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66)
김성식은 예고편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교묘하군.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건 하나도 없어. 학생들 사이에서 도는 질문이나 제보라는 식이니까.”
“그렇지요.”
실제로 학교 폭력이 자꾸 은폐되면 학생들 사이에서는 저런 소문이 무조건 돌 수밖에 없다.
선생들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같은 일을 연달아 겪는 학생들에게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니까.
그렇지 않다면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을 가만두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런 의혹이 ‘있다는’ 거죠.”
제보자가 누구냐고 캐물어 봐야 기자들이 그걸 말해 줄 이유는 없다.
일단 제보자는 법으로도 보호받는 데다 제보자가 학생이라면 그에 대한 보복이 우려된다고 말 한마디만 해 버리면 법원에서 계속 파고들지도 못한다.
선생들은 분명 보복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니까.
“그런데 저 경찰들은 뭔가? 왜 도망가는 걸 찍은 거야? 저 사람들은 아는 게 없을 텐데.”
“없죠. 사실 저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요.”
그저 재수 없게 순찰 시간에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한 것뿐이다.
“그런데 왜 도망가게 한 거야? 작심하고 몰아붙이던데?”
“아시네요?”
“내가 검사만 몇 년인데 그걸 모르겠나?”
“하하하, 그렇기는 하네요. 그들을 도망가게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망가는 놈은 켕기는 게 있는 놈이니까요.”
경찰들도 아는 사실이다.
대답을 할 수가 없으니까 도망간 거다.
“이걸 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가 중요한 겁니다.”
그들은 경찰이 도망가는 걸 봤으니 경찰이 뭔가 감추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피해는?”
“걱정하지 마세요. 본방송에서는 제대로 나갈 겁니다. 답변을 할 위치가 아니어서 도망갔다고요. 그러면 경찰은 따질 수가 없지요.”
“하지만 예고에는 넣었잖아?”
“멋지지 않습니까? 도망가는 경찰, 그리고 추적하는 기자들.”
노형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기서 도망간 건 저 두 사람이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도망간 사람은 경찰이라는 이미지입니다.”
당연히 방송에는 경찰은 잘못이 없다고 나갈 테니 방송국 직원들을 징계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경찰의 이미지는 사건에 대해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으며 특정 세력을 비호하는 조직으로 보이게 된다.
어찌 되었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다급하게 도망갔으니까.
“그리고 경찰은 그 문제에 대해 절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훈방은 법적인 규정이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훈방의 법적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말장난이다.
강도는 무력을 통해 돈을 빼앗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단돈 1만 원만 빼앗아도 강도가 된다.
갈취는 돈 조금 주고 왕창 사 오라고 하는 놈들이 넘치니 당연히 성립된다.
납치, 감금이야 학교 폭력의 기본 베이스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범죄 중에 학교 폭력이라는 죄목은 없지요.”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법률에 기재된 것은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다.
그리고 그 법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폭력이라는 용어가 여기저기서 당연하게 사용되기는 하지만 아직 공식 명칭은 아닌 셈이다.
더군다나 그 법률은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 정식으로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 학교 폭력이라는 용어에 대해 학교에서 벌어지는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 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한 신체 정신적 또는 재산상의 피해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노형진이 거기서 강도 및 납치, 감금이라고 한 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다.
이처럼 사람들이 아는 죄목 중에는 잘못 아는 게 몇몇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허위 사실 유포죄다.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줄 알지만, 법적으로 말하면 허위 사실 유포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명예훼손에 종속적으로 그러한 단어가 붙을 뿐이다.
그런데 성문법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인 명칭의 유무가 불러오는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없는 범죄를 가리켜 학교 폭력이라 부른 게 아닙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실제 범죄 규정을 말한 것뿐이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강력 범죄를 은폐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제가 노린 거니까요.”
학교 폭력으로 방송에 나가면?
분명 정신 못 차리고 애들은 싸우며 큰다는 개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지만 강도와 납치, 폭행 그리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이라고 하면 아주 강력 범죄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어떤 사람도 그런 범죄를 살면서 한 번쯤 할 수 있는 실수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거기에다 온갖 의혹을 붙여 놨으니까요.”
그러니 왜 훈방이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렇다고 경찰이 범죄자의 범죄 기록을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명백하게 현행법 위반이니까.
“더군다나 그 훈방이라는 규정도 애매하지요.”
법적인 규정은 없는데 경찰은 그동안 일종의 관례로 적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업무를 줄이는 데에는 좋다고 하지만 경찰은 엄밀하게 말하면 수사 지휘권이 없다.
그러니 저런 강력 범죄로 신고가 들어왔을 때 가해자를 훈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들은 가해자들을 학생이라는 이유로 훈방했지요.”
물론 형소법상의 수사 개시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해석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법의 형평성이 문제가 되지요.”
실제로 고소를 하러 가면 경찰에서는 사건 접수를 거부하거나 훈방으로 끝내는데, 정식으로 검찰에 접수를 하면 처벌로 넘어가는 일이 많다.
왜냐하면 수사 지휘권을 가진 것은 검찰인데 그들이 수사 지휘를 하는 걸 경찰은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경우 수사 개시권과 충돌한다는 거지요.”
수사 개시권을 가지고 있으니 개시를 하지 않겠다고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경찰에서 수사도 시작하기 전에 죄를 판단하는 셈이니 심각한 월권행위가 되니까.
“그렇다고 검사를 통해 들어온 사건만 수사하면 문제가 되지요.”
법적인 형평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니까.
검찰을 통해 조사하면 처벌 대상인데 경찰에서는 훈방이라는, 규정에 없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결국 경찰이 멍청한 짓을 자초한 겁니다.”
수사 개시권이 명시된 이유는 간단하다.
이게 범죄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 또는 그 사건이 의심스럽지만 증거나 기타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부족할 경우 보충하라는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수사 개시권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걸 수년간 악용해 왔다.
일하기 싫으면 애초부터 수사를 안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경찰들, 아주 곡소리가 나겠군.”
“이제 곡소리가 나는 건 그들뿐이 아닐걸요.”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 * *
방송은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나 모자이크 처리되었지만 가해자의 부모가 한 인터뷰가 핵심이었다.
-선생님이 다 해결했다고요?
-아니, 애가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선생님이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에 다녀도 된다고 하셨다는 거죠? 모든 게 다 무마되었으니까.
-그랬는데 갑자기 이러는 게 말이나 돼요?
부모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한 말이겠지만 PD의 단어 선택은 교묘했다.
해결과 무마.
금전적 관계가 오가는 대가로 사건이 수습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미묘한 단어들이었기에 당연히 학교도 경찰도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특히 경찰은 해당 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경찰청장이 나와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해야 했다.
물론 노형진은 경찰에서 이걸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경찰과 마찬가지로 검찰과 법원에서도 감추고 싶은 게 있기 마련이니까.’
그건 바로 학교 폭력에 관한 처리 지침이다.
검찰에서는 그걸 가지고 학교 폭력으로 고발된 사건은 무조건 기소유예 처리하도록 해 둔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해당 질의가 들어가자 검찰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단순히 서면 질의만 온 게 아니다.
아예 촬영 팀이 공식적으로 약속을 잡고 찾아와 버렸다.
아무리 검찰이 막장이라고 해도 다른 곳도 아닌 홍보 팀이, 약속까지 미리 잡고 오겠다는데 ‘안 됩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감추는 걸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방송국에서 왔을 때 홍보 팀장은 차라리 현장으로 나갈걸 하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러니까 검찰에서는 학교 폭력에 관한 처리 지침을 통해 학교 폭력 가해자를 보호하고 처벌을 줄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그 규정은 학교 폭력 사범이 되어 학생들의 미래가 망가지는 일을 방지하고자…….”
“지난 2년간 학교 폭력 고발의 99% 이상이 이 규정으로 인해 풀려났고, 그들이 학교로 돌아가서 재범을 일으킨 일이 70%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러면 검찰은 학교 폭력, 아니 미성년자의 강도 및 갈취, 납치, 감금 행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처벌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군요.”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습니다만, 가해자이긴 하지만 아직 학생이고 어린 학생들의 미래 보호를 위해서…….”
“가해자의 보호를 위해 결국 피해자의 보호를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신데요?”
“그건 아니고…….”
검찰청에서 나온 사람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젠장, 이게 어디서 샌 거야?’
사실 이러한 처리 지침에는 비인륜적이고 행정 편의적이며 반인도적인 규정이 많다.
하지만 그건 내부 처리 지침으로만 규정되어 외부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런 질타도 받지 않고 집행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과거에 정부에서는 행려병자에 대한 치료 금지 규정을 보내서 행려병자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돈이 아까워서’였다.
당연히 이런 규정이 외부로 알려지지 못하도록 대부분 쉬쉬한다.
사실 행정 규정에 대해 언론이나 사회에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있다.
법만 해도 신경 쓸 게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하지만 피해자가 얽히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PD는 노형진이 했던 말을 계속 곱씹었다.
-그들은 계속 가해자의 미래를 따질 겁니다. ‘일하기 싫어서’라는 말은 할 수 없으니까요. 이쪽은 무조건 피해자를 언급하세요. 지난 방송 이후에 사람들은 2회 방송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가해자를 보호한다고 공식적으로 못 박아 버리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그러면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과 가해자들이 학교로 돌아옴으로써 받는 보복 피해는 검찰과는 상관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검찰에서는…….”
“계속 검찰, 검찰 그러시는데요, 이 검찰청 처리 지침의 명령권자가 누구인가요?”
“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나오자 담당자는 당황했다.
“명칭 자체가 학교 폭력 처리에 관한 지침인데, 지침이라는 것은 결국 명령권자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러면 그 명령권자가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검찰이라는 조직이 팩스로 처리 지침이라고 하나 딸랑 날아오면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일선에서 적용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닙니다. 저희도 나름 확인 절차를…….”
“그러니까 그 확인을 시켜 준 명령권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검찰총장이 최고위 명령권자일 텐데요.”
담당자의 얼굴이 아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검찰에서 고위직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불똥이 거기까지 튀면 그가 분노해서 여럿 날려 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게 목적이지.’
PD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노형진이 말했다.
그게 목적이라고. 그래야 이 불똥이 대통령에게로 튈 거라고.
당연한 게,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선발한다.
그런데 그런 검찰총장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아니 그렇게 보이는 건더기가 있으면 정치인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당장 PD가 검찰총장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검찰총장은 사과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일하기 싫어서 이런 규정을 만들어 내보낸 상위 검사들의 커리어는 끝장났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지.’
PD는 확실하게 불을 붙일 만한 건더기를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노형진에게 저들이 핀치로 몰릴 수밖에 없는 말에 대해 들은 상황이었다.
“지난번 사건 수사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경찰 최고위 라인이 가해자들과 연관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공식적으로 그걸 부정했고요. 그러면 혹시……?”
말은 흐렸지만 그 뒤가 어떤 말인지 담당자는 모를 수가 없었다.
‘망할 인터넷 방송국! 쌰아아앙!’
그는 속으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