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8)
“누나 무슨 폭탄주 만들어? 칵테일 하나 말아 오라고 하게?”
“그래서 싫어?”
“네, 네, 대령해 드리죠.”
노형진은 바텐더에게 가서 도수가 약한 칵테일을 두 개 주문하고는 잠시 기대에서 그걸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까 조용했고 그 덕분에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왔다.
“저 여자 예쁘지 않냐?”
“누구? 저기 동양인 애?”
“응.”
“예쁘네.”
노형진은 옆에서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힐긋 바라보았다. 두 백인의 시선은 노현아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뭐, 상관없겠지.’
그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기 때문에 노형진은 그냥 칵테일이나 가지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심각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확 자빠트릴까?”
“어떻게? 아! 한국에서처럼?”
“그래, 얼마나 좋아? 한국 년들이 확실히 조임이 죽인다니까.”
그것까지는 노형진은 참았다. 어찌 되었건 남자들끼리 음담패설을 말릴 수는 없으니까
‘쓸데없이 문제 만들지 말자.’
더군다나 여기는 미국. 문제가 생기면 총기가 나오는 그런 나라였다. 그러나 그다음 말은 노형진의 심리를 심각하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주한 미군으로 있을 때가 좋았지.”
“그렇게 말이야? 아무 년이나 데려다가 꽂아 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고 말이야.”
“큭큭, 너나 나나 그런 곳이 아니면 언제 계집들을 그렇게 품어 보겠냐?”
“그렇게. 큭큭큭.”
“그때 강간한 것만 안 걸렸어도 몇 년은 버티는 건데.”
“그러니까 학생은 조심하라니까.”
“인마, 보송보송한 계집애를 두고 어떻게 그냥 넘어가냐?”
그 말에 순간 노형진은 가려다가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강간? 학생?’
도대체 거기서 강간한 놈들이 여기에 멀쩡하게 있다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년도 덮칠까?”
“아서라. 여기 5성급 호텔이야. 잘못 건들면 일 커진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고.”
“아, 아깝네. 꼴릿 한데.”
낄낄거리는 두 사람의 음담패설을 듣던 노형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떻게 그들이 그럴 수 있는지 알아차렸다.
‘망할 소파 때문이군.’
소파. 그건 사람이 앉을 때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정식 명칭 SOFA. 주한 미군주둔협정의 약자였다.
‘망할 놈들.’
문제는 이것이다. 소파에 따르면 주한 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면 한국은 처벌할 권리가 없다. 물론 미군에게 처벌하기 위해서 범인을 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주둔군 협정이 생기고 나서 단 한 번도 미군은 범인을 넘겨준 적이 없었다.
‘잊고 있었다.’
소파 협정의 폐해를 보여 준 사건이 다름 아닌 장갑차 압사 사건이었다. 운행 중이던 장갑차가 학생을 깔아뭉개서 죽었는데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조사하는데 미군은 오지 않았고 그들이 한 것은 그저 유감이라는 말과 조사 결과 사고였다는 말뿐이었다. 직접적인 취조나 조사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말처럼 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사 자체를 막는 그들의 행동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 말이 사실이었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군의 처벌 권한은 한국에 있는 게 아니라 미국에 있다. 그리고 미국이 재판권을 포기해야 한국은 재판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그걸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럼 그들이 본국으로 왔을 때 제대로 처벌받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저 돌아왔을 때 승진상의 불이익을 조금 받거나 그냥 군대에서 나가는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상에야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폭행이나 협박, 아니면 재물 손괴 등은 아예 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게 일상이었고 가장 많이 벌어지는 사건 중 하나인 주한 미군의 강간 같은 경우 군 생활을 하면서 승진 벌점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그들이 미국으로 오면 한국에서는 더 이상 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까운데.”
“한번 말이나 걸어 볼까?”
그들의 시선은 음란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노형진은 기분이 나빠져서 바텐더를 바라보면서 다그쳤다.
“그걸 주시든가, 아니면 취소하겠습니다.”
노형진의 능숙한 영어에 지껄이던 두 사람은 움찔했다. 그들이 그렇게 떠들 수 있었던 것은 노형진이 영어를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노형진이 함께 들어온 것을 봤기 때문에 어색한 얼굴로 떠나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노형진이 칵테일을 가지고 오자 노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짧은 사이에 기분이 엄청 상한 얼굴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좀 그런 일이 있었어. 천하의 개썅놈들을 만났다고 할까?”
“응?”
“그런 게 있어. 올라가자. 여기서 더 있으면 기분 나빠지겠다.”
노형진은 그대로 칵테일을 원샷 했고 노현아는 어쩔 수 없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걸 한꺼번에 들이켰다.
“그렇단 말이지.”
노형진은 노현아와 부모님을 안내인과 함께 놀러 가라고 보낸 후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남상주 변호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도무지 찝찝해서 놀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확실히 심각한 문제이기는 해.”
“그런가요?”
“그래, 한국 사람들이야 잘 모르지. 한국 정부에서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말이야.”
주한 미군이 뭘 하든 사건이 터지면 미군은 그 사람을 본토로 발령해 버린다. 그 후에 그냥 제대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처리한다. 한국 사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이들이 미국에서는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이다.
“장갑차 사건도 그래. 솔직히 내 군 경험상 이야기하자면 충분히 사고는 있을 수 있어.”
문제는 그 대응이 문제였다. 사고는 있을 수 있다. 진짜 사고라는 건 사소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터지는 것이니까. 문제는 그 후에 미군의 대응이었다. 그들은 소파를 들먹이면서 아예 조사 자체를 거부했고 나중에 한국정부에는 자체 조사 결과 사고였다고 공문을 보낸 것이 다였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믿겠나?”
진짜로 사고였다면 최소한 사고 당사자들을 한국 조사 팀에 보내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고가 나기 무섭게 미국으로 발령받아서 날아가 버렸고 남은 것은 그냥 사고라는 미군 측 주장뿐이었다.
“그렇다고 소파를 우리가 고칠 수는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왜 날 찾아온 건가? 그냥 가족들이랑 놀지 그래?”
“전 소파를 고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소파를 고치겠습니까?”
“그럼?”
“전에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어떤 ?”
“대한민국 정부가 안 해 준다면 우리가 해 주자는 말.”
“아아아, 그때 그런 적이 있었지.”
노형진이 해외에 나갔을 때 사건이 발생했는데 대한민국 대사관은 도움을 거절했다. 그 덕분에 노형진이 로비스트까지 동원해서 그들을 구해 준 것이 있었다.
“소파로 안 된다면 다른 식으로 그들을 구제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구제라니 무슨 수로?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정부조차 처벌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그거야 소파의 규정에 묶여서 그렇지요. 하지만 형법으로만 처벌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응?”
노형진의 말에 남상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형법으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어떤 식으로 처벌하란 말인가?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지요, 소송의 천국이라고.”
“그거야 다 아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왜 여기서는 소송하지 못할까요?”
“그거야…….”
형사는 정부의 관할인데 정부에서 소파 규정상 포기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민사는요?”
“민사야 당연한 거 아닌가?”
미국에서 소송하려면 미국까지 와서 선임하고 수임료를 내고 소송하고 못해도 수천만 원의 돈이 든다. 미국의 선임료는 한국보다 훨씬 비싼 데다가 아무리 싼 비행기를 타고 온다고 해도 비용이 제법 들기 때문이다.
“만일 오지 않는다면요?”
“오지 않는다면야 비용이 확실히…… 아!”
그 말에 눈을 번쩍 뜨는 남상주였다. 노형진이 했던 그 말이 생각난 것이다.
“여기에 지점을 내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로군. 지점이라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수입을 한국에서 받고 사건을 미국에 있는 지점에 준다. 미국에서 소송하고 그 돈을 받아서 한국에 있는 본사에 주면 본사는 그걸 피해자에게 주는 것이다.
“민사는 소파의 규정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민사 사건은 소파의 규정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들 끼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사를 못하는 이유는 들어가고 나가는 돈이 동일하거나 더 손해이기 때문.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말이야…….”
남상주는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노형진의 말이 맞다. 당장 소파 규정뿐만 아니라 사고를 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몰라 한국에 와서 사고를 치고 재빨리 입국하는 녀석들도 실제로 존재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 텐데? 미국의 소송 비용은 한국보다 비싸다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받는 비용을 생각하면 여기서 정식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니까 계획을 바꿔야지요.”
“계획을 바꾼다니?”
“우리가 여기에 소송을 위해서 기업을 세우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겁니다.”
“투자? 그게 가능해?”
“미국은 가능합니다.”
한국은 설립할 때 투자자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는 돈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외부 투자를 받으면 자신들의 갑의 위치가 흔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서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로펌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어 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한국이 당연히 투자할 수 없으니 미국 역시 투자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미국도 변호사들의 취업난이 심각합니다.”
“심각하다고?”
“네.”
로스쿨은 매년 엄청난 수의 변호사들을 뽑아낸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있고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놀게 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미국은 그러다가 망해서 노숙하는 변호사가 있을 정도였다.
“음…….”
“어차피 그들에게 적당한 조건만 제시한다면 조건을 받아들일 겁니다.”
“조건이라 하면?”
“사무실 운영비 그리고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이겠지요.”
“호오?”
어차피 그런 변호사들은 자기 사무실을 하나 가지는 것조차 힘들다. 무척이나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론은 아무리 규모가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미국에 사무실 하나 얻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가 사무실과 인건비를 일정 기간 지원해 주는 대신에 수익의 일부와 한국 쪽 미국 소송을 그들이 해 주는 겁니다.”
물론 새론의 수익은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소송을 미국에 가지 않고도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게 뻔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움직일까?”
“움직일 겁니다. 지금 당장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는 곳들은 넘치고 넘치니까요.”
당장 변호사들은 넘치고 넘친다. 그리고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운 일 아닌가?”
그 말에 노형진은 씩 웃었다.
“적당한 사람이 한 명이 있습니다.”
“뭐? 자네는 미국에 온 적도 없는데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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