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30)
“공식적으로 인질범의 요구는 지난 10년간의 국방부 모든 예산의 감사, 국방부 비리자에 대한 국가보안법으로의 처벌, 군 내부 의문사에 대한 전면 재수사와 군 사망자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 등입니다.”
노형진이 나오자마자 기자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노형진은 바로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국가를 지키는 국방부의 비리에 대항하여 이번 사건을 저질렀으며,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절대 투항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뒤에 서 있던 국방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겠지.’
그가 요구한 사항들은 사실 무리한 것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상적이었다면 다 했어야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금까지 국가 기밀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감사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인질극이 벌어졌다.
인질극 자체는 나쁜 일이지만, 그가 요구한 것이 사회적 요구와 맞아떨어지는 데다가 하필이면 그 인질극의 대상이 국방부 장관의 가족이었다.
만일 일반인이거나 하급 장교의 가족이었다면 가뿐하게 씹어 버리면 그만인데 국방부 장관의 가족이다 보니 씹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국방부 장관도 돌아 버릴 상황인 게, 여기서 이걸 용납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군 조직 자체가 붕괴될 테고, 용납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게 하더라도 비밀을 지켜야 할 정도로 비리가 엄청난 수준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왜 노형진 변호사와 오광훈 검사를 협상 대상으로 선정한 겁니까?”
“저는, 아니 정확하게는 저희 새론은 과거에 군 비리 문제에 있어서 비리 당사자들을 조사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의견 전달 및 조사에 적당하다고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오광훈 검사의 경우는,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판단할 검사가 필요했는데 방송에 나온 그의 모습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그 조건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까?”
“아시다시피 경찰은 군부에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는 수십 년간, 아니 대한민국 개국 이래로 군부의 비리를 철저하게 감추는 방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경찰에 요구한다고 해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사건을 무마할 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이 발표가 나가면 아마 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게 뻔했다.
“그러면 진짜로, 요구하는 게 국방의 정식 감사뿐입니까?”
“감사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처벌도 포함입니다.”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보통 이런 인질극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자를 풀어 달라거나, 자신을 돈과 함께 해외로 도피시켜 달라거나 하는 식의 요구 조건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그것도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밖에 없는 요구 조건은 생각도 못 했겠지.’
그렇다 보니 기자들도 경찰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혹시나 해서 말인데, 강제 돌입은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 안은 수십 개의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만일 제압 중에 그것들이 터지면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통째로 말입니까?”
“주요 기둥을 모조리 날려 버릴 테니까요.”
만일 주요 기둥을 모조리 날려 버리면 위층은 당연히 주저앉기 시작할 텐데, 그 갑작스러운 충격에 아래층이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설사 버틴다고 해도 그 충격이 제대로 해소된 건지 알 수는 없을 테고.
‘건물 똥값 되겠구만.’
거기서 떵떵거리면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수류탄 몇 개로 그 정도의 파괴력이 나올 수는 없다.
수류탄이라는 게 애초에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물건이지 뭔가를 폭파시키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당연히 터진다고 해도 파편이 퍼지지 건물을 날려 버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를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강제 돌입을 막았다.
비록 의뢰 아닌 의뢰를 받았다지만 그가 헛되이 죽는 걸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게거품을 물겠지.’
인질극이 난 것도 건물이 똥값이 되는 일인데, 만일 여기서 건물까지 무너지거나 하면 한 푼도 못 받고 나오는 셈인지라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강제 돌입을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평당 몇억씩 하는 곳이니 그들은 당연히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형진이 더 안전하게 움직일 수가 있다.
“현재로써는 그의 요구는 이 정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희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듯하군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다가 힐끔 한쪽을 보았다.
“저기에 계신 국방부 장관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인 것 같네요.”
사실 국방부 장관이 여기서 ‘하겠습니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것은 끝난다.
그는 장관으로서 조사를 명령할 수도 있고 기소를 명령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의 말 한마디면 된다.
노형진이 그를 발견하고 언급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장관님,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짜로 조사하실 건가요?”
장관은 당황해서 주춤주춤 물러났고, 기자들은 모조리 그쪽으로 쏠렸다.
“장관님!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장관님!”
“아니, 그게…….”
도망가는 장관. 그리고 그를 쫓는 기자들.
노형진은 그걸 보고 피식 웃고는 천천히 움직였다.
“자, 그러면 나도 움직여 볼까?”
역대급 간첩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당연하잖아
“간첩이라고?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선구가?”
“네. 그의 말에 따르면 북으로 넘어갔다가 포섭되었다고 하더군요.”
“심각하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송정한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한 나라의 정치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선구가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60대 후반이지.”
“그러면 그가 군 생활을 할 때가 대략 45년 전쯤 되겠군요.”
“그렇겠지.”
그러면 대략 1970년쯤 될 것이다.
“그때는 군사정권 시절이었지요.”
상부에 있어 군인이란 얼마든지 갈아 넣을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장기짝 이하의 존재였다.
“대표적인 게 헌법상 이중 배상 금지 조항이지요.”
“그렇지.”
헌법상 이중 배상 금지 조항이란, 공무를 수행하는 경우 정부에서 준 돈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청구도 인정하지 않는 규정을 말한다.
원래 일반법이었던 조항을 무효화하자 군 정권에서는 쿠데타를 통해 아예 헌법으로 못 박아 버렸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게 뭐냐면, 그 최초의 배상금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라는 것이다.
가령 해외파병을 갔다가 죽으면?
국방부는 유가족에게 자기들 마음대로 돈을 주면 된다.
실제로 법에서 배상하는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다.
그런데 그걸 받든 안 받든, 피해자는 그 이상은 청구할 수도 없고 법원도 인정할 수가 없다.
헌법상 한번 배상금이 결정된 이상 그 결정을 바꿀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평해전이라 불리는 북한과의 충돌 당시 사망한 장병들에게 준 배상금은 고작 3천만 원이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법에 따라 준 게 아니라 모금까지 해 가면서 편법을 써서 준 거다.
“70년대라고 하면 말이지요, 진짜 병사를 사람으로 보지 않던 시절이지요. 심지어 군견만도 못하게 봤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70년대에 군대에 들어가는 건 진짜 죽으러 가는 수준이라 제발 몸 성히 살아만 돌아와 달라고 빌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70년대는 북한과 한국의 경제력 차이가 역전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었고요.”
원래 북한은 상당히 잘살던 나라다.
구 일본 제국은 중국과 싸우기 위해 수많은 공장을 북한에 설치했고 남한은 농산물 등의 수탈용으로 개발했다.
독립이 이루어진 후 당연히 산업력에서 발전한 건 북한이었고 남한은 진짜 논과 밭뿐인 수준이었다.
그게 6.25를 거치고 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좀 더 앞서 나갔지만 70년대에 들어서는 역전되었고, 80년대부터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 생각처럼 북한은 독립할 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던 게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특성과 지도부의 멍청함 덕분에 몰락한 것이다.
“그런데 70년대 군대의 장군들이라는 놈들은 여전히 일제시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니.”
실제로 70년대 장군 중에는 구 일본군 출신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의 장병들을 무슨 노예 취급했다.
그렇게 북한으로 보낸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 주기는커녕 살아 돌아와도 땡전 한 푼 안 주고 쫓아내는 게 보통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시지요?”
“알지.”
그들에게 줄 돈이 없어서?
아니다. 법적으로는 그들에게 줄 돈이 있고 그들에게 보상이 있었다.
하지만 썩어 빠진 장군들에게 그건 쌈짓돈이었다.
당장 이들의 신분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그들을 위한 예산은 있지만 그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장군들은 그 돈을 빼돌렸고, 정작 북파 공작원들은 그 존재 자체도 부정당했다.
심지어 국가의 명령으로 북에 갔다 왔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국가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국가 스스로도 켕기는 게 있으니 그들을 그냥 둘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그가 사는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북파 공작원의 집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북파 공작원=살인귀’라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그런 상황이니 어떻게 보면 변절했을지도 모르지요.”
지금이야 돈이 없어서 간첩질을 못 할 정도로 북한이라는 나라가 몰락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고, 국가를 위해 죽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가 봐야 빨갱이 소리만 평생 듣게 되니 많은 요원들이 실제로 변절한 것이다.
그 당시에 변절하면 북한은 한국보다 공작금을 훨씬 넉넉하게 줬으니까.
“그게 악순환이었고요.”
공작원의 변절-북파 공작원에 대한 간첩 취급-분노한 북파 공작원의 변절-다시 간첩 취급의 악순환.
“그런데 그런 간첩이 공무원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그냥 두겠습니까?”
당연히 그를 밀어주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주기 위해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북한이 얻게 되는 혜택은 더더욱 많아진다.
“만일 대통령이라도 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을 통째로 북한에다가 가져다주는 셈이다.
물론 진짜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최소한 국가 기밀은 모조리 그들에게 넘어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국회의원은 선출직이지요.”
지명직이나 고위급 공무원들은 선발하기 전에 철저하게 신분에 대한 확인을 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도 북한의 간첩 문제를 은연중에 알고 있으니까.
당장 사관학교만 해도 조상 중에 월북한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못 들어간다.
“하지만 선출직은 그런 게 문제가 안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가장 안전하게 고위직이 될 수 있는 게 선출직이다.
“하지만 무려 5선일세. 5선 국회의원이 간첩이라니! 그것도 현직 대통령의 오른팔 아닌가? 허, 참!”
거기에다 한선구는 입만 열면 빨갱이에 좌빨 타령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북파 공작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극우로 분류된다.
“원래 쥐뿔도 없는 개들이 시끄럽게 짖는 법입니다.”
그가 그렇게 외칠 수 있는 이유.
그건 그렇게 외친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 72년 이후에 북으로 보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그런 것 아닙니까?”
“하긴, 공식적으로 그런 거지.”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이 공식적으로라는 말이다.
“거기에다가 한국 정부의 행동을 보면, 없을 수가 없지요.”
실제로 86년에 정부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북파 공작원으로 지원한 사람이 있었는데, 무려 4년간을 공작원으로 일해야 했다.
그는 해외 근무자로 속아서 지원했으나 현실은 북파 공작원이었고, 거기서 ‘선생’과 ‘형’에게 두들겨 맞으며 훈련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교관과 기간병을 그렇게 부른 이유는, 북파 공작원은 공식적으로 군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관을 선생으로, 기간병을 형으로 불렀다고 한다.
6.25 당시의 휴전 내용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민간인이어야 했기 때문에 군대용어를 쓰지 못하게 한 것.
무려 4년 만에 돌아왔을 때 그는 실종 처리가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그를 찾다가 돌아가셨으며, 그는 예비군 훈련 불참이라는 이유로 전과자가 되어 있었다.
철저하게 그의 인생을 망가트린 국방부와 정부는 어떤 보상도 없었다.
그가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더군다나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간첩 기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 도리어 이제 가진 게 많아졌으니 그걸 지키기 위해라도 그는 북한에 충성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권력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어이가 없군.”
듣고 있던 송정한은 혀를 끌끌 찼다. 정치인인 그에게 이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걸 공개하는 건 가능하겠습니까?”
그에게 김성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송정한은 김성식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무리일 걸세. 증거가 없지 않나? 이건 단순한 빨갱이 타령과는 좀 다른 문제야.”
빨갱이라는 것은 북한에 동조하는 자, 또는 북한의 정치적인 신념을 따르는 자를 뜻한다.
“신념이라는 것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빨갱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첩은 다르다.
빨갱이는 현행법상 모욕죄가 될 수 있겠지만, 간첩은 실제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배신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을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지간한 증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빨갱이 프레임을 가장 많이 써먹는 자유신민당이라지만 정작 그들도 상대방이 간첩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그 역풍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민간인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해도 그 타격이 큰데, 정치인을 간첩이라고 주장했다가 뒤집어지기라도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가 간첩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관련된 발언 자체가 위험해.”
“그렇다고 해서 관련 증거를 가지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남자는 평생을 아오지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한선구가 간첩이라는 증거를 만들거나 보관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결국 유일한 증거는 그의 증언뿐이었다.
“그렇다고 한선구의 정치자금이 어디서 왔는지 증명할 수도 없고.”
물론 최근이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1선 의원이 된 것은 벌써 수십 년 전이다.
“그때의 정치자금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처럼 깐깐하게 감시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고, 정치자금을 기업들이 아예 트럭으로 가져다주던 시기였다.
“그러면 북한에서 지령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요즘 북한의 지령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옛날에야 초단파 라디오니 뭐니 하는 것으로 지령을 받았지만 지금이 무슨 6.25 동란 시절도 아니고 그걸로 통신하는 놈은 없다.
현실적으로 북한에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을 통해 지령을 내리고 그가 핸드폰으로 연락한다는 단순한 방법만으로도 변수와 수사의 방향이 무한대로 넓어지며 당연히 지령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한선구가 진짜 간첩인지 확신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그 남자의 망상일 수도 있고요.”
확실히 그 남자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자기 말로는 북한에 끌려가서 아오지에 갇혀 있다가 왔다지만, 그걸 입증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가 하는 말이 그의 존재를 더 확실하게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말인가?”
“그는 자기 이름과 주민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있다면 뭐든 나와야 합니다. 하다못해 실종되기 전까지의 일이나 졸업한 학교라도요. 그런데 없습니다.”
“으음…….”
“그런데 또 유일하게 구한 증거에는 그가 존재하거든요.”
전산상에는 그라는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형진이 힘들게 구한 그의 졸업 앨범에는 분명 그의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그 말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전산상에서는 증발했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노형진은 그를 믿었다.
한국의 시스템에서 누군가를 증발시키는 건 절대 쉬운 게 아니니까.
“더군다나 그의 전투 실력이나 지역 봉쇄 실력을 보면 우연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건물을 봉쇄했다.
인질을 잡는 방법 역시 치밀했다.
무조건 들어간 게 아니라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장군복을 입고 피해자의 집에 접근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이다 보니 별 의심 없이 문을 열었고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장군들을 막 부려 먹었으면 의심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 주는 건지.’
어찌 되었건 그렇게 들어간 그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온갖 식량이 다 들어 있다.
그 양만 생각하면 그 안에서 족히 두 달은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경찰 특공대가 들어올 수 있는 모든 방향을 방어하고 위험 지점마다 인질을 배치해서 그들이 절대로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 놨다.
“일반적인 인질범들의 행동 패턴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는 애초에 장기전 그리고 봉쇄를 목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낸 상황이고요.”
“그러니까 그런 훈련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방위로 제대한 사람이 그런 훈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하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방위로 나온 사람이 그런 무기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말도 안 되지요.”
한국에도 무장한 세력이 존재하고 노형진이 몇 번 해결했지만, 그들은 단체이고 나름 거래가 큰 건이었다.
하지만 이건 개인이다.
개인이 그 정도 무장을 한 순간부터 그는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흔적이 말소된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는 판단일 테고요.”
그러면 그의 말이 맞을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흠…….”
노형진의 말에 김성식은 턱을 문지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혹시 자네가 확인해 줄 수 있겠나? 마이스터의 정보력은 뛰어나지 않나?”
그때 송정한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렸다.
‘한선구의 기억을 읽기를 원하시는구나.’
하긴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물론 송정한은 노형진의 능력이 상시 발동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발동만 된다면 충분히 위험부담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가 저를 만나 줄까요?”
“만나 줄 리 없겠지.”
자유신민당에 있어서 노형진은 원수나 다름없다.
노형진이 나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지만 유독 자유신민당과 충돌이 많았다.
물론 민주수호당 역시 충돌을 하기는 했지만 정치인들이 보기에 노형진은 누구 편이 아닌 모두의 적이었다.
“마이스터의 대리인으로서 만나 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일단 그들과 협상할 게 전혀 없는데 갑자기 만나 달라고 하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저는 그 남자와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보고 라인을 통해 보고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까지 왔다.
“그런데 제가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한선구를 만나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분명 의심을 할 겁니다.”
“으음…….”
“이건 나라가 뒤집어질 만한, 아니 뒤집어질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과거 북풍 사건 이상으로 자유신민당에 치명타가 될 겁니다.”
“하긴 그렇지.”
“최악의 경우 홍안수 대통령과 자유신민당이 완전히 몰락할 수도 있는 일이고요.”
북풍 사건은 과거에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당시의 집권당에서 북한에 돈을 주고 한국에 총을 쏴 달라고 부탁한 사건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정권 획득이었고 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북풍이었다.
쉽게 말해서 선거철이 되면 일본에서 한국을 때리는 것처럼, 그들도 선거철에 북한의 도발을 일으켜서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고 권력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에게 놀아나는 대신에 그 사실을 공개해 버렸고, 그 사건으로 그 당시 집권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만다.
“만일 이 사실이 진짜라면 그때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의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당연히 현 정부와 자유신민당 그리고 한선구는 철저하게 주의하고 있을 테고요.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제가 접촉하는 것은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하긴 그건 그렇군.”
확실하게 알아챌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들이 확실하게 이쪽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새론이 강하다고 해도 국가 단위에서 말려 죽이려고 들면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비상 상황인 만큼 그들이 암살도 불사할 경우, 아무리 경호 팀을 운영한다지만 모든 변호사들을 지킬 수는 없다.
“그러니 우연이라면 몰라도 우리가 고의적으로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건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고해바치는 꼴밖에 안 됩니다.”
“끄응…….”
송정한은 노형진의 말에 작게 신음을 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틀어막혔기 때문이다.
“이거 참, 간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은 ‘설마.’, 또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대통령의 방북 시에 있었던 일은 간첩의 존재를 확신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날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아서 아침을 거르고 반숙 계란으로 간단하게 시장기만 해결하고 방북했다.
그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은 그런 대통령에게 ‘큰일을 하려는 사람이 계란 하나 가지고 속이 찹니까?’라고 말했다.
당연히 대통령이 뭘 먹는지, 그건 국가 기밀이다.
심지어 대통령은 분뇨조차도 따로 처리한다. 변을 분석해서 건강 여부를 감시할까 봐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예정과 다르게 갑작스럽게 먹은 계란 한 개. 그건 북한이 절대 알 수가 없는, 아니 알아서는 안 되는 사항이었다.
그 사건으로 국정원과 청와대 경호실은 난리가 났다.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으니까.
더군다나 며칠 전도 아니고 당일에 있었던 일이다.
즉, 대통령의 최측근 중에 간첩이 있다는 소리다.
“그런 일도 있었던 만큼 간첩이 없다는 건 정말 개소리지.”
물론 소위 말하는 무장 공비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정간첩은 얼마든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한선구가 그중 한 명이고 말이지.”
송정한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추적해야 할지 모르겠군. 한선구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간첩이라는 것을 알게 할 만한 모든 정보를 철저하게 감출 걸세.”
“정치자금은 힘들겠지요?”
“힘들지.”
물론 비공식적으로 정치자금을 주려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고정간첩들에게 간첩 활동비를 주던 과거와 다르게, 반대로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보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놈들이 정치자금을 수억씩 줄 수 있을 리 없지. 그러니 그걸로 추적하는 건 힘들 거야.”
“그러면 접촉하는 사람들은요?”
“그것도 힘들지.”
한선구는 무려 5선 의원이다.
당연히 당의 중진이며, 현재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 중 한 명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해도 스물네 시간이 공개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걸세.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비밀 회동을 하기야 하겠지만.”
비밀 회동이라고 해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비밀인 게 아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가 비밀일 뿐.
“흠…….”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번쩍하는 게 있었다.
“보좌관은 어떤가요?”
“보좌관?”
“네, 보좌관. 현실적으로 보좌관은 정치인의 그림자 아닙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보좌관은 정부에서 붙여 주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고르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공무원이다.
당연히 국회의원을 보좌하면서 그 안에서 비밀을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주특기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몰랐다?”
“네. 보좌관이 뭘 하는지 나는 몰랐다, 그 돈은 보좌관이 받은 돈이지 내가 받은 게 아니다, 그건 배달 사고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죄다 써먹는 방법이다.
자신은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고작 7급 보좌관이 수십억을 받아서 자기 마음대로 썼다는 변명.
“그렇군.”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딱히 한선구가 뭘 챙길 필요도 없지.”
기본적으로 간첩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리고 한선구가 국회의원인 이상, 그 아래에 있는 보좌관들은 그 정보에 접촉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좌관은 세 가지로 분류되지.”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지.
“첫 번째는 가족.”
공짜로 나오는 월급 취급하는 거다. 당연히 그들은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자기 라인.”
정치에 입문시켜 파벌을 만들기 위해 키우는 자들.
당연히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시키고 성장시켜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데 쓴다.
“세 번째는 버리는 패.”
많은 보좌관들이 두 번째가 되기를 원하면서 일한다.
자신이 정치하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세 번째 타입이다.
정치인들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부패한 이들을 고르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세 번째가 되어서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죽어라 부려 먹히다가 어느 순간 해고당한다.
“우리가 노리는 건 두 번째가 되겠군.”
첫 번째는 사실 가치가 별로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나는 북한의 간첩’이라고 고백할 수도 없다.
세 번째 타입은 어차피 버리는 패다. 의원이 믿을 만한 놈도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이야기가 좀 다르지요.”
적당한 신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자신이 데리고 다니면서 키울 수 있고, 그렇게 큰 사람은 추후 정치권에 들어갈 수도 있다.
“실제로 친일파가 많이 쓰는 방식이기도 하고.”
친일파 정치인들이 세력을 불리는 방식이 그거다.
자신의 아래에 있던 보좌관을 요직에 꽂아 주는 것. 아니면 지역구에 넣어서 자기 파벌을 만드는 것.
아니, 대부분의 세계에서 정치인들이 다 쓰는 방식이다.
“하긴 가짜 신분 하나만 만들면 문제 될 게 없겠군요.”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그들의 신분에 공신력을 가진다.
더군다나 보좌관은 최고 6급 공무원이다.
6급 공무원이 어디 가서 간첩이라고 의심받지는 않는다.
“잠깐, 그러면 말이 이상해지는데.”
“네?”
송정한의 얼굴은 사정없이 찡그러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미 한선구는 자기 파벌이 있어.”
“그거야 알지요. 그 사람, 홍안수 파벌 아닙니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물론 그 사람은 홍안수 파벌이 맞기는 하지. 하지만 홍안수는 대통령 아닌가? 그리고 한국에서 대통령은 단임제지. 즉, 임기가 끝나면 홍안수는 정치적으로 큰 어른은 될지언정 정작 정치권에서 큰 역할을 맡지는 못한다는 거야.”
“그 말은?”
“한선구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자기 파벌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홍안수 파벌에서 지원해 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아군인 건 아니니까.”
거기까지 말한 송정한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그의 파벌 중에 그 밑에서 보좌관을 하던 정치인이 있네.”
“그게 무슨……?”
“주유진. 지금 3선이지. 그리고 한선구가 2선 때까지 그의 보좌관으로 활동했지.”
“벌써요?”
“그래, 벌써. 그리고 그 사람…… 국방위야.”
모두의 얼굴이 시커먼 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