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85)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주지영은 노형진을 고발한 여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그녀는 노형진을 본 적도 없다.
그저 아는 사람을 통해 의뢰가 들어왔고, 미용실에서 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던 그녀는 무려 3억이라는 돈에 혹해서 강간당했다고 신고했다.
물론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녀가 살던 집에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경찰이 와서 수사한 후에 진술하고 나서는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받은 3억으로 자신만의 미용실을 여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렇게 산산이 부서질 줄이야.
“검찰 쪽에서 정보가 왔습니다. 암살자가 들어왔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되는데…….”
“보복요? 무슨 보복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애초에 그녀는 경찰이 조사 결과 노형진이 범인이라고 할 때까지 노형진의 이름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킬러라니?
“그게…….”
변호사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 또한 이 일이 암살까지 연결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미다스라는 세계적인 재벌의 부하입니다. 그 미다스가 보복을 위해 킬러를 보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재벌?”
“네, 그게…….”
말하던 변호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올해 기준으로 세계 18위의 재벌입니다.”
주지영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사람 무서운 걸 모른다. 하지만 돈 무서운 건 안다.
세계 18위쯤 되는 재벌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일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시킨 거야!”
“아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고…….”
“모,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야! 돈만 받으면 된다며! 처벌받을 일은 없다며!”
“처벌이 아니라…….”
처벌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목숨이 위험해지게 되었다.
“아니, 도대체 왜요? 내가 뭘 어쨌기에!”
“아무래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상대방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쩌려고요!”
“일단, 암살자를 잡기 전에는 가능하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있는 게…….”
순간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에 변호사는 잠깐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한장진 변호사입니다.”
-여보세요. 여기 서울중앙경찰서 강력부입니다.
“중앙경찰서 강력부요?”
그는 흠칫했다.
자신이 아는 한 강력부에서 전화가 올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말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귀하의 댁에 방금 전 총격이 있었습니다.
“초, 총격요?”
-네. 장거리 총격으로 보이는데, 창문이 깨졌습니다. 피해자는 다행히 없습니다만 안쪽에 있던 옷걸이가 박살 났습니다. 아무래도 그걸 사람으로 오해해서 쏜 것 같습니다만.
한장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왜 변호사를?”
노형진의 질문에 무태식은 목소리를 낮췄다.
“어차피 여자들은 아는 게 없을 테니까요.”
여자들을 습격해도 보복의 의미는 충족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범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돈을 받고 강간 피해 신고를 했을 뿐이다.
돈을 받고 신고한 것이 불법이기는 하지만, 그녀들과 배후의 접점은 아예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변호사는 좀 다르다.
강간을 신고할 때 그걸 도와준 것은 변호사다.
단순히 강간 신고를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한다면 변호사를 낄 필요는 없다.
외부적으로 보면 그녀들이 고용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무태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고할 때 변호사를 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특히나 강간 같은 사건은 바로 현장에서, 혹은 병원에서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그 긴급한 상황에서 변호사까지 끼고 신고했다?
나중에 보충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보면 네 명 다 변호사를 끼고 소송을 진행했더라고요.”
한두 명이라면 모르지만 네 명 다 그런 식으로 변호사를 끼고 신고를 진행했다면 그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공격 대상을 변호사로 잡았습니다. 여자를 공격해 봐야 노 변호사님의 무죄는 증명할 수 있겠지만 범인한테는 영향을 주지 못할 테니까요.”
무태식의 말에 노형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제대로 배우셨네요.”
“뭐, 지금쯤 여자들도 잔뜩 겁먹고 있을 겁니다.”
변호사에게 총격이 가해졌다는 걸 알았고, 언제 자신이 표적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다급하게 도망갔다.
물론 이미 새론에서 사람을 붙여서 추적 중이기에 별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경찰에서는 난리가 났겠군요.”
“난리가 났지요.”
무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은 사진이 잘 나오더군요. 망원렌즈가 얼마나 좋은지,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참 잘 찍혀요.”
“사진이 예쁘게 나왔나요?”
“아주 예쁘게 나왔던데요?”
사실 무태식은 경찰들의 사진을 찍어서 그들에게 발송했다.
물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총격을 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진만으로도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경찰들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불법적으로 증거를 조작해서 노형진을 잡으려고 했던 자들이다.
만일 미다스가 보복하려고 한다면 자신들 역시 보복의 대상이 될 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켕길 게 없겠지만요.”
중요한 건 이미 미다스가 보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복이 언제 멈출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를 악당으로 만드는 게 그들의 목적이라면, 그 소원대로 우리가 악당이 되어 주면 됩니다.”
무태식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노형진보다 더 과격한 사람이다.
돈 때문에 죄를 만들어 대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좀 과격한 쪽이 확실히 효과는 있겠네요.”
지금까지 이런 죄에 연관된 사람들은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다.
특히나 경찰이나 검찰은 일종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아예 조사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변명은 뻔하다.
자기들이 심은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심은 놈들은 대부분 추적 불가능하고, 아마도 해외로 도망간 후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라졌지요.”
지금까지처럼 그냥 법으로 처벌하던 게 아니라 킬러라는 극단적 방법이 동원된 이상, 그들은 공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킬러를 동원해서 사람을 노리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나 경찰과 검찰은 말이다.
‘그런 경우에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두 가지지.’
하나는 거기에 굴복해서 부패하는 것.
당장 멕시코가 그런 상태다. 대부분이 폭력에 굴했다.
그래서 죽거나 부패하거나다.
나머지 하나는 그 폭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목숨 걸고 싸워 이기는 것.
‘하지만 이미 돈 앞에 무릎 꿇어 본 놈들이 그럴 리가 없지.’
결국 그들은 공포라는 이름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가 꺼내 드려야겠지요?”
무태식은 노형진에게 말했다.
지금 구속 상태에서 꺼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아쉽네요. 여기서 편하게 먹고 자면서 휴가 좀 즐기나 싶었는데.”
노형진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 * *
얼마 후 새론은 구속적부심사를 신청했다.
구속이 정당한 건지 확인하기 위한 심사로, 만일 부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은 비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된다.
‘하지만 싸움이 될 리가 없지.’
담당 형사들은 모조리 병가를 내고 도망갔고 고소했던 여자들은 연락 두절 상태.
고소를 도와줬던 변호사들도 사임계를 내고 내뺀 상태에서 적당한 이유가 나올 리가 없다.
“이거 참…….”
담당하는 판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구속적부심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검사의 의견을 들어 봐야 한다.
그런데 검사가 없다.
멀쩡하던 검사가 갑자기 병을 이유로 사건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데.”
씁쓸하게 웃는 판사.
“켕기는 게 많으니 못 오겠지요.”
노형진의 말에 판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겝니다.”
판사는 바보가 아니다.
원래는 이 구속적부심사도 다른 판사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맹장이 터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한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일단 사건 기록을 확인해 봤습니다만.”
무태식과 함께 온 노형진에게 판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두 분 다 변호사이니 아실 테지만, 이 자리는 죄를 판단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구속영장 집행의 적법성 여부를 확인하는 자리이지요.”
“알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 측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여건 등을 생각하면 도주의 위험성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증거인멸 등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검사가 없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건 다 확인해야 한다. 그랬기에 판사는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재판장님,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를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중에 도는 소문에 의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시중에 도는 소문은 피고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발견된 총기가 있지요.”
단순히 사진만 날아온 거라면 누구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변호사들의 빈집에 총알이 날아들었고, 그 총알이 발사된 총이 발견되었다.
마치 보란 듯이 말이다.
그리고 연달아 사진들이 날아들었다.
미다스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그 총기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 확실했기에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 저희 피고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다스라 불리는 사람이 했다는 일련의 소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미다스의 존재는 그저 소문일 뿐이지, 증명된 바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지라시에서 보복한다는 소문만 돌 뿐이지 진짜 보복이 들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총격의 문제에 있어서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아무래도 적이 워낙 많다 보니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는 피고인 역시 변호사로서 무려 두 번이나 총에 맞았던 전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격을 당한 네 변호사들의 공통점이 피고인의 소송을 진행한 사람들이라는 부분이 문제가 되는군요.”
“그건 우연일 뿐입니다. 설사 그들이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았다고 해도 그건 완전 별개의 사건이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피고인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피고인은 지금까지 구치소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해 왔습니다.”
무태식의 말에 판사는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나서 문을 잠그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린 다음 무태식의 앞에 자리 잡았다.
“태식아, 툭 까놓고 말하자. 여기서 풀어 주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될 것 같냐?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르냐?”
“모르지는 않지요.”
경찰이고 검찰이고 죄다 도망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애초에 도망가는 놈들 자체가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자기들이 켕기는 게 있으니까 도망간 거잖아요.”
“야! 총알까지 날아오는데 누가 안 도망가?”
“그러면 조금만 위협이 되면 도망가는 게 정상이에요? 아니 뭐, 한국에서 깡패들이 검찰이나 경찰 위협하는 게 한두 해 일도 아닌데, 그때마다 도망가는 검찰이나 경찰이 어디에 있습니까, 선배?”
“끄응…… 그건 그렇지.”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위협이 들어오면 항복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고 목숨을 걸고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 새끼들은 튀었잖아요!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놈들이 돈 받아 처먹고 뭔 짓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 진짜. 선배도 알잖아요, 이거 누명일 가능성이 높은 거.”
“후우, 나도 들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숨으로 대답하는 판사.
아무리 조용히 움직인다고 하지만 법조계에서 소문이 도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이런 사건은 관련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경찰과 검찰 내부에 관련된 자들의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그와 관련된 소문 자체를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뭐 아는 거 있어요?”
무태식은 혹시나 하면서 다시 물었다.
“내부에 무슨 소문이라도 있었어요?”
“툭 까고 말해서?”
“네, 툭 까고 말해서.”
“이번에 뿌려진 돈이 30억이라더라.”
“30억요?”
“그래. 아주 작심한 것 같더라.”
“어디서 들은 건데요?”
이 정도로 소문이 돌았다면 그 근원지가 있기 마련이다.
“지검장 파벌.”
“네?”
“지검장 파벌이 모임을 가졌어.”
“지검장요?”
“그래. 그쪽에서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거든.”
“선거요?”
“그래. 국회의원에 나갈 계획인 것 같더라.”
“흠…….”
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정치인이 되기를 원한다.
어떻게 보면 판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걸 누리는 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책임은 지지 않는 존재다.
실제로 정치인들 중에는 법률가 출신이 무척이나 많다.
특히 판사 쪽이 압도적인 비율을 가지고 있으니, 판사를 하던 사람들이 정치 쪽으로 가는 것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돈이다.
당장 공천을 받기 위해서 당에 내야 하는 돈도 있고, 선거 자체에 들어가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원래 금수저가 아니라면 그 돈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최소한 20억 이상의 돈이 들어가니까.
정상적으로 판사 노릇을 한 사람은 쓸 수도 없는 돈이거니와, 어떻게 벌어서 쓴다고 해도 만일 당선되지 않으면 그대로 날리게 된다.
“그 소문, 확실한 겁니까?”
“확실하다 못해서 확정된 거다. 법원장이 여기저기 찌르고 다닌 지 제법 오래되었으니까.”
선배의 말에 무태식은 눈을 찡그렸다.
그런 판사나 검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거니와, 그런 자들이 세력을 만드는 것도 막을 수가 없다.
“법관이 정치권으로 가는 걸 막는 법을 만들기 전에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지.”
노형진은 그 말을 하고 있는 판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판사님은 정치권으로 가실 생각은 없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여기에 심사하러 오지도 않았겠지요.”
그는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죄다 심사하기 싫다고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온 거긴 한데…….”
원래 이런 재판을 심사하는 사람은 세 명이다.
원래는 그의 순번이 아니지만 둘 다 도망가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다.
“후우.”
“그러면 영웅 한번 되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뭐라고?”
노형진의 말에 그는 크게 눈을 떴다.
“지금, 사람들이 죄다 겁먹고 도망가는 상황이지요. 그래서 일이 여의치 않게 되어 가니 아마도 그들은 상당히 기분 나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노형진은 의자에 기대어서 차분하게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빠진 게 있지요.”
“빠진 것?”
“네. 기본적으로 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로 했다면, 결정적인 게 빠졌습니다.”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그들의 방법은 잘 먹혀 왔다.
물론 새론의 방해로 상황이 약간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언론에서 저를 신나게 씹고 있어야 합니다.”
“아…….”
성범죄 누명이 사람을 말살하는 가장 큰 이유.
그건 일단 여론 재판이 벌어진 후에는 무죄가 확정된다고 해도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기로 봐서는 이미 방송과 언론에서 저를 잘근잘근 씹고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제가 언론과 사이가 별로 안 좋거든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게 실패했지요. 왜일까요?”
무태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들이 이토록 조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고 해도 두한이 방송이나 언론을 통제하지 못할 가능성은 낮다.
“왜 그럴까요?”
“그건 무태식 변호사가 한 작전 때문입니다.”
“네? 저요?”
무태식은 당황했다.
자신이 노형진을 꺼내기 위해 작전을 짜기는 했지만 그쪽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한 건, 무태식 변호사의 작전에 경찰이고 검찰이고 죄다 꼬리를 말고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아!”
그제야 무태식과 판사는 아차 싶었다.
경찰이고 검찰이고 판사고, 죄다 가오로 먹고산다.
자기들이 위대한 사람인 것처럼, 최고의 지도자인 것처럼 군다.
“하지만 정작 암살 위협 때문에 꼬리를 말고 도망갔다는 걸 언론에서 알면 어떻게 될까요?”
“겁쟁이라고 빈정거리겠지요.”
원래 그런 위협에 굴하지 않고 싸워야 하는 것이 검찰과 경찰 그리고 법원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암살 위협에 잔뜩 겁먹고 움츠러들었다.
그게 외부에 드러나면 이만저만한 치부가 아니다.
“그리고 다른 문제도 있지요. 한 번 움츠러든 사람이 두 번은 움츠러들지 않겠느냐.”
“으음…….”
“폭력에 굴한 사람이 돈에 움츠러들지 않겠느냐, 돈에 움츠러든 사람이 권력에 움츠러들지 않겠느냐.”
노형진의 말에 판사는 눈을 찡그렸다.
이 말의 의미는 뻔하다.
“한국의 사법 시스템은 타락했다.”
재판부와 검찰 그리고 경찰은 그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사건을 기사화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랬다가는 제가 욕먹는 것 이상으로 자신들이 욕먹을 테니까.”
노형진이야 타격받을 게 거의 없다.
일단 무죄라는 게 증명되면 변호사 자격이 사라지는 것도, 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사회적 지위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회단체가 저를 공격할 것 같습니까?”
무태식도 판사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한국의 사회단체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
노형진은 강자이고, 보복에 들어가면 어지간한 사회단체 날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관련 기록을 삭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작심하고 삭제하려고 하면 못할 것은 없다. 다만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서 그러지 못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시간과 돈은 노형진에게 있어서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는 변호사지요. 변호사에게 중요한 건 승률과 힘이지, 사회적 유명세가 아닙니다.”
하물며 거의 돌지 않은 소문이라고 하면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저에게 거의 타격이 없어요. 물론 언론에서 이걸 가지고 때렸다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언론에서 때리기 전에 검찰과 법원이 먼저 꼬리를 말았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이참에 두한 라인으로 서 보시지 않겠습니까?”
판사의 눈이 묘하게 찡그러졌다.
지금 두한이 노형진에게 수작을 부린 건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두한의 라인으로 들어가라니?
“구속적부심사를 기각하세요.”
노형진의 말에 무태식은 깜짝 놀랐다.
“노 변호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구속적부심사를 기각하라니요!”
“구속 상태가 나한테는 문제가 안 됩니다. 저는 나름 구치소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거든요.”
“그런…….”
“제 구속적부심사를 기각하고 나면 아마 제법 핵심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그런데…….”
자기들 딴에는 법원의 신념을 보여 줬다면서 칭찬이 자자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두한에 소개시켜 줄 테고.
“자연스럽게 두한의 라인에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나보고 스파이 노릇을 하라는 겁니까?”
판사는 노형진이 요구하는 게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노형진에 대한 구속을 승인하면 그의 깡은 인정받는 셈이고, 그게 인정받으면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더러운 일의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차피 여기서 나가시면 변호사가 되실 거 아닙니까?”
“으음…….”
“저와 두한 양쪽에서 돈을 받으면 제법 많이 받으실 것 같은데요.”
“돈 때문에 제가 흔들릴 거라 생각합니까?”
“그건 아니지요. 하지만 여기에 왔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신념이 제대로 되신 분이라는 거지요.”
판사는 침묵을 지켰다.
맞는 말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다들 겁먹고 도망가는 상황인지라 자신이 온 거다.
이대로 심사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저는 벌써 구속에서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요?”
무태식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은 구속적부심사를 하면 풀려나는 게 확정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니?
“그냥 구치소에서 좀 쉬고 싶어서요?”
“장난하지 마시고요.”
노형진은 무태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풀려나면 사건이 너무 편하게 흘러가거든요.”
아마도 구속에서 풀려나면 여자들은 신고를 취소할 것이다.
사실 무고가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들 입장에서는 신고를 취소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강간은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니잖습니까?”
“그렇지는 하지요. 하지만 이건 엄밀하게 말하면 친고가 아니거든요.”
그녀들은 강간당했다고 신고한 거고, 노형진이 특정된 것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머리카락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신고가 거짓이라고, 사실은 거짓말한 거라면서 취소하면 그 증거의 능력도 부정됩니다.”
“아하!”
증거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증거가 효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그러면 저는 풀려나겠지요.”
“그래서요?”
“그러면 보복을 멈춰야 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미 풀려났는데 보복을 계속하기도 애매해지고요.”
노형진은 이번 기회에 이런 짓거리를 하는 놈들을 박멸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걸렸지만, 이놈들이 그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돈을 받아 처먹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당분간은 제가 구치소에 있겠습니다. 그러면 보복의 정당성은 계속 이쪽에 있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그 여자들이 먼저 신고를 취소해 버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네요.”
신고를 취소하려고 했다면 벌써 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들은 하지 않고 있다.
“제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은 안심하는 거지요.”
그래서 노형진은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그들을 박멸할 수 있으니까.
“물론 두한 역시 당황할 테고요.”
“두한을 가만두지는 않으실 생각이군요.”
“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 제가 보복한 건 없다는 거지요.”
“그건…… 그러네요.”
암살자가 왔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미다스나 노형진이 보낸 거라고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투자회사들이 자산을 빼고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노형진의 공격 때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마이스터와 미다스는 보복을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그들의 신의에 문제가 생깁니다.”
“신의?”
“다급하게 나가 버린 외국계 자본이 손해를 보지 않았겠습니까?”
“아하! 그 부분을 생각 못 했네요.”
다급하게 나갔으니 손해 보는 정도가 줄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예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보복하지 않으면 저는 그들을 속인 셈이 되거든요.”
“그건 좋은 선택은 아니지요.”
어찌 되었건 노형진의 목적은 두한과 싸우는 것이지 세계 투자회사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보복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형진은 당분간은 구치소에 계속 있을 계획이었다.
“아마 저에 대한 보복이 진행될수록 심장이 떨리는 건 두한일 겁니다, 후후후.”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다
“뭐? 구속이 연장되었어?”
이상주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상황을 봐서는 구속이 연장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노형진의 구속이 연장되었다는 소식이 다급하게 들려왔다.
“그 판사 새끼, 바보 아냐! 이 상황에서 연장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서 더 연장한 거랍니다, 자신들이 봐서는 그런 식으로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많다고…….”
“이런 미친!”
상황은 치명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무마하고 싶었지만 이미 지라시를 통해 소문이 무섭게 돌고 있었다.
물론 지라시로 소문이 도는 거야 문제가 안 된다.
지라시의 대부분은 가짜이고, 가끔 그런 소문을 고의로 돌려서 개기지 못하게 하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다스가 노형진을 꺼내기 위해 법원에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보복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풀어 줘!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수습해야 할 거 아니야!”
“그게, 그 판사는 나름 우리를 위해 한 거라고…….”
“와…… 미치겠네.”
구속적부심사는 한 번뿐이다.
그게 끝났으니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결국 노형진은 여전히 감옥에 있고, 미다스의 뚜껑은 제대로 열렸을 수밖에 없다.
“어쩌다 이런 일이…….”
완벽하게 자기 함정에 자신이 빠진 꼴이었다.
미다스가 손절했어야 정상인데 그러지 않은 바람에 두한은 핀치에 몰리고 있었다.
“회장님, 지금 기재부 장관님께서 만남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바로 시간을 잡아 달라고…….”
“바쁘다고 나중으로 미뤄.”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라도 이야기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다못해 전화라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미다스가 한국에 보복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식시장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복의 대상을 단순히 두한이 아니라 한국으로 특정한 것이 문제였다.
더군다나 그로 인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다른 외국 기업들까지 빠져나가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급격하게 외화가 빠져나가면서 또다시 IMF가 오는 게 아니냐는 공포 섞인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그 사건의 원흉이나 마찬가지인 두한과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할 리가 없다.
문제는 두한 입장에서도 딱히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미다스, 아니 마이스터 쪽에 이야기해 봐.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풀어야 하지 않느냐고.”
일단은 딱 잡아떼는 전략을 선택한 이상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