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42)
‘아니, 이런 건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하나.’
사실 엄마가 아빠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럼 혹시 그 사건이 뭔지 알아볼 방법이 있어?”
“음…… 없어요. 엄마 이름은 안다는데.”
“그건 너무 넓은데?”
한국의 어디서 벌어지는 사건인지도 모른 데다가 피고 한 명의 이름 가지고 찾기는 사건의 종류가 많다. 그렇다고 법원마다 전화해서 알려 달라고 한들 법원에서 그걸 알려 줄 리가 없다.
“음…… 아! 맞다! 지난번에 명함을 보여 준 적이 있어요.”
“명함?”
“네,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인데 자기는 그 사람이 싫다고 했어요. 그 사람이 준 명함이라는데…….”
“혹시 이름을 알아요?”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면 둘 중 하나다. 치정 관계에 있던 내연남이든가, 법원에서 붙여 준 국선변호인이든가.
‘치정인가.’
남자라는 말에 노형진은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확실히 치정에 빠져서 남자를 죽이는 사건이 없는 건 아니니까.
“덕배라던가?”
“변호사?”
“네.”
“아, 덕배…… 혹시…… 이 씨?”
“맞아요! 이 씨!”
“이덕배라……끄응……. 일단 치정은 아닌데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수도 없네요. 좋은 녀석은 못 되는지라.”
“네?”
“좋지 않아요. 무슨 사건인지 모르겠지만.”
이덕배는 변호사다. 문제는 그다지 실력이 있는 변호사가 아니라는 것. 금수저로 태어나 국영수는 잘해서 변호사까지 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국영수만 잘하는, 즉 암기 위주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보니 통찰력과 직관력이 필요한 변호사라는 직업에 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녀석은 제대로 일하는 녀석이 아닌데.”
사실 더 큰 문제는 그 녀석이 그걸 고칠 생각이 없다는 것. 변호사라는 타이틀에 취해서 마치 인생의 승리자처럼 지내려다 보니 배울 생각이 없다는 것. 그래서 제대로 된 손님이 오지 않자 국선변호인 노릇을 하면서 손님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 개쓰레기에게 걸렸군.’
문제는 그 녀석은 그것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선을 선임하는 이유가 뭔가? 돈이 없어서 직접 선임할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렇게 자신에게 담당하게 된 사람을 겁주고 회유해서 국선 변호가 아닌 정식 수임으로 돌려 버린다. 만일 싫다고 하면 변호도 개떡같이 해버린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국선변호인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억울해도 찍소리도 할 수가 없다.
“왜요? 아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죠.”
“아.”
그 말에 안타까운 얼굴이 되는 방혜숙.
“뭐, 방법은 없는 건 아닙니다. 이 녀석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네요.”
“뻔하다니요?”
“이 녀석에게 물어보면 답해 줄 겁니다.”
“그렇게 쉽게요? 좋은 녀석은 아니라면서요?”
“이런 녀석은 사실 좀 뻔하거든요.”
좋게 말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노형진으로서는 좀 거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형진은 이런 녀석을 다루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이고, 그 유명하신 노형진 변호사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깐죽거리는 이덕배를 보면서 노형진은 코웃음이 나왔다.
‘누추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솔직히 이곳은 노형진의 사무실보다 좋고 화려하다. 실력이 나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돈으로 처발라서 화려하게 한 덕분이었다.
“사건이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사건?”
“이영희라는 분의 사건을 좀 알고 싶습니다.”
“남의 사건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으실까?”
입에 비웃음이 가득한 이덕배. 사실 이덕배는 노형진보다 훨씬 더 빨리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여전히 밑바닥이고 그 때문에 빠르게 치고 올라온 노형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좀 알려 주십시오. 알아야 할 게 있어서.”
“싫은데요? 변호사에게는 비밀 엄수의 의무가 있다는 거 모르십니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빼돌리는 것을 막는 것이지, 의뢰인의 인생을 망치라고 있는 규정이 아니었다.
“비밀 엄수의 의무가 아니라 비밀 엄수의 권리입니다.”
노형진이 정정해 주자 더욱 기분 나쁜 얼굴이 되는 이덕배.
“하여간 전 알려 드릴 생각이 없으니 그냥 가시죠.”
그 말에 노형진은 한심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
능력도, 실력도 없이 허영만 가득한 놈이다. 아니, 애초에 엄청난 부잣집 자식이라면 이해라도 하겠건만 그는 그런 집 자식도 아니다. 오로지 자기 탐욕만 믿고 움직이는 멍청이였다.
‘그 덕분에 망했지만.’
결국 미래에 로스쿨이 생기고 나서도 그 버릇은 고치지 못했고 순식간에 파산해서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게 발견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네놈의 약점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지.’
물론 아직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이덕배, 너가 그렇게 자신이 있냐?”
갑작스러운 노형진의 말에 얼굴이 딱딱해지는 이덕배. 나이로 보나 기수로 보나 이덕배가 훨씬 선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형진이 갑자기 반말을 하자 어이가 없는 것이다.
“이 새끼가 갑자기 미쳤나?”
“미친 건 너지. 의뢰인들한테 그 짓 하다가 걸리면 좋게 안 끝날 거라는 거 알면서 아랫도리를 그렇게 못 돌리겠냐?”
“……!”
그 말에 이덕배의 눈이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너 이 새끼……!”
“과연 변호사 협회에서 그걸 알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
“내가 단순히 그 사건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경고도 같이 하러 온 거지. 이영희 사건과 관련해서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나?”
그 말에 이덕배는 움찔했다.
“네가 뭘 안다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노형진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다음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남자가 아랫도리를 잘못 돌리면 패가망신하는 것은 당연한 법이지.”
“너…… 이 새끼…….”
화가 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는 화보다 겁이 더 났다. 화낼 만큼 능력이 있는 놈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틀린 말 했나?”
그는 변호사다. 그리고 그런 변호사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여자를 여럿 건드렸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그는 자신에게 온 의뢰인 중 여자들을 건드렸다는 것. 즉, 상대방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여성 의뢰인에게 마수를 뻗히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저 녀석은 인생이 작살났지.’
다른 사람도 아닌 의뢰인 또는 의뢰인의 가족들 중 여자들을 건드리는 것은 변호사 윤리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 그게 드러나면서 인생이 박살 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뭐, 그 버릇을 고치지는 못할 테지만.’
자신이 지금 경고해 준다고 과연 그가 그 버릇을 고칠까? 그건 힘들다. 노형진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주변 사람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친밀한 몇몇은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척해 줄 뿐이었다. 심지어 아직 그때가 아니지만 한 명은 넌지시 경고까지 해 줬음에도 그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뭐, 나랑 상관없지’
어찌 되었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관련 사건에 대한 정보.
“뭘 요구하는 거냐!”
“내가 뭘 요구할거 같나?”
“이이익.”
이를 박박 갈던 그는 일어나서 뒤에 있는 서류철로 가더니만 누런 봉투 하나를 꺼내서 노형진의 앞으로 휙 던지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썅!”
“거봐. 좋은 게 좋은 거라니까.”
노형진은 그걸 받아서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건이 아니니 이걸 가지고 갈 수는 없어서 여기서 봐야 했기 때문에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쯧쯧, 꼴 바라.’
노형진은 봉투에서 나오는 서류의 양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 사건이다. 그런데 준비된 서류가 터무니없이 얇았다. 즉, 이덕배가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
‘운이 좋다면 좋군.’
그나마 운이 좋다가 할 수 있는 게 그 덕분에 봐야 하는 양이 줄어들었고 또 사심 없이 판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계획 살인이기는 한데…… 이거 완전 골 때리는군.”
검찰의 징역 50년. 살인 방식은 술에 취해서 쓰러진 남자의 목을 졸라서 살해.
‘이건 빼도 박도 못한 계획 살인인데.’
문제는 비어 있는 한 칸.
“살인 이유가 뭔가? 비어 있는데?”
“알 게 뭐야?”
그 말에 노형진은 비웃음이 나왔다.
‘썅노무 새끼.’
살인은 나쁜 짓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극적이고 정당할수록 형량은 줄어들 수 있다. 당연히 변호사로서는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 게 뭐야.’라니.
“그 여자는 엄청 비협조적이었다고.”
“그렇겠지.”
이덕배가 변명처럼 하는 말에 대꾸하면서도 노형진은 그 비협조적이라는 것이 결코 살인의 이유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밤일을 안 해 주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죽였나 보지, 뭐.”
그의 깐죽거림을 무시하면서 노형진은 최대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분노? 아니야. 분노였다면 이렇게 할 게 아니라 칼 같은 걸 썼겠지. 어차피 술에 취한 남자는 무력하니까. 그럼 분노에 관한 건 아니라는 거니, 사주? 아냐, 사주받아서 죽일 이유도 없거니와 그것치고는 너무 허술해. 남자의 허리띠로 죽였다는 건 분명 미리 흉기를 준비하지 못하고 급박하게 결정했다는 건데…….’
계획범죄처럼 보이지만 노형진이 봤을 때 이건 계획범죄가 아니었다. 뭔가 급박하게 그녀를 자극해서 그녀가 범죄를 실행할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붙어 있는 사진을 보던 노형진은 서류철을 ‘턱.’하고 덮었다.
“이 사건, 우리가 가지고 가지.”
“그럴 줄 알았지.”
이덕배는 예상이라도 한 건지 툴툴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내일 중으로 사퇴서 제출하지. 어차피 이딴 사건에는 관심도 없으니까.”
“그러면 고맙겠군. 이건 내가 가지고 간다.”
노형진이 서류를 챙기고 일어났지만 이덕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진짜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런 그를 두고 서류만 들고 그곳을 나왔다.
“갑자기 이렇게 사건을 들고 오면…….”
노형진이 사건을 들고 등장하니 송정한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사건을 담당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난데없이 노형진이 사건을 들고 오면 그걸 조종하는 게 참 복잡한 일이다.
“아무래도 느낌상 이건 우리가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느낌상?”
“입구에 있는 여자아이 사건 말입니다.”
“그 아이 사건? 그걸 하려고? 살인이라며?”
살인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최악의 범죄 중 하나다. 새론은 변호사 집단이기는 하다. 하지만 진짜로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임을 거절한다.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가해자들을 도울 시간은 없다는 송정한과 다른 변호사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해자 그것도 가장 최악의 사건인 살인이라니?
“살인이라고 해도 모두 단순히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음…….”
“우리나라 경찰 체계의 문제점 아시잖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그건 다름 아닌 사후 처방에만 매달린다는 것. 가령 어떤 문제가 있으면 사전에 막는 게 아니라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서 나선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스토커가 주변을 돌면서 목숨을 위협하는데도 경찰에서 한 말은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스토커 처벌에 관련된 법이 있지만 단순히 일하기 싫었던 것뿐이다. 결국 그들은 사전에 살리는 것보다는 사후에 체포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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