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407)
“이건 뭐…….”
노형진은 유민택의 말을 들으며 혀를 끌끌 찼다.
“대놓고 제게 전해지라고 한 행동이네요.”
“비서도 그러더군.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어. 우리를 공격할 거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
“흠…….”
노형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씩 웃었다.
“우리를 빼고 생각하지요.”
“뭐?”
“우리를 빼고 생각하자고요.”
“나를 모욕하고 우리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는데?”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한은 바보가 아니다.
“그놈들은 음험한 놈들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우리가 이렇게 고민할 거란 것도 알 겁니다.”
“그럴 테지.”
그걸 모르고 설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저라면…….”
노형진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두한과의 오래된 싸움. 그 시간 동안 그들의 성향을 분석했던 노형진은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을 세웠다.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곳을 노릴 수도 있겠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를 적대했는데?”
“그래서 우리를 빼자는 겁니다.”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생수를 꺼내 쭈욱 들이켰다.
“날씨가 덥군요.”
“장난하지 말게. 그놈들에게 그런 무례를 당하고도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네.”
전쟁을 하지는 않겠지만 유민택이 화가 나지 않을 리 없다.
당연히 두한과 대룡의 관계는 순식간에 냉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이해가 안 가는군.”
“두한과 대룡은 사실 거의 왕래가 없는 기업이지요.”
사업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라이벌이지 동업자는 아니다.
같이 하는 부분은 아예 없다.
“쉽게 말해서 냉각된다고 해도 분위기만 흉흉해질 뿐 딱히 문제가 생기긴 어렵지요. 더군다나 합당한 이유도 있으니까요.”
노형진이라는 존재.
두한의 철천지원수, 그리고 대룡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
“알고 있네. 그런데 날 무시했다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빼야 한다는 겁니다.”
“어째서?”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이쪽이니까요.”
“응?”
노형진은 손가락을 들어서 한쪽을 가리켰다.
“뭐가 보이시나요?”
“책장이 보이네만. 그런데 저거랑 이번 일이 무슨 관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다시 앞으로 향하려고 하던 유민택은 흠칫했다.
자신의 뺨에 뭐가 닿았기 때문이다.
흠칫하던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노형진이 방금까지 먹고 있던 찬 생수병이 있었다.
“뭐 하는 건가?”
“이게 저들이 노리는 겁니다.”
“두한이?”
“그렇습니다. 저들은 손가락으로 저 책장을 가리킨 거지요. 하지만 다른 손으로는 다른 일을 준비하는 겁니다.”
“책장을 가리킨다?”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경제인의 밤에서요. 거기서 대놓고 차기 회장인 이문소가 유 회장님을 무시하고 술주정을 했습니다.”
노형진은 물병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 또한 처음에는 그들의 의도를 잘 몰랐지만 그들의 성향과 기업 문화를 생각해 보니 뭘 노리는지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기업인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으음…….”
유민택은 노형진이 뭘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유 회장님 생각에, 당분간 다른 기업들은 어떤 판단을 하겠습니까?”
“아마도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양쪽이 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어제 벌어진 일이지요. 사실 단순 술주정입니다. 어찌 되었건 이문소는 회장님보다 직급도 낮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지요.”
자존심은 상할지 모르지만 그가 조용히 사과하면 쉽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안 합니다. 물론 진짜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작전일 수도 있지요.”
“그렇겠군.”
유민택은 자신이 다른 기업의 회장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행동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대룡의 입장을 완전히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자 답이 나왔다.
“이익을 노리겠지. 경제인이란 그런 놈들이니까.”
당연히 양쪽의 싸움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성화를 그렇게 잡아먹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모를 테니 정보 라인이 우리에게 집중되겠군.”
다른 기업들의 정보 라인이 노형진과 대룡에 집중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두한은 우리를 가리키고 있는 거지요. 저쪽을 봐라, 저쪽에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유민택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했나?”
“만만했다기보다는 합당한 대상인 거죠.”
작은 곳과 트러블을 만들었다가는 거기서 살려 달라고 빌기 시작할 테니 자기들만 나쁜 놈들이 된다.
그렇다고 재계 1위를 건드릴 수는 없다.
그쪽에서 진짜로 빡쳐서 전쟁에 들어가면 곤란하다.
“적당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고 또 적당하게 자신들과 급이 맞지만 절대 싸움은 일어날 수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지요.”
“그건 우리군.”
겹치는 것도 거의 없고 왕래도 거의 없다.
싸운다고 해도 손실도 없다.
하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 이 두 집단의 싸움은 아주 심각해 보일 것이다.
“이런 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지요.”
물론 그게 성공할 자신이 있으니까 저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서까지 하려고 한다면 절대 작은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겠군. 과거 두한의 행동을 보면 말이야.”
유민택은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기업들을 잡아먹고 고의 부도를 시키면서 돈을 벌었던 놈들이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이 수천억이다.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생각하면 수조 원의 돈을 빼앗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좀 달라지기는 했겠지만요.”
“우리가 그들과 싸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다지 큰 싸움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볼 것이다.
그사이에 그들은 큰 건을 하나 할 테고 말이다.
“아마 그쪽은 우리 쪽으로 정보력을 투사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와는 안 싸운다며?”
“그러니까요. 외부에서는 사이가 틀어진 걸로 보여야 하니까요.”
더군다나 정보력을 이쪽으로 향하기 시작하면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뭔가 하려고 한다면서, 그럴 여력이 될까?”
“아마도 그쪽은 준비가 다 끝났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공공연하게 관심을 끌겠습니까?”
“아! 그렇겠군.”
모든 준비가 끝나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은 결코 깨끗한 일일 리는 없을 테고 말이다.
유민택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뭘 해도 손해군.”
그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무시해도 겁먹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나선다 해도 대룡이 규모가 작으니 불리하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노형진은 유민택의 말에 턱을 문질렀다.
‘예상은 예상일 뿐이지만 말이지.’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저쪽에 끌려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나중에 또 이문소가 사과를 하겠지.’
100% 그럴 거라고 봐야 한다.
유민택 스스로가 말했지만 돈과 회사를 위해 그들은 기꺼이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건 그들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용서해 주라고 주변에서 압박할 테고.’
한국에는 용서를 피해자의 권한이 아니라 주변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주변에 사과하면 무조건 용서하라고 압박하는 문화가 있다.
‘더군다나 술을 처마시고 그랬단 말이지.’
술 먹고 저지르는 실수에 관대한 한국 문화상, 이문소가 유민택에게 한 행동은 더욱 쉽게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회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애매하기는 하지만, 회장이기에 더 문제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전쟁 발발을 의미하니까.
“제가 전에 한 말이 있지요, 의외로 부자들은 예의 바르다고. 그 이유는,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총력전이 되기 때문에 차라리 처음부터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 거지요. 만일 그쪽에서 죄송하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동하겠지.”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살다 살다 내가 도구로 이용되다니, 기가 막히는군.”
“옛날에는 안 그랬나요?”
“옛날에는…… 그랬지, 그랬어.”
두한과 다르게 대룡은 그가 직접 일군 회사다.
당연히 아래에서 죽어라 이용당하고 굴러야 했다.
“두한은 과거부터 부자였지요.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유 대표님은 바깥에서 돌던 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일 겁니다. 선민의식이란 그런 거거든요.”
유민택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가 일군 회사. 그 말은 그가 1세대라는 거다.
순위가 그보다 아래에 있는, 그래서 경제인의 밤에도 눈치를 보던 사람들.
그들이나 그나 똑같다.
다른 건 그가 좀 더 일찍 성공했고, 그래서 나름 높은 순위권에 안착했다는 거다.
“선민의식의 가장 큰 발현점이 바로 혈통이지요.”
두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원래부터 그런 재벌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두한이라는 기업 자체가 친일파 기업인이 일제강점기에 만든 회사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들이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권력을 잡고 성장한 케이스니까, 혈통적으로 보면 원래부터 부자인 것이 맞다.
“그리고 제 기억이 맞는다면 조상이 작위도 있었지요?”
“큭.”
유민택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 작위도 있지.”
조선 시대에는 양반이었으나 대한제국에서 백작이 되었고, 그 후에 일제시대에 다시 일본으로부터 남작 위를 받았다.
“혈통적으로 자부심이 참 대단하군.”
유민택은 비웃듯 말했다.
“그런 건 알겠는데, 그럼 난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가? 내가 아무리 그들보다 급이 낮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상당히 기분 나쁜데.”
“물론 이런 취급을 받아서 기분 나쁘실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거지요.”
“무슨 말인가?”
“그들이 뭘 하든 시선을 돌리는 목적으로 유 회장님을 이용했습니다. 그 정도 건수가 작을까요?”
“음?”
“만일 굳이 그처럼 시선을 돌려 가면서까지 성사시키고 싶어 하는 건수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러자 유민택이 관심을 보였다.
그게 가능하다면 거기서 적지 않은 수익을 낼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정도 건수가 되는 걸 찾는 게 쉬울까?”
“모르지요.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지, 돈이 될 만한 곳은 여러 곳입니다.”
특히나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자네가 찾아 줄 수 있겠나? 이대로 당하기만 하기에는 내가 좀 화가 나는군.”
그 화를 풀기 위해서는 거기서 수익을 좀 빼돌리든가, 아니면 최소한 자신이 그 일을 파토 내고 싶은 게 유민택의 기분이었다.
하지만 노형진의 말대로 두한이 자신과 대룡을 감시한다면 도리어 역습당할 수도 있으니 대룡의 정보 라인이 움직이는 장면을 보여 줄 수는 없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노형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