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05)
며칠 후 오광훈은 무려 세 건의 사건을 가지고 왔다.
“세 건 다 살인 사건이야. 범인은 흑인이고, 공식적으로는 범인이 해외로 도주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 건의 서류철을 건네는 오광훈.
노형진은 그걸 받아 들고는 휘리릭 넘겼다.
사건 내용은 비슷했다.
흑인이 누군가를 죽였고, 그 후에 그 흑인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한 채로 사건은 종결 처리되었다.
“그리고 사건에서 등장하는 흑인은 신체의 일부가 드러난 거고?”
“그래.”
노형진은 파일을 뒤적거리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중 한 건은 아무리 봐도 범인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아무래도 우리 사건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네.”
미결 사건이기는 하지만 남자 친구가 흑인이었고 그 후 그 남자 친구는 한국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남자 친구가 범인일 테고.”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른 사건의 서류철을 잡았다.
“이 두 건이 애매하군.”
한 건은 특정 지역 재개발 조합장의 살인 사건이었다.
똑같이 흑인이 죽였고 CCTV에 범인의 신체가 찍혔으며 사건은 미결.
“그리고 이 사건은 신문기자 살인이고, 역시나 미결.”
노형진은 두 건의 사건을 뒤적거렸다.
이 신문기자의 경우에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워낙 원한 관계가 많아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건, 그러니까 재개발 조합장의 사망은 이해관계가 확실했다.
재개발 조합장은 보통 재개발에 관여할 때 특정 기업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주민들의 이익을 우선시해서 재개발을 진행하려고 했다.
“어? 온성건설?”
“온성건설? 거기 대형 건설업체 아니야?”
“그렇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기업일 텐데.”
온성건설. 대기업으로,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지방 기업이다.
30년 전만 해도 그다지 크지 않은 곳이었으나 아파트 재건축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리어 규모가 작은 점을 이용해 단가를 낮춰서 제법 실익을 뽑아내는 기업이었다.
“원래 지방 건설사였지만 온성건설의 대표가 머리를 잘 썼지.”
그는 기업을 키우는 대신에 그 지역의 건설사들과 손잡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건설사는 건설을 시작하면 그 지역 재개발을 독점하고 그 지역에서 모든 이권을 싹쓸이한다.
하지만 온성건설은 그 대신에 그 지역의 작은 건설사들과 손잡고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들어간다.
손해 보는 짓 같지만 어차피 타 지역 회사라 그 지역에 파견 나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큰 손해는 아니었다.
지역 건설사를 키운다는 이점으로 인해 지역민과 지역사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데다가, 재개발이나 재건을 할 때 그 지역에 살던 주민을 우선 채용한다는 조건 때문에 지역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사회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한국에서 최소 5년 정도 걸리는 재건축 사업은 안정적인 일자리였고, 여건이 되면 퇴직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일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지역민 입장에서는 온성건설이 상당히 이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온성건설은 건설계의 대룡이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데. 온성건설이 살인을 한다고?”
“그렇지?”
기자 살인 사건은 몰라도 아파트 사건에서 이득을 얻은 것은 온성건설이 맞다.
하지만 그곳은 살인을 하면서까지 아파트 재건축을 만들어 낼 기업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재개발 조합장은 온성건설에 우호적인 편이었다고…….”
욕심을 내지 않는 조합장의 성향을 생각하면 온성건설은 그와 아주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온성건설이 그를 죽여?”
“그 당시 사건에서 온성건설이 혐의를 벗었거든.”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턱을 문질렀다.
“혹시 그 사건으로 이익을 얻은 기업은 없어?”
“없지.”
“개인적으로도?”
“없어. 그는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렇다 보니 그가 죽고 나서 이득을 본 건 경쟁사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도시 자체가 달라. 기자나, 윤영자 씨 사건과는 상황이 아예 다르다고.”
“이해가 안 가는데.”
물론 경쟁사들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하던 개인 사업은 그냥 작은 가게 수준이었다. 수천만 원씩 들여서 전문 킬러를 고용할 여건이 안 된다.
당연히 경쟁사라고 할 만한 곳도 결국 옆집 가게 수준이고.
“더군다나 그 경쟁사들이 딱히 살인을 할 이유가 없었어.”
피해자가 재건축 조합장이 되고 그쪽 일을 하면서 정작 본업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으니까.
“전형적인 오지라퍼네.”
“오지라퍼?”
“자기 일보다는 남의 일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그래서 사람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장은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성장은 못하는 타입.
“이러면 진짜 온성건설에서 죽일 이유가 없는데.”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은 만나 봐야겠지?”
“만나서 뭐?”
“일단 던져 보고 반응을 보자고.”
노형진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만일 켕기는 게 있다면 무슨 반응이라도 보이거나 최소한 기억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노형진의 예상과 현실은 좀 달랐다.
* * *
“뭐라고요? 윤영자?”
“네. 아십니까?”
노형진은 온성건설의 대표인 박우선에게 떡밥을 던졌다.
그가 만일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의 비밀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박우선의 반응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어디에 있습니까?”
“네?”
“어디에 있습니까? 윤영자 씨가 어디에 있느냔 말입니다.”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아시면서 왜 물어보십니까? 발뺌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안다고요? 내가 알았다면 지난 30년간 그렇게 찾아 헤매지도 않았을 겁니다.”
“네? 찾아 헤맸다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얼마나 찾아다녔는데요! 어디에 있습니까? 당장 갑시다, 당장. 김 기사, 지금부터 스케 줄 다 취소해! 모조리 다!”
-네? 하지만 대표님, 오후에 장관님과 정찬이…….
“아니, 필요 없으니까 취소하라고!”
박우선의 반응에 노형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발뺌하거나 자신은 그런 사람은 모른다 정도의 반응을 예상했지, 다짜고짜 만나겠다며 장관과의 약속까지 취소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진짜 아십니까?”
“압니다. 지난 30년간 얼마나 찾았는데요? 갑시다. 어서 갑시다.”
무조건 일어나서 나가려는 박우선을, 노형진은 일단 진정시켜야 했다.
“잠시만요. 가셔도 뵙지는 못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해외에 있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노형진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박우선이 사건에 대해 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물론 연기일 수도 있다.
‘연기인가? 하지만 일단 사실대로 말해 봐야겠다. 그럼 뭐라도 반응이 있겠지.’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윤영자 씨는 돌아가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돌아가셨습니다.”
“그, 그런…….”
일어나서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굴던 박우선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이상한데.’
노형진은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마치 비보를 들은 유가족의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연기인가? 하지만 연기치고는 너무 자연스러워.’
연기를 하는 살인범들은 일단 모른다고 한다.
설사 안다고 해도 만나자는 소리는 안 하며, 저렇게 한참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울지도 않는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을 위해, 또는 원한을 가진 사람을 위해 저렇게 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심지어 연기자들조차도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우는 연기다.
‘윤영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무너져서 우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20초도 안 돼.’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한들 그 시간에 감정을 바꿔서 저렇게 울 수는 없다.
심지어 배우들도 우는 연기를 촬영하기 전 10분 동안 감정을 잡는다.
즉, 진짜라는 거다.
‘아니, 이 사건은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모르겠네.’
노형진은 얼굴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박우선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저 슬픔이 진짜라면, 지금 뭐라고 해 봐야 그에게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
그렇게 무려 한 시간을 울고 나서야 박우선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왜 나를 찾아오신 겁니까? 설마…… 유언이라도 있나요? 왜 죽었습니까? 병이 있었나요?”
전혀 모르는 듯한 박우선의 말.
“진짜로 모르십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무려 30년간 그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못 찾았고요.”
힘겹게 말하는 박우선.
아무래도 노형진이 변호사라고 하자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슨 유언장 같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윤영자 씨는 살해당하셨습니다.”
“뭐라고요?”
박우선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한참을 떨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들이마셨다.
컵에도 따르지 않고 아예 병째로 마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하아, 하아.”
그는 거의 반병을 들이마시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가…… 누가 죽였습니까?”
목소리에 가득한 분노.
그 분노 속에서 노형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범인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사실 저는 박우선 씨를 의심했습니다.”
“저를요?”
“네. 박우선 씨와 관련된 다른 사건 중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저와 관련된 비슷한 사건……?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살인이라도 저질렀다는 겁니까?”
“그건 알아봐야겠지요. 일단 지금은 도대체 윤영자 씨와 박우선 씨가 어떤 관계인지부터 알아야겠지만요.”
“으음…….”
박우선은 분노를 삼키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게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저와 윤영자는 한때 사랑했던 사이입니다.”
“한때?”
“네, 한때죠. 다만 인연이 아니었을 뿐.”
박우선의 집안은 지역의 유지였다.
온성건설은 박우선의 아버지가 세운 곳으로, 지역에서는 상당히 큰 회사였다.
지금은 부자라고 하면 호화스러운 아파트에 사는 게 보통이지만, 그 시절에는 저택에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윤영자의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식모였습니다.”
“아…….”
노형진은 대충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온성건설의 박우선의 집은 부자였고 입주 식모가 있었다.
“마당 바깥쪽에 작은 쪽방이 있었지요.”
윤영자의 어머니는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딸인 윤영자를 키웠다.
남편이 죽은 후에 그런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반갑지 않은 신데렐라군요.”
같은 집에 살면서 수시로 부딪히던 박우선과 윤영자.
어찌 보면 둘 사이에 감정이 싹트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만 해도 한창때의 처녀 총각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집에서 반대하더군요.”
“그랬겠지요.”
한쪽은 준재벌가, 다른 한쪽은 그곳에서 일하던 식모.
결혼이라는 것은 양쪽 집안이 평등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외부에서 들어와도 탐탁지 않을 판국에 어제만 해도 자신들에게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던, 노비처럼 생각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들과 평등한 사람이 되고 사돈이 된다?
지금도 제대로 먹힐 리가 없는데 그 시절에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그렇군요.”
노형진은 박우선이 왜 그녀를 찾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는 뻔하다.
집안에서 강제로 그녀를 내쫓았을 텐데, 그 시절에 그 정도 돈이 있으면 사람을 죽여 버릴 수도 있는 힘이었을 테니 모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집안 어른들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박우선을 강제로 결혼시키고…….
“아침 드라마 같지 않습니까?”
씁쓸하게 웃는 박우선.
“그렇게 한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지요.”
박우선도 그 여자도,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아이는 한 명 낳았지만 서로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기에 서로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아내분은?”
“바람을 피웠더군요.”
그 지역 판사의 딸이었던 그녀는 그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바람을 피웠다.
화가 난 박우선의 집에서는 그녀도, 그녀의 집안도 박살 내 버렸다.
“그 후에 어른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세상을 차례로 떠나고 마침내 어른이 된 박우선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진짜로 막장 아침 드라마군요.”
노형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봐서는 그가 그녀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내 이야기는 이제 충분한 것 같으니 다른 이야기를 들어야겠습니다. 도대체 다른 사건에 내가 왜 연루되었다는 겁니까?”
“사실은 윤영자 씨와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사람이 두 명이 더 있습니다.”
“더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재개발 지역 조합장과 기자입니다.”
“조합장 사건은 기억납니다. 단순 강도 아니었나요?”
“그런 것치고는 이번 사건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기자 건은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러십니까?”
노형진은 박우선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의 눈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조합장과 관련해서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아니요. 전혀 없었습니다.”
고개를 흔드는 박우선.
물론 노형진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박우선은 회장이고, 조합장과 만날 일은 보통 없었을 테니까.
그는 몰랐다 해도 아래에서 감췄을 수도 있는 일이다.
“혹시 그 당시 기록을 제가 볼 수 있을까요?”
박우선은 잠깐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노형진이라고 해도 외부인. 업무 관련 정보는 회사의 기밀이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노형진의 말 한마디에 그는 마음을 굳혔다.
“어쩌면 윤영자 씨 살인 사건에 대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우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이야기해서 보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문득 멈췄다.
그러고 보니 박우선은 윤영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은…….
‘어머니와 성이 같은 아들.’
그런 경우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
만일 윤영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면 그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혹시나 해서 말인데…….”
노형진은 몸을 돌려 박우선에게 시선을 향했다.
“윤영자 씨에게 아드님이 하나 있더군요, 윤석호라고.”
“아…… 아들요? 윤석호요?”
박우선은 얼어붙었다.
“그녀가 결혼했나요?”
“그건 모릅니다. 다만 왜인지, 어머니의 성을 따랐더군요.”
멍하니 서 있는 박우선을 뒤로하고 노형진은 조용히 회의실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