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616)
일단 차유람의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신고한 게 차유람이고 김성혜가 여전히 차유람에게 복수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차진성은 심각할 정도로 김성혜에게 사실상 예속되어 있어 그녀의 말을 거부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정신과의 판단만으로도 차유람에 대한 친권은 박탈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차진성의 행위능력이 문제군요.”
무태식 변호사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것만 가지고 성년 후견인을 들이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야 하니까요.”
차유람의 보호자 노릇을 하는 것과 차진성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차유람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차진성이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생활조차도 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군다나 그동안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면서 성실하게 일해 왔으니…….”
“일단 멀쩡하게는 아닌 것 같은데요?”
회사에서도 얼마나 호구 취급을 받았던가?
하지만 사회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 때문에 아무래도 성년 후견인을 신청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금치산자까지 바라는 게 아니니까.”
“네?”
“애초에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한 사람한테 어떻게 금치산에 준하는 성년 후견인을 요구하겠습니까?”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 제도가 사라진 후에 성년 후견인 제도가 생겼다.
그중 성년 후견인은 금치산자처럼 완전 대리를 담당하고, 한정 후견은 한정치산자 제도처럼 위임받은 특수 경우에만 대리가 가능하다.
노형진도 전자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가 노리는 건 한정 후견인입니다.”
“한정 후견인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한정 후견인은 그 사람이 어떤 부분에 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요구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지독한 낭비벽이 있다면 가족은 한정 후견인 제도를 통해 일정 금액 이상의 거래에 대해서는 후견인이 결정하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딱히 그런 특정한 문제가 있다고 보기에는 좀 애매할 듯한데요.”
“이미 관련 자료를 준비해 놨습니다.”
노형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 * *
“흠…….”
판사는 오광훈 검사의 요구 사항을 보면서 표정을 굳혔다.
이런 성년 후견인은 가족 아니면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신청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게 힘들었지만 이미 스타 검사 제도를 통해 손잡은 여러 검사들이 있는 새론 입장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오광훈 검사는 이 차진성이라는 사람에게 한정 후견인이 필요하다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현실적으로 차진성은, 정신과 기록에서 보다시피 피고 김성혜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광훈은 판사에게 차진성의 은행 기록을 내밀었다.
“보다시피 현재 차진성은 김성혜를 꺼내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매일같이 피고를 만나기 위해 구치소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종속된 상황에서의 그러한 행동은 본인뿐만 아니라 딸인 차유람에게도 피해가 가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오 검사, 차진성이 아무리 김성혜의 범행의 피해자라고 하지만 동시에 남편입니다. 부부 사이의 일에 우리가 끼어들기는 참 애매하지요.”
‘지랄맞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오광훈은 판사의 말에 속으로 툴툴거렸다.
실제로 노형진이 그 말이 나올 거라고 경고했으니까.
“하지만 그 가해자가 제삼자를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지요.”
“죽인다고요?”
“그렇습니다. 현재 해당 구치소에서 김성혜와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오광훈은 제법 두툼한 파일을 건넸다.
“보다시피 이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고 김성혜는 자기 딸인 차유람을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조금만 수틀리면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죽여 버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차유람의 신고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된 김성혜 입장에서는 그녀가 배신자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죽인다는 말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게 나가서 보복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진짜로 죽인다는 건지, 판사 입장에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진성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구치소에 가고 있으니까요. 면회실에 같이 들어가는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서도 김성혜는 차유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죽이겠다고 하거나 차진성에게 ‘차유람을 당장 죽여라.’ 등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오광훈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판사에게 집중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였다.
“만일 그녀가 나와서 차유람을 차진성과 함께 살해한다면 일이 커집니다.”
“살해? 설마…….”
“판사님, 여기 차진성에 대한 정신분석 자료를 봐 주십시오. 그는 김성혜에게 아예 노예 이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과 더불어 자존감의 상실로, 오로지 김성혜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흠…….”
“애초에 십수 년 동안 맞으면서도 저항도 하지 않고 이혼에 대해서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김성혜에게 종속되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
오광훈의 말에 판사는 찝찝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불안정하기는 하다.
“그래서 제가 한정적으로 성년 후견인을 신청하는 겁니다. 전반적으로 모든 걸 통제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현재 정신적으로 종속된 상황에서, 차진성은 김성혜의 범죄의 도구로써 딸인 차유람에게 어떠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애초에 후견인 제도라는 것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위험한 짓을 하기 전에 막기 위해서 말이다.
“제 생각에는 재산과 변호사 선임에 관해서는 성년 후견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만일 여기서 정신적 치료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김성혜가 나올 때까지 실제로 치료되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나온 김성혜와 더불어 진짜로 차유람을 살인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소 1년이란 말이지.’
문제는 폭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지만 전반적으로 형량이 낮은 한국 법원의 특성상 김성혜가 길게 감옥에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일찍 나오면 그 종속된 상태를 미처 치료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판사가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건 상당히 위험해 보이기는 하는 상황이다.
“차진성에 대한 한정 후견을 승인하겠습니다. 권한은 재산에 대한 부분과 변호사 선임에 관한 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매년 정신감정을 받아서, 치료되었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한정 후견을 종료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룬 오광훈은 씨익 웃었다.
* * *
결국 차진성에게 한정 후견인이 붙었다.
그는 변호사 선임과 일정 이상의 자금 사용에 대해서는 권한을 잃었기에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게 되었고, 변호사비를 내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김성혜는 죽여 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괜찮아? 걱정되지 않아?”
“전혀 걱정 안 돼요. 어차피 그 여자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쯤이면 이사 갔을 텐데요, 뭘.”
어깨를 으쓱하는 차유람.
“결정된 거니?”
“아빠도 이번에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부분을 인정한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지.”
제정신이 아니어서 차유람에 대한 친권을 빼앗기고 심지어 법원에서 한정 후견인까지 결정되자 차진성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위험한 일인 거 알지?”
“네? 어째서요?”
“엄밀하게 말하면 종속 대상이 바뀐 것뿐이야.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단다.”
노형진의 말에 차유람이 눈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너희 아버지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걸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갑자기 사람이 그렇게 바뀌지는 않는다.
어쩌면 차진성의 성격 자체가 그런 타입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종속되고 그에 따라 끌려다니는 타입 말이다.
“지금 그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구는 것은, 기존의 김성혜가 지배하던 구조에서 법원에서 정한 성년 후견인이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었을 뿐일 가능성이 있어.”
“네에?”
차유람은 눈을 찡그렸다. 그건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이 그렇게 쉽게 올라오지는 않으니까.”
씁쓸하게 말하는 말하는 노형진.
사람의 정신이 그렇게 쉽게 치료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아빠는…….”
그래도 아직 어린 차유람은 아빠인 차진성에게 기대고 싶은 건지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했다.
“저한테 정신 차렸다고, 제대로 한번 살아 보자고 했어요. 자기도 노력하겠다고…….”
“그건 말뿐일 거다.”
“아니에요!”
어떻게든 아버지를 믿고 싶은 차유람.
아무리 당차다고 해도 역시 여전히 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순간 던져진 노형진의 말 한마디에 차유람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엄마랑 이혼하겠다는 소리 하던?”
“그건…….”
“만일 너희 아버지가 진짜로 정신을 차렸다면 엄마랑 이혼하는 게 최우선일 거다.”
자신을 패고 딸에게 해를 끼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여자다. 지금도 변호사를 선임해 주지 않는다고 계속 협박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바로 이혼하고 손절을 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
“…….”
차유람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친아버지가 정상이라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잔인하지만 확실하게 알려 줘야 한다.
한번 종속된 사람은 떠나는 게 쉽지 않다.
“아마 상담 치료가 제법 오래 걸릴 거다.”
“흑흑흑.”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현실이다.
“조금만 참아라. 3년만 지나면 너도 성인이니까.”
그리고 그때는 그녀가 법원에 신청해서 법정대리인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도 그때쯤이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면 이혼은요? 이 미친년이 다시 우리를 찾아오는 건 진짜 싫다고요! 그 대리인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애석하게도.”
법원에서 정한 법정대리인의 한계는 명확하다.
본인이 뭔가를 할 때 그게 정당하다고 승인을 내주는 것.
아무리 법정대리인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법정대리인이 본인을 대신해서 새로운 법률행위를 할 수 없다.
그게 대리의 한계다.
“이혼소송은 전혀 새로운 법률행위야. 대리권으로 신청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지.”
즉, 이혼시키고 싶어도 차진성이 이혼 의사를 밝히기 전에는 이혼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그 미친년이 찾아오잖아요!”
“그게 문제이기는 해.”
아무리 보복 폭력이라고 하지만 3년 형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그러면 그사이에 김성혜는 출감할 테니, 차진성에게 돌아올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김성혜가 좀 고쳐진다면 모르겠지만.’
사실 김성혜가 마음을 다잡고 차진성과 차유람에게 사과하고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이 베스트이기는 하다.
하지만 노형진의 오랜 경험상 김성혜는 절대 그럴 여자가 아니다.
심지어 조사 결과, 차유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녀는 알게 모르게 차진성을 구타해 왔다.
다만 점점 그게 심해진다는 게 문제다.
차라리 그 둘의 관계가 성적인 S와 M, 즉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라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김성혜는 일방적인 폭행의 가해자였다.
“그 부분이 문제이기는 하구나. 김성혜가 이혼 청구를 할 리는 없으니까.”
그러니 그녀가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이혼하도록 해야 한다.
“고민 좀 해 보자꾸나.”
노형진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