인 과적이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요. 하지만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면?”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판사. 보통 담력 훈련이라고 하면 조를 이뤄서 어디 폐가를 갔다 온다거나 숲을 갔다 오는 정도다. 딱히 정상적이지 않을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갑제5호증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한 주 먼저 담력 훈련을 갔다 온 학생의 증언입니다. 또한 몇 년간 해당 수련회장을 이용한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담력 훈련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담력 훈련 과정은 수련장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산에 버려진 별장에서 갔다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산은 경사가 무려 40도입니다. 주간에도 올라가기 힘든 곳을 야간에 단 두 명이서 후레시 하나에 의지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흠, 확실히 안전에는 문제가 있겠군요.”
그 말에 이도현은 재빨리 말을 막았다.
“기본적으로 담력 훈련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담력이 뭡니까? 용기입니다. 용기를 키우기 위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험하다고 도망치는 것이 어떻게 용기가 될 수 있습니까?”
‘용기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사실 담력 훈련을 하는 데에 있어서 용기를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들이 담력 훈련을 하는 목적은 완전히 달랐다.
“애초에 담력 훈련은 말 그대로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담력 훈련을 위해서 기다리는 동안 왜 애들이 기합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그거야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서…….”
“하루 종일 극기라는 이름으로 가혹행위를 당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밤에 또 가혹행위를 하는 것이 수련인가 보죠?”
“그건 긴장감을 풀어 주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긴장감을 풀어 주기 위해서 가혹행위를 한다?”
“가혹행위가 아닙니다. 운동입니다. 산을 타야 하는 입장에서 근육이 뭉쳐 있으면 사고가 나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운동을 했는데요?”
“운동은 많이 할수록 좋은 겁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코웃음이 나왔다.
“그 부분은 나중에 반박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이 정상적이지 않은 훈련이라는 것이 단순히 가혹행위를 반복하거나 위험한 곳을 보냈다는 점이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이 산, 누구 겁니까?”
“네?”
생각지도 못한 노형진의 질문에 멍한 표정이 되는 이도현. 그리고 피고 측 역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하긴 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었으니까.
“여기 지적도를 보겠습니다. 해당 산의 주소지는 인천에 사시는 김○○ 씨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거야…….”
알 리가 없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그리고 해당 주택의 소유자는 아십니까?”
“주택?”
“증언에 따르면 야간 훈련에 참석한 사람은 해당 버려진 별장에 들어가서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교관에게 도장을 받아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거야…… 그런데.”
“그럼 그 주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
버려졌다고 해도 산속에 있는 별장에 주인이 없을 리가 없다. 누군가는 그곳에 집을 지었으니 그곳에 집이 있는 것일 테니까.
“그 역시 확인해 봤습니다. 그 집은 광주에 사시는 박○○이라는 분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 측은 양측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또한 사용 허가 역시 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사유지 침입에 해당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피고 측 변호인?”
“큭.”
이도현은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설마 사유지 침입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카드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게 어디 한두 번이냐?’
대한민국 땅은 결국 다 누군가의 땅이다. 그걸 이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허가를 받거나 빌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수련회를 하는 곳들은 대부분 주먹구구로 운영한다. 더군다나 이 수련장은 척 봐도 이 시즌에만 잠깐 운영하는 곳이다. 즉, 딱히 사용하기 위해서 허가받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피고 측은 학생들을 졸지에 사유지 침입의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훈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상입니다.”
노형진이 공격하고 물러나자 이도현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 새끼가 진짜.’
사실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압도적인 1등이다 보니 그도 노형진을 세력에 넣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가 성공할 거라 믿은 게 아니라 이용해 먹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형진은 그런 그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에 가입을 거절했고, 그 때문에 이도현은 지금까지 노형진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재판장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변론 기일까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번 수련회에서 모든 학생들은 모두 동의서를 받아 왔습니다. 즉, 법정 대리인인 부모의 동의를 얻은 것입니다. 수련회라는 것은 수십 년 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었고 부모들 역시 수련회에 다녀왔으며 그 수련회라는 것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인정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도현은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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