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452)
대학에서 만난 사람은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면서 노형진의 손을 잡았다.
“뚜언이라고 합니다.”
물론 통역이 붙어서 이야기해 줘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하게는 특정 사건에 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 당시의 전쟁범죄에 관한 의심을 들었거든요.”
“전쟁범죄라……. 민간인 학살을 의심하고 있나 보군요.”
뚜언 교수는 노형진이 더 설명하기도 전에 바로 알아들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무래도 베트남전쟁은 얼마 되지 않은 전쟁이니까요. 그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각국에서 사회의 요직에 있을 시기이지요.”
뚜언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개인의 경우는 아니지만 정치적 문제가 끼면 가끔 자료조사를 부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으음…….”
노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러겠네. 미국이라고 해서 정치를 안 하는 건 아니니까.’
더군다나 그 당시 미국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투입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 되었다.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은 미국에서도 여러모로 껄끄러운 문제니까.
“그래서 별로 놀라지 않으신 거군요.”
“몇 번 해 봤으니까요.”
어깨를 으쓱하면서 노형진에게 자료를 건네는 뚜언 교수.
“이건? 벌써 찾으신 겁니까?”
“그 당시에 한국군을 공격하는 데 2개 연대를 투입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패배한 경우는 더 적지요.”
뚜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는 창피한 일이지만요. 어찌 되었건 전쟁이었고, 패배는 패배니까요.”
예상대로였다.
2개 연대가 투입된 전투. 그 정도 규모의 사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건 전쟁사에서도 큰 사건이었거든요. 그 당시 그 2개 연대를 지휘한 것은 부 반 비엣이지요.”
그는 소위 말하는 다혈질이었다.
“그 당시에 2개 연대가 모인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미군 중대 습격이었습니다. 새로 진출하는 곳이었고 아직 미군이 방어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한국으로 공격 대상이 돌변한 겁니까?”
“그 부분이 중요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쟁범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요. 그 사건 기록에 따르면 부 반 비엣을 찾아온 여자아이가, 한국군이 자기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자료가 있다고요?”
노형진은 눈을 크게 떴다.
증인을 찾을 생각으로 오기는 했지만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로 증인이 있다니?
“우옌티쑤언이라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부 반 비엣의 부대를 찾아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증언을 했고, 다혈질인 그는 욱해서 부대를 움직였습니다.”
뚜언 교수는 그 진술서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통역사는 노형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읽어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 진술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제야 노형진은 그곳에서 벌어진 일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우옌티쑤언이 열한 살이던 해, 그녀의 마을에 한국군이 들이닥쳤다.
한국군은 베트콩을 찾는다는 이유로 온 마을을 들쑤셨고, 그 와중에 옆집에 살던 언니를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이 끌고 나왔다고 되어 있었다.
언니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는 강제로 언니를 끌고 빈집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전쟁 통에 그게 뭘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
언니의 아버지는 다른 군인들을 밀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력 충돌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었다.
아무리 부하들이라고 하지만 장교가 하는 짓거리가 정신 나간 짓거리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고, 마을 사람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언니의 아버지가 집 안에서 AK 소총을 들고나온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언니의 아버지가 어디서 그 총을 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원래 베트콩일 수도 있고 정글에서 누가 흘린 걸 주웠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언니의 아버지는 총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가 쏜 총은 대부분 빗나갔다.
“한 발만 빼고 말이지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깨에 맞았다고 되어 있는데요.”
“베트콩과 싸우다가 어깨에 총을 맞았다고 주장하더군요. 웃기네요. 그게 설마 강간을 하려다가 피해자 아버지한테 맞은 것이었다니.”
노형진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피어올랐다.
그 총상 때문에 그는 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강간 미수의 결과였다니.
“하여간 그 총에 맞아서 그 한국 지휘관은 쓰러졌다고 되어 있네요.”
지휘관은 다시 일어나 총으로 그 아버지를 쏴 죽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경악한 나머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뭐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부하들은 마지못해서 사람들을 창고로 밀어 넣었고, 소녀 역시 어두컴컴한 창고에 갇혔다.
이윽고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몇 번 나더니 문이 열리고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사격이 시작되었다.
“미친…….”
오광훈은 듣다가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이 되었다.
창고로 몰아넣고 총질을 한다는 것. 그건 대놓고 죽이려고 덤볐다는 소리다.
“그런데 어떻게……?”
증언에 따르면 그것도 부족해서 불까지 지른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존자가 있다니?
“베트남 아닙니까?”
“네?”
“토굴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설사 베트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요.”
언제 포탄과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쟁터.
더군다나 비정규전이라는 특성상 특정 전선이 있는 게 아니라 온 국토가 전쟁터다.
“끄응…… 그렇군요.”
하긴 한국도 6.25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땅을 파서 숨었다.
한국도 그런데, 하물며 토굴에 익숙한 베트남 사람들이니 당연히 안전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다행히 수류탄이 던져지고 나서 사격까지, 시간이 좀 있었답니다.”
그래서 입구 쪽에 있던 몇몇은 죽었지만 나머지는 다급하게 파 둔 토굴을 통해 대피해서 목숨을 건졌다는 것.
그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허,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전쟁입니다. 신사적으로 전쟁하는 나라는 없지요.”
뚜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노형진에게 물었다.
“자료는 이걸로 충분한가요?”
“충분한 것 같군요. 혹시나 그 당시 생존자들과 연락이 가능할까요?”
뚜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안에 생존자들의 주소가 나와 있습니다. 물론 갱신한 지 오래되어서 아직도 거기에 사는지는 모르지만요.”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자료를 가지고 천천히 바깥으로 나왔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니 황국태라는 그 인간에게 더 구역질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미친 짓을 벌이고도 뻔뻔하게 정치를 하다니.
“아니, 뻔뻔하니까 정치를 한 건가?”
노형진이 중얼거리자 오광훈이 인상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그럴지도. 그나저나 진짜 구역질 난다. 이래서는 일본군과 다를 바가 없잖아?”
“응?”
“아니, 그렇잖아. 일본군도 학살을 그렇게 했는데 한국도 했잖아?”
오광훈의 말에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꼭 너 같은 사람들이 있지.”
“뭐야? 그럼 너는 우리가 일본군보다는 낫다는 거야?”
오광훈이 약간 놀란 기색으로 노형진을 쳐다봤다.
노형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일단은.”
“일단은?”
“일단 좀 다른 게,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한국은 했어.”
“뭐?”
오광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한국이 사과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처음 듣는데.”
“벌써 오래전에 했어. 그 당시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거부해서 그렇지.”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뭐, 일본처럼 묶어서 이걸로 퉁치자 그런 거?”
“그건 아니야. 정확하게 말하면 거부했다기보다는, 전쟁 중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넘어갔지.”
노형진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어찌 보면 이런 역사는 가르쳐야 한다.
치부이기는 하지만, 부끄러운 걸 알아야 다시는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도리어 한국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말이 도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 당시 한국군은 이런 전쟁범죄에 대해 상당히 빡빡하게 통제했고.”
“빡빡하게?”
“그래. 강간 사건이 없었던 건 아니야. 있었지. 전쟁 통에 눈 돌아간 놈들이 한둘이었겠어? 하지만 언제나 가해자는 즉결 처형이었어. 그들을 보호한 게 아니라, 아주 대놓고 죽여 버렸지. 사실 그 당시 한국군은 다른 군에 비해서 훨씬 신사적이었지.”
“헐?”
오광훈은 몰랐다는 듯 눈이 커졌다.
물론 군대에서 즉결 처형이 인정된다고 하지만 진짜 벌어지는 경우는 드무니까.
“진짜?”
“그래, 진짜야. 심지어 장군이 포로를 구타했다고 장군에게 줄 훈장이 취소될 정도였으니까.”
“어떻게……?”
“말했잖아. 빵. 즉결 처형.”
“아…….”
아무리 통제가 잘된다고 해도 미친놈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해지면 어떻게 될까?
범죄가 사라질까?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떤 범죄들은 도리어 강해지지. 가령 이런 사건 같은 건 말이지.”
어차피 걸리면 즉결 처형.
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처벌도 없다.
“그러면 걸릴 일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할까, 아니면 안 걸리기를 기도할까?”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혀를 끌끌 찼다.
그도 범죄자였으니 안다. 어차피 강력 처벌이라면 걸리지 않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하들은 뭐야?”
“나도 그 부분이 이상했어. 하지만 이 자료를 보니 좀 이해가 가네.”
강간 사건이 벌어질 당시 부하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부모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하지만 수십 명의 병사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병사들은 그를 제대로 막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안에서 총을 들고나올 줄 몰랐던 것이 문제지.
“그 이후의 진술에서도 그래. 총소리가 들리고 잠잠했다고 했어. 그런데 총알이 창고로 날아온 건 아니지.”
만일 학살이 목적이었다면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했어야 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총을 하늘로 쏘면서 부하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부하들이 그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봤을 테니까.
“그리고 좀 이따가 수류탄이 하나 날아왔어.”
그래서 입구에 있던 몇몇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사격이 시작되었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야.”
“하지만 사격을 한 건 사실이잖아?”
“그 당시 병사들의 지식수준은 낮았으니까.”
진짜 중학교만 나왔어도 나름 공부했구나 하던 시대다.
“그런 그들에게 적당한 협박은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겠지. 가령 수류탄을 까 넣었으니 너희는 이제 공범이다, 내가 공범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너희도 총살이다 같은 식으로 말이야. 실제로 범죄자들이 군중을 통제할 때 많이 쓰는 방법이 강제로 공범으로 만드는 거니까.”
“허, 너 거기에 있었던 거 아니지?”
듣다 보니 그럴듯했기에 오광훈은 혀를 내둘렀다.
“그럴 리가 있냐?”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능력은 사이코메트리지 시간 여행이 아니다.
물론 지금 같은 경우는 그마저도 안 썼지만, 너무 뻔하게 보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베트남 사람들이 신고, 아니 이걸 신고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군부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 결과가 2개 연대의 기습이었지.”
그리고 그 전투에서 그 당시 함께 나갔던 3소대는 세 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도대체 그 당시 병사들이 왜 신고를 안 한 거야? 단순히 명령이라서?”
“아니, 그건 아니야. 황국태의 부대는 독립 중대였거든.”
“독립 중대?”
“그래. 아예 따로 진지를 차리고 그곳에서 방어 작전을 하는 부대.”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다른 인접 부대가 없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전한 방어진지에서 나와서 다른 부대로 이동해야 한다.
“그것도 걸어서 가기는 힘들지. 대부분 정글을 뚫고 나가야 해. 아니면 차를 타고 가든가. 그게 가능하겠냐?”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글에 난 도로를 걸어간다?
자살 희망자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황국태가 차를 주겠냐? 애초에 차가 많은 것도 아닌데.”
안전하게 움직이려면 최소한 1개 분대 이상이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아마도 누군가는 나가게 되면 신고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며칠 후 베트콩 2개 연대가 몰려왔고 그들은 총알받이가 되었다.
“그러면 황국태가 지원해 주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지. 자기 비밀을 감추고 싶었을 테니까.”
결국 드러난 진실. 그것도 제법 확실하게 드러난 진실.
“그런데 베트남은 이런 걸 왜 조사하지 않는 거야? 이런 걸 조사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면 제법 쏠쏠할 것 같은데. 아무리 사과했다고 해도 그렇지, 새로운 사건이잖아? 뭐 일본처럼 우리는 한 방에 퉁쳐서 해결했다는 것도 아니라면서?”
물론 그렇게 사과를 했다 해도 그건 국가에 대한 배상이지 개인에 대한 배상이 아니다.
생존자가 살아 있다면 그리고 한국의 상황을 본다면, 사과를 요구하며 배상을 청구하면 한국은 안 줄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진짜 대놓고 ‘우리는 일본과 같은 놈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꼴이니까.
“뭐, 득보다 실이니까.”
“득보다 실?”
“그래. 제주 4.3 사건 아냐?”
“그건 또 뭔데?”
“이 무식한 놈아…… 끄응……. 1948년에 한국군이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이야. 그 당시에 제주도민 몇만 명이 죽었지.”
“뭐?”
오광훈은 잔뜩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긴 그는 그런 걸 잘 모를 테니까.
“그게 제대로 조사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이고 사과를 한 건 2004년이야. 그 전에는 정부에서 그 사건을 부정했지.”
“부정?”
“그래. 자국민을 학살한 군대, 그게 자랑스러운 기록은 아니잖아?”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북베트남은 공산 진영이었고 남베트남은 민주주의 진영이었어.”
그리고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이겼고 다른 나라는 모조리 철수했다.
타국민이 전혀 없고 언론인도 전혀 없는 대혼란의 사태.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 같냐?”
“아…….”
전쟁의 광기에 미쳐 버린 사람들.
그리고 승리에 취한 사람들.
공산주의 국가들은 사유재산을 부정한다. 그런데 자유 진영 사람들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개판 되는 거지.”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학살이 벌어졌을지 알 수가 없다.
“만일 그걸 조사하기 시작하면 공산당, 그러니까 북베트남군에 의해 벌어진 학살이 드러날 텐데, 그 숫자가 10만은 무조건 넘을걸.”
그리고 그게 드러나는 것은 현재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무척이나 부담이 큰 행동이다.
“당장 봐 봐.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 사건조차 딱히 수사도, 항의도 안 해. 그쪽에서는 그런 문제를 언급하고 싶지 않은 거지. 수사의 첫 번째 단계는 누가 죽였는지부터 조사하는 거니까.”
“정치적인 거구먼.”
“그렇지.”
“와, 개복잡하네.”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쓰벌. 마음에 안 드는 새끼 족치는 게 난 맘 편하다.”
“큭큭, 누군들 안 그렇겠냐.”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거 가지고 가서 까면 끝나는 건가?”
“안 될걸.”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깐다고 언론에서 이걸 이야기하겠어? 안 봐도 뻔하지. 아까 말했잖아, 베트남에서는 이걸 조사할 의사가 없다고.”
당연하게도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그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베트콩 사건처럼 취급할 게 뻔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피해자를 만드는 거야. 피해자가 없으면 조작하면 되지만, 피해자가 존재하면 조작이 힘들거든.”
노형진은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그 관련자를 처리하려고 하겠지, 후후후.”
노형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과연 외국인을 죽일 수 있을까?”
자국민이야 그렇다고 친다고 해도 베트남 국민을, 그것도 양민 학살 사건의 증인을 죽이는 건 국정원 입장에서도 극도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더군다나 지금 대한민국은 대호황이야.”
일본의 방사능 문제가 터지면서 갑자기 한국산 물품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황국태를 지키려고 할까?
“황국태는 팽 당한다에 100억 걸지, 후후후.”
역사의 단죄
황국태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단순히 자살로 처리될 일이었다.
곽성수가 죽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앞을 막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광훈이라는 검사가 끼어들고 새론과 노형진이 끼어들자 그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 노형진인가 하는 그 새끼는 뭐 하는 거야? 어? 베트남에 있다면서!”
“그게, 저희도 요원을 붙이고 있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새끼를 잡아 오란 말이야!”
“하지만 그가 불법적으로 뭘 하는 것도 아니고…….”
“너희가 그러고도 국정원이야! 어!”
국정원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놈 같으면 이러지도 않는다고.’
막말로 한국에서 국정원에 찍히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노형진은 예외다.
개인으로서는 그저 변호사다. 하지만 그는 CIA의 비호를 받고 있고 미다스의 아시아 대리인이며 대룡의 고문 변호사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족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당장 몇 번 엿 먹이려다가 잃은 요원이 몇 명인가?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너무 위험해.’
다른 사건들은 그나마 어떻게 변명이라도 해 볼 여지가 있는 반면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반역 행위다.
정권을 위해 국민을 죽여야 한다니.
아니, 그거야 흔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정권이 아니라 개인의 범죄를 감추는 데 집중되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병원에 있는 새끼는 어떻게 되었어? 어?”
“그게,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간호사로 분장해서 들어가면 될 거 아냐!”
“하지만 총리님, 현실과 영화는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의사나 간호사로 꾸미고 들어가서 쉽게 암살하지만, 현실에서는 눈에 익은 간호사나 의사가 아니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설사 들여보내 준다고 해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하기에는 한계가 있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뭘 어떻게 못 한다니!”
“이미 그는 모든 증언을 새론에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촬영 장비가 안에 들어갔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죽고 그 영상이 공개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끄응…….”
안 봐도 뻔하다.
그다음에는 왜 죽었는지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면 득보다는 실이 큽니다.”
“망할!”
황국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3소대가 다 죽고 모든 비밀은 사라졌다.
곽성수가 살아 있기는 했지만 그는 이 문제를 꺼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곽성수라는 존재 자체가 대통령이 되려는 황국태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고, 결국 황국태는 곽성수를 지워 버리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그쪽은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말이나 돼?”
“그 남자, 어차피 간암 말기입니다. 오래 못 삽니다. 그 증언 영상이 나간다고 해도 정신이상으로 몰아가면 됩니다. 독한 약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언론에서는 적절하게 커트해 줄 겁니다.”
“그러면 다행인데. 젠장. 그 오광훈인지 뭔지 하는 새끼는 어떻게 할 거야?”
“그게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전이라면 가차 없이 사고사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 있는 노형진이라는 존재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일단은 그쪽도 별다른 증거가 없는 걸로 보이니 그냥 두지요. 그 당시 일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니.”
그때 국정원장의 핸드폰이 ‘딩동’ 소리를 냈다.
국정원장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본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런…….”
“이런? 도대체 또 뭔데? ‘이런’이라니? 일이 틀어진 거지? 그런 거지?”
“그게…….”
국정원장은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베트남 쪽에서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뭐?”
“그 증거를 베트남 쪽에서 가지고 있었고, 생존자들도 있답니다. 지금 노형진이 그들과 접촉하러 갔다고…….”
황국태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막아! 어떻게 해서든 막아! 암살을 하든 납치를 하든, 어떻게 해서든 막으라고!”
그는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