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483)
“잔혹하시네요.”
하메스는 울부짖는 부하들을 두고 나오면서 혀를 내둘렀다.
노형진이 수를 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어찌 되었건 추적에 필요한 자료는 얻었으니까요.”
‘충분한 돈도 말이지.’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류를 확인했다.
이걸 추적하다 보면 조재성이 나올 거라는 걸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살인범인 마누엘은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약간 아쉽네요.”
하메스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마누엘은 도망갔고, 권무진을 죽인 데 대한 처벌도 면했다.
“전혀 아닌데요.”
“네? 하지만 마흔여덟 시간 동안 그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메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그 시간이면 마누엘은 충분히 도망을 가고도 남는다.
“맞습니다. 그랬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말장난이 숨겨져 있습니다.”
“말장난요?”
“마누엘이 어디에 숨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네?”
“그를 추적할 것도 아니고, 또 그가 추적을 당할 만큼 만만한 놈도 아니고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말해 주고 싶어도 말해 줄 수가 없지요.”
“그, 그건 그러네요.”
실제로 마누엘은 집에서 나가자마자 사라졌다. 그러니 추적도 힘들다.
“하지만 전 그의 위치를 마흔여덟 시간 동안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 부하들의 위치도 공개하지 않는다고는 안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형진은 힐끔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 마누엘의 집에 잡아 둔 부하들이 잡혔을 겁니다. 제가 군부대에 부하들이 거기에 있다고 했거든요.”
“네에?”
“그러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요. 과연 부하들이 뭐라고 할까요?”
“허…….”
그들은 눈앞에서 마누엘이 자신들을 버리고 가 버리는 걸 봤다.
그러니 마누엘을 용서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마누엘이 없으면 모든 죄를 자신들이 뒤집어쓰게 된다.
“아마도 마누엘에 대해 모든 걸 다 말할 겁니다.”
그가 쓰던 가짜 신분, 돈의 은닉 장소. 안전 가옥까지 말이다.
“물론 그 안에는 범죄 내역도 들어가지요.”
즉, 마누엘이 저지른 장군 습격 사건도 포함된다는 소리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마누엘은 필리핀을 떠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숨겨 둔 돈을 꺼내서 비행기라도 예약하려고 할 때쯤이면 출국 금지가 떨어질 테고, 그는 필리핀 정부와 살아남은 갱단 양쪽에서 똑같이 쫓기게 될 것이다.
“완벽하게 복수하신 셈이군요.”
단순히 살인자가 아니라 그 살인을 행한 조직을 붕괴시키고 모조리 죽이거나 감옥으로 넣어 버렸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아니라고요?”
“네, 아직은 아닙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한국 쪽을 바라보았다.
“가징 큰 의뢰인이 남아 있으니까요.”
노형진의 눈빛은 불타고 있었다.
복수의 완결
“아무리 봐도 이상합니다. 이건 조작 흔적이 없어요.”
필리핀에서 노형진이 사건을 정리하는 사이 한국에서도 손을 놓고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권무진이 조재성에게 자신의 특허권을 넘긴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 동영상 그리고 계약서까지, 그사이에 모조리 조사했다.
하지만 조작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동영상 부분이 문제입니다.”
고문학은 노형진에게 동영상을 다시 보여 주면서 말했다.
“동영상을 조작했다면 그에 대한 결과가 나왔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 연구소에서는 조작되지 않은 영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요?”
“네.”
“혹시 그 전에 계약할 때의 영상을 조작한 것은?”
“그것도 아닙니다.”
이전에 계약한 시기는 계절도 다르고 따라서 복장도 다르다.
심지어 당사자인 권무진의 체중도 상당히 달랐다.
그때는 상당히 깡마른 타입이었는데 최근에는 일선에서 은퇴하고 쉬엄쉬엄 여행을 다니면서 상당히 살이 쪘다.
“그러니 그 당시 영상으로 조작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니, 조작이야 가능하겠지만 연구소의 분석까지 피할 정도로 완벽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으음…….”
즉, 조작의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이다.
“화면 내에 있는 계약서의 내용은요?”
화면에서 보면 그 계약서를 들고 웃고 있는 장면이 있다.
그러니 혹시나 자신들이 모르는 다른 계약의 촬영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형진이 물어보자 고문학은 고개를 흔들었다.
“화면을 클로즈업해서 확인해 봤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문구가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단어의 배치, 주요 단어의 선택 등을 보면 분명 같은 계약서입니다.”
“그래요?”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결과적으로 동영상은 진짜라는 거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진짜 동영상이라면 그가 아무리 계약 무효 소송을 건다고 해도 이길 수가 없다.
물론 마누엘에게 받아 온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써는 조재성에게 직접 연결되는 증거가 없다.
그러니 이쪽에서 조재성을 추적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장 쪽은요?”
“애석하게도 도장이 아닙니다.”
“네?”
“도장이 아닙니다. 도장이라고 하면 어디서 가짜로 판 걸 증명할 수 있을 텐데, 사인이었습니다.”
“사인요?”
“네. 요즘은 보통 사인으로 대체하니까요.”
과거에는 도장이 더 안전했지만 지금은 사인이 더 안전해졌다.
과거에는 손으로 도장을 파는 게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위조 여부를 판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계측해서 파 버리기 때문에 사인이 더 안전하다.
“사인이란 말이지요.”
“네.”
노형진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확실히 곤란한 상황이다.
‘마누엘의 파일을 검찰에 넘겼으니 그 건에 대해서는 홍보석 검사가 알아서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건은 오광훈이 담당하기에는 좀 복잡한 사건이기에 사건 담당으로 홍보석이 낙점되었고, 그녀는 지금 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추적 중이다.
‘문제는 이 서류들인데.’
노형진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상한 것도 없고 조작으로 보이는 약간의 불량도 없다.
‘물론 현대 기술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CG를 보면 아주 리얼리티가 넘친다. 그러니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영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 내부에서 컴퓨터를 통해 조사하는 것까지 속일 수는 없을 텐데.’
차라리 화려하고 오버스러운 영상이라면 속이기 쉽다.
하지만 이건 정적이고 변동도 별로 없는 영상이다.
조작을 하면 티가 나기 쉽다.
‘이건 말도 안 되는데. 진짜로 권무진이 특허권을 넘긴 건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소송 중인 사건도 취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진행할 리가 없다.
‘남은 건 조재성이 속였다는 건데.’
노형진은 동영상 속에서 웃고 있는 권무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진짜로 웃고 있었다. 진짜로…….
“어?”
노형진은 문득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웃고 있는 권무진.
“웃어?”
물론 좋은 계약을 하면서 웃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좋은 계약도 아니고 웃을 상황도 아니었다.
아니, 어쨌거나 계약은 계약이니 웃을 수는 있겠지만…….
‘이상해.’
노형진은 그 장면을 캡처해서 인터넷에 있는 얼굴 분석 프로그램에 넣었다.
모 기업에서 만든 프로그램으로, 공짜는 아니지만 그 정도 돈을 못 쓰지는 않는다.
보통은 재미 삼아서 하지만 말이다.
“이게 가능한가?”
입은 웃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나온 수치는 중립이 50% 정도다.
그러니까 입은 웃고 있지만 다른 감정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즈니스 미소라는 건데…….”
물론 돈을 벌어야 하고 웃어야 하는 직장인에게 비즈니스 미소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다. 그런데 중립이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해.’
설사 강제로 계약을 하는 거라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드러나야지, 저렇게 중립적인 표정은 짓지 못한다.
‘다른 게 있다는 건데.’
노형진은 그렇게 한참 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로 권송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변호사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권송아 씨. 혹시 아버님 사진 가진 거 있습니까?”
-아버지 사진요? 사진이야 당연히 많지요.
“그중에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사진이 있나요? 가능하면 최근 사진으로요.”
-최근 사진이라고 하면…… 있기는 있어요. 아버지가 은퇴한 후에 여행을 많이 다니셨으니까.
“그걸 가지고 내일 2시쯤 한국대 앞으로 오십시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형진은 전화를 끊으면서 눈을 빛냈다.
“드디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