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87)
“뉴저지에 살고 있네요.”
법원의 명령장과 미 정부의 공문 덕분인지 회사에서는 어렵지 않게 그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걸 보고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주소가 이상한데요?”
집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창고다.
“이거 뭐지?”
“어, 이상하네요?”
직원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주소의 마지막에 장기 임대 창고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사람이 살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갱신된 게 5년 전이에요. 그 이후에는 갱신되지 않았어요.”
“돈은요?”
“돈은 압류되었네요.”
“압류요?”
“네. 해당 투자금은 소송으로 인해 압류 상태예요.”
그 말은 그 돈을 찾아가지도 못하게 된 상황이라는 거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오광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과거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노형진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갔다.
“망했네.”
“뭐? 우리 망한 거야? 이 새끼들 튄 거야?”
“아니, 우리 말고 이놈들. 이쪽이 망했다고.”
“이쪽이?”
“그래.”
장기 임대 창고. 그건 여러 가지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곳을 빌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집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집 같은 것은 압류가 가능하고 팔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개인적인 물품들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압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망한 사람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을 수도 있고 당장 버렸다가 나중에 다시 사려면 그것도 돈이 들기 때문에 개인적인 물품들을 보관하려고 한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쓰는 게 장기 임대 창고다.
“그냥 뭔가 보관하는 데 아니야?”
“그럴 가능성은 낮아. 그러면 주소를 이곳으로 하지 않았겠지.”
더군다나 투자금이 압류되었다.
그 말은 그 투자금을 지킬 여력도 없다는 소리가 된다.
“일단 과거의 주소로 가 보는 게 좋겠어.”
노형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등골이 써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 *
현장에 갔을 때 노형진의 예상대로 그 집에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5년이 되었으며 전에 살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 된 걸까?”
오광훈은 집에서 멀어지면서 고개를 돌려서 한 번 더 돌아보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걸 좀 알아보기는 해야겠지. 하지만 이거 상황이 심각해.”
처벌받는 거? 사실 그건 노형진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을 처벌할 수 있다면 좋지만, 처벌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란 말이지.”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찾아야 한다.
“이 주변에서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하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사람들.
“알 만한 곳이 있어.”
“어디?”
“한인 교회.”
“한인 교회?”
“그래. 미국 한인 교회는 한국의 교회와는 좀 다르거든.”
물론 종교적 활동을 하는 것은 한국의 교회와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으로 온 한국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함으로써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아무리 사기를 치고 도망쳤다고 해도 아예 한국 사람들과 연을 끊을 수는 없었을 거야. 능숙하게 영어를 하던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한인 교회에 가서 물어보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있겠지.”
노형진은 다행히 근처에 사는 한국인에게서 한인 교회의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고, 어렵지 않게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목사는 채권오와 곽숙영이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주소를 말해 주자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다니엘 말이군요.”
“다니엘?”
“네, 다니엘 채와 클라라 곽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국 이름은 안 썼으니까요.”
목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들에게 딸이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습니다.”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네. 아이가 있다는 소리는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완전 개새끼들이네.”
자기 딸을 홀로 한국에 버려두고 도망친 후 아예 신경도 안 쓴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사람들 주소지에 살지 않던데.”
“음…… 이런 걸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하는 거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기를 치려고 했습니다.”
“사기요?”
“네. 그것도 기업을 대상으로요.”
기업을 대상으로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면서 엄청난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것.
물론 그건 흔한 일이다.
미국의 또 다른 이면은 소송의 나라.
그만큼 별의별 소송이 다 걸린다.
오죽하면 전자레인지 사용 설명서에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고 돌리지 마시오.’라는 황당한 설명이 다 있겠는가?
실제로 그래 놓고 소송을 건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걸렸나 보네요.”
“네. 한국하고 미국은 좀 다르지요.”
한국에서는 이런 걸로 소송을 건다고 해도 지면 그만이다.
물론 기업도 그에 따른 소송을 하겠지만, 그 손해배상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계획범죄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따라붙으니까.”
당연하게도 그 회사에서는 그들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제대로 싸우기 시작했고, 증거에서부터 자료까지 모조리 조작했던 두 사람은 그 징벌적 손해배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멍청하긴.’
미국 법이 한국처럼 물렁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만일 한국이었다면 이들은 기껏해야 1억 미만의 손해배상을 해 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 대신에 성공하면 몇십억은 받을 수 있을 테니 해 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른 것은, 미국의 법원이 그렇게 물렁하지 않다는 것과 미국의 사건 추적 능력은 한국 경찰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망하고 도망갔나요?”
“네, 저희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시고요?”
“알고 싶지도 않네요.”
“어째서요?”
“그 인간들, 교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도망갔거든요.”
‘하긴. 한 번 했는데 두 번을 못 하겠어?’
물론 이번에는 큰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송에서 지고 모든 재산을 빼앗길 처지에 처하자 현금이란 현금은 다 빼고 또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 도망간 것이다.
“그렇군요.”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이런 상황이면 그들이 어디 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게 될 테니까.
“혹시 관련 증거 같은 건 없나요? 아니면 어디로 갔는지 알 만한 분이나?”
“한국에 자식도 버리고 온 사람들이라면서요. 그런 놈들이 뭘 남기고 갔겠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고개를 갸웃하던 노형진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소송을 안 하셨습니까?”
“이미 기업에서 다 빼앗았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집기를 모아 둔 임대 창고가 있던데요?”
“임대 창고요?”
“네. 확인 안 하셨습니까?”
“그런 게 있었습니까?”
“네?”
노형진은 어리둥절했고, 목사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 * *
“임대 창고를 가명으로 빌린 줄은 몰랐네. 그러니까 기록에 안 남지.”
당연하게도 소송을 건 기업과 피해자들은 압류 등의 방법을 써서 피해를 복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임대 창고라는 게 가명으로도 가능한 거야?”
“미국은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 같은 걸로 일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물론 있기는 한데, 무조건 발급되는 게 아니라 신청하면 나오지. 그리고 이런 임대 창고를 가명으로 빌리는 경우는 많아. 돈만 된다고 하면 딱히 신분 확인은 하지 않거든.”
노형진은 주소로 등록된 곳에 가면서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서 열어 달라고 하면 열어 줄까?”
“열어 줄 리 없지.”
어찌 되었건 사유재산이고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예민한 것이 미국이다.
한국처럼 경찰이라고 일단 협조하는 게 아니라 일단 영장부터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장도 없잖아.”
“우리는 영장보다 더 좋은 게 있지.”
노형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 좋은 게 뭔지, 오광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