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3)
‘호오?’
하지만 노형진은 거기서 지지 않고 그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한 가지만 묻죠. 당신은 누굽니까?”
“죠지입니다. FDA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그였다. 하긴 미국에서 FDA에서 일한다고 하면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노형진은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는 엉겹결에 악수했다. 물론 노형진이 그냥 친해지려고 악수를 청한 게 아니었다.
‘이 새끼 봐라.’
그가 얼굴에서 보이는 불안감. 그건 자신들이 법적으로 이길까 봐 그러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더 심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런 사태는 한 가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사태가 되어 버린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악수하면서 그의 기억을 슬쩍 읽은 노형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차렸고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패터슨님, 그런데 이번 사건의 이상한 점 아십니까?”
“이상한 점?”
“네.”
“어떤 점이 이상하다는 거요?”
분명 대장균이 발견되었고 회수되었으며 또한 그걸 바탕으로 소송이 진행되었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상한 점은 바로 피해자가 없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없다?”
“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정도 오염된 음식이라면 누구든 먹고 병원에 갔어야 하고 보고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주 극히 일부 사람들만 발견되었고 제대로 보고가 올라간 것도 적습니다. 사실 그걸 가지고 FDA가 움직이기에는 확신이 부족한 양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아!”
그제야 패터슨은 노형진이 말한 이상한 게 뭔지 알았다.
“확실히 그렇군…….”
정식으로 이걸 먹고 탈이 났다고 보고가 들어온 사건은 제로다. 그저 열 명 정도가 대장균으로 인한 질병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CDC, 그러니까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접수되었을 뿐이다. 딱히 이 고향의 봄이라는 레토르트식품을 의심할 만한 여지가 없었다.
“그거야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걸 먹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까 그걸 가지고 조사한 거지요.”
“그래서 그 보고를 한 사람은 누굽니까?”
“그걸 보고한 사람은…… 죠지?”
말을 하던 패터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잘못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질병을 미국에 뿌리는 행위니까요. 그런데 마치 FDA는 그 물건이 배치되었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기다렸다가 샘플을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을 구입하는 담당자가 누구였습니까?”
“죠지.”
패터슨의 눈이 무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을 시작하게 된 정보도 그리고 랜덤하게 검사하기 위한 재료를 사 오는 것도 모두 죠지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가 서류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말입니다. 엔젤가에서는 질병 발생이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실험에 따르면 열 개 중 일곱 개는 대장균 범벅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아파야 했지요.”
“어째서?”
“엔젤가에서는 어떤 사람이 한꺼번에 열 개를 몰아서 사갔거든요. 인터넷에서 보셨죠?”
그렇다면 말이 된다. 그가 한꺼번에 위에 있는 것을 싹 사 가는 바람에 FDA가 와서 사 갈 때쯤에는 남은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엔젤가에서 사 온 시료에서는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패터슨은 다급하게 자신의 서류를 열고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사 간 것으로 되어 있는 거리에서 나온 음식에서는 대장균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대장균이 나온 곳들은 사람들이 별로 안 사 간 곳들 위주였다.
“우연치고는 참 여러 가지 우연들이 계속됩니다.”
“죠지!”
패터슨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죠지를 노려보기 시작했고 죠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니에요!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에요!”
그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뒤쪽에 있던 동료들이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고는 그의 퇴로를 막아 버리는 바람에 도망갈 길조차도 막혀 버렸다.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저건 다 모조리 그저 저 한국 놈의 우기기일 뿐이라고요!”
“우기기라고요?”
노형진은 코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미리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던 남상주의 얼굴에도 역시 비웃음이 떠올랐다.
“우리가 그러게 만만해 보이나 봅니다.”
남상주는 자신이 준비한 서류를 패터슨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유전자 검사 결과입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 그건 아까 받았습니다만?”
“이건 비교 대상이 다릅니다. 이 유전자 검사 결과는 또 다른 곳에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교 대상은 성화에서 나온 고장의 봄이라는 상품입니다.”
“뭐라고요?”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 아닙니까?”
남상주는 그림으로 표시된 유전자지도를 꺼내서 대장균이 나온 상품에서 한 유전자 검사 결과와 겹쳐서 빛에 대고 비춰 보았다. 약간은 다르지만 아주 비슷한 형태의 그림들 아까 전 한국의 유전자 검사는 누가 봐도 전혀 달랐는데 말이다.
“마치 형제처럼 보이는군요.”
그 말에 죠지는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패터슨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건 고장의 봄이라는 상품이 우리 미국의 농산물을 썼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유리하지요.”
“압니다.”
노형진은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서 앞으로 나갔다.
“저건 성화가 미국산 농산물을 썼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확실히 그렇지요. 하지만 그것과 동일한 게 나온다면 어떨까요?”
“동일한 것?”
“그거 아십니까? 세균이라는 놈은 아주 독합니다. 어지간해서는 박멸되지 않지요.”
“그건 알지요.”
다른 곳도 아니고 FDA에서 일하는 패터슨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아무리 조심해서 주입한다고 해도 오염되었다면 주변에 세균이 퍼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염된 균은 어지간하면 죽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위생을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어느 정도 세균이 음식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준치라는 게 있지요.”
마지막 장면을 기다리고 있던 캐서린은 기대에 찬 얼굴로 추임새를 넣었고 그걸 본 패터슨은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맞습니다, 기준치. 그 아래면 그냥 통과됩니다. 그런데 그 기준치라는 것은 그 안에 일정량 이하의 세균이 있다는 뜻이지, 아예 없다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요?”
노형진은 뭔가를 꺼내서 패터슨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을 더 꺼내서 건넸다.
“한 장은 우리가 조사한 대장균의 유전자 검사지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성화의 상품인 고장의 봄에서 나온 대장균을 유전자 검사 한 겁니다.”
그 말에 재빨리 그걸 비춰 보는 패터슨. 아니, 사실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그 위에는 ‘유전자 일치율 100%’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치고는 아주아주 대단한 우연 아닙니까? 한국에서 만들어서 들어와서 파는 물건인데 검사해 보니까 재료는 미국산에 미국에서 발견된 대장균과 유전자가 이렇게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게?”
세균의 번식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당연히 어지간하면 박멸하기 힘들다. 만일 성화에서 자신들의 시설을 이용해서 가짜를 만들었다면 아주 극소량이나마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대장균이 살아남아도 감염은 피할 수 없다.
“이런 미친!”
패터슨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게 가진 파괴력을 안 것이다. 기업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생화학 테러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타락한 FDA 요원이 있었고 말이다.
“죠지, 이번 일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 보실까?”
활활 타오르는 패터슨의 시선. 죠지는 물러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동료들, 아니 한때 동료였던 사람들이 그의 양옆에서 그의 팔을 잡았기 때문이다.
“꿀꺽…….”
죠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마른침을 삼키는 것뿐이었고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외쳤다.
“빙고.”
내가 징벌해 줄게 (1)
“자네는 진짜 천재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건가?”
유민택은 몸소 미국까지 날아와서 노형진을 부둥켜 앉고 환호를 했다. 만일 졌다면 당장 징벌적 배상이 문제가 아니라 당분간 미국 시장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유전자라니 저라면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겁니다.”
심지어 남상주조차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하긴 보통 유전자 검사라고 하면 친자 소송에서나 쓰지, 다른 사건에 쓰는 경우는 드물다. 하물며 형사도 아니고 민사에 말이다.
“하하하, 잔머리의 승리죠.”
유전자 검사 결과,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데다가 성화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장 소송은 취하가 되었다.
“자네는 우리 대룡의 은인이야.”
넓고 넓은 미국 시장에 제대로 진출할 수 있게 된 유민택은 얼굴에 엄청난 미소가 떠올랐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누구도 이번 사건은 방법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웰슨 로펌조차 이번에는 협상하는 게 좋다고 할 정도로 암울한 상태였다.
“돌아가세. 가서 내 거하게 보답하겠네.”
유민택은 당장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인 듯 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면서 거절했다.
“아닙니다. 할 게 있습니다.”
“아, 혹시 여기서 관광이라고 하고 싶은 겐가? 원하면 내 원하는 대로 있게 해 주겠네. 에스코트 서비스라도 붙여 줄까?”
“하하, 말씀만 받겠습니다.”
에스코트 서비스란 함께 동행해 주는 여자를 보내 주겠다는 말이다. 하긴 사업을 하는 그가 그런 쪽에 모를 리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런 일 때문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더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더 할 일?”
“네, 성화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성화 문제를? 그건 한국에서 제소하면 되지 않나?”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봤자 돈 몇억 받고 말겠지요.”
상표권위반은 걸어 봐야 도움이 안 될 테고 그들이 한 행위는 기껏해야 업무 방해 정도다. 잘해 봐야 2억 정도 손해배상해 주면 땡 치는 일.
“미국에서 해야지요.”
“미국에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고 공장도 미국에 있는 놈들입니다. 보통 주소지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원래대로라면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힘들게 여기서 할 필요까지야…….”
“여기서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에는 무척이나 유리한 상황이지요.”
“아!”
그제야 유민택은 노형진이 굳이 미국에서 재판하려고 하는 이유를 알았다. 자신들이 당할 뻔했던 징벌적 손해배상. 그걸로 성화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단순히 국가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민간적 부분에서도 해당됩니다. 특히 악의를 가지고 행했을 때는 무척이나 가능성이 높지요.”
“이런 …….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확실히 징벌적 손해배상은 지금의 성화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변호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고 그렇게 새로운 재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게 뭡니까!”
성화는 얼마 후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닥쳐온 소송 때문이었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성화의 미국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도균은 이를 빠득 빠득 갈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쪽에서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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