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485)
계약 부존재 소송에 들어가자 상대방은 당당하게 재판을 하러 나왔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이건 사실 원고 측이 단순히 피고 측에 대해 원한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상황입니다. 물론 한때 피고 측이 원고 측의 아버지 권무진 씨와 법적인 공방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화해하고 정식으로 새로운 계약을 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계약 부존재 소송이라니요.”
코웃음을 치는 변호사.
하긴 그는 동영상까지 있는데 질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왔을 것이다.
‘쯧쯧, 현실도 모르고 나왔구먼.’
노형진은 상대방 변호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하긴 그도 미국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복잡한 시스템은 몰랐을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위조 사건이 많지 않으니까.
“재판장님, 일단 원고의 아버지 권무진 씨와 피고 조재성의 재판은 아직 종결된 게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당시 소송 중이었으나 권무진 씨가 사망함으로써 재판부에서 종결 처리한 겁니다.”
정확하게는 재판 중에 권무진이 사망했으므로 권송아가 그 사건을 수계, 그러니까 상속처럼 넘겨받아서 이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권송아는 법률적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아차 하는 사이에 그 재판을 놓친 것이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재판을 청구할 생각입니다. 그 부분은 소송의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피고 측이 그 당시에 지불했어야 하는 금액을 지급하지 않은 사건이니까요.”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러자 상대방 변호사는 그런 부분을 파고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 켕겨서 수계하지 않은 거 아닙니까?”
“단순 실수입니다. 그리고 그쪽에서 그 사건을 계속 물어뜯을 이유는 없을 텐데요? 엄밀하게 말하면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은 전혀 관련 없는 것 아닌가요?”
그 사건은 받지 못한 돈에 대한 건이다.
그에 반해 이번 사건은, 그 이후에 조재성과 권무진이 체결한 계약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다.
“인정합니다. 피고 측 변호인, 그 사건은 정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이번 사건과 별개입니다. 그 사건을 자꾸 연계하지 마십시오.”
판사는 노형진의 편을 들어 주었고, 상대방 변호사는 불편한 듯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재판장님, 이미 관련 증거를 봐서 아시겠지만 저희 쪽에서는 계약서와 동영상까지 제출했습니다. 단순히 과거에 권무진과 사이가 불편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부정당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이라는 것은 비즈니스입니다. 서로가 불편하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고, 친하다고 해서 일을 하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피고 측이 그 당시 특허권자인 권무진과 금전적 트러블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피고가 사업적 재능이 떨어져서 그동안 그 특허권을 쓸데없이 쓰거나 그걸 가지고 손해를 입힌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피고 측 변호사는 원고석에 나와 있는 권송아를 보면서 피식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아, 물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여자분들에게는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얼씨구?’
보아하니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감정적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내세워 권송아에 대한 신뢰를 낮추려고 하는 게 뻔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감정적인 이유로 소송을 많이 하니까.
‘하지만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지.’
사실 재판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의 재판에 감정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을 이용해서 권송아에게 일종의 프레임을 씌우려는 게 뻔하게 보였다.
“아니, 내가 왜 감정적이라고……!”
발끈하려고 하는 권송아.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말렸다. 그런 모습을 보여 줘 봐야 손해니까.
“재판장님, 그건 편견입니다.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원고에게 부당한 이미지를 씌우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성차별적 발언입니다.”
“인정합니다. 피고 측 변호인, 특정 성별을 모욕하는 언사는 그만두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서도 피고 측 변호사는 얼굴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미 편견을 뒤집어씌웠다 이거지.’
노형진도 가끔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엿을 먹인다.
나중에 안 하겠다고 한다 해서 이미 생긴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노형진이 판사를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없다.
한국은 판사 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설사 해 달라고 한다고 해도 판사는 그게 기분 나빠서 다른 판사에게 보복을 해 달라고 하기 때문에 도리어 노형진에게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저희는 그 영상을 수차례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상이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순 없었습니다.”
분장한 것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애석하게도 감정 분석 프로그램은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 기술이다.
아무리 떠들어 봐야 어차피 인정되지도 않을 테니 노형진도 굳이 그걸 가지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대신 확실하게 싸울 수 있는 무기를 휘두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희는 해당 영상을 보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제출한 증거 갑제 3-1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분석 사진은 기존 권무진과 영상 속에 있는 사람의 치열을 비교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그 치열이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노형진은 확대한 사진을 들어서 판사에게 들이밀면서 말했다.
“아무리 동영상이 조악하다고 하더라도 치열은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해당 치열은 약간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드러나는 치아의 숫자가 다릅니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상대방 변호사는 나름 방어하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장님, 그 사진에 대한 분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동영상에 있는 장면과 사진에 있는 장면은 촬영 각도에서부터 상황까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미 같은 사진을 여러 개 가지고 비교했습니다만.”
“그러나 그 모든 사진들이 다 클로즈업해서 찍지는 않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노형진은 상대방이 방어하는 걸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긴 했네.’
이미 노형진이 관련 증거를 저쪽에 보내 준 덕분에 저들은 나름의 변명을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확대해서 보면 아시겠지만, 치열이 완전히 다릅니다.”
“확대한 것이 잘못이라니까요. 확대하는 경우 컴퓨터가 그 치아의 치열을 잘못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무슨 80년대인 줄 아십니까?”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물론 확대하면 사진의 화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치열을 확인 못할 정도는 아니다.
도리어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후처리만 제대로 하면 제법 높은 화질의 사진을 뽑아낼 수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원래 권무진은 가지런한 치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 속의 권무진은 치열이 가지런하지 않고 송곳니가 살짝 튀어나와 있기까지 합니다. 단순히 치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 이빨의 치수가 다르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건 보는 각도에 따른 차이일 뿐이라니까요.”
상대방은 시야 각도의 차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판사는 약간은 의심하는 눈치였다.
‘의심스럽지 않을 리가 없지.’
권무진은 부잣집 자제로 태어나서 어릴 때 치아를 교정했다. 치아 교정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치아 교정을 한 사람들이 드물던 시절에.
그러니 다른 사람과 치열이 차이가 확 날 수밖에 없다.
“재판장님, 본래 고르던 치열도 영상의 왜곡으로 인해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저희 생각입니다.”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신성한 법정입니다. 당신네들 생각을 발표하는 발표회가 아니라 말입니다. 만일 뭔가를 주장하려면 그에 맞는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증거를!”
노형진의 공격에 피고 측 변호사는 갑자기 뭔가를 꺼내 들었다.
“재판장님, 여기 학장대학교 영상학과 교수의 진술서가 있습니다. 여기 보면 아시겠지만, 영상을 무리하게 확대하면 치열과 같은 부정확한 지표가 왜곡 해석될 수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얼씨구? 학장대학교는 또 뭔 대학교야?’
노형진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는 한국대에다가 정식으로 의뢰를 했다. 그런데 학장대학교라니? 그런 대학교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뻔하군.’
어디 돈만 주면 뭐든 해 주는 대학교에 돈을 주고 저런 취지의 진술서를 써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진술서가 또 완벽하게 거짓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어도 무리하게 확대하면 사진이 엉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무리한 확대의 수준이 다른 거지.’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러한 확대의 한계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대방은 변론을 위해 그런 건 언급하지 않고 교수의 이름을 빌려서 확대하면 상이 틀어진다는 주장만 하고 있는 것이다.
‘미리 내지 않은 걸 보니 완벽하게 반격을 했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노형진 측에 미리 제출하지 않고 갑자기 꺼낸 증거다.
이는 즉, 자신들이 방어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갑자기 꺼냈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노형진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사실 이건 노형진이 원하는 방식이었다.
저쪽이 영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 그 정당성이 강해질수록 저들은 마지막 방어를 못 할 테니까.
‘너만 그런 방법을 쓰는 게 아니지.’
노형진에게도 그러한 증거가 있으니까.
“그러면 피고 측은 이번 사건에서 일말의 조작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재판장님. 저희는 일말의 조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노형진이 원하던 말이 나왔다.
노형진은 이쯤에서 저들이 모르는 증거를 내놓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 영상이 ‘완벽하게 올바른’ 영상이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피고 측 변호인.
“그러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뭡니까?”
“해당 계약서에 사용된 잉크에 대한 분석입니다.”
“잉크?”
피고 측 변호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노형진의 말이 계속 나올수록 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동영상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피고 측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해당 영상에서 사인에 사용된 볼펜은 N사에서 나온 최고급품입니다. 두께는 5밀리미터, 볼펜의 가격은 개당 103만 원입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 영상에서 확대해 놓은 볼펜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걸 제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영상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보였으니까.
“이 볼펜은 다른 볼펜과 다르게 볼펜 꽂이가 같이 제공되며 그 볼펜 꽂이가 현장에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혼란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미 이 영상을 가지고 해당 제작사에 문의 했으며 해당 모델이 맞는다는 진술을 얻어 냈습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피고 측을 바라보면서 씩 웃었다.
상대방 변호사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렇겠지. 조재성 그놈이 다 이야기해 줬겠어?’
조재성은 사기를 친 게 확실하다. 그러니 자신의 변호사에 사실을 다 말했을 가능성은 낮다.
-의뢰인은 거짓말을 한다.
그게 노형진이 변호사들에게 하는 말이다.
믿어 주는 것과 별개로, 의뢰인은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말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니 의뢰인의 말만 듣고 소송을 진행하지 말라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귀찮다고 의뢰인의 말만 듣고 의뢰를 진행하며, 그러다 지금 같은 상황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해당 계약서에 사용된 볼펜의 성분은 M 모사의 3밀리미터 볼펜입니다. 정가는 3천 원입니다.”
“뭐요?”
피고 측 변호사의 얼굴이 한 방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두 볼펜의 가격 차는 무려 서른 배 이상입니다.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는 성분 역시 완벽하게 다르며, N 모사의 볼펜의 경우 유럽 수입 제품으로 제작 공장은 스위스에 있습니다.”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하면서 피고 측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M 모사의 볼펜의 제작 공장은 중국에 있지요. 해당 볼펜의 성분은 극소량을 제외하고는 조성비가 완전히 다릅니다.”
노형진이 가진 카운터, 그건 볼펜의 성분이었다.
‘연습을 할 때 100만 원짜리 볼펜을 줄 리가 없지.’
애초에 저 볼펜은 저런 행사용이라서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인을 위조하려고 할 때 연습하는 건 그런 게 아니지.’
보통 가장 흔한 볼펜으로 한다.
물론 그것까지 준비해서 아주 치밀하게 분석하는 놈들도 있지만, 그건 추적술이 발달한 서양 쪽 이야기지 이제야 사인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영상이 사실이라면, 사인에 사용된 볼펜의 잉크와 종이에 묻어 있는 잉크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볼펜의 규격도 다르고 잉크의 조성비 역시 다릅니다. 그러면 그 잉크는 어디서 왔을까요?”
“…….”
상대방 변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건 화질처럼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분석해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니까.
“이 영상에서는 계약서를 들기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계약서 내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약 사인이 끝난 후에 계약서를 들어서 확인시켜 주지요. 즉, 그 이전에 이 계약서에 이미 사인이 되어 있었다고 해도 우리는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노형진은 잠깐 거기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왜, 당사자가 저기에 있다고 주장하시는데 굳이 계약서 사인을 미리 해 놔야 했을까요?”
노형진의 질문에 재판정에서는 침묵만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