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06)
“확실히 문제가 될 건 없는데.”
노형진은 온성건설에서 온 서류를 뒤적거렸다.
계약도 정상적이었고 업무와 관련된 내용도 정상적이었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재건축 조합장의 사망 이전에도 사망 이후에도, 업무 관련해서 특이 사항은 없어.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어.”
새론과 전문 세무사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서류를 확인했지만 딱히 이상한 건 없었다.
“깔끔한데.”
“넌 봐도 모르잖아?”
노형진이 핀잔을 주자 오광훈은 휘파람을 불면서 보고 있던 서류를 슬쩍 내려놨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하여간 현 상황에서 특이 사항은 없다는 거잖아, 아파트 재건축에 관해서는?”
“그렇지.”
“그러면 개인적인 건?”
“개인적인 것? 박우선의?”
“그래.”
“그랬으면 벌써 알았겠지.”
하지만 박우선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물론 재건축이 큰 건이기는 하지만 박우선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는 건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그는 모르고 아래에서 무마한다는 건데.”
과연 그런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유가족들은 뭐라고 해?”
“아는 게 없는 모양이야. 아는 게 있었다면 경찰 조사에서 나왔겠지.”
흑인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라고 하지만 기업은 청부라는 것도 가능한 조직이다.
당연히 그 당시 경찰이 청부에 대해서도 감안했을 테고.
“물론 기업 편에서 사건을 덮을 수도 있겠지만.”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그러다가 흠칫했다.
“왜 그래?”
“어? 이상한데?”
“뭐가?”
“아니, 잠깐.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노형진은 보던 페이지에 일단 표시를 해 놓고 앞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처음부터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데?”
“이 주소, 아까 본 것 같거든.”
“주소? 무슨 주소?”
“이 주소 말이야. 역시 있네.”
노형진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변호사라는 족속들은 대부분 기억력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변호사가 될 수가 없다.
한국의 공부의 기본은 암기니까.
오죽하면 수능을 암기력 싸움이라고 하겠는가?
요즘에 와서야 분석 능력이니 어쩌니 하지만 가장 기본은 암기력이다.
“여기 봐 봐. 이 주소 말이야. 앞에서 한번 나온 주소야.”
“그게 뭔 기록인데?”
“신입 선발 주소.”
“신입 선발?”
“그래. 전에 기억나, 내가 해 준 말? 온성건설의 특징 말이야.”
작은 기업인 온성건설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는지 말이다.
그중 지역민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지역민들 중에서 직원을 뽑는 방식이었다.
물론 많이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그 지역민들에게 돈만 밝히는 게 아니라 지역과 수익을 나눈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공사가 시작되면 필요한 인원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 주소는 아까 나온 주소야.”
노형진은 그 기록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한 집당 한 명 이상은 절대 안 뽑아.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두 명을 뽑는다? 그건 이상한 거지. 거기에다가 진짜 능력이 출중하다고 생각해서 두 명을 뽑는다면 주소를 같이 두지 따로 이렇게 두지 않거든.”
“그런가?”
“그래, 그건 특수한 경우야.”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주소들 중에서 숫자만 살짝 다른 한두 개를 골라내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노형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주소가 겹치는 게 몇 개 있어.”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였다.
그리고 그 숫자는 족히 백 명이 넘었다.
“이게 가능해? 보통은 불가능한데.”
수십 개의 주소에서 합격자가 백 명이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 숫자가 나올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여기에서 선발되어서 취직했다는 거지?”
“그래, 심한 곳은 한 주소에서 네 명이 뽑히기도 했어. 이건 회사 내부 규정상 가능할 리가 없는데?”
노형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눈을 찌푸렸다.
“이거…… 어쩌면 일이 커지겠는데?”
“응?”
“그 살인 사건의 원인, 찾은 것 같다.”
노형진은 서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 * *
“취업 비리 말입니까?”
박우선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요. 내부 규정상 한 집단당 한 명만 뽑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류에서는 그렇지 않은 걸로 나오더군요.”
“말도 안 됩니다.”
“말이 안 되지 않습니다. 현재 취업 시장이 얼마나 얼어붙어 있는지는 아시지요?”
“그건 알지요.”
실업자가 넘쳐 나고 백수가 넘쳐 난다.
직장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데 온성건설은 상당히 좋은 직장 중 하나지요.”
억대 연봉은 아니라고 하지만 연봉이 높은 편이고 복리후생도 좋은 편이다.
기업의 구조 자체가 외부 투자가 별로 없는 형태로 성장해서, 무리해서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 자리 하나에 1억입니다. 그런데 온성건설의 자리는 그런 자리보다 훨씬 더 좋지요.”
월급도 많고 안정적이기까지 하다.
중견 기업 중 하나이고 말이다.
“백 명의 이름이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경로로 선발된 거라면?”
“그건…….”
단순히 지역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가점을 가지고 들어오는 기업이다.
그런데 그게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었다면?
“정말로 채용 비리가 있다는 소리군요.”
박우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자신은 몰랐으니까.
하긴 박우선은 회장이다.
그의 기업이 다른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경우에 동네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현대에 와서 지역 주민들이 시시콜콜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친하게 지내기는커녕 옆집 사람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빌라에서 서로가 도둑이라고 생각해서 싸우다 입주민이 둘 다 죽어 버리는 게 현대에 일어나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런 취업 문제는 어찌 보면 지역민들 서로가 라이벌이다.
그러니 쉽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 사람, 그러니까 조합장은 이걸 안 거 아닐까요?”
“이걸요?”
“네, 보통 이런 건 사람들이 모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오지라퍼라고 하더군요.”
온 동네에 참견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호인.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경계심이 약해질 수 있을 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신고한다거나 회사에 항의하려고 했겠지요.”
“그런!”
그러면 회사에 심각한 타격이 온다.
그러한 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온성건설이다.
그런데 그 핵심이 부정되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도 온성건설을 믿지 않게 될 테고, 온성건설은 그 문제 하나만으로도 더 이상 계약을 따내지 못하고 부도가 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럴 수가…….”
박우선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노형진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만일 채용 비리로 들어왔다면, 걸러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도 규칙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데 작동하지 않았다.
그 말은 그 시스템이 잘못되었거나 그걸 운영하는 놈이 뭔가를 해 먹고 있다는 소리다.
“그러면 그걸 운영하는 게 누구입니까?”
박우선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제…… 아들입니다. 박구천이라고…….”
노형진은 한숨이 푹 나왔다.
죄는 죄를 부르는 법
박구천. 박우선의 아들이다.
전 아내의 아들로,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욕심이 좀 과한 듯해.”
노형진은 일단 박우선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했다.
박우선은 충격이 큰 듯 갑작스러운 출장을 이유로 다급하게 해외로 나가 버렸다.
그렇잖아도 이런저런 충격적인 일이 많았는데 자신의 아들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박우선은 나이가 있다 보니 박구천에게 실무를 맡기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상황이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박구천은 뒤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었고 말이다.
“그걸 몰랐대?”
“자식이잖아.”
자식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부모는 없다.
당연히 그가 뒤에서 몰래 뭔가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건 심각한 문제야.”
노형진은 긴 한숨을 쉬었다.
“해 먹은 돈이 거의 100억대라고.”
노형진이 특이 사항을 확인하고 나서 박우선은 최측근을 통해 관련 자료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소가 겹치는 것만 찾았다.
지금 온성건설이 재개발을 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당연히 온성건설의 모든 재개발 현장에 대해 조사했는데, 그 결과 주소가 겹치는 곳에서 나온 취업자 수만 무려 이백 명이 넘었다.
“특정되었으니까 확인은 어렵지 않은데.”
노형진은 그렇게 취업된 사람 중 한 명을 골라서 불러 두고 취조했다.
처음에는 딱 잡아떼던 그도 일하는 동안 받은 월급을 모조리 차압하고 손해배상 청구에 처벌까지 하겠다고 하자 결국 죄를 면해 주는 조건으로 사실대로 말했다.
“한 명 뽑는 데 최소 5천만 원에서 8천만 원이라니.”
그 돈을 주면 박구천은 그를 입주민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뽑아 주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뽑힌 게 벌써 5년 전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무려 이백 명 이상이다.
단순 계산해도 100억이라는 소리다.
“아마도 현실은 더하겠지.”
최소 5천만 원이고, 이번에 드러난 사람들은 주소가 겹친 사람들 한정이다.
즉, 주소가 겹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돈을 주고 취업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소리다.
“도대체 그 돈을 주고 취업하는 이유를 난 모르겠다.”
“온성건설은 연봉이 세기로 소문난 곳이야.”
평균 연봉이 대략 5천에서 6천 사이다.
“그리고 재건축이 시작되면 그 지역이 재건축될 때까지는 그 직장이 보장되지. 그리고 재건축에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3년이고.”
즉, 큰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는 해고도 당하지 않고, 거기에서 잘만 적응하면 훨씬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욕심이 안 날 수가 없지.”
그리고 박구천은 거기에 손댄 것이고 말이다.
“문제는 박구천이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건데. 아니, 뻔한가, 그 외가가 문제였으니?”
박구천이 돈을 빼돌릴 이유는 많지 않다.
일단 박우선의 유일한 후계자이고, 박우선은 최소 1조 원대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
100억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그걸 건드려서 박우선의 성질을 돋우는 것보다는 조용히 있는 게 낫다.
“그런데 한번 망했던 외가가 지금은 엄청 잘산단 말이지.”
“그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럴 가능성이 높아. 혈육의 정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강하거든.”
외가는 지역의 판사 집안이다.
하지만 박구천의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면서 결혼이 파투가 났다.
“판사 집안은 명예는 있지만 돈은 없지. 그런데 심지어 바람피운 것 때문에 박우선의 집안에 보복당해 망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 집안은 현재 수십억짜리 저택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 돈이 나올 구멍이 없는데도.
“박구천이 그렇게 빼돌린 돈을 줬다고 보기에 별로 문제가 없지.”
아무리 박우선이 성격이 좋다고 해도 바람피우고 이혼한 여자의 집안까지 챙겨 줄 리가 없다.
박우선 역시 사랑 없이 결혼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한 지 3년도 되지 않아서 바람을 피웠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점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낸 거고.”
노형진은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그러면 살인은 그 박구천이 한 걸까?”
“그럴 테지.”
그 사실을 알면 박우선이 뭐라고 하는 수준으로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박구천의 후계자 자리를 박탈하고 전문 경영인을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 재건축 조합장은 그걸 알고 한 거라고 치고, 기자는?”
“기자가 아마 조합장보다 더 늦게 죽었지?”
“그렇지.”
“그러면 그 기자가 그 사실을 안 거 아닐까?”
박구천의 살인 내용을 알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부정한 취업 사실을 알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간에 기자는 그걸 기사화하려 했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는 큰일이겠지.”
살인까지 드러나면 분명 심각한 문제가 될 테니까.
그러면 진짜 온성건설에는 치명타가 될 테니까.
“그러니 살인했다고 볼 수 있지.”
기자들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에야 쉽게 주변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기자가 알아낸 것은 부정 취직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살인이었다면 주변에 자신의 취재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그런데 윤영자는 왜 죽인 거야? 이해가 안 가는데.”
오광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재개발 조합장이나 기자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윤영자는 박구천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심지어 박우선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죽였다.
“아마도 말이지, 박우선 씨가 그녀를 찾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닐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박우선 씨는 윤영자 씨를 무려 30년을 찾아 헤맸어. 그리고 박구천은 그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만약 박구천이 윤영자 씨를 어떻게 찾아냈다고 쳐 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박우선에게 이야기할까, 아니면 감출까?”
“어? 아하! 그러네.”
현 상황에서 재산의 상속권을 가진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그런데 윤영자를 찾는 경우 박우선은 그녀와 결혼을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새엄마가 생기는 건데, 그런 경우에는 재산을 나눠서 상속하게 되지. 심지어 상속 비율은 윤영자가 더 높아. 아내니까.”
그러니 박구천은 아버지에게 그녀를 찾았다고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윤석호 씨에 대해서도 알았을지도 모르지.”
윤석호는 박구천의 형이다.
재혼하게 되면 당연히 친자 확인이 이루어져서 그 역시 아들로 인정받게 된다.
박우선이 윤영자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인정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 말은?”
“재산 분배의 비율이 더 낮아진다는 거지.”
그런 경우 비율은 40 : 30 : 30이 된다.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오는 비율은 30%밖에 안 된다는 소리다.
“박구천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군.”
“그렇지.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어.”
“다른 문제?”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있다는 거지.”
“아…….”
그는 돈을 빼돌리기 위해 돈을 받아 가면서 직원을 뽑았고, 그 돈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줬다.
만일 그걸 알게 된다면 박우선은 박구천에게서 경영권을 박탈할 것이다.
윤석호라는 대안이 생긴 셈이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기업에 끼친 손해를 보상하라고 하면 박구천은 파멸이지.”
노형진의 머릿속에서는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흑인을 이용한 세 건의 살인. 머리가 좋아. 진짜 흑인이 아니라 흑인처럼 꾸미다니.”
오광훈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그는 여태껏 흑인을 추적하면서 외부에서 데리고 온 킬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지? 그걸 신고하면 되나?”
“그건 안 될 말이지.”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다 의심일 뿐이야. 증거가 없어. 그가 킬러를 고용했다는 것도, 증거는 없어.”
“부당 고용은?”
“그건 지적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박구천이 타격을 입을까? 거의 입지 않을걸.”
박구천은 어찌 되었건 박우선의 아들이다.
기업이 욕먹기는 하겠지만, 잠깐 욕먹고 그만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돈을 받고 직원을 고용한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 돈을 자기 부모에게 준 거란 말이지.”
그러니 재판부에서는 100% 제멋대로 선처를 때릴 것이다.
더군다나 그 어머니의 집안은 당장 법조계 사람들이다.
그러니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러니 그걸로 밀어붙이기는 애매해.”
당연하게도 의심만으로 고발해 봐야 도리어 이쪽이 무고로 고소당할 것이다.
“증거라…….”
오광훈은 턱을 문질렀다.
확실히, 증거가 없으면 고발은 힘들다.
특히나 살인 같은 경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증거다.
하지만 박구천은 간접적으로 살인을 지시했고 그건 증거 없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확 때려죽일 수도 없고.”
오광훈은 기분 나쁘다는 듯 툴툴거렸다.
“차라리 그들이 움직이게 하는 게 어떨까 싶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현재 박구천은 자신이 수사 대상인 걸 모르고 있어.”
여기까지 추적한 것은 오로지 노형진과 오광훈뿐이고, 경찰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즉, 흑인인 척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방식이 아직은 쓸 만하다는 거지.”
“음…….”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쓰는 거야.”
“다른 방법?”
“그래. 박구천은 어째서인지 윤석호에게는 손대지 않았어. 윤영자만 죽였지. 그 말은, 윤석호에 대해 모르거나, 윤석호 본인은 자신이 박우선의 아들임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안 거지.”
어느 쪽이든 박구천은 양쪽 다 죽이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모자가 같은 방식으로 죽으면 언론에서 달라붙을 테니까.
“그러니까 윤석호가 그걸 알고 접근하는 방식으로 꾸미면 될 것 같아.”
“하지만 어떻게? 윤영자 씨는 이미 돌아가셨잖아.”
“유언장.”
“아, 유언장. 그러네. 꼭 드라마에서 보면 유언장에 쓸데없는 말을 남기더라.”
특히나 이런 출생의 비밀 같은 경우는 꼭 유언장에 써서 알려 주곤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가는 경우 대부분의 경우는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조용히 ‘슥삭’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애초에 받아들여 줄 인간이었다면, 살아생전에 찾아갔어도 받아들여 줬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그걸 감춘다는 것은, 그게 드러나면 도리어 보복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윤석호 씨가 박우선 씨를 찾아가게 하는 게 최선일 거라 생각해. 적당한 핑계는 유언장이지.”
“하지만 박우선 씨는 지금 한국에 없잖아.”
너무나 큰 충격에, 그는 혹시나 박구천에게 자신이 안다는 걸 들킬까 봐 해외로 나가 있는 상황.
“그러니까 가능한 거지. 만일 윤석호가 회사에 찾아가서 윤영자 씨의 유언장이라면서 종이를 흔들어 보이면 박우선이 안 만나겠어?”
“아하!”
당연히 만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박우선은 없다. 그러면 윤석호는 나중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나중이 오면 박구천은 위험해지는 거지.”
상속권뿐만 아니라 살인 부분도 걸릴 수가 있게 된다.
당연하게도 그는 아버지인 박우선이 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 킬러를 써먹겠군.”
“그럴 거야. 지금까지 계속 문제가 없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지.”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런 걸 시킬 만한 사람이 많겠어?”
결국 한 명뿐이다, 지금까지 해 온 그놈.
“과연 그놈이 누군지 알아보자고,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