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47)
“일단은 한 단계가 끝난 겁니다. 경찰의 무능 때문에 초동 대처가 잘못되었다는 점은 검찰이 인정한 셈이니 이제는 경찰 본인들을 공격해야지요.”
“그렇지.”
살인을 면할 수는 없다. 아무리 변론해 준다고 하지만 살인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자녀의 인생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버릴 각오를 하는 선량한 어머니를 과도한 형벌을 받도록 할 수는 없었다.
“휴정이 끝나고 나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준비는 다 되셨나요?”
“암, 우리가 왜 변호인단까지 구성해 가면서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데.”
복합 소송은 돈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이만저만 적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우리한테 도움이 된 것도 많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 소송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 변호사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였다.
“자, 그럼 다음 재판을 하러 가 볼까요?”
노형진은 이 사건을 길게 끌 생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당차게 나가기로 했다.
“증인으로 그 당시 출동했던 경찰을 신청합니다.”
“인정합니다.”
다음 기일에 노형진은 바로 경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어차피 검사은 경찰을 편들어 줄 수가 없다.
‘내가 노린 게 바로 그거거든.’
지금 경찰과 검찰의 사이는 말 그대로 극단적으로 갈라진 상황이나 마찬가지. 이 상황에서 검사는 아무리 자기 사건이 걸려 있다고 하지만 경찰의 편을 들어 줄 수가 없다. 그 덕분에 경찰은 자신의 무능을 벗어나기 위해서 혼자서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노형진이 그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는 것.
“본인은 ○○월 ○○일. 부모의 성추행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런데 왜 그날 사건 접수 기록이 없습니까?”
“그건…….”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다. 아예 사건 접수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까.
“○○월 ○○일. 접수한 거 맞지요?”
“네.”
“그런데 왜 사건 기록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접수하지 않았습니다.”
“정식으로 신고받고 출동한 일이잖습니까? 그런데 왜 접수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냥 가족끼리의 일이라서 그랬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경찰.
“가족끼리의 일이라서 그랬다?”
“네, 화해하는 게 좋겠다고.”
“증인은 경찰 일을 몇 년이나 하셨습니까?”
“네?”
“경찰 일은 얼마나 하셨냐고 물었습니다.”
“한…… 14년 정도.”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면 상당히 오랜 시간 경찰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승진을 못 한 거 보니 일 안 하는 경찰의 전형이구만.’
그냥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서 일은 안 하고 위험한 사건은 피하면서 월급만 받아 가는 월급 도둑. 다른 동료 경찰들이 밤새도록 도둑을 잡고 칼 맞아 가면서 강력 범죄와 싸우는 사이 적당히 시간만 때우는 녀석들.
‘너 같은 새끼는 진짜 경찰 자격이 없어.’
위험한 강도나 살인 사건을 해결하라는 것도, 영화처럼 테러범을 잡으라는 것도 아니다. 성추행되고 있는 아이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귀찮아하는 녀석은 경찰이 될 자격이 없는 놈이다.
“그럼 아동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은 알고 계시겠네요?”
“네…….”
“그럼 그런 아동 성범죄자들이 아이들을 성추행하고 있다면 그냥 지나가시겠습니까?”
“아니요.”
“근데 그날은 왜 그랬습니까?”
“…….”
빼도 박도 못할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가족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고 해도 아이를 대피시켜야 했다.
“더군다나 아동 성범죄의 70% 이상이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아십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낮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한다. 위험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조금 다르다. 납치나 아니면 아동 성범죄는 대부분 아는 아이들을 노린다. 그래야 협상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접수를 거부하셨군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
“다시 묻겠습니다. 왜 거부하신 겁니까?”
“실수입니다.”
“실수라…….”
노형진은 피식 비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된다. 그런 걸 실수하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재판장님, 관련 증거를 제출합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출동 시간은 밤 7시 50분경. 그리고 해당 경찰관의 퇴근 시간은 밤 8시 30분경. 실수라기보다는 사건을 접수하면 그걸 처리하기 위해서는 퇴근이 늦어져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경찰은 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요? 그거 참 이상하군요. 사건을 접수를 거부하자마자 바로 퇴근이라니.”
“…….”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 최대한 부정하려고 했지만 이미 배심원단의 표정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싸늘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아이와 함께 있는데 경찰이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이유로 사건 접수를 거부하면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요?”
노형진이 이번에 노린 것은 배심원단 내부에서 강력한 입김을 가진 아줌마들, 정확하게는 아이들의 어머니 집단이었다. 회사원은 이런 사건에서 그다지 강력한 입김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줌마들은 이런 사건에 강력한 입김을 가진다. 특히 아이들이 가지면 더더욱 말이다.
“여러분들이 없는 상황에 아이들만 있는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바쁘다는 이유로 퇴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과연 접수를 거부하는 경찰을 본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
노형진의 말이 길어질수록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아줌마들의 표정은 차가워지다 못해 경멸감까지 떠오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아동 성범죄자들이 판을 치는 판국에 경찰까지 그런 식이면 말이다.
“이상입니다.”
노형진이 뒤로 물러나자 검사의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검사는 증인석에 나와 있는 경찰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 씨발…… 진짜 엿 같네.’
상부의 말은 간단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경찰 편을 들어 주지 말 것.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 사건이 날아간다. 하지만 결론은 난 것이다.
‘사건 하나 날리는 게 승진을 날려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자신의 사건이 유리하게 진행되려면 노형진의 말에 반박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지원하는 꼴이 된다. 상부의 명령은 명확했다. 경찰의 무능을 최대한 드러나게 해라.
“검사, 질문 있습니까?”
그 말에 검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없습니다.”
“증인, 내려가세요.”
그 말에 축 늘어진 얼굴로 아래로 내려가는 경찰. 노형진은 계속해서 관련 경찰관들을 불렀다.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재판장님 그리고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 경찰의 수준입니다. 물론 우리 피고인이 살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점은 피고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피고가 살인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피고는 자신의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피고는 비록 살인하기는 했지만 그 상황은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으니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노형진은 배심원들을 보면서 배심원들이 충분히 감정적으로 이쪽에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배심원 쪽은 정리가 된 건가?’
물론 아무리 배심원들이 동화된다고 해도 죄를 자인한 이상 처벌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동화되고 사정이 이해된다면 감형의 요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이쪽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검사와 배심원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는 생각에 노형진은 판사를 바라보았다.
‘판사가 문제인데.’
판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상부의 명령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검사. 감정적으로 동요해서 의뢰인 편을 들어 주는 배심원이 있다고 해도 결국 구형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다름 아닌 판사. 더군다나 판사는 배심원들이 무죄를 선고해도 마음대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유죄를 피할 수 없는 상황.
“변호인,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이런 감정적 흔들림에 전혀 반응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눈도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지.’
노형진은 판사를 보면서 뚱하게 앉아 있는 판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판사님, 과연 정의가 무엇일까요?”
“뭐라고요?”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자 합니다. 비록 우리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처벌하는 것이 정의일까요?”
정의 아무리 양심을 팔아먹은 판사라고 해도 가슴 한편에 있는 단어다.
‘정의감을 자극하자.’
아무리 양심을 팔아먹을 판사라도 결국 처음 판사라는 직책을 받을 때는 정의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그런 그가 타락해 가면서 점차 정의와 멀어진다는 것.
‘그건 정치적인 사건이지.’
그나마 다행인건 그런 건 보통 정치적 사건, 아니면 돈이 걸린 사건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즉, 이런 사건은 적당히 정의라는 감정을 건드림으로써 유리하게 재판을 이어 갈 수 있다.
‘결국은 감정의 문제란 말이지?’
인간은 공평하지 않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특히 판사들은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가끔은 자신이 신적인 위치에 있다고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점을 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살인이라는 죄목은 분명히 심각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을 살아온 남편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딸을 탐할 때 그 부모의 심정을 말입니다.”
판사를 대하는 노형진의 말투는 다른 사람과 확연하게 달랐다. 검사의 말투가 공격적인 유형이고 판사의 말투가 감정을 전달하려는 유형이라면, 그의 말투는 판사에게는 자비를 구하는 듯한 유형이었다.
“그녀의 죄는 분명 명확합니다. 또한 그 죄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딸의 행복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딸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실수는 단순히 살인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린 딸을 홀로 두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실수입니다.”
노형진은 천천히 사람들과 판사를 보면서 최대한 그녀의 안타까운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힘든 가정사와 생활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불행한 삶.
“이제 판사님의 손에 그녀의 인생이 달렸습니다. 그녀가 비록 씻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여전히 아이에게는 하나뿐인 엄마이며 또한 인생을 걸고 아이를 구하려고 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 점을 참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노형진은 최대한 읍소하는 자세로 판사에게 말하고 난 후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좀 심하게 저자세 아닌가요?”
“아니요. 저 판사는 이런 저자세를 좋아해요.”
“네?”
노형진의 말에 자리에 있던 무태식은 깜짝 놀랐다.
“판사를 분석하신 겁니까?”
“당연한 거죠. 판결하는 판사는 사람입니다. 기계가 아니라요. 당연히 사람마다 그 공략법이 다르죠.”
어떤 사람은 철저하게 이론과 이성으로 판단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감정으로 많이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노형진의 조사 결과, 이 판사는 자신에게 최대한 읍소하고 자신을 우러러 보는 사람에게 자비심을 베푸는 척하면서 있는 척하는 걸 좋아한다.
‘좋은 건 아닌데 말이지.’
자신이 신적인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인간은 타락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판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그렇게 되기 쉽다는 것.
‘뭐, 그건 저 사람 사정이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면 뭐든 사용하는 것이 변호사의 도리.
“양측 모두 변론이 끝났습니까?”
“그렇습니다.”
“결심하겠습니다. 양측은 나가 주시고 배심원 여러분들은 말씀을 나눈 뒤 의견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재판이 끝나고 노형진과 사람들은 재판정에서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결과뿐이었다.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침을 삼키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법정 구속일까요?”
“보통은 그렇지요.”
법정 구속이란 현장에서 형이 확정되는 순간 바로 감옥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 사정은 피했으면 좋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모녀에게 시간을 주고 싶다. 하지만 법정 구속이 된다면 그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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